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은 혼자 깨나

4기수 논컾 판타지 AU


주의

트리거 워닝 : 구하지 못한 죽음에 관한 간접적인 묘사

본 글은 판타지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며 민간인의 피해와 죽음이 간접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추가로 원작에 대한 간접적인 스포가 존재합니다.


오늘도 몰려있군.. 게시판 앞은 온통 인산인해였다. 사람이 잔뜩 몰린 것도 모자라 여기저기서 파티를 찾고 있는 사람부터 종이를 붙이는 사람, 종이를 떼 가는 사람, 고민하는사람, 울고 있는 사람, 웃고있는 사람. 하여튼 다양하기도 하지.. 속으로 작은 한숨을 쉬며 남자는 성전을 덮었다.

"잠시 지나가겠습니다."

잠시만요, 네 잠시만요. 그리 인파를 해치고 들어가는 사제복의 남자를 눈에 담은 사람들은 하나 둘 씩 길을 비켰다. 지나가겠다니 비켜준다는 착한 사람들이군 역시 세상은 아직 아름다워. 그런 물렁한 사고방식을 가질만큼 시마 카즈미는 바보가 아니었으나 지나가게 해준다니 뭐 땡큐다 싶었다. 아, 드디어 도착했네. 게시판에 붙여뒀던 스크롤에 이름을 적어둔 사람이 있는 모양이야. 그러니 보고 와줄래? 시마. 라는 대장님의 말씀에 끽 소리도 못하고 걸어온 시마는 제 머리를 헤집으며 올려다보았다. 그럴리가 있나.. 분명 이 낡아빠진 스크롤 오류일 게 분명했다. 애초에 있을리가 없다니ㄲ..

"⋯있네."

바보가, 있었다. 하긴 그러니까 세상은 어떻게든 돌아가는 거겠지. 복잡한 마음을 뒤로하고는 게시판에 붙어있던 양피지를 떼어낸다. 자자, 다시 지나갑니다. 잠시만요, 네 지나갑니다. 마치 안내방송처럼 사무적으로 말을 이은 남자는 양피지와 함께 사라졌다. 사람들은 금새 수근대기 시작했지.

"방금 ... 그 사람이지?"

"누구?"

"그, 왜 있잖아.."

"용사 파티에서.. 파티원을 죽인 힐러."

"시마 카즈미."

작게 말해도 어지간한 모험가는 들을 목소리들인 것 같은데. 텔레파시라도 습득해 두셔야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뻔히 들리는 것들을 뒤로 하고 걷는 남자의 걸음은 느려지지도 빨라지지도 않았다. 그저 양피지를 펼치며 중얼거렸지. 이 정신나간 파티에 신청한 놈이 대체 누구인가 하니... 어디보자 이름이... 이부키 아이?


그렇게 시간은 약 일주일 전으로 돌아간다.

잠시만요, 지나가겠습니다. 그런 정중한 말에 길을 비키지 않을 사람은 퍽 적었으나 상대가 시마 카즈미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효과가 좋았다. 모험가들은 기피하듯 몸을 돌렸고 수근대기 시작했다. 시마는 아무렇지 않게 게시판에 모집 스크롤을 붙였고 그대로 다시 인파 밖으로 사라졌다. 덕분에 공공 길드는 한바탕 수근거림이 일기 마련이었지.

길드에 가입할 전위를 모집합니다.

근거리 우대

초보 상관 없음

파티원 목록 : 진바 코헤이, 시마 카즈미

아래에 이름을 적어주세요.

이름 :

포지션:

'무슨 낯으로 다시 파티원을 모집하는 거지?' 라던가. '조건이 좋긴 하네.. 아니, 그래도 보통 저 파티엔 안 가지.' 라던가. 최근 파티 모집이나 길드의 인원 모집이 힘들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제정신이 박힌 모험가라면 '시마 카즈미 '가 포함된 파티에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라는 것이 모험가들 사이의 정론이었다.

이유는 너무나도 간단했다. 파티원을 죽인 힐러가 모집하는 파티에 들어가는 멍청이가 어디있을까? 마물을 상대하고 어떨 때엔 던전에 들어가며 악마와도 싸워야하는 모험가들에게 힐러라는 존재는 목숨을 직결로 맡길 수 있어야하는 사람이다. 이미 사람을 죽여버린 힐러의 파티에 제 발로 기어들어가는 멍청이는 소문을 듣지 못했거나 어지간히 머리가 돌아있거나 둘 중 하나 뿐 아니겠는가.

"하지만 말이야 저 스크롤, 키쿄씨가 쓰신 거지?"

"책임자의 내용을 보면 그렇게 적혀있었지."

"결국엔 거두신 건가? 길드를 설립했다고 했지?"

"응, 뭐 그렇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그 사람이 들어간 파티면 말이지~?"

"보통 아무도 신청 안 한다니까."

"그래도 좀 아깝게 됐네. 파티 구성은 되게 좋던데."

"전위도 진바씨였지? 키쿄씨에, 진바씨, 그리고⋯"

"시마 카즈미."

이야기를 나누던 모험가들은 마지막 이름에 결국 웃어버리고 만다.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말이지, 그런데를 누가 가냐고! 깔깔깔, 웃는 소리들이 공용 길드내에 퍼진다. 목숨이 두 개가 되지 않는 이상 안 그러지. 그렇지? 아무렴! 그런 시덥잖은 소란이 점차 사그라들 때 즈음, 모험가들은 각자 할 일을 위해 의뢰가 담긴 양피지를 떼어내거나 공용 길대 안밖을 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바탕 소란은 잠들어가는 듯 했으나 여전히 그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를 하는 부류도 존재했다.

"그래도 난 아주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야."

"뭐가."

"그 사람 말이야. 시마 카즈미."

"대체 뭘 이해한다는 건지⋯."

"아니아니, 키쿄씨 입장을. 엄청 우수했던 건 사실이잖아?"

"뭐, 이 바닥에서 솔직히 이름 모르는 사람은 없지."

"그야 용사파티였으니까~."

모든 모험가의 꿈이라고 해도 좋을만한 것들. 부자가 된다거나 왕에게 인정을 받는다거나 그런 것들을 제외하고서라도 원초적으로 '모험가' 라고 한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마왕 토벌을 목표로 하는 자신을 꿈꿔본 적이 있을 것이다 라고.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모아진 파티는 꽤나 그럴듯 해 보였다. 물론 여전히 용사 파티는 인원을 모으고 있고 신중하게 차근차근 마왕의 세력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지. 사실상 용사파티라고는 해도 왕이 공식적으로 공인했으며 그에 대한 몇가지 권한을 파티장이 가지고 있다는 것 -이 자체로도 꽤나 특별하긴 했다. 일종의 보증 수표같은 느낌일까.- 외에는 낭만 뿐인 자리일지라도. 모험가라면 한 번쯤, 용사가 되는 것을 꿈꾸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아직도.

그 누구도

꿈꾸지 말라고는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잠시 실례합니다아."

눈을 한껏 기울인 남자가 사람좋게 -그러나 조금 남은 양아치 끼를 지울 순 없었다.- 웃어보이며 이야기를 나누던 파티의 테이블에 손을 얹었다. 남자는 키가 컸고. 천으로 감싸진 창을 들고 있었으며 호리호리해 보이는 타입이었으나 부실하다는 느낌을 주진 않았다. 그러나 이 근방에서 보던 얼굴도 아니었지. 남자는 말을 이었다.

"제가 막 올라와서 그런데. 파티원은 어디서 모으면 될까요?"

"아, 그거라면 저어기 게시판에서 보고 원하는 스크롤에 이름과 피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될거에요."

"아하아하, OK. 감사합니다~."

꽤나 가벼운 언사와 장난스러운 말투가 지나가면 남자는 테이블을 지나쳐 게시판 앞에 섰다. 모험가들은 그런 남자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시선을 돌렸지. 초보 모험자인가? 그런 것 같은데. 그런 말이 오가고 대화의 주제가 다른 것으로 넘어갔을 때 쯤, 남자는 한 스크롤을 든 채로 다시 테이블을 찾았다.

