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비노기

어릴 적 선생님이 들려주신 옛 신화

NCP

2차 by 두닷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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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종족 밀레시안, G25까지의 스포일러 O.


1.  인간의 대표는 아튼 시미니 앞에서 선언했다. 지금부터 인간은, 에린의 모든 생명체는 박제에서 벗어나 미래를 향해 걸어가겠다고. 엘프와 자이언트의 동의를 얻은-어느 밀레시안은 그저 황당했다. 정령과 요정, 동물과 고르도슈의 의사는 안 중요해? 사실 다난은 밀레시안이라는 종족 전체의 의견도 물어보지 않았다.- 한 마디는 티르 나 노이의 생명체에게 내려진 불완전한 영생을 앗아갔다. 신의 뜻은 소울 스트림의 문을 닫고 모든 신격의 눈을 감겼으며, 이는 에린의 두 수호신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의지였다.

아니... 나는 왜?

파괴자의 존재가 부재한 세계에 두 수호자의 존재는 악영향만 끼칠 테니까요. 당신만큼은 예외적인 존재로 그들의 곁에 남겨두려 했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제가 함께일 테니 외롭지는 않겠군요. 안 그렇습니까, 밀레시안?

난 네가 잠들기 직전에 미래의 누군가와 교감하고 관 뚜껑 걷어찰까 봐 더 걱정되는데...

...

... 

아무튼 그렇게 시간이 흘러 수많은 별이 먼지만을 남긴 채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고, 이종족과 포워르는 어느 부족과 흉포한 짐승으로 해석되며, 마법의 증거는 오로지 이론만이 남았을 때.

그제야 영원한 신화의 시대도 끝나 오로지 인간만의 역사가 펼쳐졌다.

2. 밀레시안은 성소에 울려퍼지던 어느 울음소리를 기억한다. 밀레시안 님, 죄송해요. 톨비쉬 님도... 저는, 저는 그저... ... 기다릴게요. 저 기다릴 수 있어요. 그러니까............ 밀레시안 님, 좋은 꿈 꾸세요. 희미하게 들려오는 눈물 가득한 목소리에 밀레시안은 아튼 시미니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양심도 없는, 이, 구밀복검의 대명사같은 놈. 내가 세계를 몇 번이나 구했는데. 다난이 주신을 닮은 건지, 주신이 다난을 닮은 건지. 알터가 우는데 달래주지도 못하게 하네. 그냥 지금 일어나서 에린의 마지막 밤을 내가 다시 한 번... 내가 방금 무슨 생각을 했지? 그냥 지금... 일어나서?

나 일어났네?

제 몸집보다 큰 관 속에 누워있던 밀레시안이 벌떡 일어났다. 뭐야, 뚜껑은 어딨어. 이마를 박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사라져버린 뚜껑은 찾아야 했다. 기름칠 안 한 기계처럼 뻑뻑해진 고개를 돌리며 관 근처의 바닥에 놓여져 있는 뚜껑을 발견한 밀레시안은 일단 환생이나 한 번 해야겠다고 속으로 꿍얼거렸다. 성소는 눈을 감기 전과 별 다를 바 없는 상태였기에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몇 년 동안 던바튼 광장에서 석상처럼 가만히 서있어도 멀쩡하던 몸이 삐걱거리고 있는 걸 보니 예상 외로 오랜 시간이 흐른 게 분명했다. 밀레시안은 곡소리를 내며 관에서 빠져나왔다. 일단 톨비쉬한테 말하고 나오를 만나러 다녀와야겠다. 음, 나오가 자고 있으면 어쩌지. 소울 스트림의 연결이 이전보다 희미해진 것을 깨달은 밀레시안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밀레시안은 언제나 행동파였으니까.

"톨비쉬, 나 잠깐 환생 좀..."

 밀레시안은 마찬가지로 안 쓴지 오래라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뒤를 돌아 사과 한 알이 달려있을 거대한 나무 아래를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아하, 오늘은 알반 엘베드가 아니라 성소에 없나 보다.

"겠냐? 겠냐고. 이 자식 자다가 어디로 간 거야?!"

