MIU404

성가심, 그 이상의 감정이란

모든 것 이후 이부시마의 대환장 맞짝사랑 자각 일대기...러브코미디..라고 썼는데 조금 담백합니다.

"시마~."

또 시작이다. 오늘따라 끈질기게 이름을 불러오는 제 파트너를 반쯤 무시한 채로 시마 카즈미는 차에서 내렸다. 이젠 멜론빵 호도 아닌 평범한 자동차를 뒤로 한 채, 뒤에서 쫄래쫄래 따라오는 파트너는 질리지도 않는지 제 이름을 불러대고 있다. 시마, 시이마, 시마시마시이마~. 운율까지 붙여 부르는 대담함에는 대답 한 번쯤 해주어도 좋지 않겠냐고 코코노에나 다른 이가 본다면 그리 말하겠지만 모르는 소리, 오히려 이럴땐 대답 해주지 않는 편이..

"시~마쨩."

앞을 가로막히는군. 하나 배웠다. 시마는 한숨을 쉬며 들고있던 파일을 고쳐잡았다. 또 뭔 말을 하려고 앞까지 가로막은 채 떡하니 서 있는 건지. 아니,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다.

"시마, 대화 좀 해."

"대화."

"응, 시마가 좋아하는 대화~."

누가 대화를 좋아하냐. 그런 쓸데없는 반발심이 말로 튀어나오는 것을 간신히 틀어막은 시마는 목울대를 울리며 작은 한숨과 함께 말해보라는 양 고개를 한 번 끄덕인다. 말해두지만 시마 카즈미는 굳이 따지자면 조용한 것을 선호했고 그게 아니라면 자신이 입을 열지 않아도 대화가 원만히 돌아가는 것을 구경하는 쪽을 선호했다.

거기다가 한 두마디 붙이는 걸 좋아했지. 그러니까 대화를 좋아한다는 건 대체 어디서 나온 유언비어인지 모르겠으나... 아니, 그래. 이부키 아이와 같이 행동한 이후로는 이쪽을 조금 더 선호하는 것 같기도 하다. 말을 안 하고 튀어나가는 것과 말을 하고 튀어나가는 것에는 크나 큰 차이점이 있으니까. 물론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만. 하여튼,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대화' 까지 하자며 저를 불러세웠는지 그거 하나는 참 기특하기 그지없..

"시마쨩, 요즘 나 피하지? "

"아니야."

취소. 앞으로 대화는 싫어하는 것으로 정정하겠다. 오늘부터 그러하기로 하자. 여기서 시마 카즈미는 다시 한 번 인정해야했다. 이부키 아이의 '감' 이라는 것을 꽤나 얕보고 있었다고. 아니, 사실 그런 것도 아니었다. 언젠가 눈치챌 거라고 생각했지만 나름 제 입장에서는 티 안 나게 피해다녔기에 이렇게 빠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몇 초간 눈을 마주보던 시마 카즈미는 문을 막고있던 자연스럽게 이부키를 뚫고 지나갔다.

"피한 적 없어."

"거짓말!"

"피한 적 없대도."

"거짓말! 100%야. 시마, 요즘 나 피하고있잖아!"

"착각이라고."

아, 성가셔 죽겠네. 이게 다 누구 탓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시인하자면, 시마 카즈미는 이부키 아이를 피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원인 또한 이부키 아이에게 있었다. 모든 일은 크게 보자면 이부키를 위해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놈의 야생의 감이라는 건 왜 본인한텐 발휘되지 않으신 채로 나에게만 예민하게 반응하는지. 둔한 건지 날카로운 건지 하나만 하라고 당장이라도 따지고 싶은 것을 참고 있는 입장으로서는 말 그대로 환장할 노릇이었다.

"있지, 시마쨩.. 나 뭐 잘못했어..?"

그 말에 시마 카즈미는 우뚝, 걸음을 멈췄다. 비단 말소리 때문만은 아니고 졸졸 따라오던 장신의 남자의 발소리도 함께 멈춘지 오래이기 때문이었다. 분명 뒤돌아보면 비 맞은 강아지마냥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겠지.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참는다. 뒤를 돌아보면 분명 마음이 약해지겠지. 시마 카즈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별 것 아니었다.

보통의 이부키 아이라면, 이정도까지 온 상황에서 으르렁거리며 제게 불만을 표현해야 옳았을 터다. 시마 카즈미는 뒤를 돌아봤다. 아, 젠장할. 그러니까, 이 되도 않는 말장난에 시마 카즈미라는 인간이 이부키 아이에게 굳이 거리까지 두면서 일상을 이어나가고 있는 이유는,

저 망할 들개라고 칭해지지만 4기수의 최고 기동력을 탑재하신 자칭타칭 감이 좋으신 이부키 형사님께서 시마 카즈미라는 인간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도 본인은 눈치채지 못한 채로 돌아다니니 슬슬 주변 사람들도 묘한 시선으로 보기 시작해, 그를 위해서도 자신을 위해서도 적당한 퍼스널 스페이스를 지켰을 뿐이다.

*그렇게 따지자면 이전이 더 이상하지 않은가? 퍼스널 스페이스가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 아닌가! 하여튼 시마 카즈미는 여러모로 억울했다.* 애초에 감이 좋다는 놈이 왜 자기가 누굴 좋아하는지 아닌지 눈치를 못 채는 건지. 누군가는 착각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아니, 절대. 시마 카즈미 또한 처음엔 자신이 미친 줄 알았다.

연애를 한지가 오래되어서 내 자신이 미쳤나..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역으로 내가 이부키 아이라는 인간을 사랑해서 그런 말도 안되는 망상을 시작한 건가? 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아무렴, 시마 카즈미는 제 자신 또한 믿지 않는 남자이니. 의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해보았고 두 가지 답이 나왔다.

