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丸日常 01
남의 사랑 이야기
흥미진진하게 눈을 굴리며 바깥쪽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와, 그녀의 근시인 쥬즈마루 츠네츠구가 카페 한쪽 창가에 앉아 있었다. 만물상 거리 한쪽에 있는 카페 안에서는 사람들이 조잘조잘 수다를 떨고 있고 테이블 위에는 음료 두 잔과 반짝거리는 케이크 두 조각이 올려져 있다.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바깥에서는 가볍게 눈이 날리고 여기저기서 즐거운 듯이 사람들이 지나간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한 여자 사니와와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가 그녀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여자 사니와의 발갛게 상기된 뺨,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눈, 두터운 외투 뒤쪽으로 무언가를 숨기듯이 쥔 모양새. 그리고 아마 여자 사니와의 검일 쇼쿠다이키리의 무언가 기대하는 모습까지도. 그래, 누가 봐도 고백의 한 장면이다. 원래 남의 사랑 이야기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법이다. 그녀는 이제는 아예 몸도 창가 쪽으로 틀어놓고서는 포크로 초콜릿케이크를 쿡 찍어 입에 넣었다.
“…그러시면 안 됩니다.”
“에이, 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다 쳐다보고 있을걸요? 저만 그런 것도 아닐 텐데.”
그녀는 짧게 고개를 돌려 변명하듯 툴툴대고서는 이내 듣는 둥 마는 둥 시선을 바깥으로 고쳐 앉는다. 잠깐 시선을 뗐던 사이 여자 사니와는 마음을 먹은 듯, 고개를 들어 쇼쿠다이키리를 보고서는 외치듯이 말한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실내에 앉아 있는데도 흐릿하게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밋쨩, 저랑 결혼해 주세요!”
와아, 장난 아닌데? 웃으며 입 밖으로 말을 내뱉는 그녀를 보며 쥬즈마루는 잠깐 고민했으나, 그녀의 말대로 이미 카페 안은 온통 바깥에 시선이 집중되어 있었기에 굳이 자신의 주인을 말리지 않기로 했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밖을 바라보면 아마도 제 주인일 여자 사니와가 건네주는 반지를 든 채,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는 행복감을 숨길 수조차 없다는 듯이 벌겋게 익은 얼굴로 손을 잘게 떨고 있었다. 꼭 어딘가 소설이나 영화의 주인공처럼 서로 끌어안고서는 마음을 확인하는 모습이 객관적으로 사랑스러운 풍경이었다. 곧 여자 사니와와 쇼쿠다이키리는 손을 꼭 잡은 채 거리 안쪽으로 사라졌다. 그 둘이 간 길에 나란히 늘어선 두 쌍의 발자국과 곧 사라질 한겨울의 벚꽃이 남았다.
“대단하네요.”
“무엇이 말입니까?”
“그냥, 여러 가지?”
사라지는 두 사람을 지켜보던 그녀는 말없이 음료를 뒤적이다 뒤로 몸을 기대 편안히 자세를 바꿨다. 눈을 살짝 감은 채 무언가를, 한참을 생각하고는 뒤늦게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마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가 받아줄 건 알고 있었겠지만, 저렇게 당당하게 프러포즈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 할까요.”
“…….”
“도검남사와 결혼을 꿈꾼다는 것도 대단하고요.”
“…검과의 결혼은 꺼리십니까?”
“꺼린다기보다는…. 현실적으로 문제가 많잖아요.”
그렇다. 아무리 사니와라지만 검과의 연애나 결혼에는 걸림돌이 많았다. 가볍게는 사고와 문화의 차이부터, 깊게는 미래의 불투명성과 헤어짐 후의 상처까지. 그녀는 머그컵을 쥔 채 티를 한 모금 넘기다가 뜨거웠는지 살짝 표정을 구기고는 내려놓았다. 그녀에게는 데이셨습니까? 라고 물어오며 조심스레 자신의 안위를 살피는 이 사람 또한 검이었다.
“쥬즈마루는 도검남사죠?”
