𝐑𝐨𝐰𝐞𝐧 𝐀𝐳𝐚𝐫𝐢𝐚𝐡 24 (上）

나의 이번 사인은 몸의 내구성을 과대평가하여 마수의 잇새에서 으스러진 것.

로웬은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어금니를 꽉 물며 마지막 마수에게 칼을 박아 넣고는 이번 부상의 이유를 스스로 문답한다. 칼이 박힌 마수의 눈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겉으로 새어 나오지 못한 불길이 구멍이란 구멍은 전부 파고들어 시체를 난도질했다. 이능으로 인한 화염 조각이 넘실거리는 이곳에서 마수의 오른 눈에 칼을 박아 넣은 채로 황망히 마수의 이른 아침 식사가 될 뻔했던 것이 몇 분 전. 그걸 알면서도 로웬은 주변 동료에게 어리광부리듯 힘들었다며 어깨에 팔을 올려 안전한 곳으로 이동했다.

“ 선배님, 저 무서워요… 제발! ”

누군가 목 놓아 우는 소리에 주위를 둘러보면 마수와, 그리고 소량의 인간 시체가 있다. 로웬은 이제 눈물이 다 말라 단 한 방울 없이 상복을 입는다. 타인에게 애도의 말 한마디를 하지 않는다. 다른 이능력자나 평범한 사람들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맺었었든 상관없다. 이미 다 피곤하다며 눈꺼풀 아래에 파묻히지 않았는가. 죽은 자들의 마지막은 새하얗게 잊는다. 기억해봐야 옅은 현기증이나 날 뿐이다. 전선에 오래 있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지나간 일에 대해 감정적으로 원망하거나, 슬퍼하거나, 분노하는 것은 감정이 남아날 때나 하는 것이다. 얼른 깔끔하게 정리하고 추억하지 않는 편이 낫다. 입을 더 꼭 다물었다.

동료 몇이 시체를 수습할 때, 로웬은 모르쇠로 서 있다. 이유를 찾자면 우선 마수에게 물린 머리가 아주 많이 아팠고 부은 발이 아팠다. 제 머리카락을 헤치고 안을 손가락으로 만져보다가 허리춤에 달린 작은 가방에서 붕대를 찾아 대충 묶었다. 두 번째, 혈액이 뚝뚝 떨어지는 검을 계속 손에 쥐고 있었다. 죽어도 일을 하겠다는 의지는 아니었다. 그저 살아있는 동료를 위해 지끈거리는 머리에도 꾸역꾸역 주변을 경계하는 것이다.

잿빛 머리카락이 수만 마리의 뱀들처럼 흩날렸다. 아무 말이 없어도, 그들을 잊어가도. 결국, 로웬은 사람을 사랑한다.

“ 그렇게 비뚤게 서 있으실 거면 슬슬 돌아가죠.”

“ …? 그래. ”

맞은 편에서 시체를 수습하던 동료 중 하나가 그렇게 말했다. 로웬은 머리에 손을 올리고 있다가 마른 입술을 열어 대답했다. 머리와 가슴속에서 수많은 생각이 오갔지만, 그것 외에 슬픈 기색의 동료에게 할 말은 없었고, 기억 속 여린 미소가 어여쁘던 동료는 이제 없었다. 로웬은 그것들을 전부 지우려 노력하며 걸었다. 할 수 있는 한 전부 말이다. 그래도 그의 웃음만은 지워지지 않았다.

