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학원 순애과
~사랑은 갑작스럽게~
A반 하루카군의 이야기
“하루카 너 또 멜론빵이야?”
“…그렇게 먹고 살면 일찍 죽어요.”
친구들의 말에도 어엉, 그래. 하며 듣는둥 마는둥하는 하루카는 크게 한 입 빵을 베어문다. 달달한 멜론빵이 목을 채 다 넘어가기도 전에 옥상으로 올라오는 문이 벌컥 열린다.
“하루카군! 이거 주인님을 위해 준비한 도시락이야. 후훗. 오늘도 좋아해!”
순간 점심을 먹던 세 사람 사이에 정적이 흐른다. 하루카는 어느새인가 멜론빵을 입에 쑤셔넣고 사라졌고, 그 뒤를 무려 3단 도시락을 든 킷코가 따라나선다. 눈치를 보던 아이바는 도시락을 들어올려 삼키듯이 먹어버리고는 린도의 팔을 붙잡고 뛰어간다. 하루카를 놓친 킷코는 뒤늦게 아이바랑 린도를 찾았지만 그 뒤에는 불쌍하게도 반이나 남은 린도의 도시락만 휑하니 있을뿐이었다.
아니, 그래서 그럼 린도는 밥도 제대로 못 먹은거야? 왁자지껄한 교실 안에서 쵸우기가 묻자, 린도는 고개를 끄덕인다. 미안, 미안. 근데 킷코군 항상 나한테 와서 하루카는 어디있냐고 물어서 조금 부담스럽다고. 아이바가 고개를 흔드는 너머로 하루카가 불량하게 의자에 기대 앉아있다.
“차라리 받아주는건 어떻나? 3단 도시락이면 정성이 대단한데.”
“아 그건 인정. 나는 남친한테도 그렇게 못할거같지.”
야만바기리 쿠니히로의 말에 아이바가 한 줄 덧붙인다. 조용히 앉아있던 린도 옆에서 하루카가 장난스럽게 소리를 높이자 린도는 불퉁하게 하루카를 노려본다.
“내 의지는? 내 선택은?“
“알 반가.”
“알 바인가.”
친구들의 대답에 입이 댓발은 나와서 궁시렁거리는 하루카의 말은 무시한 채, 갑자기 조용히 있던 린도가 입을 연다.
“…정말 모르는 사이인거 맞아요? 그쪽은 아는것 같던데요.”
“아! 니! 진짜 기억이 요만큼도 안난다니까? 봤으면 알겠지!”
“그냥 니가 기억 못하는거 아냐?”
니 기억력이 별로 믿음직스럽진 않아. 하는 말에 쿠니히로가 고개를 끄덕인다. 너무 달라져서 못 알아본다던가? 하는 가벼운 말에 끄응 소리를 내며 기억을 더듬어 봐도 생각나는건 없다.
“주인님! 점심은 제대로 먹은거지? 아아, 도시락이 마음에 안 든다, 면….”
이상한 호칭에 반 전체가 수근거리자 하루카는 순식간에 일어서 킷코의 팔목을 잡고 교실 밖으로 나섰다. 비록 킷코는 아앗 멋있어…! 라고 말해서 하루카의 뒷목을 아릿하게 했지만 말이다. 사람 없는 과학실 앞에서 손을 놓고서는 미묘한 표정으로 킷코를 바라보던 하루카가 입을 열었다.
“아니, 애초에 왜 나보고 주인님이라고 부르는건데?”
“…하루카군이 주인님이라고 불러도 된다고 했잖아.”
아니, 내가 언제…. 고개를 돌려서 눈을 마주보자 회색 눈동자가 물기를 머금은 채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 잠깐, 이거 어디서 본 느낌인데. 하루카의 머릿속을 오래된 기억이 스쳐지나간다. 언젠가 할머니집에 갔을때 본 시골집의 여자아이. 딱 저런 회색빛 눈에, 딱 저런 분홍색 머리칼을 살랑이던.
“아니, 너 남자였어?”
아니, 남자였다고? 누가 그 얼굴을 남자라고 생각하냐! 애초에 지금도 예쁘장하게 생겨선!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내뱉는 하루카 앞에 서있던 킷코의 표정이 풀린다. 방금 전까지 울먹이던건 어디가고 해사하게 웃으며 큰 소리로 외친다.