3. 관에서 기어나온 밀레시안은 일단 크게 소리쳤다. 톨비쉬, 안 돼! 돌아와! 일단 뭘 하든 안 돼! 개가 시야에서 사라졌는데 묘하게 조용하다면 일단 안 된다고 외쳐야 한다. 너 또 어디서 이상한 짓 하고 있는 거 아니지? 혼자 무슨 사막 한가운데에서 수상한 계획같은 거 짜고있는 건 아니지? 밀레시안은 온갖 부상은 다 당해봐서 아픈게 무섭지는 않았으나 또다시 그 거대한 대검에 찔리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그 날 이후로 대검은 알터에게로 넘어갔다지만... 톨비쉬라면 자연스럽게 기사단 사이에 녹아들어 소유권을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밀레시안의 간절한 외침이 고요한 성소를 가득 메웠으나 톨비쉬는 나타나지 않았다. 깃털 기역 자도. 심지어 바람 조차도! 이계의 신이 성소에서 난동을 피우면 주신의 첫번째 검이 달려와야 하는 거 아냐? 수호자 일 안 해? 저 사과라도 따버려야 나타날 거야? 그렇지만 여전히 성소의 사과는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았고, 톨비쉬가 저를 벌하러 나타날 일도 없었다. 하긴 z축이 없는 세계에서는 사과가 아래로 떨어질 일도 없겠지. 그럼 에린에는 중력이 없는 걸까. 혼란에 빠진 두뇌로 괴상한 생각이나 하던 밀레시안이 한숨을 내쉬며 펫을 소환했다. 일단 성소 밖으로 나가봐야 할 것 같았다.

4. 관심이 필요한 펫을 타고 달려나간 아발론은 관광지였습니다. 

관광지라고.

...

밀레시안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건물 사이의 골목에서 눈을 깜빡였다. 이런 절벽에 어떻게 건물을 세운 거지. 좁은 틈으로 보이는 거리에는 밀레시안이나 입던, 즉 세계관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잔뜩 돌아다니고 있었다. 밀레시안은 아닌 것 같았다. 이유는 타당했다. 날개나 꼬리, 귀 또는 헤일로가 없었다. 지향색에 맞춘 예쁜 무기나 화려한 정령 형상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요즘 다난들 사이에는 밀레시안 룩이 대 유행? 그렇지만 여긴 아발론이었다. 알반 기사단이 아발론에서 저렇게 편한 옷과 묵직한 배낭을 짊어지고 다닐 리가 없을 뿐더러... 애초에 기사단 인원이 이렇게 많다는 걸 밀레시안은 믿을 수 없었다. 너희 비밀 조직이잖아. 여긴 비밀 조직의 성역이잖아. 여기로 선지자들이 못 들어오게 할려고 정말 많은 일이 있었잖아. 밀레시안은 깨달았다. 톨비쉬가 성소에 없던 이유는 이걸 보고 놀라서 뛰쳐나간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주신의 첫번째 검이었어도 기겁하고 네 위로 내 아래로 기사단 전원 집합 때릴듯.

그렇지만 밀레시안은 에린의 수호자이자 알반 기사단의 조력자라는 경력을 쌓으면서도 딱히 신앙심은 갖지 않던 존재였다. 모리안이랑 키홀 사이에서 그렇게 구르다가 마나난이라는 해신까지 만나면 신에 대한 찬미는 무슨 악감정이라도 갖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사실 악감정 조금 있을지도. ... 아무튼 밀레시안에게 신이란 딱히 인생에 도움이 안 되지만 멋진 날개를 뜯어주는 존재였다. 지금 중요한 건 성역이 공공장소로 변한 게 아니라 톨비쉬가 사라졌고 몸은 삐걱거린다는 거였다.

그래, 일단 환생을 하자. 상황 파악을 하려면 튼튼한 육체가 필요했다. 이전처럼 나오가 환생을 시켜줄 지는 모르겠지만, 밀레시안은 어쩐지 나오가 반겨줄 것 같다는 낙관적인 생각을 하며 희미한 연결을 따라가 멀고도 가까운 소울 스트림으로 향했다. 이후 발전한 다난들의 SNS에서 '님들 그거 봄? 아발론 CCTV에 날개 달린 사람 찍혔대. 인증까지 있던데?ㅋㅋ' 같은 포스트가 이슈가 될 줄은 상상도 못하고.

