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
내 삶의 가장 지독한 다정이었다.
마루 위에서 여린 손으로 악기의 현을 매만지던 아이는 문득 저 멀리서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는다. 무표정하던 얼굴에 생기가 돈다, 숨을 크게 들이쉬며 옷매무새를 정리하고는 마루 아래로 가지런히 놓아둔 게타를 신고 소리가 들린 곳으로 빠르게 걷는 것이다. 이처럼 아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 필요한 건 뭘까. 답은 간단하다. 바로 애정이다. 참된 어른의 보호와 관심 말이다. 제 나름의 제대로 정돈했다고 하여도 삐죽 삐쭉 잔머리들이 기어나온 머리칼을 흩날리며 달려가 따스한 타인의 품에 안겨 작금 기적 같은 미소를 띠는 이 아이에게도 그러했다.
“ 스승님! ”
태어나 불합리하게 제 부모에게 제대로 사랑받지는 못했지만, 스승이라 불리는, 아이의 제자이자 양부모나 마찬가지인 사람에게 미래를 받았으니, 고통의 수레바퀴를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삶을 가지게 것이다.
이렇게 어른은 아이를 구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책임의 정점에 서게 된다. 살 길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 고토? 이런, 일어나기 전에 들어오려고 했는데… 언제 일어났니? ”
“ 오늘은 정말 나가시는 시간에 맞춰 일어나려고 했는데… 혼자 나가시면 어떡해요! 제가 곁에 없는데 갑자기 쓰러지시면… ”
의문을 가지고 느릿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는 여리다. 제 품에 안긴 아이의 머리칼을 정돈하듯 쓸어주면서 애정 어린 눈으로 스승이 웃었다. 태생적으로 유약한 몸을 타고난 그는 자신의 유약함을 애써 외면하기 위해 이처럼 종종 홀로 산책하러 나가기도 했다만 이제는 홀로 산책하던 것이 적잖게 쓸쓸하던 참이다. 평생 혼자인 것이 마음 편하다고 생각할 때는 언제고, 나이를 먹으니 많은 것이 변했다. 그는 그것이 제법 두려워졌지만, 아이의 앞에서 단연코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다. 제 의지로 데려온 아이이니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서.
“ 그래그래, 알았다. 네가 없으니 울적하더구나. 그럼 내일부터는 홀로 하는 새벽 산책은 없애고 함께 밤 산책을 갈까? ”
“ 음, 밤에 산길로 다니는 게 더 위험한 거 같기는 한데… ”
따뜻한 품에서 빠져나오며 고토라 불린 아이는 중얼거리더니만 익숙하게 스승이 옆에 내려둔 비닐봉지를 들었다. 구멍이 송송 뚫린 봉투의 틈으로 보건대, 스승은 오는 길에 장을 봐 온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봉투의 구멍이 더 커지기 전에 드는 방식을 바꿔 품에 안았다. 기껏 사왔는데 못 쓰게 되면 아까우니까.
“ … 그래도 좋아요! 제가 지켜 드릴 수 있잖아요. 전 스승님이 세상에서 가장 좋단 말이에요. ”
스승은 잠시 고토를 바라보았다. 사랑이라 인정하기 싫어 그저 정으로 명명했던 나날들이 그의 속내로 스쳐 갔다. 재능을 가졌음에도 그 멍청한 집안에서 없이 자랄 것이 가여워 재능을 꽃피울 수 있도록만 봐주겠다고 데려온 것이 벌써 일 년이 지났다. 언제든 제가 손을 놓아도 아이는 돌아갈 곳이 있으니 잘 지낼 것이라 여겼다만, 글쎄. 생각해보면 반대로 이제는 저 스스로 잘 지낼 수 없을지도 몰랐다. 아이란 것은 제 배로 낳은 아이가 아님에도 멋대로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일까. 고토가 삶에 들어온 순간부터 그는 계속하여 이룰 수 없는 후회를 반복했다. 지금에라도 정을 떼기에 늦지 않았으니, 아이와 멀어지자는 후회를. 동시에 어른으로서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 속에서 결국 어떠한 저항도 못하고 발버둥쳤다. 애증이었다.
“ 고토… 난 괜찮아. 그러니 너도 너 자신을 가장 사랑하렴. 나 역시도 나를 가장 사랑한단다. ”
결국 책임감을 떨쳐내고 아이를 외면할 수 없으니 야비하게 그런 말이나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토. 그 이름마저도 저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라. 분명 타인도 그러하리라고. 스승은 아이가 제가 만드는 데 필요한 이들에게 사랑받는 삶을 살길 바랐다. 그러니 저 같은 인간은 그저 저 사랑스러운 아이의 마음 한구석만 차지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저 역시도 그 정도의 사랑만 주고 싶었으니까. 오만스럽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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