"이거 말인데요. 이렇게 해서~..한 방울 똑 떨어뜨리면 된다는 거죠?"

"네, 그렇게 하면 아마 스크롤을 쓴 사람한테 마법으로⋯. 잠깐, 그 파티 신청하시려고요?"

"응? 네. 뭐 문제 있나요?"

"으와⋯ 진짜 초보 모험가였네."

"이 시기에?"

남자는 고개를 갸웃 기울이다가 다시 돌아왔다. 남자가 든 것은 그 '시마 카즈미' 가 소속된 길드의 스크롤이었다. 거기엔 이미 이부키 아이라는 이름이 날려 적혀 있었지. 저기ㅡ 이거 문제가 있어요? 왜요? 이사람 나쁜 사람이에요? 질문들이 쏟아지자 밥을 먹고 있던 모험가들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아뇨, 다 괜찮은 사람들인데..딱 한 명이"

"한 명이?"

"거기 힐러가요, 좀 소문이 안 좋아요."

"헤에, 쓰레기?"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응? 그럼 뭔데?"

어째 이 사람 금새 말이 짧아지지 않았나? 모험가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막상 이유를 찾으려니 딱히 들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소문을 모른다면 알려주어야하나? 모험가들에게 그런 의리 같은 건 딱히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뭐⋯.

"목숨이 아깝다면 굳이 추천하진 않을게요."

"⋯⋯흐음, 재밌네~."

"...?"

"아무튼 뭔가 있다는 거죠? OK, OK. 그럼 이걸로 할래."

"진심인가 저 사람?"

"몰라, 내버려 둬."

"저희는 말렸어요, 분명히."

"네네, 알고 있습죠~ 들었습죠. 자아 그럼 이렇게 하고 나서 어떻게 해요?"

"...지금까지 파티원이랑 같이 다닌 적 없어요?"

"넹."

"...다시 게시판에 붙여놓으면 돼요. 아마 연락이 갈테니까."

"아 진짜로요? 편리한 시스템~. 감삼다~."

남자는 그들이 말한 대로 게시판에 스크롤을 붙이고 다시금 사라졌다. 껄렁거리는 걸음거리에 웬 양아치가 올라왔다며 수근거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 양아치가 '그' 길드에 가입 신청서를 냈다는 것에 수근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저 사람 오래 못 가겠네. 그치? 그리 저주같은 말을 뱉는 사람들도, 존재했지.


그렇게 신입 모험가의 패기로 인해서 인원수가 채워진 파티원은 길드에 모였다. 키쿄 유즈루는 제 눈 앞에 보이는 파티원들의 안색을 한 명씩 확인하고나서야 입을 열었지.

"이부키?"

"네엡~."

"전위가 꼭 필요한 상황에 와줘서 정말 고맙게 생각해.

앞으로 잘 부탁할게."

"어라? 하지만 지금 눈으로 보기에는 전위가 두 명이나 계신데요?"

"나는 현재 현장을 뛰지 않아. 아무래도 길드장이다 보니까 전선에 나서기 보다는 내부에서 일을 처리하는 편이지."

"아하, 그래서~. 네엡, 이해했어요."

"카운터는 하무쨩이 봐줄거야. 가끔 자리에 없는 것 처럼 보여도 종을 울리면 나타날테니 필요한 게 있으면 먼저 그녀에게 말하도록 해."

"잘부탁드려요~."

"잘 부탁드립니다아~!"

"그리고"

키쿄의 시선은 진바와 시마에게 굴러갔다.

"사실 한 명 더 있어요."

"네?"

"그게⋯ 길드 개설 허가 조건 중 하나라서."

키쿄는 양피지를 꺼내어 둘에게 내밀었다.

"코코노에 요히토. 그가 이 파티에 들어올거야. 그걸로 4명을 맞출거고."

"마법사⋯. 정석적인 파티가 되겠..는, 코코노에요?"

"그래, 그 코코노에. 그쪽에서 먼저 넣어달라고 했어"

"...왜요?"

"귀족이 왜 이런 일개 길드에 가입해서 모험가를 해..?!"

"아니, 일개 길드라고 하기엔 좀..하는 일이 있죠."

시마가 중간에 잠깐 끼어들었으나

부 길드장과 길드장이 하는 말에는 막힘이 없었다.

"저야 모르죠. 원래 분위기라면 용사파티 쪽으로 갈 것 같았나봐요. 하지만 조건이 우리쪽으로 왔으니 저희가 맡는 수밖에. 현장을 뛴 경험은 아직 없나봐요. 아카데미 졸업은 한 모양이던데⋯. 뭐 이쪽도 부탁할게요?"

"그렇게 떠넘기는 거야..?"

"실력은 보증한다고 해요. 뭣보다, 힐러도 전사도 있는데 그렇게까지 걱정은 안 되고요."

시마 카즈미는 어떤 말도 못하고 시선을 피했다. 진바는 무어라 투덜거렸지만 결국 받아들인 듯 했지. 어찌되었던간에 이상적인 파티였다. 전위가 둘, 원거리가 한 명, 힐러가 한 명. 최소 인원으로 모집한 것 치고는 꽤나 밸런스가 좋았다. 그정도에서 마무리를⋯ 지었으면 참 좋긴 했을텐데. 당연하게도 신입들의 교육은 시마 카즈미의 몫이었다.

"음, 그러니까.. 이부키씨?"

"이부키 아이입니다~."

"이쪽은 코코노에씨?"

"코코노에 요히토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음, 시마 카즈미라고 합니다. 앞으로 여러분의⋯ 뒤를 맡게될? 네. 뭐 그런 셈이죠."

"잘부탁드립니다아, 파티로 마물과 싸우는 건 처음이에요."

"저도 현장은 처음입니다."

"아, 그러고보니까 말 편하게 해도 될까요~?"

"그러세요."

"상관없습니다."

"응응, 좋아좋아."

말 놓는 거 빠르네.. 그보다 이 사람 옆에 있는 애가 귀족이라는 거 듣지 않았나? 뭐 상관 없었다. 본인 스스로 코코노에가 오기 전 본인은 계급에 굴하지 않는 스타일이라며 시덥잖게 떠들어대던 걸 기억하는 시마는 성전을 덮은 뒤 마도서를 펼쳤다.

"두 사람 다 현장은 처음이라고 하셨죠."

"네엡."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기본적인 테스트 겸⋯. 던전에 들어갈 때 모험가가 지켜야할 규칙에 대해 몇 가지."

아시는 분? 시마는 손을 들어 질문했다. 던전은 위험하다. 그것은 모험가에게도 마찬가지이며 아직까지도 전부 밝혀지지 않았고 던전마다 공략 방법 또한 다르며 지금도 실종자와 사망자의 수는 셀 수 없이 많다. 애초에 전부 파악하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뭐, 대부분의 공략은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리면 되지만⋯.

"파티원과 떨어지지 않는다."

"최소 2인 1조로 움직인다~."

"정답. 이유는?"

"던전은 미궁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실시간으로 형태를 바꿔가는 던전 또한 존재하며 한 번 갔던 길을 되돌아갔다고 해서 같은 장소가 나올 확률은 30%정도에 가깝기 때문에 파티원과 떨어지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역시 아카데미 졸업생. 그림으로 그린 듯 멀쩡하고 정석적인 답변이다. 시마 카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추측되는 던전은 다른 말로 미궁이라고 불리며 공략하지 않는 이상 사라지지 않는다. 옆에서 뭔가 불만인 듯 뚱하게 입술을 내밀고 있는 쪽이 불안하긴 하다만 뭐 됐나..

"그렇다면, 던전이 공략된 후의 상태는?"

"최대 1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리며 이후에는 소멸합니다."

"또?"

"아, 그건 내가 알아. 뭔가 뱉어내던데."

"40% 정답. 던전은 소멸할 때 잔해를 뱉어낸다."

