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oating like a Flirting
더지아스 집밥 현대 AU
* 이야드(가내더지) X 아스타리온 커플링.
* 이야드는 드래곤본이 아닌, 인간형태의 모습입니다.
이야드는 생각했다. 아, 이건 정말 최악의 플러팅이라고.
그 사람에게 내 첫 인상은 어땠을까? 결코, 그 누구에게도 들지 않았던 생각이기에 또한 다루기 당혹스러운 생각이었다. 평생을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았는데, 갑자기 이런 법이 어디있어! 딱히 들을 이를 상정하지 않았기에 대답 또한 없을 불평을 한 바탕 맘 속으로 쏟아내고 나니, 이제서야 현실이 자각되는 느낌이었다. 후, 하고 손에 더운 입김을 내쉬며 점점 추워져만 가는 날씨에 손을 녹인 이야드는 결론을 내렸다. 이야드는 남자에게 반했다. 그것도 첫 눈에.
첫 눈에 반하지 않으면 이상할 사람이었다. 자기와 같은 은발에, 붉은 눈이지만 이야드의 이리저리 삐죽빼죽 튀어나온 머리카락과는 달리 머릿결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적당한 볼륨감의 복슬거리는 머리칼은, 첫 눈에 반해서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이런 말 하기에는 많이 곤란했지만, 이야드와 남자의 키차이를 생각해 봤을 때 적당히 쓰다듬기 좋은 위치에 놓여 있기도 했다.
이런 생각까지 하다니 진짜로 정신이 나갔나보네.
붉은 눈은 또 어떻고. 어찌 보면 음험해 보이기까지 하는 자신의 불타는 듯한 눈 색깔과는 달리, 남자의 눈은 적당한 길이의 속눈썹이 만들어낸 그늘에 덮여 차분한 명도로 빛나고 있었다. 이처럼 겉으로 같아 보이는 것마저 차이가 나는데, 척 보아도 차이가 나는 건 얼마나 차이가 날까. 이야드는 민망하게 자신의 점퍼에까지 묻은 기름때를 벅벅 지우려고 시도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며 아예 얼룩이 된 것은 절대로 지워질 리가 없었지만. 그것마저 남자와 자신을 갈라 놓는 결코 지울 수 없는 차이라고 생각하면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는 것 자체가 괜히 기분이 나빠져서 이야드는 킁, 하고 코를 훔쳤다. 지금 이 행동조차 그 남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헛웃음이 나왔지만 말이다. 떳떳하지 않은 행동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카페에서 남자의 커피잔에 쓰인 이름을 몰래 훔쳐 봤던 이야드는 남자의 이름을 몇 번이고 입에서 굴렸다. 아스타리온, 아스타리온.
자동차 아래에서 등받이에 몸을 맡기고선 이미 몇 번씩이나 생각한 이름이지만-그래서 정비소 소장에게 몇 번이나 정신이 딴 데 팔려 있다고 핀잔을 들었다-정비소에서 나와 남자가 자주 오는 카페 안에서 그 이름을 몰래 굴려보자니 약한 멋쩍음이 새록새록 올라왔다. 이러다가 남자가 듣기라도 하면, 완전히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거잖아. 이야드는 잠시 상상해보곤 그런 일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음을 하늘에 감사드렸다. 물론, 페이룬의 만신전은 이미 옛날 이야기가 되었으며 악신은 애들 겁줄 때나 쓰는 이야기가 되었지만.
