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풍

해풍 (1)

빵심당 by 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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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족용·불친절, 타싸 동시 작성

블랙 혼마루·도검남사, 정화사니와, 혼마루 인계 등 동인설정 다수

오리지널 설정 다수, 타장르 언급 다수

주×주(창작사니와×창작사니와) 포함, 검×주 성향 있음

무츠노카미 요시유키, 이치몬지파 중심

번역체 다수, 시간선 오락가락, 인게임 내 이벤트 일정을 편의에 맞게 조작한 부분이 있음

전반적으로 글 분위기가 가볍지 않음(……)

그러나 목표는 이치몬지 도파 중심 혼마루 개그물이 맞음

해당 글은 다음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은 내용으로 이하의 오마쥬 및 이로 인한 작품의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있습니다.

감상 예정이 있으실 경우 열람에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레베카(대프니 듀 모리에 원작) - 영화(알프레드 히치콕, 1970), 뮤지컬(EMK 엔터테이먼트, 2013~2024)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스튜디오 지브리, 2001) 원령공주(스튜디오 지브리, 1997)

1.

주인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는다.

원래도 현세로 외출했을 때는 성실하게 연락하는 사람은 아니었긴 하다만, 지금은 사안이 다르다.

주인이 시간 정부의 호출을 받고 재액에 물든 본성을 정화하러 떠난 지 몇 달이 지났는지 모른다. 간간히 본성을 확인하고 가는 담당자를 잡고 물어봐도 ‘알려줄 수 없다’, ‘확인하기가 어렵다’, ‘말씀드리기가 곤란하다’ 외의 답변은 나오지 않았다. 형태야 매번 달라지기는 했다만 결국 주인의 소재는 불명이라는 점에서 벗어나질 않는 것이다. 주인의 초기도인 네가 모르면 누가 알겠냐고 드잡이질을 하던 것도 여러 번, 간신히 맞이한 주인이 사라졌다며 우울해하는 남사들을 추스르던 건 몇 번째인지 횟수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다. 주인이 없는 본성은 터지기 직전의 시한폭탄이었고 그것을 터지지 않게 관리하는 것에도 지친 무츠노카미 요시유키가 기어코 정부로 찾아가야하나, 라는 생각까지 하던 차. 다행이라고 하면 다행일까, 주인의 소식을 가지고 담당자가 도착했다.

이 날은 유독 본성이 조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기적으로 본성을 확인하고 가는 정부 직원이 도착하는 날이어서였는지, 그도 아니면 전날 이미 드잡이질을 거하게 한 판 하고 드러누워버려서였는지, 본성은 근래 들어 가장 조용했다. 무츠노카미는 본성의 툇마루에 앉아 간만의 평화를 누리면서도 어쩐지 이 평화가 거슬리게 느껴졌다. 주인의 취향에 맞춰 9월 즈음의 가을로 고정되어 있는 본성은 항상 선선한 바람이 불었고, 칼의 취향도 주인의 취향을 따라가는 것인지 무츠노카미도 그것을 꽤나 마음에 들어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이상하게도 그 바람이 계속 거슬리는 것이다. 바람이 불면 통장수가 돈을 번다고 했던가.

무츠노카미는 남풍은 재수가 좋지 않고, 서풍은 길하다 같은 미신을 크게 믿는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남풍을 꺼리는 것은 날이 궂기 전의 징조이고, 서풍이 부는 다음 날은 날씨가 맑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남사였다. 사카모토 료마가 휩쓸었던 막부 말기의 시대엔 바람이 부는 방향 따위가 가질만한 신비가 많이 남아있지 않았으므로 그때 그 시절 사카모토 료마의 칼이었던 무츠노카미 요시유키 역시 고작 바람이 부는 방향에 마음이 수런거리지 않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언제나 한 방향으로만 부는 이 본성에서의 고정된 계절 바람따위에는 더더욱.

그러나 동시에 무츠노카미 요시유키는 그 사카모토 료마의 칼이다. 무츠노카미 요시유키는 시대의 바람을 안다. 무언가 크게 바뀌기 전의, 폭풍전야같은 고요함과 그 속의 한 줄기 조용한 바람을 안다……. 고작 바람이 부는 것 하나만으로 통장수가 돈을 벌고, 소란 떨지말라는 말 뒤에 이어지는 죽음 같은 것도. 무츠노카미 요시유키는 어째서 지금 부는 이 바람이 그러한 바람처럼 느껴지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차라리 까치가 울었다면 주인이 돌아오는 것인지 들뜰 여유라도 있겠다만, 어디서 부는 건지 방향조차 모르는 바람에 무엇을 느껴야할지는 아무리 인간의 마음을 배워도 그건 모르는 것이다. 무츠노카미가 호좌한 채 턱을 괴고 고민하고 있으면, 그 뒤로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가 다가왔다.