“주인님, 정말정말 좋아해!”
“아니, 너… 그… 씨… 나도 모르겠다.”
그래, 사귀자. 그래! 사귀자고! 마주 외치는 모습에 세상에 더 행복할 일이 없을 정도로 웃으며 자신을 끌어안아오는 킷코를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안아주면서도 한손으로 자기 머리를 벅벅 긁는다.
아니 어쩌다 이렇게 됐지?
C반의 전학생, 킷코 사다무네와 A반의 하루카가 사귄다는 소문은 하루를 채 넘기지 못하고 학년에 퍼졌다.
A반 린도상의 이야기
“와우, 개판이네.”
킷코와 하루카가 교실을 나서자 아이바는 낮게 읊조렸다. 잠깐 교실은 정적이었지만, 곧 쵸우기가 린도에게 고개를 돌려 멋쩍게 말을 꺼냈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그는 정말 끔찍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린도, 진짜 노파심에 말하는거지만…. 진짜 그 양아치랑 사귈건 아니지?”
“그거 B반의 토모에가타군 말하는거야, 아니면 C반의 오니마루군 말하는거야?”
“웃을 일이 아니야! 그리고 둘 다라고!”
“…….”
아이바가 낄낄대자 쵸우기는 불만스러운 눈으로 그쪽을 쳐다본다. 막상 당사자인 린도는 뚱한 표정으로 앉아있을뿐이다. 저번주의 핫이슈. B반의 토모에가타 나기나타가 A반의 얼음공주, 아마츠카사 린도한테 고백했대! 그리고 이번주의 핫이슈, C반의 오니마루 쿠니츠나가 얼음공주한테 러브레터를 보냈대!
막상 그 고백은 1열 직관한 하루카에게 저게 고백이냐? 암살이지. 하는 평가를 받았고, 러브레터 또한 아이바에게 이건 도전장이라며 혹평 중 혹평을 받았다. 아니 대체 누가 러브레터에 계속 니가 생각나서 짜증난다고 쓰냐고. 그게 도전장이지. 천 년은 이르다. 그렇게 말하자 쵸우기의 표정은 더 나빠졌고, 쿠니히로는 고개를 숙이고 웃음을 참았다.
“…저는 연애같은거 관심없어요.”
“그럼 다행이고… 아니, 하는 건 좋지만. 최소한 좀더 멀쩡한 사람이랑 하길 바라고 있어.”
“쵸우기 너 아빠야?”
저기 봐라. 아주 잡아먹겠다. 교실 창문 너머에 커다란 인영이 두 개가 비친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리 애 이쁜건 알아서! 하는 아이바의 말에 린도가 손을 뻗어 아이바의 입을 막는다. 그 커다란 문짝이 쬐끄맣게 보이게 하는 남정네 둘이서 기싸움이라니. 이미 A반 교실 앞문은 아무도 드나들 수 없는 상태가 되어있었다.
커다란 남학생 두 명이 아련하게 이곳을 쳐다보는건 쳐다보는거고, 반의 집중은 매정하게 린도를 향한다. 내내 두 사람과 눈 한 번을 안 맞춰주던 린도는 결국 일어나 타박타박 교실 앞문으로 향한다. 두 사람이 갑작스러운 그녀의 움직임에 당황하자 칼같이 입을 연다. “교통 방해하지 마세요.” 그리고는 문을 닫아버린다.
“진짜 압권이다….”
“그러게….”
A반의 얼음공주님에게 일주일째 무시당하고 있는 둘이었다. 항상 잘난 듯이 굴더니 둘다 웃기게 되었다는 소문이 도는 걸 모르는건 린도뿐이다. 그리고 과연 2학년의 공주님이 누구를 선택하실지 꺄악 꺄악 뒤에서 신나게 소문이 도는 걸 모르는 건 당사자 셋 뿐이다.
A반 아이바쨩의 이야기
“아이쨩, 나 매니큐어 가져왔는데 해 줘?”
“응응. 나는 좋지!”
수다를 이어가다 카슈의 말에 냉큼 의자를 돌려앉는 아이바 앞에 형형색색의 매니큐어가 놓아진다. 무슨 색으로 해드릴까요, 손님? 어머, 저는 키요삐랑 같은 색으로 하고 싶은데요? 하며 주고받는 말이 하루이틀 솜씨가 아니다.