그래, 던전은 소멸할 때 잔해를 뱉어낸다. 이미 미궁에 소화되어 양식이 된 것들을 제외하고 본래 던전의 것이 아니었던 것들을. 즉, 인간이다. 이곳에서는 죽은 사람도 아직 전부 먹히지 않은 시신도, 또는 미라, 인간의 뼈같은 것들도 마찬가지다. 미궁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들을 배척하듯 뱉어낸다. 이로 인해 아직 살아있는 실종자 또한 발견해낼 수 있다. 물론, 그들이 살아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그때 확인해봐야하는 문제다만

"하지만 사라지지 않는 던전도 존재하죠?"

"엑, 그런 것도 존재해?"

코코노에의 질문에 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사라지지만 다시 똑같은 형태로 나타나는 던전을 의미하지."

던전이 생기는 이유는 각자 제각각이다. 마수들의 사체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오래 쌓여 자연스럽게 생성된 던전도 있나 하면 어떤 조건을 충족시켜 나타나는 던전도 존재한다. 다만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던전이 발생할 때는 그 일대의 일정 공간 자체를 잡아먹으며 생성된다. 즉, 이 또한 던전에 의한 실종자를 늘리는 이유가 된다.

그중 가장 골치아픈 것은 공략했음에도 또 다시 나타나는 던전. 생성되는 조건조차 밝혀내지 못했기에 학회에서는 이를 무한 던전이라고 이름지었다. 공략법 자체는 달라지지 않고 이미 한 번 공략한 던전이니 사실상 피해가 크진 않지만 과거엔 다시 나타날 위치를 특정할 방법이 없었고 마을 한 가운데라도 생성되면 재앙이다.

지금에 와서야 마법으로 인해 몇몇 장소를 특정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이를 길드들이 선점하여 공략을 진행한다. 이런 던전들은 특별히 난이도가 높지 않고 공략이 정해져 있으니 대부분은 신입 모험가의 현장 경험을 쌓아주기 위해 길드가 선점하는 형식이다. 또한 아주 착하게도 같은 장소에 나타나는 던전 또한 존재한다.

"즉, 우리가 첫 번째 현장으로 간다."

자, 박수. 이야~.. 그렇게 셀프 박수를 세 번 쳤다. 아무도 쳐주지 않을 줄 알았더니 앞에 있던 이부키 또한 조금 신난다는 얼굴로 박수를 치기 시작했지. 이 사람 역시 뭔가 이상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시마는 너무 늦지 않게 입을 열었다.

"파티원은 진바씨, 저, 이부키씨, 코코노에씨. 이렇게 갑니다."

"최소 파티원이군요."

"길드에서 매긴 던전의 난이도는 C급이지만 최소인원으로도 클리어가 가능하죠."

뭐, 그 던전은 솔직히 진바와 시마 둘이서만 간다고 하더라도 클리어가 가능한 미궁이었다. 말 그대로 미궁이기 때문에 조금 문제가 있지만 던전 자체의 특수성만 조심하자면 클리어가 어렵지 않은 던전 중 하나였다. 파티의 기본을 알 수 있다고 해야할까.

"내일 준비가 1시까지 이 로비로 다시 모여주세요~. 전달사항은 끝. 집이 없으신 분은 하무쨩에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열쇠를 줄 거에요. 이상, 질문사항은?"

"특별히 없습니다아."

대답은 커서 좋군. 시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파티원의 준비가 모두 끝난 지금, 길드는 지도에 표시된 지점으로 이동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쪽이 정답이었던 모양이라, 그보다 텔레포트 스크롤이라니 세상 참 편해졌지. 코코노에를 제외한 모두가 그런 말을 했다. 텔레포트가 상용화된지 얼마되지 않았다고는 했지만 그정도였나요? 그리 묻는 말에는 다들 조금 과거를 생각하느라 질린 표정이 됐지만 큰 이상은 없었다.

"그럼, 설명하고 있어. 나는 관계자에게 말을 전하고 오지."

"다녀옷세용~."

"네엡. 자..그럼 설명하겠습니다."

마치 유치원 교사가 된 기분이다.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을 시마는 부러 억눌렀다. 눈 앞에 있는건 최소 20대 중반이 넘은 인간들이다. 물론 던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 모험가 유치원이나 별 다를 바 없지만.

"지금 들어갈 던전은 C급 던전. 이름은 미믹입니다."

"미믹..이요?"

"보물상자에 나오는 그거?"

"맞지만 조금 달라. 이 던전의 미믹은 사람을 의태한다."

그래, 이 던전의 특수성은 바로 그것이다. 던전에 들어간 인간의 기억을 읽으며 파티원을 갈라놓고 그 파티원의 모습으로 의태해 잡아먹거나 영원히 미궁을 헤매게 만든다. 던전에서 나오는 마물들은 모태의 성장을 돕는다. 즉, 밖에 돌아다니는 야생의 마수와 달리 특별한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던전을 보다 복잡하고 크게 만들기 위해 준비된 장치일 뿐이지.

다만 이 던전의 주요 몬스터인 '미믹'은 다르다. 인간의 기억을 읽고 의태하여 연기까지 하기 때문에 실로 복잡하고 귀찮고 짜증날 정도지. 이러한 특수성 때문에 C급이라는 랭크를 받았지만 공략은 최소한의 인원으로 갈 것을 권장하고 있다. 이 던전의 특이성 중 가장 골치아픈 것은 민간인이 휘말리기에 가장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본래 던전에 자진해서 들어가는 민간인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상식적으로 던전 안에 휘말리는 것이 아닌 이상 스스로 들어가는 일반인은 없다. 하지만 이 미믹은 다르다. 5년 전, 이 던전에 대한 소문은 다르게 퍼졌다. 모험가들 사이에서 말하는 것들을 일반인이 듣고 다시 볼 수 없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나, 그리운 사람을 볼 수 있다는 곳으로 퍼진 것이다.

물론 이에 관해서는 현재 국가에서 아니라 정정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그런 사람이 없는 것은 또 아니었다. 괴물이라도 좋으니 대화하고 싶어.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가? 시마 카즈미는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답없이 문장을 끊어냈다.

"바보같네요. 그렇다고 해서 던전 안으로 뛰어들다니."

"뭐어, 나는 이해는 가는데?"

"아뇨, 바보같은 짓이에요. 가짜를 보기 위해서 목숨을 던지다니요."

"뭐, 어쨌든 우리 일은 던전 클리어 이후 소멸이니까."

"네, 그렇다면.. 저희는 뭘 하면 좋을까요?"

"이 던전의 매뉴얼은 두 가지."

첫째는, 파티원마다 다른 암호를 설정할 것. 하지만 이 방법 또한 명확한 해결법이 되어주진 않는다. 개체로는 고지능의 미믹도 발견된 바 있으므로. 미믹의 랭크에 따라 기억을 읽을 수 있는 정도가 달라진다. 이번 던전에는 어떤 랭크의 미믹이 보스일지 모르고 던전의 난이도는 열릴 때마다 달라진다. 그렇기에 C랭크로 고정해둔 채 베테랑들과 함께 들어가는 것이 매뉴얼 중 하나다.

"때문에 던전 내부에서 필요 이상의 잡담은 금지되어 있어. 암호를 말할 때는 미믹이 파티원으로 변했다 의심될 때, 또는 파티원이 자신에게 암호를 말하라 했을 때 뿐으로 한정한다."

"네."

"둘째, 아마 이쪽이 제일 쉬운 방법이지."

시마의 말에 남자들은 갸웃 고개를 기울이며 말을 기다렸다. 쉬운 방법이 존재한다면 그쪽을 쓰면 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놈이 한 명, 무슨 이유길래 두 번째로 간 것일까를 고민하는 성실한 사람이 한 명. 죽여주는 밸런스군. 얼굴을 읽은 시마는 이내 입을 열었다.

"파티원과 떨어진 후 재회했을 경우, 일단 공격해본다."

"...예?"

그것이 제일 쉬운 방법이며 가장 위험한 방법이라는 것을.