현재 시각 오전 3시. 돌아가는 차량의 안. 이 시간까지 전선에 나와 있던 이유는 요즘 들어 마수들이 보잘것없는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것 때문이다. 차량 안에서는 계속해서 낮은 한숨 소리가 자주 들렸다. 다들 동료의 죽음에 힘들어하고 있었다. 암담하고, 버겁겠지. 로웬도 그걸 모르지 않기에 위로는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제 옆에 놓인 가방을 주웠다. 삐져나온 편지 몇 장, 말린 클로버가 가득한 작은 상자, 노란 리본. 돌아가는 길에 할 것도 없어서 편지나 몇 번 읽었다. 서늘한 눈이 그 위에 머물면 금방 다정함을 품었다. 다들 잘 지내려나, 날 기억하긴 할까? 종이를 쥔 손끝에 힘이 들어가자 종이가 구겨졌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 로웬 아자리아, 슬프지도 않아? ”

그때 누군가 한심하다는 듯이 코웃음 치며 로웬에게 그리 물었다. 상대는 전선에 투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능력자, 동시에 사망자와 관계가 있어 보이던 사람. 그렇기에 제 반응이 적잖이 답답했나 보다. 그렇게 사망자에 의미를 두면 결국 스스로 괴로워질 것을. 로웬은 공허한 감정을 숨기고서 야속하게 답해야만 했다, 그것이 선배의 역할이다. 물론 저도 사람인지라 아무런 감정이 드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공허에 가까운 빈자리의 쓰라림 뿐, 분명 슬프다는 감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주섬주섬 편지를 다시 접어 꼼지락거리며 가방에 다시 잘 챙겨두었다. 상대의 차가운 눈은 점점 더 굳어 가고 있었고. 로웬은 감정적인 대화를 하고 싶진 않았기에 차분하게 물었다. 예전보다 더욱 감정이 메마른 듯한 딱딱한 말투는 어떤 흔들림도 없었다.

“ 그래야 할 이유가 있어? ”

“ ……… ”

한참 만에 나온 로웬의 시린 대답에 그는 슬그머니 다른 팀원들의 눈치를 살핀다. 그는 로웬이 차라리 화라도 내면 좋으련만 생각했는데. 어쩐지 이런 반응이 저를 맞이하니 조금 긴장이 되어 얼굴이 붉어졌다. 주변 눈치를 휘 살피던 그는 절대 자신을 혼자 두지 않겠다던 젊은 선배를 홀로 추억하며 간신히 입술을 뗐다.

“ 죽은 동료에게 사과해. 다시는 못 보잖아. ”

“ 못 보는 걸 아니까 슬퍼하지 않는 거야. ”

“ … 죽은 것이 너와 같은 별의 아이라도? ”

“ 응, 죽은 것이 별의 아이라도, 너라도. 그러니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 ”

미주알고주알 뱉는 이야기에 이번에는 잠깐의 틈도 없이 바로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로웬은 그의 눈을 바로 보았다, 적갈색 눈동자는 답지 않게 차가움이 뚝뚝 묻어나는 시선이었기에 그의 미간이 조금 좁아졌고 결국 입술을 잘근잘근 물다가 겨우 침이나 삼켰다. 항상 멍하니 있던 로웬이 그런 반응을 보일 줄 몰랐던 모양이다. 로웬은 설명이 다 된 것이 아니냐는 듯이 넌지시 웃음을 걸다가 대뜸 그의 옆자리에 앉아 어깨에 기댔다. 로웬의 입장에서는 나름 사과의 의미었을테지만 그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저 황당한 일일 수밖에. 당황한 듯 들썩이는 몸과 어쩔 줄 모르는 눈을 힐끔 바라보면서 로웬은 그러거나 말거나 눈을 감았다. 잘 자.

한 시간, 두 시간. 어렴풋이 다른 동료가 답답해도 원래 그러는 놈이라며 저를 평가하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로웬은 그저 한쪽 입꼬리를 비틀고 응, 나도 사랑해. 라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로 반응했다. 아주 가끔 졸게 되는 때면 누군가 머리를 어깨 가장 위쪽으로 옮겨준 것도 같았다. 당혹스러워해도 역시는 역시다. 저는 인간이 좋다. 그 누구도 잊고 싶지가 않으니 더욱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빈손으로 타인의 머리카락을 살살 만지며 로웬은 그런 생각을 했다.

아, ◼ 맞추고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