「무츠노카미 군, 혹시 지금 바쁠까?」

뻔히 시간을 죽이고 있는 모양새에도 조심스럽게 묻는 것이 이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라는 칼의 특징이다.

「아녀, 몸 굳지 않으려면 슬슬 움직여야지. 무슨 일이여?」

「그게 말이지…….」

무츠노카미는 엇차, 하고 소리를 내며 튀어오르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는 난처하다는 듯 잠시 말을 고르다가 대답했다.

「으음, 역시 말로 하는 것보다는 직접 가서 보는 게 낫겠지. 지금 설명하기엔 영 멋없는 설명이 나올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무슨 일이길래 그려?」

「일단은 게이트 쪽으로 가줄 수 있겠어? 담당자 씨 일행이 온 것 같은데……. 무츠노카미 군이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고집을 피워서 말이야. 아무래도 직접 가줘야 할 것 같은데…….」

「얼굴만 보고 쌩하니 내빼던 그짝들이 웬일로? 그전에 원래 오는 날은 다른 날이었던 것 같은디.」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자세한 건 나도 아직 듣지 못했거든.」

「암튼 그려. 금방 옷만 갈아입고 갈텡께 쫌만 기다리라고 혀.」

「그래, 고마워, 무츠노카미 군.」

「뭘 이런 것 가지고 써야.」

사양하는 말에도 쇼쿠다이키리는 그냥 웃으며 돌아갈 뿐이었다. 무츠노카미 역시 시원하게 대답했다지만, 마음 속의 수런거림이 사라지질 않는다. 무츠노카미를 포함한 도검남사들나 이 본성의 담당자나 서로의 옷차림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게 될 정도로 낯을 익혔으므로 지금 입고 있는 내번복을 입고 마중을 나가도 되겠다만, 굳이 정복으로 갈아입고 나가고 하겠다는 것도 그런 마음의 수런거림을 가라앉히기 위한 무의식적인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2.

무츠노카미가 정복으로 갈아입고 도착한 게이트 앞에는 계속 봐온 익숙한 담당자의 얼굴이 하나 있었고, 그 뒤로 처음 보는 체구의 인간이 서 있었다. 무츠노카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기울였고, 그건 다른 남사들도 마찬가지인지 차마 게이트 앞에서 웅성거리지는 못하고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을 곳에서 이곳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니 궁금증을 느끼는 것은 저만이 아닌 듯했다. 무츠노카미는 잠시 그것을 보다가도 금방 정신을 차리고 본인을 기다리는 담당자 앞에 가서 말을 걸었다.

「오랜만이구만, 담당자 나리. 내를 찾았다고 들었는디, 무슨 일이여?」

「오랜만입니다, 무츠노카미 요시유키 님. 전해드려야 하는 소식이 있어서요. 이 혼마루의 사니와 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만…….」

인사치레에 뒤이은 담당자의 말에 무츠노카미는 슬쩍 침을 삼켰다. 바람이 목을 스치자 싸한 느낌이 드는 것이 땀이 나고 있었던 것 같다. 주인이 거론되자 이곳에 집중하던 시선들이 날카롭게 변한 것 정도는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본성은 순식간에 고요해졌고, 담당자도 그걸 눈치챈 것인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무츠노카미가 그것을 말리지 않은 이유는 그간의 괘씸함에서 이어진 약간의 심술 비슷한 것이었을 터다. 위압감에 기가 눌린 것인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땀을 흘리던 담당자에게 손수건이 건네졌다. 담당자와 함께 왔다던 그 인간이 내민 것이다. 땀을 닦은 담당자가 힘겹게 다시 말을 꺼냈다.