세상에 간단하게 처리되는 일은 없지 않은가!

"파티원이 다치면 어떡합니까?"

"그러니까 2인 1조로 행동한다. 원래라면 베테랑과 초보를 조합해주는 편이 정답이겠지만 이번 던전에서는 예외야."

시마가 코코노에와 이부키를 가르킨다. 그 이후에는 자신과 진바를 가르키며

"이렇게. 그리고 이렇게."

"...괜찮은 게 맞나요?"

"미믹은 자신 랭크 이상의 마법이나 움직임을 따라할 수 없어. 즉, 두 번째 방법이 통용될 수 있는 건 너희밖에 없다는 거지."

"그래도 위험하지 않아? 나는 아군을 공격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시마 카즈미는 픽 웃었다.

"초보자의 공격을 맞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조금의 도발을 섞어봤다. 무슨 반응이 나오려나? 이대로 발끈한다면 뒤로 물리는 편이 낫겠지. 흥분하기 쉬운 전위는 필요없다. 파티의 수명을 단축시킬 뿐이니까. 애초에 그다지 전위에 맞지 않는 성격인 것 같은데 말이지. 다년간의 경험으로 사람을 상대해본 시마 카즈미의 나쁜 버릇은 여전했다. 습관과도 같은 것 그러나 필요한 것, 상대를 의심하는 기분나쁜 파티원⋯. 뭐 어느쪽으로든 떠들어도 상관 없지만,

"⋯⋯좋아!!!!!!! 텐션 올라가네!!!!"

⋯ 그냥 바보인가.


"아, 그리고 들어가기 전에."

시마는 책을 펼친 뒤 손을 까딱인다. 주문을 외울 필요는 없었다. 이내 파티원 전원의 머리 위로 새하얀 빛이 떨어지더니 차차 몸에 흡수됐다.

"우와, 예쁘다아. 이거 뭐야?"

"가호."

"가호? 신님이 주시는 거?"

"뭐, 그런거지. 적당히 버프라고 보면 돼. 그럼⋯"

"오우~ 가볼까나아"

"아직, 가기전에."

신이나서 걸음을 옮기던 이부키의 다리가

악! 하는 소리와 함께 속절없이 찢어졌다.

급 브레이크도 나름 잘 잡네.

"이 파티의 모든 오더와 브리핑은 제가 맡습니다. 이의 있는 사람?"

"⋯없습니다."

"힐러나 전위가 잡는 게 보통이니까, 오더는 말이지."

"아 그래요? 뭐 나도 이의 없음~, 시마씨 똑똑해보이고?"

"하지만, 긴급 상황에서는 크게 외치고 자체행동으로 이행합니다. 어디까지나 목숨을 우선시하는 걸로. 동의하시죠?"

"네에~"

"네, 알겠습니다."

"집에 가야지 집에~."

"그럼, 들어갑시다. 가호 흡수도 전부 끝난 것 같으니까."

코코노에는 그 말에 갸웃..고개를 기울이면서도 늦지 않게 걸음을 옮겼다. 방금은 가호였나? 아니었던 것 같은데. 힐러는 여러가지의 종류가 있다. 그중에 성전을 다루는 신전에서 인정을 받은 힐러는, 신의 힘을 빌린다는 명목으로 마법을 사용한다. 신성력을 쓰는 사제도 존재하지만 그 경우는 재능을 타고 태어나야하는 법이다. -물론 성전을 다루는 것도 재능은 필요하다.- 이를 세간에서는 흔히 신에게 '선택'받았다 라고 정의하며 아카데미 내에서도 신성학부가 따로 존재할 정도였다.

때문에 신성마법과 일반적인 마법은 효과도 발동하는 기점도 다르다. 일반 마법사와 같은 결인 성전 사용자라고 해도 일반 마법보다 성마법 쪽의 컨트롤이 더 까다로우며 생명을 구한다는 명목하에 상위 마법으로 친다. 결정적으로 일반 마법의 버프와 성마법의 버프는 느낌부터가 다르다.

하지만 방금은⋯. 일반 마법에 더 가까웠던 것 같은데.


파티는 순조롭게 던전 안쪽으로 들어갔다. 던전 안은 전형적인 미궁의 형식으로 되어 있었지. 나선형 계단, 끝이 보이지 않는 복도. 뒤를 돌아보면 일렁거리며 몸을 바꾸는 길까지. 모든 것이 익숙한 베테랑들을 제외하면 현장은 초모 모험가들에게 있어 꽤나 신기한 것임에는 분명했다. 또는 섬뜩했거나.

"아, 보물상자다."

그래, 뭐 이런 것도 나오기 마련이지.

"끌려들어가지마. 이 던전의 이름을 잊었어?"

"알고 있다고~. 그치만 역시 보이면 좀 열고 싶지 않아? 두근두근! 한 맛이 있잖아~"

"뭐, 열고 싶으면 열어봐도 되는데."

"엇, 진짜로?"

"대신 책임은 셀프."

"냉혈한."

"농담이야. 초보를 두고 갈리 없지."

시마는 고개를 까딱였다. 열어볼 거라면 가시죠? 뭐 그런 의미였지. 눈 앞에 보물상자는 던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질이다. 전형적인 나무상자에 금속의 잠금쇠, 하지만 자물쇠가 달려있지 않은. 그러나 이곳은 다른 곳도 아니고 '미믹'의 던전이다. 보통 머리가 달려있다면 이런 방 안에 들어가서 보물상자를 열어본다는 선택을 할 멍청이가⋯.

"오, 당첨."

있네. 의외로 이부키가 뽑은 것은 드문 확률로 인한 정답이었다. 즉, 진짜 보물 상자였다는 것이다. 이런 확률은 확실히 드문데. 운이 좋은 건가? 아니면, 알고 열었을까. 후자일 확률은 솔직히 많지 않지. 시마 카즈미는 가만히 보물상자 안에서 물약을 챙기는 이부키를 바라보았다.

"이거 뭐야? 물약? 큐쨩 감정해줘."

"큐짱이라니..그거 혹시 접니까?"

"응 큐쨩. 감정해줘~"

"하아⋯. 잠깐 보여주세요."

코코노에가 감정 마법을 물약에 댄 채로 말을 이었다. C급 회복 물약. 독을 해주할 수 있는 효과에요. 그리 덧붙이자 이부키는 씨익 웃으며 제 허리띠에 채웠고 싱글벙글 웃는 낯으로 일어섰다. 코코노에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어 물었다.

"어떻게 아신 겁니까?"

"응? 뭐가?"

"이 보물상자가 진짜인지 미믹인지"

"아 그거? ⋯그냥 어쩌다보니? 내가 감이 좀 좋거든."

"....예?"

소리가 들렸어. 그 말에 시마는 한 쪽 눈썹을 올렸다가 내렸다. 감? 고작 그런 걸로 확정했다기엔 필요 이상으로 확신하는 눈치였는데. 뭐, 상관없나. 그보다 벌써 벽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부러 몇 초 느리게, 시마는 벽을 손으로 노크하듯 소리를 내며 입을 열었다.

"거기, 방에 들어가신 두분. 빨리 안 나오시면 분리당할지도요."

"아, 가겠습니다."

"나간다니까아~..?"

그리고 그 순간, 서로 각기 변화를 눈치챈 사람들끼리 제 파트너를 잡았다. 파티 플레이의 기본은 파티원을 챙기는 것. 가장 기본중의 기본이다. 두 번째는 매뉴얼에 따를 것. 시시각각 변하는 미궁 속에서 전위는 제 파트너를 먼저 잡아 자신의 뒤로 돌린다, 시마 카즈미는 벽이 닫히기 전 이부키 아이의 눈빛을 보았다. 주변을 경계했고 전위 포지션을 잡았다. 진바의 뒤에 가려지는 와중에도 그는 시야를 넓혔다. 역시, 아직 저 초보자한테는 무언가가 있다.

"역시 잡아먹혔나."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죠."