시마 카즈미가 이부키 아이를, 이쪽은 보류로 치더라도 이부키 아이가 시마 카즈미를 좋아하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이지. 인간으로서의 호감이 아니라 연애적인 요소로 말이다. 오, 맙소사. 시마 카즈미는 그때 잠시 핸들에 머리를 박았던 것을 상기한다. 빵 소리가 났던가. 당황한 이부키의 얼굴이 있었지..그건 좀 웃겼는데.

"잘못한 거 없어."

"그럼 왜!"

"애초에 사람 말을 좀 들어. 피한 적 없다고"

"피했어, 피했어, 피했다고!"

"귓등으로도 안 듣냐..."

그럴만도 하지. 대단하신 이부키 형사님께서는 제 감을 꽤나 신뢰하는지라 *물론 그 감이라는 것은 시마 또한 상황에 따라서 참고할만은 하다고 생각하지만* 한 번 확신이 든 이상은 의심하지 않으신다. 내가 논리로 납득시키기 이전에는 말이지. 이젠 이런 대화를 해도 분주소 내의 사람들이 모두 그러려니 하며 넘어간다는 것 자체가 이 관계의 거리감이 어떻게 됐다는 점을 깨달을 때도 됐건만. 그 단순한 뇌는 '파트너니까' 라는 말 하나로 모든 것을 납득하기라도 한 것인지 그 이상 생각을 진전시킬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시마쨩이 날 피하다니....아이쨩 슬펏..!!"

"...."

그의 당당함은 물론 얼마 가지 못했다. 시마 카즈미의 시선이 매우 짜게 식어있었기 때문이다. 이부키는 잠깐의 아이컨택 후 허겁지겁 말을 이었다.

"..시, 시마쨩~, 장난이야."

시마는 아무말 없이 바라봤다.

"장난이라니까아 그런 눈으로 보지말아줫.."

그리고 이부키를 두고 걸었다.

"시, 시마아악 두고가지마아!"

큰 문제가 방금 해결됐다. 응, 아직 지극히 정상이군.


분주소 내에 들어온 이부키는 냅다 보이는 코코노에에게 달려들었다. 큐쨔아아앙.... 뭐, 뭡니까. 어라, 근데 큐쨩이 왜 여깄어? 점심이라도 같이 먹지 않겠냐고 진바씨가.. 그보다 무슨 일이세요.. 일단 놓으시죠. 큐쨔아아아앙.. 그런 소리가 들리는 것을 시마 카즈미는 무시한 채로 노트북을 펼쳤다.

아까 미처 다 말하지 못한 두 번째 문제점에 대하여 설명하자면.. 제 자신이 미치지 않은 것은 아닌 것 같다는 것에 있다. 그러니까.. 보통 180이 훌쩍 넘은 남성이 귀여워보이는 일은 없지 않은가. 다시금 일반적인 상식을 상기한 시마 카즈미는 타자를 누르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쯧, 두 번 눌렸네.

분명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귀여워보일 법 하면 짜증도 같이 몰려와주니 정확한 감이 안 잡힌다. 차라리 시원하게 답이 나오는 것이었다면 대쉬를 해보든 뭘 해보든..

탁, 이었는지 쾅! 이었는지 하여튼 소리가 나게 노트북을 덮자 저 멀리 있던 남자 두 명의 어깨가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알 바냐.. 지금 무슨 생각을 한 거지? 분명 저자식의 페이스에 휘말려 제정신이 아닌 건 확실하다. 노트북을 두고 일어난 시마는 바람을 쐬러 다녀오겠다는 한마디와 함께 분주소를 나섰다.

***

"..그래서 무슨 잘못을 하신 건가요."

"모르겠으니까 문제라는 거라고오.."

"대역죄를 저지르신 게 아닌가요. 저정도면"

"역시 그렇게 보여? 그치만 나 요즘 얌전히 말 잘 들었는데."

"..정말 없으신 게 맞나요?"

이유없이 화내시는 분이 아니잖아요. 큐쨩의 말에 이부키 또한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문제는 진짜..나?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시마가 저정도로 화를 낼만한 일을 저지른 기억이 없다. 애교를 부려서..? 아..짜증나긴 하죠. 저기 지금 너무한 말 하지 않았어? 아닙니다. 그런 말들을 하고 나서도 시마는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있지..진바씨는?"

"저번에 다른 기수분들이 빌려가신 채가 있다며 가지러 가셨어요."

그으래, 조금 시무룩해 보이는 이부키를 보며 코코노에는 퍽 의외라는 양 눈을 끔벅였다.

"보통이면 화를 내셨을 것 같은데 의외네요."

"응? 내가?"

"네, 이유없이 피하는 건 싫어하실 것 같으니까."

"뭔가...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아."

"그건 그렇겠죠."

그들이 아는 시마 카즈미는 일단 이유 없이 사람을 피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리고? 코코노에는 이부키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렸다.

"뭔가..화가 안 나..!"

코코노에는 잠깐 정지했다. 그리고 잠깐의 고민을 거쳤지만.. 이내 뱉었다.

"..어디 아프세요?"

"어이"

"아니군요."

안심했습니다. 그리 덧붙이는 말이 어찌나 얄미운지. 이부키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만다. 하여튼 시마가 이상하단 말이야아... 그리 칭얼거리자 코코노에는 냄비들을 꺼내며 물었다. 정확히 뭐가 이상하다는 건가요? 그에 이부키는 하나씩 늘어뜨리기 시작했지. 최근의 시마는 정말 이상했다. 라고

***

시작은 언제나 이부키 아이였다. 생각해보면 사건의 발달이나, 관계의 시작이나, 대화의 시작은 언제나 자신이었던 것 같기도 했다. 어라? 이거 좀 억울하지 않아? 라고 생각할 때 즈음, 시마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준 적도 있었다. 때문에 이부키는 이에 대해서 딱히 불만을 가지진 않았다! 뭐 아주 조금은? 쪼오오끔은?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에잇, 하여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부키는 시마와 파트너로서 매우 끔찍한 관계라고 자부했다. *진저리치는 쪽 말고 끔찍하게 위하는 쪽 말이다.* 뭐 이래저래 소동도 많았지만 결국 다시 의기투합을 하지 않았는가? 이부키는 시시콜콜한 시마와의 투덜거림이 좋았고 대화가 좋았다.

