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절

배트인데 쪼금날조

404 by 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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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키는 자신의 집에서 빈자리를 느꼈다.

몹시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이사 온 지 겨우 한 달째였고 그동안 손님이라고는 택배기사 외에는 없었다. 그가 가져온 짐들은 모두 제자리를 찾아 선반 위를 빈틈없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따라서 아무것도 빈자리를 만들 수 없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부키는 정말로 그 빈자리를 느끼고 있었다.

지금처럼 뜨거운 석양이 방안으로 짓쳐들어올 때면 더더욱 그렇다. 여기가 비었노라고 친절하게 알려 주는 무대 위의 라임라이트, 허공의 먼지가 반짝거린다.

시원한 맥주를 삼키면서도 목 안이 텁텁했다. 한 입에 한 캔을 거의 다 털어넣었더니 미묘하게 정신이 멍해진다.

이부키는 으쌰, 작은 추임새와 함께 매트리스 위로 드러누웠다. 불연듯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연락처 저장 목록을 천천히 훑어내렸다. 그의 선량한 직장 동료들은 늦은 시간에도 그의 연락을 받을 확률이 높지만 그들과의 거북한 침묵은 틀림없이 전화를 건 것 자체를 후회하게 만들 테다. 한때 선량했던 그의 은사는 묵묵부답일 거다. 소거법으로 연락처에 남은 상대는 억지로 반가워해야 하는 사람들뿐이었다.

그런 걸 바라는 건 아니었다.

고개를 젖히자 창문 밖에 보이는 풍경은 완전히 낯선 곳이다. 연고 없는 곳에 발령이 떨어진 탓이다.

좌천이 처음은 아니다. 첫 좌천은 이부키가 조대에 있을 때였다. 당시 팀에서 쫓고 있던 놈은 신흥 야쿠자 안에서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는 마약 공급책이었다.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 약에 휘둘리다 죽어 간 사람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래서 그가 경찰을 밀치고 도망쳤을 때 망설이지 않고 총을 빼들었다. 죽일 생각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용서할 수 없었을 뿐이다. 선배 형사가 말리지 않았으면 방아쇠를 당겼을지도 모른다 —

탕!

세상이 터져나가는 듯한 소리를 남기고 총알이,

총구를 박차고 나간다.

…암튼,

소식을 전하는 키쿄의 얼굴은 처참했다. 멀쩡했던 볼이 푹 패여 있었다. 이부키는 그 얼굴이 더 안쓰러워지는 장면을 보고 싶지 않아 굳은 목을 쥐어짜내가며 짧게 대답하곤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다. 키쿄가 마지막에 무슨 말을 덧붙이려고 한 것도 같은데 듣지 않았다. 토악질이 나오게 비참한 탓이었다.

십 년!

십 년 동안 달라진 게 없었다, 십 년이었다!

그때는 선배가 이부키를 바닥에 찍어누르고 총을 빼앗았다. 다른 건 그것뿐이었다. 시마의 붙잡는 손은 선배만큼 단단하지 못해서…

…뇌를 박차고 나오는 기억들에 현기증이 인다.

그날 이부키는 총 다섯 발을 발포했다. 두 발은 선체에 박히고, 세 발은 허공으로 사라졌다. 이렇게까지 제 사격 실력이 형편없는 줄은 몰랐다. 그닥 원거리도 아니었는데 손을 떨기라도 했는지, 쿠즈미는 허벅지에 깊게 스친 상처를 입고 무사히 살아남았다. 이부키는 총알이란 게 이렇게 불공평한 건 줄 몰랐다. 쿠즈미는 단번에 시마를 죽였는데 왜 자신은 그렇게 할 수 없었는지 의문이었다.

그저 끔찍하게 부끄러웠다. 이 걸핏하면 울컥하는 성질머리가, 생각 없이 손부터 나가는 성급함이. 하지 말라고 말했었는데, 죽이지 말라고 했었는데 죽일 각오로 총을 쏴 놓고 결국엔 도망쳐 버린 자신이.

어느샌가 힘이 들어간 턱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새 석양이 다 져가고 있었다. 마지막 햇빛도 각도를 바꾸며 마침내 저 너머로 사라진다. 다다미바닥이 차게 식어가고 있었다. 이부키는 한참을 망설이다 받지 않을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목구멍을 비집고 나오려는 말을 삼켜내며 이 수화음이 영원히 끝나지 않기만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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