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인밀레] Round and 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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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에서는 마비노기의 세계관 기반 2차 창작 드림주, 공식과 전혀 관련 없는 스토리 흐름, 개인 창작 설정 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관련 요소에 민감하시다면 열람을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이하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 및 단체,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밝힙니다.
들어가기 전
비이입 / 유로맨틱, 유성애 포함 드림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마비노기 메인스트림 C7 아포칼립스 (~G25) 까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설정
가내 밀레시안의 이름 및 고유 설정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삼하인에만 저승을 갈 수 있다는 구 설정, 불교의 사십구재에서 소재를 따왔습니다.
BGM
해당 곡에서 제목을 따오기도 했습니다.
[베인밀레] Round and round
W. 카베
신원도 알 수 없는 시체가 빼곡히 쌓여 산을 이루었으나, 영원한 안식을 허락받지 못하고 무덤에조차 갇힐 수 없는 격리된 공간, 언젠가의 센 마이 평원 끝자락에서 파괴자― 발로르 베임네크― 를 제 손으로 단죄한 지, 에린의 시간으로 48일이 지났다. 그동안 카르포렘 이르칼라 데아는 수호자가 있는 성소에 들러 ‘천칭이 무너졌다.’ 라는 짤막한 말을 남기고는 그 누구와의 접촉도 없이 자신의 낭만 농장에 틀어박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원래라면 간단히 얼굴을 마주보고 통성명만 한 이도 농장에 들어올 수 있게 조치를 취해두었던 카르포렘은 어느 누구의 방문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팔라라와 이웨카, 라데카가 몇 번이고 움직일 동안, 전혀 물을 주지 않은 농장 바깥의 작물이며 꽃은 강렬한 빛에 죄다 말라 비틀어진 지 오래였다. 그나마 관리하지 못한 티를 내듯 생명력이 보다 끈질긴 잡초가 몇 번 피어올랐으나 거의 사막화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곳에서 차례차례 고개를 숙이고 스러졌다. 매일 아침 꼬박꼬박 물을 끌어다 채웠던 우물은 바닥의 이끼를 드러냈으며, 광맥은 곡괭이로 캐지 않아도 광물을 토해내다 못해 아예 찌꺼기 따위로 막혀 앞으로도 쓰지 못할 것 같았다. 나비가 날아다니고, 새가 울어야 할 법한 생기 넘치는 농장은 그렇게 죽음으로 차례차례 물들었다.
삼하인, 그리고 자신의 생일이 되자마자 방 안으로 들어간 카르포렘이 아무 것도 없이 텅 빈 침대 앞에 수그리고 앉아 알 수 없는 단어를 끊임없이 되풀이했다. 다시 제 손 안에서 흩어지는 생명력과 마나를, 조금씩 희미해지는 것을 부정하며 최대한 그러 모으고, 꼬여 있던 에르그를 풀어내며 안정시킨다. 몇백 번, 아니, 몇천 번이나 그 행위를 반복하며 생기 없이 죽은 눈으로 바싹 마르다 못해 쩍쩍 갈라진 입술을 혀로 축이던 카르포렘은 몇 번이나 느꼈는 지 모를 피 맛을 제 생명력으로 삼아 끊임없이 불태웠다. 그야말로 재가 될 때까지, 계속해서,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듯 허공을 더듬던 그에게서 한없이 공허하고 덧없는 감정들이 메말라 카르포렘을 안에서부터 부수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 짓을 계속해야 할까. 점점 성공 확률은 떨어져만 간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럴 수는 없다. 그야,
반드시 당신을 다시 내 옆에 데려다놓겠다는 말에, 미련 가득하게 고개를 끄덕였잖아.
어쩌면 경련일지도 모르지.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삼키며 카르포렘이 조소했다. 그에게는 이계의 신을 초월할 기회가 언제든지 있었다. 일곱 개에 달하는 재앙은 그를 각성시키기에는 넘치고도 모자랐다. 그럼에도 둑이 터질 듯 말 듯 아슬하던 신호가, 고작 본인의 검에 찔려 사그라드는, 한때 천칭의 한 축으로 파괴자의 좌에 올랐으나 이제는 그 무엇도 아니게 된 이가 내뱉은, 눈부시다는 유언에 반응을 하다니.