「사니와 님의 소재는 지난 파견된 혼마루로 파악되었고, 소식도 제대로 이어졌습니다. 무츠노카미 요시유키 님께서 잘 지내시고 계셔서 다행이네요, 다른 남사분들도 그렇고요.」

땀을 닦는 손이 덜덜 떨리는 데에도 하하 웃으며 이쪽의 신변을 얘기하는 것을 보면 이 인간도 그닥 만만하지 않은 인간이다만, 주인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말을 빙빙 돌려가며 할 여유가 있는 칼이라는 것은 무츠노카미 요시유키를 포함해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가 뭐 안좋게 지낼 일이 있간? 그래서, 주인은 만났다면서 어디 간겨?」

「그건…….」

날카로운 신의 위압감 앞에서 담당자가 말을 더듬고 있으면 손 하나가 나와 제 뒤로 그것을 끌어당겼다. 넘어지기 직전까지 끌려 「어어,」 하고 홱 넘어간 담당자의 모습에 분위기가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고, 그 앞으로 나오는 것은 깡마른 인간이었다.

「그만하면 됐어, 여기서부턴 내가 설명하는게 낫겠네요.」

장갑때문에 눈치채지 못한 것이지만, 담당자의 앞으로 치고 나온 인간은 깡마른 여자였다. 칼날을 가져다대면 칼날이 살가죽을 지나 금방 뼈에 닿아 베는 맛은 몇몇 칼을 제외하면 못 느끼겠다 생각하게 될 정도로 마른 인간은 그 모습과는 다르게 꽤 거친 인상이었다. 헤이안을 비롯해 카센 카네사다라던지,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처럼 외양에 신경을 쓰는 칼이라면 앓는 소리를 내며 봉두난발로 오해했을지도 모르는 짧은 곱슬머리, 그리고 그런 머리카락에 가려 반쪽밖에 보이지 않는 얼굴이다만, 내려간 눈치고는 얼굴에 서늘함이 감돌고 있었다. 그럼에도 정제되지 않은 거칠고 사나운 인상을 받는 것은 이 인간을 마주하고서부터 끈질기게 부는 바람때문인가.

깡마른 탓에 헐렁한 정장의 소매를 담당자의 앞으로 뻗어 뒤로 치운 뒤, 그 앞으로 나온 인간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무츠노카미 요시유키. 이 본성을 새롭게 맡게 될 심신자입니다. 실제로 이 본성에서 업무를 시작하게 되는 건 긴급 연수가 끝나는 뒤의 일이라 꽤 후의 일이 되겠습니다만……. 미리 인사드리죠.」

허?

「전임 분의 사정으로 내가 이 본성을 인계 받게 되었습니다.」

얼토당토 않는 소리에 어이없는 표정을 하면, 떠오른 것을 입 밖으로도 내뱉은 것인지 곧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이게 뭔소리여? 그짝이 제대로 설명햐 봐. 이 혼마루의 주인은 제대로 있을 턴디, 납득 가게 설명하지 않으면 좋은 일이 있으리라곤 장담 못하겠구만. 이 짝이 흉흉한 건 잘 알고 있을 나리가 뭔 일이여?」

「……다나카 씨에게 위협은 그만두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게 츠바를 덜걱거리고 있으면 보통의 인간은 대답하기 어려워지거든요. 뒤에 있는 분들 때문에 더 거칠게 나오는 건 잘 알겠지만 이래서야 본말전도인 거, 아닌가요?」

무츠노카미는 허, 하고 크게 숨을 뱉고는 깡마른 인간의 얼굴을 마주했다. 담당자는 저 뒤의 시선까지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것 같은데, 이 인간은 이미 알고 있던 것도 모자라 태연하게 서서 그런 폭탄을 서슴없이 터트린 건가. 그 담력은 여기 있는 남사들 못지 않은 것이라 칭찬받을 만한 것이었다만, 시기가 안타깝다. 아무리 쾌활하고 시원한 성격의 소유자로 잘 알려진 그 무츠노카미 요시유키마저도 근본은 칼이므로, 주인에 대한 애착은 남다른 것이다. 그것도 그 주인이 직접 고른 칼이라면. 무츠노카미는 칼에서 손을 떼었지만 팔짱을 낀 채 영 못마땅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것을 봤다. 인간 아닌 금색의 눈이 번뜩였다.