미믹의 던전에서 보물상자를 연다는 것은 이런 의미니까. 미믹은 던전 중에서도 악질인 편에 속했다. 갈라놓고, 헤매게 만들었다가 지쳐 쓰러질 때 즈음, 정신적으로 공격한 뒤 잡아먹는다. 미믹이 향하는 것은 언제나 중심부. 그리고 모체를 크게 만들기 위해 잡아먹는다. 모험가는 기본적으로 마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던전이 아주 좋아하는 일용할 양식이지. 즉, 이부키 아이가 연 보물상자는 '진짜' 였지만 그 또한 미믹에 불과했다는 말이다.

"뭐, 초보자들은 어쩔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거기서 멈춰있을 사람들은 아니고⋯"

"던전에 의한 수칙은 알고 있을테니 상관 없겠지. 무엇보다 걸어놨잖아? 우리는 가보자고"

"네."

탁, 하고 마도서를 덮는 소리가 났다. 시마 카즈미는 눈에 보이는 붉은 점들을 뒤로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초보자들을 두고 갈 생각은 없었으므로 보험 정도는 걸어놨다. 애초에 이런 상황이 되도록 유도한 것 또한 맞았다. 던전은 특수성을 띄고 있지만 결국에는 자아가 없다. 성장하려는 욕구, 몸집을 불리려는 탐욕만이 존재하는 미궁. 이 던전이 아무리 자아를 가진 것 처럼 움직인다고 해서 미믹은 '진짜'가 될 수 없다.

결론적으로 사람을 홀린 미믹은 포식을 하기 위해 보스가 정한 곳으로 오게 되어 있다. 미믹에게 홀리지 않더라도, 길은 착실하게 중심부로 향하게 만든다. 모든 던전의 공통점이며 가장 위험한 점이기도 했지. 모험가라면 모를까. 일반인이라면 사지로 직접 걸어들어가는 것과 별 다름이 없었으니까. 또한 이것은 하나의 시험이었다. 현장에 대해 알려주는 체험이기도 하고 실전이기도 하며 하나의 시험이자,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

"살려주세요."

"진바씨."

"그래."


"역시⋯ 일부러인가?"

"⋯네?"

"음~.. 아니야. 그냥 뭔~가, 그런 감이 들어서 말이지."

"또 감 타령입니까..? 일단 나아가죠. 길은 열렸으니까요. 어차피 미궁은 중심부로 통한다는 것을 알고계시잖아요."

"으으음~? 그런가아. 사실 난 이쪽에 관련된 지식은 많이 없단 말이지."

"보통 모험가로 진로를 정할 때, 공용 길드나 그런 곳에서 기본적인 설명을 받지 않나요?"

"그게 말이지~ 내가 있었던 곳은 엄청 시골이라서. 뭐, 모험가가 별로 없던 것도 한몫 했지만 말이야."

그래서 가장 기본적인 수칙들밖에 몰라. 코코노에는 이부키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아, 그러니까.. 이 사람은 설마⋯.

"⋯개정 전의 것들만 기억하신다는 건가요?"

"정답~, 약간 구닥다리겠지?"

"구닥다리 수준이 아닙니다.. 모험가들이 규칙을 만들어 정의하기 시작한 것은 꽤나 최근이라고 듣긴 했지만.. 그 전에는 구전으로 전해져내려온 것들이었잖아요..?"

"맞지 맞지~, 시골엔 의외로 베테랑 모험가들이 많은 거 알아? 뭐 근데 다들 허세가 심해서!"

베테랑 모험가들이면 뭐합니까.. 이미 현장에서 뛰지 않은지 약 40년 가량 되신 분들 아니냐고요. 코코노에는 그리 반격하고 싶은 것을 내리눌렀다. 제 옆에 남자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실실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이 사람하고 파티원을 맺는 게 잘한 짓이 맞나? 아니, 본래 본인의 의지는 아니었다지만⋯.

미궁은 아카데미에서 배운대로 시시각각 변해갔다. 막혀있나 싶어 뒤를 돌아보면 어느새 벽이 세워져있었고 분명 같은 길을 되돌아갔음에도 다른 장소로 이어졌다. 이런곳에 스스로 들어갈 생각을 하다니. 모험가들이란 제정신이 아닌 집단인 것은 확실했다. -라는 당사자성 발언을 하는 코코노에였다.- 돌로 되어 있는 장소를 지나면 어느새부터인가 흙이 밟혔고 눈치채면 다시금 돌바닥으로 바뀌기도 했다. 이상한 공간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제 앞에서 걸어가는 남자를 눈으로 좇았다.

"큐쨩은 말이야."

"필요 이상의 잡담은 금지인데요."

"째째해..!! 어차피 시마나 진바씨도 모르는 일일테니까 괜찮지 않아..?!"

"다음에도 저희가 미믹의 던전을 맡게 되면 어떡하려고요."

"그거야 그때는 기억을 읽히는 쪽 아닐까?"

"싫습니다. 어느쪽이든 여기서 개인적인 일을 이야기하고 싶진 않아요."

"오케이, 그럼 나가서 술이라도 마시면서 하는 걸로?"

"제가 왜⋯."

"저기, 뭔가 탁 트인 공간 같은데?"

잠, 같이 가요..! 이 사람 발은 왜이렇게 빠른거야? 등에 진 창.. 아니, 창이 맞나? 하여튼 무겁지도 않나? 스태프를 잡은 채 이부키의 뒤를 따르자 그의 말대로 탁 트인 전경이 보였다. 코코노에는 빠르게 천장, 벽, 바닥까지 눈으로 훑고 난 다음에야 제 앞에서 멈추라는 듯 손짓한 이부키를 발견했다.

"⋯뭔가요?"

"앞에 누가 있어."

"⋯사람일까요?"

"아마도⋯, 그치만 한 명이야."

"한 명이라고요?"

"하지만 뭔가.. 뭔가~.."

"그러니까 뭡니까..."

뭔가 이상한데⋯. 그런 시원찮은 꿍얼거림과 함께 반대편 길쪽에서 사람이 나왔다. 체격은 그리 크지 않았고, 갈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사제복을 입은 사람, 시마 카즈미였다.


"역시 가짜였네요."

"저번에 다른 길드가 처리한 사람이야. 이미 장례까지 치뤄뒀다고."

"하여간 기분나쁜 던전이에요."

"동감이다."

그렇다고 해서 오지 않을 수도 없다. 키쿄 유즈루가 설립한 이 길드는 국가에서 인증을 받은 몇 개 길드의 열화판인 권력을 가지고 있다. 정확히는 그쪽의 부속 기관이지만. 겉으로는 다른 길드로 되어있지. 즉 이 길드의 목적은 이런 던전들을 위주로 가장 빠르고 신속하게 매뉴얼대로 처리하는 것에 있다.

그 외에도 헬프가 필요하다면 지원을 나가거나 마수를 토벌해주고 보수를 받거나. 하여튼간에 이것저것 다 하는 심부름꾼 같은 느낌이지만 기본적으로 이 길드의 강점은 기동력에 있다. 그 열화판같은 권력이라는 건, 마탑에서 제조하는 스크롤 중 1/5 정도는 이 길드로 들어오는 것. 심지어 좌표는 직접 입력하는 쪽이다. -시가로 1개당 15골드¹가 넘는 가격이다.- 그러니까 그만큼 열심히 일하라는 거지.

¹ 화폐 단위 중 하나. 5골드면 평민이 삼시세끼를 굶지 않고 빵과 스프를 먹는다는 가정하에 네 달치 생활이 가능하다.

길드의 주 목적은 던전 내에서 잃어버린 실종자, 시체를 찾는 것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쪽은 부가적인 것이고 발빠른 던전 공략을 목표로 한다. 문제가 터진 곳에는 가장 먼저 1차로 파견되는 길드. 따라서 키쿄 유즈루의 이름 아래로 던전에 들어가거나 현장에 먼저 개입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대로 우리가 처리하는 사건도 대부분이지만 심각한 사안이 아닐 경우엔 근처 길드에게 의뢰서 작성 겸 인계를 마치고 복귀한다.