그 뒤로 카르포렘은 이계의 신으로서 위상을 떨치던 것도 모자라 원래 세계, 그러니까 에린이 아닌 세계에서 그에게 깃든 신이 명계의 주인으로 살았듯 그를 답습해 죽음을 관장하는 신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붉은 빛과 함께 흩어지는 차가운 손을 붙잡고 그렇게 말했었다. 당신을 다시 볼 거라고, 시간을 돌려 과거를 보는 일 따위 없이, 현재에 당신을 고정해놓을 거라고. 사랑은 엉뚱한 곳에서 피어올랐으며 지독한 곳에서 막을 내려야만 했다. 하지만 카르포렘이 내려가는 커튼을 젖힌다. 다시금 심호흡을 하고, 어딘가에 있을 그의 영혼이라는 추상적인 기억을 끄집어 온다. 생명력을 부여하고, 마나와 에르그를 주입하고, 만들어진 뼈와 신경, 근육, 피부, 머리카락 따위를 구성해낸다.
마지막에 봤던 모습이 본 모습이라더니, 다시 보는 당신은 처음 봤을 때처럼 짧은 머리군요. 그렇게 생각하며 혹시 깨울까 싶기도 했고 말할 힘도 없던 카르포렘이 제 옆에 내려두다시피 했던 이불을 끌어올려 그의 나신 위로 덮어주었다. 솔직히 아래에 시선이 가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은 아니다. 하지만 아튼 시미니에게 대고 맹세하건대, 저건 제 상상력이 만든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저런 흉기다. 저는 몸에 이상이 없는 것만 살폈지 몸의 이런저런 부분까지 손 댈 수 있지도 않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그렇게 이어지던 쓸데없는 상상은 그만두고, 이런 때를 대비한 것은 아니었으나 미리 서툰 실력으로 만들어둔 옷을 그의 머리 맡에 두고 그 옆에 제 머리를 뉘이며 지친 표정을 한 카르포렘의 눈에는 어느 때보다도 생기가 가득했다. 그 사실을 본인도 자각한 듯 소리 없이 웃었다. 아, 죽음의 신이 가장 생기 있는 순간이, 죽일 순간에야 자각한 사랑을 일주일 만에 만난 때라니.
무언가 더 할 생각이 있었던 듯 한데, 카르포렘은 일주일 동안 자지도 못하고 꼬박 밤을 새우던 것을 업보로 받기라도 하듯 까무룩 잠이 들었다. 언뜻 침대 위에 있는 자가 부스럭거리며 일어난 듯도 했지만,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서. 되돌아갈 수가 없어서.
“진짜로군.”
잠시 손을 쥐었다 펴길 반복하며 그답지 않게 얼떨떨한 표정과 어투를 보이고 말하던 것도 잠시, 상황을 파악하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피식 웃음을 터트린 발로르 베임네크, 아니, 이제는 포워르의 전 마왕도 아니고 검은 달의 교단의 간부도 아니니 그저 ‘베인’ 인 자가 고개를 숙여 침대를 베개 삼아 기절하듯이 잠든 카르포렘을 바라보았다. 결국, 정말로 그는 죽음의 신으로서의 힘을 써서 약 49일만에 베인을 살려낸 것이다. 멈추지 않는 심장에서는 계속해서 낯선 박동이 일정하게 울려퍼졌고, 산송장이 아닌 따뜻한 손은 어느새 카르포렘의 머리에 닿았다. 으음,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잠에서 쉬이 깨지 않는 그를 바라보던 베인이 고개를 완전히 숙이고 카르포렘의 앞머리를 손으로 살짝 걷어 말랑한 입술을 이마에 내리눌렀다. 길다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이 이어진 후 뒤로 물러난 베인이 속삭였다.
“많이 애 썼어, 그대. 잠깐은 쉬어도 좋아.”
이제부터는 내가 항상 그대의 권속으로서 곁에 있을 테니. 혹여 제 말에 놀란 카르포렘이 깨기라도 할까 싶어 조금 더 그를 놔두기로 한 베인이 속으로 뒷말을 삼켰다. 왜 금방 깨우지 않았냐며 무어라 할 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이 평화로운 혼자만의 시간을 조금 더 즐기고 싶었다. 그리하여 아주 오랜 고난과 고통 끝에 비로소 구원과 평화가 있나니, 이름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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