「맹랑하구만, 평소 같았으면 싫지는 않았을 모냥이다만 영 시기가 나뻐. 방금 한 말의 질도 그렇고 말여. 제대로 설명하는 게 좋겠는디.」

「다나카 씨를 위협하지만 않았어도 설명을 할 예정이었는데, 성격이 급하네요.」

「그짝은 빼놓고 말하는 겨?」

「두려워하는 걸로 보이나요?」

「그렇지는 않지.」

아까의 그 맹랑한 대답은 겁먹어서 나오는 순간의 용기 같은 건 확실히 아니어보였다만, 그것을 제쳐놓고도 겁이 없다. 예절을 차리는 척하는 엉망진창의 존대라던가, 시간이 지널수록 흉흉해지는 제 뒤의 기운에 담당자라는 인간은 곧 눈을 까뒤집을 기세임에도 불구하고, 등 뒤에 숨긴 채 꼿꼿하게 서 눈을 마주보고 대답하는 모습이라던가, 평범한 인간이라기엔 배포가 크다. 그것에 마음이 동한 건지 무츠노카미가 호오, 하고 얼굴을 훑어본다. 성마른 낯을 한 인간은 그 얼굴처럼 뾰족한 투로 대답했다. 다만 아무도 그 말투를 지적하지 않은 것은, 담당자라는 인간은 신들이 쏘아대는 위압 사이에서 자신을 추스르는 것만으로도 힘들었기 때문이고, 무츠노카미 요시유키에겐 뒤이어 떨어진 소식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본성의 심신자, 그러니까 전임 분께서는 순직하셨습니다. 며칠 전 49제가 끝났고, 공증된 유언에 따라 적법한 절차를 거쳐 시간 정부와의 계약상의 이 본성의 인계도 완료되었습니다. 다만 기본적인 루트로 심신자로 발탁된 것이 아닌지라, 연수를 받아야하므로 실제 업무에 투입되는 것은 한참 뒤의 일이 됩니다. 설명은 이상,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라도?」

「……주인이 죽었다고.」

「입관 뒤 화장까지 마쳐 납골당에 수탁한 인간을 보통 살았다고 치진 않으니까요. 뭐, 가끔은 혼백이 남아 산 것과 구분할 수 없게되기도 한다지만, 전임 분의 케이스는 그런 것과 확실히 거리가 머네요.」

「아까도 말했지만 잘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좋을겨, 진짜로 주인이 죽은 거여?」

「그럼 살아있다고 말할까요? 죽은 것을 살아있다고 말하는 일만큼 좋은 일도 없을 텐데.」

다시 말하지만 누구처럼 삐딱하게 쏘아대는 말투에도 불구하고 무츠노카미 요시유키에게는 그런 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뒤에서 기척을 숨기는 것도 잊고 웅성거리는 저들도 비슷한 처지일 것이다.

주인이 죽었다.

본인들이 지킬 수도, 볼 수도 없는 곳에서 죽어서, 그 시체를 추스르기도 전에 불에 타 세상에서 사라진 것이다. 무츠노카미 요시유키는 분명 이런 날을 각오하고 있었던 것 같지만, 직접 피부에 와닿는 것은 전혀 다른 느낌이라. 얼빠진 상태로 한참이 지난 건지 담당자가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나와 그를 물렸다.

「감사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다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건 제 담당이니까요. 무츠노카미 요시유키 님?」

「그려.」

「사니와 님이 돌아가신 혼마루의 경우 해체되는 것이 보통입니다만…, 이번의 경우 전임께서 남기신 의지가 확고하셔서요. 저희 입장에서도 유지되는 것이 불이익은 아닌지라 여기 계신 예비 사니와 님께 인계해드리기로 했습니다. 여기까진 이해하셨나요?」

무츠노카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검남사님들께서는 다른 혼마루로 옮기시거나, 본성과 함께 이쪽의 사니와 님께 인도되어 신변을 맡기실 수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어느 쪽이든 원하시는 방향으로 가실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드릴 예정이니 신변의 문제는 걱정하실 필요 없으십니다.」

「……주인은 진짜 죽은겨?」

「……예. 저희로서도 마음이 아픈 일입니다만, 23세기의 기술력으로도 죽은 사람은 살릴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구만…….」

「늦었지만 애도를 표합니다, 무츠노카미 요시유키 님, 그리고 다른 도검남사분들께도.」

「됐어야, 그짝들은 이미 주인의 장례식에서 많이도 고개 숙였을 테니께.」

무츠노카미가 손을 내젓자 고개를 숙인 담당자가 드디어 얼굴을 든다. 이렇게까지 확인사살을 당하면 이쪽도 독기가 빠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대신 무츠노카미는 담당자가 애써 말하지 않으려 했던 것을 입에 올렸다.