즉, 모든 현장의 기본적은 정보는 이 길드로 들어온다는 소리다. 아까 진바씨가 근위대에게 확인한 것도 이것이었다. 안에 사로잡힌 실종자는 있는가? 정확히 파악된 바 없으나 근처 마을사람들에게 물어봤을 땐 '없다' 고 대답했다 한다. 그나마 마을하고 조금 떨어진 숲 지형이라 다행이지. 조금 더 위치가 어긋나게 생성됐다면 마을 하나를 구해야할 뻔 했다.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 감사하며 시마 카즈미와 진바 코헤이는 중심부로 추정되는 골목으로 도착했다.

"여기서부턴 길이 변할 일이 없다⋯ 였던가요."

"매뉴얼은 그랬지. 하지만 이 동굴은 워낙 변칙성이 뛰어나니까 말이야."

"뭐, 어차피 이곳으로 오게 되어있으니까. 그다지 걱정할 필요는 없어보이지만요."

"⋯그럼, 남은 일은~.."

"네, 해야죠. 지각쟁이들을 마중나가볼까요."


코코노에 요히토, 이부키 아이가 맞은 편에서 마주한 남자는 시마 카즈미였다. 정확히는 그렇게 '보였다.' 꿍한 얼굴로 미간을 찌푸리며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모습은 꽤나 위협적인 얼굴이었으나 앞에 서 있는 남자는 태평하기나 했다. 이부키가 암호를 물으려 입을 떼었을 때, 코코노에가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시마씨일리가 없어요."

"엑, 어떻게 확신하는데?"

"파티가 떨어졌을 때의 기본은 2인 1조. 이게 규칙이죠."

"그건 그렇지."

"그러니까, 시마씨가 혼자 떨어져있을 이유가 없어요. 진바씨가 옆에 없다는 게 가장 큰 증거에요."

"그..으런가아.."

"당연하잖아요. 그 시마 카즈미랑 진바 코헤이라고요."

코코노에는 자신의 말에 잠깐 멈칫, 말을 끊는다. ⋯그 시마 카즈미랑 진바 코헤이라면, 시마씨가 ..아니, 그렇다고 해도 기본적인 규칙을 따르지 않을 사람은 아니었다. 코코노에는 끊어졌던 말을 다시금 잇는다.

"이런 던전에서 서로 떨어지는 바보같은 짓을 할 리가 없다고요. 이부키씨도 아니고..!"

"큐쨩 지금 사라락, 하고 심한 말 하지 않았어..?"

"전 언제나 사실만을 말했⋯"

"둘이서 뭘 그렇게 속닥거리는 거야?"

움찔, 두 남자는 들려오는 목소리에 일순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 목소리는 명확히 시마 카즈미였다. 지금까지 들어온 조금은 딱딱하면서도 나긋하고 부드러운 낮지도 높지도 않은 중간쯤에 위치한 음성을. 그리고 말투가, 표정이. 시마 카즈미라 정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만큼 똑같았다. 이부키 아이의 눈이 시마를 향했다. 마치 관찰하듯, 숨소리 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양. 그리곤 아주 느리게 뒷쪽으로 손을 움직여 길게 늘여뜨려진 천의 끈을 당기기 시작했다.

.

.

.

"시마씨일리가 없어요."

"엑, 어떻게 확신하는데?"

다 들린다. 하지만 이유는 타당했다. 그 점을 찝으라고 일부러 혼자 나타난 거기도 하고. 파티 플레이에서 힐러가 전위를 두고 혼자 다닌다? 솔직히 말이 안 되지. 둘을 붙여 놓는 것은 꽤나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정석적으로 생각하는 아카데미 졸업생, 야생의 감으로 나대는 바보⋯. 까진 아닌가? 시마 카즈미는 그저 가만히 제게 쏟아지는 모든 의심과 의문을 담담히 받아들인 채로 기다렸다. 하지만 어느 때가 되어서도 암호가 입 밖으로 나오는 일도 저를 공격할 기미도 보이지 않아 입을 열었다.

"둘이서 뭘 그렇게 속닥거리는 거야?"

당연하게도 둘은 다시금 제 자신을 바라봤다. 그래, 집중해야지. 눈 앞에 적을 뒀으면.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느리게 눈을 깜박인다. 생각보다 더, 시야가 넓다. 코코노에를 보고 있으면서도 시야각 안쪽에 저를 놓고 놓치지 않는다. 소리를 내면 재빠르게 반응한다. 마치 야생 들개같은 모습이다. 소리가 들리면 반응하고 상황을 살피며 물어뜯을지, 물어뜯지 않을지를 가늠하는. 뭔가 못마땅해보이는 얼굴인데 말이지.

"진바씨는 어디에 계시죠?"

"여기서부터는 길이 변하지 않아. 진바씨는 보스 방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어. 너희가 하도 안 오길래 데리러 온 거야."

"혼자서요?"

"말했잖아, 여기서부터는 길이 변하지 않는다고"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믿을 것인가, 믿지 않을 것인가. 이건 하나의 시험이다. 판단력을, 결정을, 그 외의 재능이나 센스 플레이들. 만약 전투가 이뤄진다고 친다면 보스방을 지나기 이전에 실력도 볼 수 있겠지. 어느쪽이든 당하는 사람은 기분이 나쁠 수 있는 시험 중 하나겠다만 이는 꼭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과연, 믿을 것인가?

파티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신뢰다. 믿지 못하는 이에게 뒤는 맡길 수 없다. 목숨이 걸린 일에는 더더욱 그렇다. 한 번의 망설임에 목숨을 잃기 마련. 지금처럼 느긋하게 기다려줄 적 따위 없어. 미믹의 던전은 이러한 특수성 때문에 초보 모험자의 싹을 걸러내는 데에 알맞다. 물론 어설프게 사용할 수 있는 전략도 아니지만. 시마 카즈미는 속으로 자조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럼 여기서 한 번 더, 긁을까.

"던전 내에서, 절대적인 건 뭐지?"

"오더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 그러면 빨리 와. 이 이상 시간이 지체되는 건 사양이야."

그렇게 시마 카즈미가 등을 돌린 순간, 천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남자는 옆으로 한 발 비켜 섰다. 방금 전까지 그가 서 있던 자리에 땅이 갈라지며 파편이 튀었다. 빠르다, 사라지는 것을 겨우 좇을 수 있을 정도의 속력이었다. 하늘에서 창을 내려 꽂은 장본인은 웃지 않았다. 눈이 마주친 것이 잠깐, 시마는 뒤로 물러섰다. 땅에 박힌 것을 무 뽑듯이 뽑아낸 남자가 다시 한 번 허공을 갈랐다. 창인 줄 알았더니, 언월도인가.

"⋯후우."

심호흡이 한 번, 봉이 그의 손길을 따라 한 바퀴를 돈다. 등에 걸쳐서 두 바퀴, 이어 날이 제 자신을 향하며 준비자세. 목표를 고정하고 화살이 쏘아지듯 땅을 박찬다. 사냥감은, 시마 카즈미였다.


그의 사냥감은 언제나 마수였다. 울타리를 넘어 먹이를 찾는 마수, 마물⋯ 뭐, 가끔은 멧돼지나 고라니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부키 아이는 단 한 번도 인간을 상대로 무기를 들고 싸워본 적은 없다. 싸울 이유가 없었고 싸울 사람도 없었다. 제 고향은 그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평화롭고, 평화로워서, 지루할 정도로 평화로워서

그는 17살이 되지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고향도 박차고 나왔다. 손에 든 것은 작은 숏 소드, 겨우 데면데면해진 마을 사람들과의 이별은 후회도 그리움도 없었다. 어떨 때는 칼을 썼고 어떨 때는 도끼를 집었다. 무기가 없으면 주먹을 쥐었고 손이 닿지 않으면 다리를 뻗었다. 멀리서 쏘는 무기들은 못 다룰 정도는 아니었지만 뭔가 팍, 꽂히는 면이 없었다. 손맛이 없다고 해야하나?