그러니 실실거리며 붙어오는 것은 일상 다반사고 지극히 이부키 아이스러운 스킨쉽도 존재했다. 어깨동무를 한다거나 괜히 붙어 앉는다거나 하는 짓거리를 말이다. 시마는 이것들을 딱히 무어라 하지 않고 받아줬다! 어깨에 턱을 올리든 머리에 턱을 올리든 손을 올리든 기대든 밀든 잡든간에! 분명 그러했단 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시마가 제 자신의 우정어린 접촉을 피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예를 들자면...

***

"그러니까, 시마씨가 어깨동무도 피하시고 어깨에 턱 괴는 것도 못하게 하시고 붙어오는 것도 못하게 하신다고요."

"응"

"..그것 뿐입니까?"

"그것 뿐이라니?!"

코코노에는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진바씨, 언제 오세요? 밥이나 먹고 돌아가고 싶습니다. 랄까 어찌되어도 좋은 것들 아닌가? 안 해도 되잖아 그런 거. 실로 담백한 남자인 그는 그런 생각을 했다. 애초에 그는 보통 스킨쉽을 받는 쪽이지 *진바가 어깨를 두드린다거나 하는* 하는 쪽이 아니기도 했다. *짬밥이 되지 않기도 했다.*

막내 포지션이기도 했고 말이지. 그렇다고 쳐도 이 미묘한 불안감은 뭘까. 코코노에는 묘하게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동료의 의리라는 단어로 억누른 채 말을 이었다. 또는 이부키와 대화할 때 퍽 자주 드는 감정이기도 해서 일지도 몰랐다.

".... 원래부터 싫어했는데 받아준 거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아니! 그건 절대 아니야. 시마는 그런 거 신경 안 썼어."

"그러십니까.."

"가끔 쳐다보긴 했지만.."

신경 썼잖아.

"...그렇다면, 뭔가 .. 그런 건 없었습니까? 어느 기점으로 이상해졌다던가. 그런게 있었을 것 아닙니까."

"시마가 언제부터 이상해졌냐고..?"

***

때를 잡기란 이부키에게 조금 어려운 일이었다. 그야 그는 일상에서 그다지 깊게 생각해 말을 던지는 타입이 아니었으며 행동 또한 그러했다. 하지만 시마 카즈미가 어느순간부터 이상해졌느냐 묻는다면 약 삼주 전의 이야기로 되돌아간다. 이부키 아이는 그즈음이 시초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뭐 본인이 놓친 것이 있다면 그러했을 터다.

언제인지 명확히 잘 모르겠으나 그때도 24시간 근무가 끝나고 퇴근할 때였다. 이부키는 묘하게 기운이 남아돌았다. 또한 심심했다. 그리고 옆에는 시마가 있었다. 이대로 헤어지기엔 아쉬웠다! 같이 술을 마시거나, 밥을 먹거나. 기왕 아침에 헤어지는 것이니 아침밥을 먹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종종 그런 적도 있었으니 시마도 어지간히 피곤하지 않다면 허락할 것이라 생각하며 시마의 상태를 살폈다. 음음, 딱히 피곤해보이진 않네.

"시마~"

옷을 갈아입던 시마는 저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또 무슨일이십니까 이부키 형사님."

"이대로 집에 가긴 아쉽지 않아~?"

"24시간동안 일해놓고 무슨 말인지.."

"밥이라도 먹고 가지 않을래~? 혼자서는 외롭잖아~ 응? 응?"

"집에 가서 잠을 자도 부족할 시간에 밥을 먹자고."

끼익, 소리를 내며 닫힌 캐비닛에 비죽 입술을 내민 채 바라보고 있자 픽, 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됐습니다."

"됐습니다. 금지!"

어라, 여기까진 평범하지 않나? 이부키 아이는 조금 더 시점을 앞으로 돌렸다. 기억나라 모락모락! 샘솟아라 과거! 틱,틱,틱.. 평소 사용하지 않던 뇌근육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그래. 정확히 이 뒤의 일이었다.

"그보다 굳이 내가 아니어도 되잖아."

"앞에 보인 게 시마였잖아~ 시마도 같이 퇴근 하잖아!"

"그러니까 나 말고 다른 사람이랑 먹어. 하무쨩이라던가"

아, 이 시간엔 일할 시간이던가? 하긴 아침이지. 역시 밤을 새면 시간개념이 애매해져. 그리 중얼거리는 시마를 쫄래쫄래 따라나선 이부키의 볼은 점점 부풀어져 있었다. 이윽고 밖에 나설 때 쯤, 그는 작지 않은 소리로 외쳤다.

"나는! 시마랑! 밥을! 먹고 싶은 거라고!"

"시끄러워, 애냐! 큰소리로 말하지마!"

***

"...그러니까, 그 말을 밖에서 소리치셨다고요."

"그렇게 크진 않았걸랑!"

"신용이 안 가네요..."

이부키의 기차화통을 삶아먹었다고 해도 좋을만한 목소리를 익히 알고 있는 코코노에는 그저 흐릿한 눈으로 바라보는 수 밖에 없었다. 이부키는 시선을 피했다. 뭐 아주 조금은... 근처에 있는 사람은 들었을지도..

"하지만 고작 그걸로 시마씨가 피하셨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데요.."

물론 자신에게 했다면 기겁했을 것이고 시마 또한 기겁하긴 했을 것이다. 라고 코코노에는 생각했지만 그가 아는 시마 카즈미는 고작 그런 이유로 이부키 아이를 피할 사람은 아니었다. 물론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이긴 했으나..상대가 이부키 아이니까. *어째 고유명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착각인가?* 코코노에는 의구심을 뒤로 미뤘다.

"...."

"...뭔가 더 있으신 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묻지 말걸 그랬다.