「그래서, 둘다 선택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겨?」

「그건…….」

담당자가 대답을 망설였다. 대신 대답한 것은 뒤에 서서 이곳을 빤히 쳐다보던 쪽이었다.

「도해합니다.」

서슴없이 딱 잘라 대답하는 모습에 오히려 당황하는 것은 담당자와 무츠노카미였다.

「도해가 뭔지 제대로 알고 말하는 겨?」

검 파괴를 포함한 도검남사들의 사망방식 중 하나.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아닌가요?」

「사니와 씨…,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시는 건…….」

「돌려말한다고 달라지지는 않죠, 다나카 씨. 그리고 아직 연수가 끝나지 않았으니 정식으로 심신자가 된 건 아닙니다.」

「허어.」

「대신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무츠노카미 요시유키 님……. 사니와 씨께서는 꽤 직설적이신 편이시라서요…….」

「직설적이라고 하기엔 너무 유한 표현인디.」

차라리 삐딱하다고 설명하는 게 그나마 낫겠구만. 성격과 말버릇이 뾰족하기로 유명한 소우자 사몬지를 가져다 놓아도 멀쩡하게 대거리를 한 판 하고도 남을 성격이다. 무츠노카미는 어이가 없어진 나머지 맥이 탁 풀렸다.

「설득할 생각은 없고?」

「전임 분을 따라가겠다는 데 내가 말려야 할 이유가 있나요? 물론 저도 기존에 있던 도검남사 분들이 남는 쪽을 선호하긴 합니다. 인계되는 본성의 장점은 임무에 익숙한 남사들이 많고, 덕분에 기존의 체계가 잡혀있어서 번거롭게 새로 맨땅에서 시작할 필요가 없다는 거니까요. 스타트업은 질색이라서.」

「그런 거라면 우리헌티 남아달라고 해야 하는 거 아녀? 그렇게 말하면 주인 뒤를 따라갈 칼들이 한둘이 아닐 턴디. 어쩌면 전원일지도 모르고.」

「그러면 전원 도해하고 맨땅에서 시작할 수밖에요.」

「이것 참…….」

무츠노카미는 턱에 손을 올린 채 태연하게 대답하는 사니와를 바라보았다. 쉽지 않은 성격이로구만. 돌아가고나서 길길이 날뛸 녀석들이 눈에 뻔히 보인다. 지금이야 초기도인 자신을 존중해서 뒤에서 이만 갈고 있는 것 같다만, 담당자가 떠나면 바로 본색을 드러낼 터다. 수습할 생각에 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난감하다는 표정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사니와가 될 사람이 말을 이었다.

「연수가 끝나기까지는 한 달. 그동안 본성은 이전에 전임께서 부재하셨던 때와 같이 돌아갑니다. 정식으로 심신자가 되기 전까지는 해당 본성에 간섭하지 않을 예정이니 의견은 각자 내서 잘 취합해주시길 바라요.」

「사니와 씨…, 제발 말씀을…….」

신경도 쓰지 않는 낯에 담당자가 골치아프다는 듯 이쪽을 돌아보았다.

「남사님들께서도 탐탁치 않으시리라는 것은 압니다만……. 가능한 남아주시는 쪽을 고려해주셨으면 합니다. 전임 사니와께서는 유언을 제외하고는 따로 남기신 것이 없어서…….」

「그렇게 납작 빌지 않아도 된다니까요, 다나카 씨. 어차피 남게 될 텐데.」

확신에 가까운, 아니. 저것은 확신이다. 그리고 무츠노카미 요시유키 역시 본능적으로 그 말에 동의했다. 자신을 포함해 이 본성의 남사들 중 그 누구도 도해를 요청하지 않을 것이다.

「사니와 씨…….」

안쓰러운 모습이다.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매달리는 모습을 보며, 저 담당자는 주인한테도 그러더니만 이쪽의 새로운 사니와에게도 잡혀 지내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암튼 잘 알겠구먼. 이짝은 내가 알아서 잘 해볼텡께. 어여 들어가 봐. 슬슬 못 견디고 뛰쳐나올 녀석들이 있는 것 같으니 말여.」

「네, 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무츠노카미 요시유키 님. 다시 전해드려야 하는 소식이 생기면 말씀드리러 오겠습니다. 그럼…….」

「그런디 말여.」

돌아가려는 뒤를 잡는 무츠노카미의 말에 담당자의 몸이 튀었다. 영 심약한 사람이여. 무츠노카미는 그런 생각을 하며 마지막으로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여기서 더 잡아놓으면 슬슬 감당하기 버거울 것을 안다만, 물어보지 않고는 못 버티는 것이었다.