“아, 그래도 새끼손가락이랑 엄지손가락만 해주시겠어요?”
“물론 알죠. 걱정 마!”
그러다가 두 명 다 벌점 받을 거에요. 라며 핀잔을 주는 린도의 말에 아이바는 키들거리며 웃어넘길 뿐이다.
“어차피 곧 방학인걸. 괜찮아, 괜찮아.”
“맞아, 별일 없을걸?”
“너희… 그러다 혼나도 난 모른다?”
야마토노카미의 말에도 둘다 전혀 걱정하는 내색이 없다. 잠깐 아이바를 바라보던 야마토노카미가 입을 연다.
“그러고보니 너도 편지 받았다고 하지않았어?”
“아, 그거.”
“맞아, 맞아. 그래서 누가 보낸건지 찾았어?”
악, 번진다! 소리를 치고는 카슈가 조심스럽게 손톱을 닦아낸다. 나 볼래, 하는 야마토노카미의 말에 아이바가 서랍에서 곱게 접힌 편지를 꺼내준다. 거기에는 정갈한 글씨체로 담담한 고백의 말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와, 장난아닌데.”
“근데 글씨체가 너무 예뻐서 여잔지 남잔지도 모르겠어.”
“…말하는 어투는 남자같던데요?”
“이거 한번 찾아볼까? 어차피 우리 학년아냐?”
으음, 글쎄…. 하는 애매모호한 대답에 앞에서 손톱을 칠해주던 카슈가 피식 웃고는 놀리는 듯한 말투로 말을 잇는다.
“뭘 모르네. 원래 이런건 모를때 더 두근두근한게 있는 법이야, 그치이.”
“그리고, 찾으려들면 더 안 보낼거 같더라고. 그게 벌써 네번째거든.”
난 이쯤되면 누군지 좀 궁금하긴해. 조곤조곤 입밖으로 말을 꺼내자 카슈가 다 됐다! 이거 봐. 귀엽지이. 하며 귀엽게 자랑한다. 기타칠때 방해되지 않게끔 솜씨좋게 칠해진 새끼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을 보며 아이바는 애교가 잔뜩 섞인 목소리로 감탄한다.
“세상에 너무 이쁘잖아! 카슈가 최고야!”
“…아이바, 근데 오늘 체육복 안들고 왔다고 하지않았어요? 이제 점심시간 10분 남았어요.”
“완전 까먹었다, 린도 땡큐!”
B반 나마즈오한테서 빌려올게? 하고 뒷문으로 타다닥 나선다. 자기 교실이라는 듯이 호네바미와 이야기하고 있는 나마즈오 옆자리에 자연스럽게 앉는 모습이 퍽 익숙하다.
“나마즈오, 나 체육복 좀 빌려줘!”
“아 정말~ 또야?”
어쩔 수 없다니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곱게 접힌 체육복을 건네준다. 받은 체육복을 안고 짧은 수다를 떠는데 책상 위에 예쁜 글씨체로 빼곡하게 적힌 노트가 보인다. 이전 시간은 역사였는지 필기가 가득한데도 자를 대고 쓴 것처럼 깔끔하게 정리되어있다. 스쳐지나가는 글씨체가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다.
“이 자리, 누구 자리야?”
“내 옆자리? 쥬즈마루씨! 쥬즈마루 츠네츠구! …아니 있잖아, 너희 반의 닛카리씨 사촌이야.”
“그으래…?”
나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간다! 체육복은 5교시 끝나고 돌려줄게! 아이바는 급하게 우당탕탕 뛰어나가더니 자기 반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다. 새빨개진 얼굴로 걸어들어와서는 제 자리에 앉아 옆의 린도를 끌어안는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옷을 갈아입어요.”
“아니, 그게 중요한게 아니야. 나 찾았어!”
“뭐를요?”
“나한테 오는 그 편지 주인! 세상에… 세상에…, 진짜 상상도 못했는데.”
알아버렸어, 나 알아버렸다고! 난 이제 눈만 마주쳐도 신경쓰일거야. 망했어. 나 이제 B반에만 가면 찾고 있을지도 몰라. 하며 책상에 엎어진 제 친구를 린도는 손가락으로 불만을 담아 꾹꾹 눌렀다.
“아니… 아이바. 우리 이제 강당 가야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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