5. 소울 스트림에는 나오가 없었다. 아니 나오 없는 소울 스트림은 팥 없는 붕어빵이나 초코칩 없는 초코칩 쿠키보다 심한 거 아니냐? 소울 스트림의 문이 닫혀 더이상 넘어올 밀레시안도 없으니 소울스트림의 관리자가 존재할 이유도 없긴 했다. 그치만 에린에 남아있을 밀레시안을 생각해줘야 하는 거잖아. 텅 빈 순백의 공간에서 홀로 서있던 밀레시안은 어쩐지 급격하게 찾아온 서러움을 못 참고 소리쳤다.

"밀레시안이 환생은 하게 해줘야 할 거 아냐! 이제 죽으면 나영석으로 부활도 못 하겠네?!"

밀레시안이 쓸모도 없어진 소울 스트림을 메테오 스트라이크로 박살내겠다며 스태프를 치켜들자 구석에서 빛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수상해 보이는 곳은 모조리 조사하던 습성은 아직 살아있던 밀레시안은 느린 발걸음으로 소울 스트림의 바닥을 확인했다. 새하얀 표지에는 <환생에 관하여>라고 적혀있었다. 책을 펼치자 이제 환생 스킬을 사용할 수 있을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스킬은 고마운데 그냥 나오 돌려주면 안 돼? 밀레시안은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여전히 바닷빛의 파란 눈동자는 보이지 않았다.

"...환생이나 해야겠다."

애써 밝게 중얼거린 밀레시안은 환생 스킬을 사용하며 떠오른 생각을 무시하려 노력했다. 그렇지만 생각하지 말자고 자신을 붙잡을 수록 생각이 부풀어 나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으며, 그렇게 밀레시안은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잠든 사이에 사랑하는 많은 것을 잃었을 거라고.

6. 밀레시안은 새로운 시작을 티르 코네일에서 하기로 결정했다. 아발론의 분위기를 보니 다른 지역도 무지막지하게 변했겠지. 울라 대륙 분위기를 보려면 티르 코네일에서 출발하는 게 더 좋을 거 같다는, 모처럼 현명한 선택을 내린 밀레시안은 숲 속의 환생존에서 눈을 떴다.

와, 저 건물 몇 층이길래 여기에서 보이지.

놀랍게도 환생존은 아직도 숲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인간들이 여기까지 발견하지는 못했나보지? 그러나 울창한 나무 너머로 보이는 고층 빌딩은 이전의 티르 코네일을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한 모습이었다. 에일레흐 왕국 땅이 아니라 개발도 마을 주민들이 주축이었을 텐데. 이게 말이 되나. 밀레시안에겐 눈 감기 전에 마지막으로 확인한 티르 코네일의 풍경이 아직도 선명했다. 그러나 이제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자들은 과연 누가 있을까?

현실감이 전혀 들지 않는 도시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 내려온 밀레시안은 아스팔트와 보도블럭이 깔려 있는 거리를 바라보았다. 길에는 일정 거리마다 가로등은 물론 상가 건물이 가득해서 밤에도 전혀 어둡지 않을 것 같았다. 병아리와 닭, 여우 한 마리도 찾아볼 수 없는 이 땅이 티르 코네일임을 증명하는 건 변함없이 흐르는 아델리아 천 뿐이었다. 알리사, 너 이제 큰일났다. 풍차가 없어졌으니까 이제 골드도 못 받겠네. 꼴 좋다, 하하...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던 에린은 불완전한 낙원에서 벗어나 인간들의 세상이 되었다. 밀레시안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세상이면 에린을 사랑하던 다른 밀레시안도 전부 떠나버렸겠다고.

그 모든 밤과 재앙을 이겨낸 밀레시안은 다시 이방인이 되었다.

아, 당장 성소에 돌아가야지. 아무도 없는 관 속에 처박히고 싶어진 밀레시안은 어느 순간부터 느껴진 인기척에 뒤를 돌았다. 등 뒤에서 옅은 회색 수염과 머리카락을 가진 노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익숙한 노인의 얼굴에는 여전히 세월의 흔적인 굵은 주름이 가득했으나 그 눈은 예나 지금이나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지금의 에린은 밀레시안이 아는 에린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째서?

"던컨...?"


차차 추가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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