「주인은, 보러 갈 수는 없나?」

「그게 말이죠…….」

「없어.」

단호한 낯이다. 어설픈 존대도 그만둔 채 딱 잘라 대답하며, 돌아가려던 몸을 세워 무츠노카미를 똑바로 마주하고 말한 것이다.

「시간 정부의 납골당은 도검남사들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으니까.」

「……그렇구만. 뎠어, 가보도록 혀.」

아무리 인간의 몸을 가지고, 사람의 마음을 배워도 인간과 츠쿠모가미의 경계는 넘을 수 없다. 무츠노카미 요시유키는 자신이 몸을 가진 것에 한 번도 아쉬움을 느껴본 적이 없으나, 지금은 차라리 칼이었던 때가 그리워졌다. 칼로 남았다면 그를 패용한 인간을 따라 들어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니. 주인과 함께 시간소행군을 몇십씩 베어넘기고, 타타리가미를 몇 자루고 부러뜨린 무츠노카미 요시유키임에도 불구하고 주인의 유해조차 마주할 수 없는 게 도검남사의 처지였다. 오미야에서도 칼을 막지 못했으면 못했지, 마지막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는데.

사니와가 그런 무츠노카미 요시유키의 낯을 바라보았다. 무츠노카미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미묘하게 맞지 않는 것이, 저를 보는 줄 알았더니만 제 뒤로 이 본성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쏘아붙일 대로 쏘아붙인 뒤임에도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 것인지 성마른 낯을 보며 무츠노카미는 소금의 짠내를 맡는다. 말없이 본성을 바라보는 사니와와 그것을 지켜보는 무츠노카미 요시유키 사이에 바람이 불었다. 무츠노카미 요시유키는 그제서야 아까부터 불던 바람에 섞인 냄새를 알아챘다. 소금기가 섞인, 낮에 육지를 향해 부는 서늘한 바람.

해풍이군.

그러나 신역에는 바다가 존재하지 않으니 그렇다면 이 냄새의 정체는 외부인이 몰고 온 바람의 냄새일 것이다······.

그가 아는 새 시대는 바다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럼 이것도 새 시대의 징조인가······.

게이트 조작을 끝낸 담당자가 보채는 소리에 사니와가 본성을 훑어보던 것을 멈추고 몸을 돌려 걸어갔다. 인사따윈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츠노카미 요시유키는 그 등을 꽤나 오랫동안 지켜보고 있었다. 어쩌면 무츠노카미 요시유키는 확신에 찬 대답을 하는 모습에서 본능적으로 느꼈을지도 모른다. 칼이었던 시절 그의 주인이었던 사카모토 료마를 닮아 무츠노카미 요시유키 역시 새 시대의 바람을 눈치채는 것에는 능숙했으므로. 이 깡마르고 성마른 낯을 한 인간이 자신을 거슬리게 하던 바람의 주인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바람이 이 본성을 뒤집어 새로운 곳으로 데려갈 것이라는 걸. 사니와의 성마른 시선은 사나운 성질이 아니라 새로이 데려가도 될지 재보는 경계의 시선이었다는 것까지.

단편적인 정보들이 순간 하나로 정리되어 무츠노카미 요시유키의 머리에 본능적으로 꽂혔다. 담당자가 떠나고 닫힌 게이트를 보고서야 무츠노카미 요시유키는 사니와의 본성을 눈치챈 것이다. 해풍을 닮은 그와 주인을 잃고 남겨진 자신들. 무츠노카미 요시유키와 그들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이 바람에 그들은 순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대를, 흐름을 거스르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좋은 생각이 아니었으므로.

다만 문이 닫히자마자 무시무시한 낯으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저들을 수습해 이 흐름을 받아들이게 하려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리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사쓰마-삿쵸 동맹을 맺던 료마도 이렇게까지 난감하지는 않았으리라.

내가 도장 고를 때 대포를 찾긴 했지만 말여……. 이런 어마무시한 폭탄을 찾은 건 아니었는디…….

이쪽으로 다가오는 면면들을 보며 무츠노카미는 예전 자신의 말버릇을 살짝 반성하게 된 것은 무츠노카미 요시유키만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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