***

때는 바야흐로 이주 전이다. 이쯤 코코노에는 뭐 그렇게 주기적으로 사고를 치셨냐며 한마디 했다. 이부키는 억울했다. 사고라니.. 아무튼 그날도 특별할 것 없는 흔들거리는 차 안에서의 흔들흔들 일상이었다. 흔들흔들이 너무 많은데요. 태클은 가볍게 무시했다. 이부키는 핸들을 잡고 있었고 시마는 파일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또한 시덥잖은 말소리가 오가고 있었다.

멜론빵 호가 그립다던가 그게 뭐가 그립냐던가. 그래도 우리의 추억이 담겨있지 않느냐 추억을 왜 멜론빵 호에 담아야하느냐.. 같은 시덥잖은 말장난 말이다. 24시간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길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고 있다보면 꼭 이런 일이 있었지, 라고 주제가 회귀하는 날이 많았다. 또한 이부키 아이는 꽤나 감성적인 인간이라.. 지나가며 보이는 마을의 풍경을 보고 있자면 기분이 좋아 말하는 것들이 있었다. 그것은 감상이기도 했고 진실이기도 했으며 진심이기도 했다.

"뭐, 그래도.. 시마가 없었으면 지금의 난 없을지도."

그러니 이런 말을 해버리는 것도 일상 다반사였다는 것이다.

"....뭐, 하나하나가 다 스위치인 거니까."

"역시 시마가 아니면 안돼~. 시마도 그렇지?"

시마는 파일철을 접으며 말을 이었다.

"...글쎄다, 난 딱히 니가 아니어도.."

"엑, 너무해!"

시마의 말이 농담 반 진담 반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았다.

***

"...."

"역시 일상적인 대화였지?"

"..설마 또 있습니까?"

"음...그게 며칠 전이었나.."

***

평범하게 밀행중 메론빵을 밥으로 먹고 있을 때였다. 파트너보다 한 발 빠르게 전부 해치운 이부키는 팩우유를 쪼로록, 마시며 아무생각 없이 말을 뱉었다.

"시마 말이야~"

또 뭔 얘기를 하려고.. 라는 듯 쳐다보는 시마에 이부키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입을 연다.

"가끔 큐릇~, 할 때 있지 않아?"

"이제 난 네 언어 중추신경이 궁금할 지경인데. 내가 뭐에 큐릇한다는 거야."

"아니아니, 시마가 가끔씩 큐릇하다고."

"커흡, 켁..!"

"으억, 뭐야? 무슨 일이야?! 우유 마실래?!"

***

"확실히 따져보면 그때 이후로 시마가 날 피하는 것 같기도.."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부키 앞에서 코코노에가 벌떡 일어섰다.

"진바씨가 늦으시는 것 같으니까 전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응? 어, 응. 확실히.."

말하자면, 코코노에는 도망쳤다. 옥상에서 내려온 시마는 코코노에와 마주쳤지만 왜인지 '힘내세요.' 같은 눈길을 받은 것 같았다. 오,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만. 왜인지 대강 무슨 일인지 알 것 같은 마법같은 감각인걸~. 이야, 언제 내가 독심술사가 된 거지? 이 또한 이심전심 언어의 마술사 들개자식의 탓일까? 아마 그렇다는 것에 아직 쓰지 않아 쌓여있는 제 휴가계를 걸어도 될 것 같았다.

"오우, 시마~ 돌아왔어?"

"큐쨩, 급하게 나가던데."

"아, 진바씨가 늦는다고 전화해본댔어."

퍽이나... 아마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무슨 얘기 했냐."

"시마가 날 피한다는 얘기~."

"또 그 소리냐.. 안 피한다고 하면 좀 믿어."

결국엔 또 제자리 걸음. 이 아슬아슬한 간격을 어떻게 해야할까. 시마는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한 차였다. 당연하게도 신중해야할 문제이며 저 또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믿어야하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의심해야하는지. 정작 제 앞에 있는 인간은 생각하지 않고 이곳저곳 하고싶은대로 하는 모양인데 왜 내가 저자식 몫까지 생각하고 고뇌하며 고통받아야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을 좀 해봤는데 말이야~."

이건 또 뭔 소리지. 왜인지 기특함보다 불안함이 먼저 올라온다. 시마 카즈미는 이제 무슨 말이 나와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생길 것만 같았다.

"무슨 생각을 했는데."

"술 마실래?"

"난 진짜 네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다......"

"대화를 하자는 거지~."

"그놈의 대화로 풀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안 드는데. 특히 너랑은."

"그거 무슨 의미?!"

이내 한숨이다. 그래, 대화... 대화라. 언제까지고 이 스탠스를 지속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주 놀랍게도 이부키의 제안은 타당했다. 제가 이부키를 피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면 모를까. 이미 확신하고 있는 상태에서 아니라고 말해봤자. 내 말을 들어주지도 않을 거다. 그야, 사실이니까. 묘하게 그런 쪽으로는 또 촉이 좋단 말이지. 이상할 따름이다.

이 나이를 먹고 속마음을 숨기는 데에 서툴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으나 시마가 살아오며 속마음을 다 들켰던 쪽은 가족 제외 단 두 명 뿐이다. 한 명은 숨길 수 없는 거고 이쪽은 숨기려고 해도 들키는 쪽이니.. 어느쪽이 더 짜증날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 생각한다. 몇가지 것들을 더 고려한 시마는 한숨과 함께 이부키의 제안을 수락하는 말을 뱉는다. 피해봤자, 더 큰 파도로 돌아올 뿐이다.

"그래, 어차피 내일은 주말이니까."

그리고 주말에 이녀석을 보게 되는 건 절대 사절이다.

"아싸, 그럼 큐쨩이랑 진바씨도 부를까?"

"대화하자며. 둘은 불러서 뭐하냐."

"머리도 여럿 맞대면 낫다잖아!"

"됐습니다. 제발 둘이 가시죠 이부키 형사님"

미쳤다고 전 4기수 전원한테 니가 날 짝사랑한다고 광고할 일 있냐. 심지어 한 명은 이미 눈치챈 것 같다.