“그렇습니다.”
“그럼, 제가 죽고 나서 몇백 년이 지나도 영력만 채워진다면 계속 실재하고 있는 거죠?”
“…그렇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렇구나.” 하고 한 마디만 뱉은 채 그녀는 다시 초콜릿케이크를 잘라 입에 넣었다. 말없이 초콜릿케이크를 우물거리는 그녀를 보며 쥬즈마루 츠네츠구는 그 시간이 억겁처럼 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이렇게 불쑥 이상한 질문을 던져오는 그녀는 어떨 때는 그 의중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다가도, 어떨 때는 지금처럼 한없이 흐리게 굴었다.
“어떻게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는 언젠가 주인이 죽을 걸 알면서도 그렇게 행복하게 승낙할 수 있는 걸까요?”
“…….”
“인간은 먼저 죽어버리잖아요. 당신들의 삶에 있어서는 찰나일 뿐이잖아.”
더 이상 인간이지 않거나, 인간이 아닌 사니와도 물론 많았지만 사니와의 대부분은 그저 인간이다. 남사와 말 그대로 영원을 함께 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분명히 그만큼 많은 사니와들은 인간으로서 생을 마감했다. 그럼 길어봤자 80년 정도인 찰나를 위해 짧아도 이백 년, 길면 천년을 넘게 살아온 검들은 어떻게 결여된 영원을 지고 살아가는가. 그녀는 따뜻한 머그컵을 양손으로 감싼 채 숨을 길게 내뱉었다.
쥬즈마루는 그런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를 눈으로 좇고 있었다. 그녀는 늘 그랬다. 극이나 영화를 본 후에 짤막한 감상을 남기는 것처럼 멀리 떨어져서 무미건조한 문장을 읊조리는 것이다. 그 기원이 그들에 대한 지독한 무관심인지, 아니면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허세에 가까운 방어인지는 불분명했다. 쥬즈마루는 그런 자신의 주인을 가만히 지켜보다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 그것마저도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 걸까요.”
그녀는 단조로운 어조로 답하고는 마지막 케이크 한 입을 입에 넣었다. 진한 초콜릿 향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쥬즈마루는 손을 뻗어 그녀의 입가에 묻은 초콜릿을 닦아냈다.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의 손길이 닿고 난 자리를 혀로 훑었다. 그제야 테이블에 거의 손도 안 댄 케이크 한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케이크 별로였어요?”
“제게는 너무 달아서요.”
그럴 수 있죠. 짤막하게 답하고는 잠깐 남은 케이크를 쳐다보던 그녀는 그 위의 딸기를 쿡 찍어 자기 근시의 입술 앞에 들이밀었다. 생크림은 달아도, 딸기는 괜찮죠? 잠시 머뭇대던 쥬즈마루는 이내 입을 열어 받아먹었다. 그럼, 우리 이제 돌아갈까요? 그녀의 말에 그 또한 함께 일어선다.
“딸기 생크림 케이크랑, 고구마무스 케이크랑, 초콜릿케이크 한 개씩 포장해서 혼마루로 바로 보내주시겠어요?”
네, 네. 잘 포장해 주세요. 한 시간 정도 걸리죠?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나가는 길에 계산대에서 케이크를 세 개 더 주문하고서는 고개를 돌려 발길을 옮긴다. 이제 잘 쉬었으니, 다시 임무지로 가야죠. 다른 애들 부대들이랑도 나눠 먹으려고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발걸음은 가볍게 멀어진다. 그는 한발 앞서 걷는 그녀를 뒤쫓는다. 항상 발걸음을 재촉해 걷는 그녀는 뒤를 돌아보는 법이 없다.
쥬즈마루는 문득 위화감에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회색빛의 장갑에 초콜릿이 까맣게 녹아 달라붙어 있었다. 그는 말없이 그 자국에 입을 맞췄다. 녹아내린 초콜릿은 몸서리쳐질 정도로 달았다.
“쥬즈마루? 안 오고 뭐 해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요. 그 뒷말은 겨울바람 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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