사람과 함께 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나고 자라서 단 한 번도, 파티 플레이를 해본 적이 없었다. 여행도 혼자였고 시비를 거는 산적 무리는 패고 지나갔다. 돈이 있을 땐 여관에서 잤고 돈이 없으면 허드렛일을 해서 마구간에라도 좋으니 묵게 해달라고 했다. 이부키 아이의 여행은 평범했다. 여전히, 무언가 지루했다. 팍 꽂히지 않았다.

그러다가 은인을 만났다. 그날은 언제나와 같았고 언제나와 같이 마을에서 시비가 걸려온 참이었다. 평범하게 밥을 먹고 나왔다 생각했는데 경비대가 찾아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 말했음에도 경비대는 나가달라 말했다. 주변을 살펴보니 낮에 시비가 걸린 놈이 움찔, 어깨를 떠는 것이 보였다.

저 자식이.. 그런 생각이 들 때 쯤, 한 아저씨가 제 어깨를 잡았다. 그 사람은 나를 자신의 조카라 설명했다. 갑자기? 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왜인지 쳐내지 못했다. 도움받은 건가? 멍청한 생각이 이어졌다. 경비대는 순순히 사과하며 지나갔다. 생각해보면 역시, 사과를 받은 건 처음이었지. 이후 그 아저씨는 제게 따라오라며 걸음을 옮겼다. 처음 보는 사람을 믿을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하지만 발이 움직였다.

그 사람은 모험가였다. 고향에 있던 허세만 넘치던 사람들과는 달랐다. 진짜 현장을 뛰고, 지금도 뛰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나에게 일을 거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재워주면요. 그 말에 아저씨는 웃었다. 얼마든지, 레이코에게 저녁은 3인분을 준비하라고 해야겠구만. 그리 대답하면서. 마수를 퇴치하는 건 언제나와 같아 쉬웠다. 아저씨는 날이 닳아 없어진 봉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더니 지금까지 그렇게 싸워왔냐고 물었다.

왜인지 대답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의미지?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드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아저씨는 별 것 아니라는 양 흐음, 한마디를 뱉더니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멀뚱히 보고 있던 남자는 이내 걸음을 재촉해 따라 내려갔다. 그때, 은인은 나에게 말했다. 제대로 배워보지 않겠냐고. 모험가가 되어보지 않겠느냐고.

아, 나는⋯

어쩌면, 용사가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 용사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고 싶었다.

은인은 그걸 깨닫게 해줬다.


공격이 몰아친다. 방식이 거칠었다. 시마 카즈미는 공격들을 피하면서 범위를 가늠했다. 동작이 크지만 동작이 큰 단점을 커버할 만큼 속도가 빠르다. 방식을 따지자면 마수 사냥, 또는 동물을 사냥하는 방식에 적합하다. 짐승형 마물을 주로 사냥해 왔나? 머릿속에서 가닥이 잡히기 시작한다. 이 인간의 공격 방식, 어디서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버릇이 강해서 명확히 잡히지가 않아. 그 와중에 한 명은 얼어서 아무것도 못하는 군. 물론 이 타이밍을 보는 걸 수도 있지만―.

시마 카즈미는 시선을 돌렸다. 1초, 그 이상 돌리기엔 여유가 없다. 다시금 바닥을 가르듯 박혀오는 칼날을 피한다. 봉을 잡고 위로 뛰어오르면⋯,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땅에 박힌 창을 근력으로 돌려 위로 뽑아 올린다. 이자식이, 무식하기 그지 없는 방법을..! 결국 시마는 다시금 거리를 두는 방법을 취할 수 밖에 없었다.

어디까지 하나 볼까 싶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우수한걸. 이런 방식으로 나오니까 마법사가 공격할 수가 없다. 자칫 타이밍이 어긋났다간 팀킬이라고. 물론 코코노에가 얼어있는 것도 맞았다. 눈으로 좇기 힘들겠지. 대체 어디까지 솔로 플레이적인걸 보여줄 셈이지? 이부키의 눈은 여전히 시마 카즈미 단 한 점에 꽂혀있다. 진짜 야생 동물이랑 눈싸움이라도 하고 있는 느낌이라 헛웃음이 새어나오는 것을 막기 바빴다.

"역시⋯"

"응?"

"시마씨 말이야, 힐러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네. 그렇지?"

꿰뚤렸네. 그보다 미믹인 줄 아는 거야? 아니면, 나인걸 알면서도 공격하는 거야? 어느쪽이든 좋은 건가? 묘하게 신나보이기까지 하는 모습에 한 쪽 눈썹이 휙 올라갔다 내려오는 건 당연했다. 됐다, 나도 어느쪽이든 좋으니까. 슬슬 그만둘 때도 됐다. 그럼 이제 어쩔까. 공격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파티원이 있어서인가? 자기 나름대로 주목을 끄는 방법인지, 아니면 그냥 사냥의 방식인지. 다시금 금방이라도 쏘아질 듯한 자세로 몸을 낮춘 채로 제 주변을 천천히 돌기 시작한다.

"글쎄."

어찌되었든 사냥당하는 느낌이라는 게, 딱히 기분 좋은 감각은 아니라. 줄곧 거리를 벌렸던 시마가 단숨에 좁혀왔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스피드는 못 내지만 애초에 시마 카즈미의 장점은 스피드가 아니었다. 그의 강점은 관찰력과 판단력, 그리고 예측 플레이다. 거리를 좁히면 이부키의 시야가 좁아진다. 그야, 사냥감이 시마 카즈미였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시야가 좁아진 사람이 취하는 방법은 평범하게 세 가지.

거리를 벌리거나

그대로 공격하거나

또는,

일순 굳는다.

이부키는 몸이 굳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움직였다. 놀라울 정도의 근력으로 리치에 맞지 않는 창을 돌려 어깨에 박아넣으려 했다. 그러나 시마는 이부키 아이가 그리 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가 움직임을 멈춘 이유는 내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그 이상의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킬 것이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움직였다. 그렇기에 시마는 손을 든다. 제 왼편, 날이 날아올 궤도, 리치가 맞지 않아 차츰 짧아지는 와중 봉에 닿을 수 있는 마지막 순간에 그의 팔목이 닿는다. 영창은 필요없다. 가장 기본적인 주문이기에.

'바운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언월도가 날라가 벽에 박힌다. 아, 궤도 위험. 자칫하면 맞출 뻔 했네. 코코노에를 신경 쓸 겨를 까진 없었다. 적당히 빨라야지. 조금만 늦었어도 경동맥을 스쳤을 거라고. 다행히 빗겨나갔지만. 날라가 벽에 박힌 언월도를 쳐다보며 멍하니 있는 두 초보 모험가의 모습에 시마는 툭툭, 사제복에 묻은 흙먼지를 털며 일어났다. 시험은 끝. 이정도면 전위로 쓰다 못해 충분하다. 물론 하나부터 열까지 다시 가르쳐야겠지만. 손까지 탁탁, 태평한 얼굴로 털어낸 시마는 암호를 말했다.

"참고로 오늘 저녁은 우동이야."

"⋯무슨 우동?"

"사누키 우동. 진바씨가 그쪽을 좋아하셔."

좀 더 빨리 말해달라고 시마아―. 그제서야 칭얼거리는 말소리가 터져나왔다. 계속 볼맨 얼굴로 있더니 공격할 때는 망설임이 없고 끝나자마자 애같은 얼굴로 돌아왔다. 애냐? 아니 애인가. 정신이 애인 것도 애라고 쳐야하는가? 알고 지낸지 이틀밖에 안됐는데 밑바닥까지 본 기분이군.

"그보다 진짜 혼자야? 아니지?"

"혼자겠냐. 너 마력 감지 못하지?"

"못해~, 그런 잔재주 안 부리는 스타일~. 그치만 시마가 거짓말하는 것 같진 않았어!"

"마법으로 기척을 감춘 것 뿐이야. 마력을 탐지할 수 있으면 알 수 있었을텐데. 아마 저쪽도 아직은 마력탐지가 특기는 아닌 모양이지."