"그럼 시마쨩하고 나랑 둘이 데이트~? 앙큼해라아~."

하......난 지성인이다. 나는 지성인이다.. 지성인도 가끔 피를 필요로 하지.. 않겠지. 나는 환자가 아니니까. 환자를 생성해내는 것도 안 되겠지... 진짜 딱 한 대만 딱밤 한 대만... 하지만 실행하지 않을 소원을 속으로 염불을 외며 이부키를 무시하고 지나쳤다. 이따 마실거지? 응?! 그리 따라붙는 발걸음이 분주했다.

***

좋아.. 좋게도 나쁘게도 딱, 알콜을 마시면 내일 죽겠다 싶을 정도로 적당히 피곤하다. 시마는 제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하고선 다시금 팔을 내렸다. 귀신같이 제 등 뒤에 껌딱지처럼 붙어있는 혀여멀건 옷을 입고있는 남자를 무시하고 집으로 돌아갈까 싶으면서도 지금 무시하게 된다면 정말 주말 내내 시달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오싹하기 그지없었다.

말하자면 시마 카즈미 안에 이부키 아이의 농도가 너무 짙었다. 슬슬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때였다. 그의 정신없음을 싫어하는 것 까지는 아니었으나 일주일 내내 붙어있기엔 무리가 있었다. 가장 큰 이유로는 이자식이 날 좋아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기력 소모가 엄청났다. 이걸 자각시켜야하는지 아닌지조차 모르겠고 실제로 제 자신은 어떻게 하고싶은지조차 모르겠으니.

"시~마쨩."

"네네, 갑니다 가요."

"요새 거기 신메뉴가 생겼다고 그래서 말이야~"

"헤에, 무슨 메뉴인데?"

기계적인 대답이 나온다. 나는 어쩌고 싶은 거지? 발걸음이 눈치채지 못한 새에 천천히 늘어진다. 이부키 아이는 시마 카즈미를 좋아한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쩌고 싶은 거지.

"뭐더라? 타코 와사비가 업그레이드 됐다고 했나?"

"그게 업그레이드 되서 뭐하냐."

"맛있는 게 업그레이드 되는 거니까 초 맛있을지도?"

시마 카즈미는 이부키 아이를 좋아하나? 글쎄, 굳이 따지자면 좋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인간적으로, 시마 카즈미는 이부키 아이라는 사람을 좋아한다. 높게 사고 있다. 그의 인간성, 불의를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 그걸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행동력. 어쩌면 일부분은 동경할지도 모른다. 자신이 가지지 않은 것을 이부키 아이는 가지고 있으니까.

"시마?"

그렇다면 나는 이부키 아이를 사랑하는가?

"..."

"시마!"

끔벅, 부름에 놀라 눈을 깜박이면 눈 앞에 보이는 것은 대뜸 들이밀어진 얼굴이라. 우왁, 하는 소리와 함께 반사적으로 안면을 잡고 밀어버린 것은 고의가 아니었다. ...시마쨩? ...아니, 가깝다고. 삐질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이건 진짜 삐지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제게 떨어진 이부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어라, 안 삐졌나? 무언가를 고민하는 모양새였다. 미간을 살풋 찌푸린 채로 저를 관찰하듯 가만히 바라보는 시선에 시마는 저도 모르게 손바닥 안에 땀이 고이는 느낌이었다.

"피곤하면 들어가서 쉴래?"

"...뭐?"

"아니 뭔가~, 오늘 시마쨩 반응도 느리고. 방금도 걷다가 멈췄고.. 많이 졸린가 해서?"

그의 말대로 시마는 어느새 제 걸음이 멈춰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

허, 급격히 긴장이 풀린 헛웃음이 터진다.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지만, 나 방금 왜 쫄았지? 정확히는 이부키가 제 행동으로 인해서 삐질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삐지면 귀찮아지겠지. 라는 생각보다 어떻게 풀어주어야하나를 걱정했다. 아, 망할. 그러니까 전혀 파트너가 삐지면 앞으로가 귀찮아지니까 라는 이유를 갖다붙이지 못할 감상으로 스위치가 움직였다는 뜻이다.

"..됐어, 마시러 가자."

"엑, 무리 안 해도 되는데? 언제든 마실 날은 있을테니까~."

"안 피곤해. 마시고 싶어졌어. 가자며?"

"어라, 뭔가 시마쨩 불 붙지 않았어?"

쓸데없이 감만 좋아선

"안 붙었어."

"붙었는데."

"안 붙었다고"

더 확실해 해야해. 아직, 완전히 도달하지 못했으므로. 시마 카즈미는 적어도 이 감정만은 어중간하게 두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걸 느꼈다. ..정말 안 되나? 안되겠지. 나마저 어중간한 채로 둔다면 눈덩이처럼 불어나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시마 카즈미는 앞서 걸었다. 그래봤자 금방 따라잡힐 걸음이었지만.

***

특별한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밥을 시켰고 술도 함께 시켰다. 술잔이 오갔고 대화는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은 채 묘하게 빙빙 돌았다. 뭐하자는 거지? 시마는 종종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으나 딱히 나쁘진 않았다. 그의 목적은 제 자신이 이걸 *이부키* 어쩌고 싶은 건지 알기 위해 이 자리에 참석했을 뿐이라. 사실 그 외의 것들은 어찌되어도 상관 없었다.

"있지, 시마아."

접시를 이부키 쪽으로 슬 밀어준 시마가 대답했다.

"왜."

"나는 지금이 좋아.."

"..너 취했냐?"

어쩐지 좀 속도가 빠르더라니

"안 취했어!"

"취한 사람이 보통 그렇게 말하지."

이상하다, 그렇게 많이 마셨나? 시마는 빈 술병의 갯수를 세어보다가 이부키의 부름에 다시금 고개를 돌린다.

"안 취했대도. 시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있지?"

"어 말해."

"그니까~, 음...."

"뭐야, 답지않게."