아스타리온은 늘 해가 진 후에 카페에 들르곤 했다. 아스타리온의 눈길이 이야드에게 향한 적은, 애석하게도 단 한 번이었다. 슬쩍 이야드를 쳐다본 아스타리온은 금새 시선을 거두고 아마도 자신이 해야할 일을 했다. 지금까지 쭉, 계속해서 변하지 않은 습관적인 일과였다. 차라리 그게 낫다고 이야드는 생각했다. 걱정해야할 게 첫인상밖에 없으니까. 물론 좋지는 않겠지만. 아스타리온은 늘 깔끔하게 입고 다니는 편이었다. 저녁인데도 전혀 흐트러지지 않은 차림새며, 몸가짐을 하고 있으니 낮에는 어떤 일을 하는지 살짝 궁금해졌다. 어쩌면 꽃집?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게 큰 육체적인 노동이 필요하지 않은 일이니까. 아니면 아예 일을 하지 않는걸까? 그러면 뭘로 생계를 유지하지? 참, 별 걱정을 다 하네. 자신이 이렇게 쓸 데 없는 걱정을 많이 한다는 것 자체를 이번에 처음으로 깨닫자, 인정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왜냐면 오랫동안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어서 그렇지, 엄연한 사실이니 말이다. 그러니까, 걱정해야할 게 첫인상밖에 없는 지금이 행복한 것이었다.
오늘도 이야드와 일정 거리를 두고 카페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아스타리온은 책을 꺼내 들고 무언가를 꼼꼼히 읽고 있었다. 어떤 법률쪽 책인 것 같긴 한데, 글씨가 워낙에 빽빽해서 확인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때, 아스타리온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수줍게 홍조로 무르익은 얼굴을 하고선 아스타리온에게 쪽지 한 장을 건네주며 자신이 디저트라도 사겠다고 말했다. 허, 그래. 아스타리온같은 남자를 그냥 내버려두는 세상은 없을 것이다. 왜냐면 그 세상은 어딘가 잘못된 세상일테니까. 아스타리온은 그러나 이런 일에 익숙한 듯, 능숙히 자신에게 작업을 걸어오는 사람을 거절하며 제 몫의 커피를 홀짝였다. 거절당한 사람도 그래, 찔러나 봤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고 말하는 듯 자리로 미련없이 돌아갔다. 아마 저게 내 미래의 모습이 되겠지. 이야드는 생각했다. 내가 저 사람에 비해 특출난 점이 뭐가 있다고. 무식하게 힘 세고 덩치 큰 거? 상대쪽이 질색하면서 면박이나 안 주면 다행일 것이다. 이야드는 오늘도 또 맘을 접었다. 내일은 내일의 새로운 맘이 피어날 줄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랬다.
결론적으로 아스타리온은 꽃집을 운영하고 있지 않았다. 적어도 이 근처에서는. 온갖 꽃집을 돌아다니며 적당한 꽃을 찾느라 시간을 보낸 이야드는 자신이 고르고 고른 꽃으로 만든 꽃다발을 내려다 보았다. 옛날에는 발더스 게이트라고 불리던 곳의 사방에서 자생하는 꽃이었다. 이름은 꽃집 주인이 말 해주었는데 그새 잊어버렸다. 꽃 이름을 외우는 게 취미도 아니었고, 어차피 이건 곧 사장되어 우스갯소리가 될 아이디어였기에 굳이 신경쓰지 않았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도전이라는 말을 쓸 수 있는가? 적어도 관계를 맺는 데 있어 유연한 사람은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기에 이야드는 다시 자신이 없어졌다. 그래도 해 보고 후회하는 게 낫겠지. 세상에서 제일 비루한 도전을 외치곤, 이야드는 숨을 훅 들이 쉬며 카페로 들어갔다.
늘 있던 그 자리에 그가 오늘도 앉아 있었다. 늘 그랬지만, 오늘은 특히 전에 없이 완벽했다. 조금 뒤 그에게 자신이라는 오점이 하나 생긴다고 생각하니 죄책감마저 들 정도였다. 이야드는 꿀꺽, 하며 마른 침을 삼켰다. 당연히 갈증 해소엔 도움이 하나도 되지 않았다. 이 쯤에서 그만둘까, 싶다가도 뭔가에 홀린듯이 다가가는 발걸음은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스타리온이 위를, 이야드를 올려다봤다. 2~3초가량 서로 쳐다만 보는 게 어색해졌을 무렵, 이야드는 더 이상 질질 끌게 된다면 어떤 성과도 없이 자신은 그저 뒤돌아서 카페를 떠나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직감하고 따듯한 커피와 꽃다발을 내밀면서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한 마디를 건넸다.