어느새 진바씨가 마법을 풀고 다가와 코코노에를 챙겼다. 뭐, 아카데미에서 배운 수준의 마법이라면 탐지 안 되는 쪽이 당연한 거지만. 실제 현장에서 쓰는 마법과 아카데미 내에서만 배우는 것들에는 당연하게도 차이가 있다. 현장을 뛰는 마법사들은 자체적으로 식을 개량해서 사용하기도 하고 스스로 고유 마법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아카데미 내에서 배우는 것은 말 그대로 기초니까.

그걸 변형해서 어떻게 쓸 지는 자유라는 말이지. 특히 기척을 지우는 마법은 전사에게도 힐러에게도 원거리든 근거리든 마법사든 어느 직군이든 반쯤 필수라⋯ 하, 이것도 내가 가르쳐야하겠구나. 시마는 앞날이 깜깜해지는 것을 느꼈다. 역시 진바씨랑 반쯤 나눠서 하자고 해야지.

"참고로 나는 너희 둘 다 미믹이 아닌 거 알고 있었어."

"어떻게?!"

"마법을 걸어놨으니까."

"아, 역시 그건 가호가 아니라..!"

"정답~, 위치추적 마법이었답니다."

"시마 음침해."

"겠냐, 보험이라니까. 보통 던전에 들어갈 때는 종종 달아두는 마법이야."

매뉴얼이 없는 던전에 들어갈 때는 위험하니까. 물론 마법을 건 사람이 사라지면 소용 없지만. 시마 카즈미는 절대 파티를 이탈해선 안 되는 멤버 중 하나이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딱히 문제가 없었다. 뭐 혹시 모르니 코코노에한테는 나중에 가르쳐둘까. 그런 생각을 하며 저 멀리 달려가 언월도를 팍, 하고 뽑아낸 이부키까지 합세하자 드디어 제대로 모인 파티가 다시금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럼 가볼까요..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됐으니까 말입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지."

"마법을 쓰면 진즉에 들키니까 어쩔 수 없었어요."

"저기⋯"

"응?"

"이 던전의 보스는⋯ 어떤 보스로 나오나요?"

"⋯⋯아아. 그건 봐야 알아."

"예?"

"그때그때 달라서 말이지, 성가신 마물이야."

"누구로 변신하느냐에 따라서 다르지만. 뭐, 마물의 랭크도 크게 상관 없어. 흔들리지만 않으면 돼."

"흔들리지 않으면..?"

"있지, 코코노에씨."

"..네."

"미믹은 왜, 이런 귀찮은 방법을 쓴다고 생각해?"

"네?"

실로 그렇지 않은가. 이 던전은 어째서 그런 귀찮은 방식을 쓰는가. 왜, 이 던전에는 남을 흉내내는 것들이 많은가. 왜 그들은 함정을 파는가? 왜 그들은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가.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남을 힘들게 만들면서도 결국에는 심층부로 데려간다. 굳이 빙빙 돌 필요가 있나? 굳이 사람을 현혹하여 힘을 전부 빼놓고 보스에게 데려다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답은 이부키에게서 나왔다.

"⋯약하니까?"

"정답."

귀찮은 방법을 쓰는 이유는 딱 하나다. 이 던전은 실제로 모체가 강하지 않으니까. 그렇기에 그들은 의태한다. 함정을 파고 먹잇감을 기다린다. 똑똑한 것들은 대부분 힘이 약하기 마련이다. 인간은 단련할 수 있다지만 그것은 자아와 지식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던전에서 생기는 마물에게 지식은 없다. 단련이라는 말 또한 없다.

모체는 그저 먹고 크기를 불린다. 모체의 힘이 곧 던전에게 나눠진다. 그렇게 미궁을 만든다. 때문에 기본적으로 던전의 보스는 강하다. 그것이 이 던전이 여전히 C급에서 머무는 이유 중 하나다. 매뉴얼만 알고 있다면, 언제든 탈출할 수 있다. 다만, 현혹되지 말아야하며 이겨낼 수 있어야한다.

무엇을?

"하나만 충고하자면"

잠깐의 정적이 일었다. 이내 시마는 입을 연다.

"무엇으로 보이든, 안아주지 마."


저 너머에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에 현혹되는가. 가장 기본적인 것은 겉모습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에 동요하는가. 사람은 무엇에 약한가? 무엇에 망설이는가. 기억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어 어느순간부터 끝을 맞이하는가. 무엇이 최악이고 무엇이 차악인가? 구것을 구분할 정의가 사람에겐 존재하는가.

구해내지 못한 것에, 지켜내지 못한 것에, 늦어버린 것에,

아직도 누군가는 기다리고 있는 것에.

아, 이것이 원죄라면

만약 이것이 그들의 원죄라면

이 또한 짊어져야할 것이다.

지켜내지 못한 것에 대해서.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

그리고 다짐해야할 것이다.

앞으로는 이런 사례를 만들지 않겠다고.

그리하여 다음은 늦지 않고 구해내겠다고.

팔을 벌리며 안아달라 요구하는 것은 인간이 아닌 마물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모습이었고

누군가 간절히 사랑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후회하고

누군가는⋯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경비원을 스치고 지나간다. 진바 씨는 간단한 사항을 체크하기 위해 남았다. 저 멀리 이야기가 들렸다. '뼈는..'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알겠습니다.' 정중하게 인사한 그는 곧 사라질 던전을 두고 다른 대원과 교대했다. 그제서야 시마는 가볍게 어깨를 돌렸다. 온 몸이 비명을 지르는구만.. 오랜만이라고는 하나 너무 쎄게 굴렸다. 스트레칭이 부족했나?

"끔찍해애애액"

"..뭐 뒷맛이 좀 많이 나쁘지. 뭘 봤어?"

"⋯말하고 싶지 않아."

"말하지마, 그럼."

"⋯정말 그걸로 괜찮았던 걸까요."

"그걸로 된 거야."

진바가 코코노에의 어깨를 무게있게 누르고 지나갔다. 마지막, 주문을 쏘아낸 것은 코코노에였다. 마물은 불에 타 사라졌다. 보스가 사라진 미궁은 현혹하는 것을 그만두었고 올바른 길을 내어줬다. 영원히 헤멜 것 같았던 미궁은 길고 긴 일자의 동굴이었다. 돌도, 대리석도, 진흙도 없는 소리조차 함부로 울리지 않는 동굴.

"있지 시마."

"뭡니까."

"시마는 뭘 봤어?"

"너랑 같은 걸 봤겠지."

"아니잖아."

내가 뭘 봤냐고. 시마는 무슨 의미냐는 양 눈썹을 위로 휙 올렸다가 아아, 라며 능청스런 소리를 흘렸다. 이내 픽, 웃음이 샌다. 정말 언제 가도 뒷맛이 나쁜 던전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마 씨.」

"글쎄, 내가 본 건 마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저 살아있어요.」

"어쩌냐, 이제 싫든 좋든 나한테 뒤를 맡겨야겠네."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난 시마가 힐러라 든든한데."

영문을 모르겠다는 양 갸웃 고개를 기울이는 모양새에 시마는 가만히 시선을 던졌다. 아, 이거 진짜네. 시선이 한 바퀴 허공을 돌았다. 그리고는 미묘한 웃음이 지어졌다. 바람빠지듯 새는 웃음은 듣기에야 웃음이었지만. 완벽히 웃는 것도, 상대를 무시한 숨도 아니었다. 그저 그 자체가 시마 카즈미가 이부키 아이에게 품은 감정이었다. 기가 막히네, 진짜. 결국 그리 중얼거리고 마는 것이다.

"하.. 이거 진짜 바보구만."

"지금 엄청 태연하게 내 욕했지?!"

"거기 두 명~~, 언제 올거야. 배고파서 돌아가시겠다!! 먼저 가버린다?!"

"아, 좀 봐주세요⋯. 뭐해? 이부키 뛰어."

"엑, 같이가요!!!"

「시마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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