정말 답지 않게, 이부키는 말하는 걸 망설이고 있었다. 뭘 말하려고 저래? 이부키의 주저가 길어지자 시마는 살풋 미간을 찌푸리며 한 쪽 눈썹을 휙, 올리고 만다.

"난 시마가 좋아."

아, 씁. 흘릴 뻔..

"..시마는 어때?"

"..."

"....내가 싫어?"

시마 카즈미는 이부키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가만히 저를 바라보는 눈은 조금은 풀려있었으나 명확하게 저를 응시하고 있었고 퍽 진지했다. 하지만, 그래. 이내 시마는 느리게 숨을 뱉듯 웃어버리고 만다. 뭘 생각한거야? 이 야생의 바보한테. 아니, 진짜 바보군. 시마 카즈미는 제 안의 이부키에 대한 단순함을 얕봤다며 혀를 내둘렀다.

아, 이 멍청한 작자는 그러니까.. 단순히 사람으로써 내가 좋다고 고백한 것이다. 그래, 이게 이부키 아이지. 답지 않은 허탈한 웃음이 흘렀다. 방금 전까지 술잔을 잡았던 손에 힘이 들어간 것이 바보같다. 대체 뭘 두려워하고 있는 거야? 고작 며칠 좀 거리를 지켰다고 그리고 술 좀 들어갔다고 약한 소리라니. 이 자식이 이러니까 눈치를 안 채려고 해도 못 챌 수가 없는 것 아닌가.

"안 싫어해."

"..그럼 왜 피해!"

"진짜 발전이 없네... 이 대화."

"이게 다 시마가 아이쨩을 피해서 그래."

"네네, 다 내 잘못입니다."

"아이쨩은 단단하지만 유리같은 섬세함도 가지고 있다고!"

"하나만 해."

그만두자. 됐다, 됐어. 시마 카즈미는 이 번거로운 짓거리를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굳이, 내가? 아니. 그럴 필요도 못 느끼겠다. 방금으로 확신했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도착할 곳에 도착했다.

"..그럼 안 피할 거야?"

"....애초에 니가 너무 가깝단 생각은?"

"없어! 원래 잘 받아줬잖아!"

"그거야 니가.. 됐다, 그냥 다 그만두자."

"..뭘?"

"안 피하겠다고, 이제."

"..정말? 정말정말정말?!"

명백한 패배선언이다. 또는, ...또는? 글쎄. 앞으로의 일은 시마 카즈미도 잘 모르겠다. 과연 이 평화가 어디까지 갈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굳이 그가 자각하지 못하는 것을 뭍으로 꺼내 올리지도 영원히 수장시키지도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조금은 억울한 걸지도 모르지. 아니면 술기운이거나. 다음날 아침에 제가 무슨 생각을 할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지금의 시마 카즈미는 그러했다. 어차피 얼굴을 맞댈 수 밖에 없는 모양새라면 어울리지도 않게 도망가는 것은 그만두겠다고.

"그러니까 오늘은 그만 집에 가자."

"오웅"

"...너 내일 괜찮겠냐?"

"아~ 완전 완전.."

"완전완전 무리같은데."

"아 아니라고~"

"네네, 택시..!"

징징거리는 망할 들개를 택시에 태우고 시마는 집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겹쳐가던 술잔은 17잔 정도, 페이스가 빨랐으니 그자식은 나보다 더 마셨겠지. 알콜이 들어갔다고 해서 생각을 멈출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택시를 타지 않은 이유는 정리를 하기 위해서도 있었으나 차가운 바람을 맞고 싶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고 자시고. 일단 집에 들어가 씻고 자야겠다.

***

해서, 지금. 시마 카즈미는 퍽 평화로운 주말을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생각은 어떻게 됐냐고? 말했잖아, 어떻게 하고 자시고 없다고. 시마 카즈미는 시마 카즈미인 채로 이부키 아이를 대할 것이다. *물론 일어나자마자 무슨 생각을 하긴 뭘 해 미친놈아...같은 생각을 하긴 했다.* 그것에 이전과 다른 점은 없을 것이며 있다고 해도 의도한 것이 아닐 터다. 애초에 바보를 상대로 머리를 굴리는 것 부터가 잘못됐다.

시마 카즈미가 이부키 아이를 좋아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것이 사람으로써의 '좋아'이든 연애적으로서의 '좋아' 이든. 그것이 이부키 아이와 시마 카즈미의 관계를 흔들어놓을 이유는 되지 않으며 시마 카즈미가 이부키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이유도 되지 못한다. 저 혼자만의 짝사랑이었다면, 그대로 수장시켰을테지만.

지금 상황에 내가 굳이? ...굳이. 그러는 편이 좋을지도 라는 생각을 하긴 한다. 시마 카즈미는 이부키 아이를 좋아하는 것이지 연애를 하고 싶은 건 아니었으니까. 이게 무슨 소리냐고? ...굳이 연애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한 때 그러했듯이 시마 카즈미라는 인간은 무조건적으로 회피하진 않았으나 꽤나 포기가 빨랐고 현실을 알았기에. 애초에 저랑 연애해서 좋을 게 무엇 있다고.

마음을 접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니 이대로 이부키가 제 마음도 자기 마음도 알아채지 못한 채로 닳아 없어져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거나. ...발전, 을..해야할까? 굳이? 거기까지 생각이 들면 애매한 얼굴로 내려진 커피나 한 모금 들이키는 것이다.

"오, 이부키 왔냐."

"오우~ 진바씨 좋은 아침이에용~, 그리고 시마도 좋은 아치임~."

기분 좋아보이는 군.

"좋은아침...뭐냐 그 얼굴."

묘하게 히죽거리는 게 기분 나쁜데.

"시마쨔앙~...!"

"..그니까 뭐냐고.."

턱, 하고 어깨에 얹어진 것은 이부키의 턱이었다. 허, 어이가 없어서. 시마는 헛웃음을 쳤다. 지금 대놓고 뭐하는짓이지 이게?

"......"

".....흐흥"

"이부키 형사님?"