“따듯하세…요….”
“응?”
목소리도 좋네.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무슨 말을 했지? 이야드는 생각했다. 아, 이건 정말 최악의 플러팅이라고. 따듯하세요가 뭐야? 그럼 지금은 따듯하지 않다는 얘기인가? 아니, 애초에 처음 만났을 때 누가 이런 말을 하고 있어? 이해가 안 됐다. 자기가 한 말인데도 그랬다. 아스타리온도 이해가 되질 않겠지. 남자의 입에서 쏟아질 비웃음과, 거절과… 뭐 그런 비슷한 것들을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은 이야드는 아직도 그런 것들이 제게 쏟아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아해하며 눈을 다시 떴다. 아스타리온은 꽃을 찬찬히 구경하고 있었다.
“움벨라툼 오니소갈룸이구나. 사막의 별이지.”
잠깐, 이거 어디서. 이야드는 등골에서부터 소름이 천천히 기어 올라오는 것을, 그리고 그것에 대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느꼈다.
“작은 별에게 바치는 사막의 별. 이번에도 이 선택을 한 거야?”
아스타리온의 말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겠으면서도, 전부 다 이해할 수 있었다. 분명히 그들은 이 생각을, 그리고 이 대화를 아주 먼 옛날 언젠가 한 적이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그러나 이 이상 허락된 건 없었다. 그게 못내 안타까워서….
“자기, 울어? 이건 또 다른 선택이네. 맘에 들어.”
이야드는 화들짝 놀라 옷 소매로 눈가를 벅벅 문질러 닦았다. 젠장, 이미 망한 작업이라고 이젠 눈물까지 흘리고 있는거지. 세상에서 제일 추하다. 하지만 이야드도, 아스타리온도 이 눈물에는 그 이상의 것이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야드는 눈 앞의 아스타리온이 신나게 웃어 제껴도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겨우 이 정도로 비웃음을 사고, 조롱당할 사랑이 아님을 둘 다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 넌 이번에도 날 다시 태어나게 하는구나. 늘 내 생몰년을 바꿔 써주고 있어. 참 기대된다니까.”
“이번에도라고 했죠? 우리 만난 적 있나요? 제 쪽을 의식하지 않으셨으면서 이런 표현은, 대체….”
아, 나왔다. ‘우리 만난 적 있나요.’ 작업을 걸 때 절대로 쓰면 안 되는 문장 중 하나였으나, 이번에는 이야드쪽에서 먼저 필요성을 느꼈다. 지금 물어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조금의 실마리라도 잡아야했다. 아스타리온을 잡아야했다.
“자기, 늘 네 쪽을 의식하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의식적으로 무시하려면 늘 그 쪽을 신경쓰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잖아. 이제 알겠어?”
아? 이야드는 고장난 자동차처럼-정비공의 어휘력 부족이었다. 망할…-그 자리에 그저 멍청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아스타리온이 나를? 늘 신경쓰고 있었다고? 내가 아스타리온을 보는 동안 아스타리온도 날 보고 있었다고? 뇌에 과부하까지 오는 정보값에 이야드는 아스타리온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것까지 그저 내려다보고 있을 수밖에는 없었다.
“자, 가자. 널 기다리느라고 얼마나 지루했는지 알아? 이 카페도 이젠 지긋지긋해.”
아스타리온은 이야드의 손을 잡았다. 살짝 서늘한 손이 이야드의 온기가 서서히 옮아 붙어 따듯해지고 있었다. 아스타리온은 장난스레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래, 따듯하시네. 언제나 그랬지. 네 덕분에.”
“…그 얘기 그만 하시면 안 될까요.”
“싫어. 이번에는 늘 이걸 되풀이해줄거야.”
여전히 알 수 없는 이야기. 하지만 어느 싸구려 연애 소설이라면 도입부가 이렇게 멍청하고, 또 달콤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이야드는 그 것에 걸어보기로 했다.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이야기를 한 번 더 만들어가겠다고,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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