시마 카즈미가 상큼하게 웃었다.

"넹, 시마 형사님."

이부키가 기분좋은 듯 콧소리를 담았고

"무거우니까 떨어져주시죠."

시마 카즈미는 정색했다.

"옷스..."

4기수 404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마도, 이게 정상이라고 할 수 있다면. 정확히는 안정을 찾았다. 이부키는 시마에게 붙어있었고 시마는 그런 이부키를 딱히 밀어내지 않았다. 세간의 시선이 어떻든 이부키니까 그럴 수 있지 라는 것은 시마 카즈미에게도 퍽 편한 타이틀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마 카즈미가 받아주는 쪽으로 해석했으니 말이다.

뭐, 일로서 보자면 특별히 틀린 말도 아니다만. 시마 카즈미는 자신의 감정에 가끔 놀랍도록 차가움을 느꼈다. 사랑하는 건 사랑하는 거고 아닌 건 아닌 거다. 아니, 상대가 이부키 아이라서인가? 이젠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것만 같은 느낌에 가끔 픽, 웃음을 흘리는 것도 더러 있었다.

***

그러니까 그 날도, 망할 이부키 아이만 아니었다면 평화로웠을 것이다. 아마 이대로 이부키도, 시마 또한 그다지 커다란 일 없이. 변하는 일 없이. 아마 영원한 비밀을 이야기하듯 파도속에 묻혀서 저 지하에 모래에 덮여 사라졌을 것들이었다.

그날은 드물게도 이부키가 튀어나갔고 시마는 이미 뛰쳐나간 이부키를 따라잡을 재간이 없어 자전거를 꺼내며 무전으로 소리쳤다. 이부키! 다행인 것은 야생의 들개는 목줄을 쥐여준 채 뛰어갔다. 그것이 약 10분 전의 일이라. 다시금 차에 타 밀행을 진행하며 오랜만에 시마가 투덜거리는 것이 시초였다.

"너는 보면 생각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 같아."

"그야~ 시마쨩을 신뢰하니까?"

"말했지, 나도 항상 옳을 수 없다고. 나는 나조차 믿지 않는다니까."

"그러니까, 그럴때의 시마쨩은 '나'를 믿잖아."

우뚝 멈춰선 것은 그 때였다. 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왜 나는 몰랐을까. 파도가 밀려왔다 다시금 앗아가는 것은 모래알임에도. 파도에 묻혀 모래에 덮인 것이라면 기어코 언젠가는 드러나고 마는 것임을. 시마 카즈미는 엉성하게 덮어둔 것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남을 인식했다. 하, 어이없음과 체념의 웃음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틀릴 때는 시마가 잡아주고, 시마가 자신 없을 때는 내가 밀어주면 되니까~ 우리 완전 잘 맞는 파트너잖아?"

"그냥 니가 조금만 생각해도 크게 달라질 것 없는 파트너쉽일 것 같은데."

"엑, 안돼안돼~ 내가 시마의 아이단...뭐였지?"

"아이덴티티."

"그래 그걸 지켜주고 있는 거라고!"

"퍽이나."

정말, 퍽이나. 고작 그런 걸로 안심한 채 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제 자신의 안일함에. 아니,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는 이부키라는 인간의 탓이라고 떠넘길까. 잘 되면, 잘 된거고. 못하면, 파트너탓. 뭐 그런 건가? 짧게 자조한 시마는 생각했다. 아니, 이건 너무 갔군. 시마는 그저 느리게 숨을 뱉었다. 깊게 들이마시고, 다시금 느리게 뱉었다. 아마 여기에서부터, 완전히 포기했던 것 같다.

***

그러나 평화는 지속되고 아이러니하게도 재앙은 다른 곳에서부터 왔다. 시마 카즈미가 포기로*딱히 숨기는 것을 그만둔 것* 인해 평화로워진 것에 반하여 이부키 아이는 나날히 안절부절 못해졌다. 덤으로 코코노에라는 불쌍한 후배도 같이 말이지.

"..시마가 이상해."

"...또요? 어디가요?"

코코노에는 이젠 거의 일상처럼 이부키의 상담을 듣고 있었다. 이젠 이쪽도 거진 될대로 되라 라는 느낌이었지.

"뭔가...말로 못하겠는데 이상해!"

"이젠 피하지도 않으시잖아요."

"그게 이상하다니깐?!"

와, 시마씨. 피해도 피하지 않아도 이상하다고 들으시다니. 코코노에는 진심으로 시마 카즈미에 대한 애도를 표했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에 놓여진 자신 또한 마찬가지였지.

"전 이부키씨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응?"

"...화도 안 내시네요. 아무튼..대체 뭐가요?"

"뭔가....뭔가...나를 애취급 하는 것 같단 말이지?"

실제로 애 같으시지 않으신가요....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코코노에는 한 번 참았다.

"..그게 불만이신가요..? 잘 챙겨주신다는 거죠?"

"그건 좋은데! 좋은데 있지? 뭔가... 뭔가.."

뭔가가 뭘까 대체... 코코노에는 아련하게 허공을 한 번 바라봤다. 그리고 저 멀리서 구세주가 나타났다. 복도에서부터 걸어오는 시마였다.

"...둘이 뭐해?"

"시마가 이상하단 얘기를 하고 있었어..."

"아하, 그걸 당사자 앞에서 당당히 말하는군."

시마는 코코노에에게 눈짓했다. 아, 진짜 구세주셨네. 코코노에는 눈치껏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이상한데?"

"뭔가..뭔가 뭔가 시마가..."

"내가 뭐."

피하지도 않았고 붙어오는 걸 특별히 떼어내지도 않았다. 평소처럼 필요 이상의 애교를 부리면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봤으며 적당한 츳코미가 걸려왔지만.. 이부키는 생각했다. 무엇이 다른 거지? 왜? 뭐가 다르지.. 평소의 시마가 아니었다. 아니, 그러니까.. 제가 아는 시마가 아니었다. 묘하게 다른 다정함이 있었다.

배가 고프다 싶으면 이미 밥이 사다져있는데, 그게 이부키가 좋아하는 음식이라거나. 술잔이 비워져 있으면 채워준다거나. 식당에 들어가면 간장이나 식기류 같은 것들을 먼저 채워준다거나.. 그런 사소하고도 간질거리는... 이부키는 그 다정이 좋았으나 낯설었다. 지금의 시마 카즈미는 뭔가 달랐다! 몽글몽글 뭉글뭉글...우글우글..! 조금은 큐릇~..한 것 같기도..

"이부키."

"응?!"

답잖게 크게 나온 대답이었으나 시마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그저 이부키를 응시하다가 말을 이었다.

"그럼, 술 마시러 갈까."

"응?"

"저번에도 그렇게 해결했잖아? 대화."

"...그럴까?"

그에 시마는 부드럽게 미소짓고는 돌아섰다. 저런 게 이상하다니까..? 이부키는 비죽 입술을 내민 채 가만히 바라보다가 너무 늦지 않게 발을 떼었다. 시이마, 같이 가. 그리 말해도 발걸음은 딱히 느려지지 않았다. 이런 건 똑같은데.

이부키는 성큼 따라잡은 시마의 옆을 걸었다. 뭐가 다른 거지? 무언가 제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이것만 알면, 전부터 궁금했던 것들이 다 해결될 것 같은데. 실마리가 잡히질 않았다. 뿌옇고 뿌얘서 모락모락 연기 사이에 있듯이 감춰진 느낌이라, 이부키는 마치 안개속을 달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마 이번에도 잘 해결될 것이다. 저번에도 그랬으니까. 시마도 뭔가 걸리는 게 있으니까 술을 마시자고.. 한 걸까? 이부키는 여전히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감을 접을 수 없어 불편했다. '언제나 정보를 독점하고 앞서나가지!' 왜 이때 그 재수없는 카리야의 말이 재생되는 걸까? 시마는 무언가 알고 있는 걸까? 삐용삐용, 이부키 아이의 감. 또 작동하는 겁니까? 퓨슈슛..잘 모르겠습니다..

***

익숙한 가게, 익숙한 사람, 익숙한 술, 익숙한 안주. 주문을 하는 것도 시마가. 수저를 주는 것도 시마가. 젓가락도 시마가. 간장도 시마가. 시마시마시마! 이부키는 무엇이 불만인지조차 모르겠는 상태로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그에 시마 카즈미가 눈썹을 휙 올린 것 또한 당연한 일이었지. 이부키의 술잔에 술을 따라준 시마에게서 술병을 빼앗은 이부키는 나도 따라줄래! 같은 객기를 부렸으나 시마는 픽 웃으며 잔을 댔을 뿐이었다.

"건배."

"건배액~."

탁, 하고 가볍게 나무로 된 테이블에 술잔이 내려놓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또 뭐가 불만인데?"

"불만은 없어."

"거짓말."

"진짠데."

"거짓말."

"진짜라니까!"

"그럼 왜 성질내?"

".....시마가 이상하니까."

"흐응, 그리고?"

"시마만 이상한 게 아니라 나도 이상해!"

호오, 이건 꽤 놀랍다. 시마 카즈미는 속으로 짧은 감탄사를 보냈다.

"어떤 식으로?"

"..시마가 나한테 잘해줘."

풉, 결국 터진 웃음에 어쩔 겨를 없이 술잔을 든 채로 고개를 숙였다. 어깨를 흔들며 웃는 시마 카즈미를 본 이부키의 입술이 대빨 나온 것은 당연했으리라.

"시이마악, 나는 진지하다니까?!"

"핰...하학, 잘해줄 수도 있지."

"아는데! 원래도 시마는 매정하지만? 차갑지만? 잘해줬는데??"

앞에 뭔가 많이 붙지 않았냐?

"근데 원래 이렇게 ...막... 막 하나하나 다 챙겨주는 타입은 아니었잖아!"

"뭐..그런가?"

"완-전."

"좋아해서 그런가보지."

"응?"

"너도 나한테 말한 적 있잖아."

보통 좋아하면 잘해주고싶지 않나. 들고 있던 술잔을 느리게 흔들던 시마 카즈미는 아무렇지 않게 술을 넘겼다. 어차피 상대는 이부키 아이다. 이렇게 말해봤자 어느쪽으로든 지 좋을대로 해석하겠지. 시마 카즈미는 당연하게도 실로 이부키다운 해석을 내놓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이상하네, 이때쯤이면 시마~~내가 좋아~~? 그런거였어~? 같은 말이 나와야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내렸던 시선을 올린 시마 카즈미는 그대로 끔벅, 정지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제 눈 앞의 남자가 새빨개진 얼굴로 저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뭐지? 내가 모르는 새에 술이라도 집어먹었나? 그럴리가 없지. 방금 두 잔 따랐다. 그렇다면 왜?

"이부키."

"어, 어?"

"어디 아프냐?"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아, 한 반쯤 돌아서 좀 재밌어진 것 같은데.

".....시마쨩. 있잖아.. "

빈 술잔이 보였다. 시마 카즈미는 익숙하게 술병을 집어 이부키의 잔에 따라주며 대답했다.

"뭐."

"..우와ㅡ, 나 뭔가 ..뭔가 알아버린 것 같아."

"그러니까 뭘."

"..시마."

"응"

"...나 좋아해?"

아, 이건 저번과 다른 의미다. 시마 카즈미는 알면서도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좋아한다고 방금 말했잖아?"

"그거 말고!"

"넌?"

어? 멍청한 소리를 내는 이부키의 앞에 시마 카즈미는 느리게 미소지었다.

"나 좋아해?"

귀까지 빨개진 남자의 대답은, 듣지 않아도 충분했다.


....로맨스 코미디라고 썼는데

오픈엔딩을 냈네요.

...이것만은 절대 몇 개로 나누지 않겠다 다짐하니

이렇게 됐습니다..

오타 비문..많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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