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메시지

1화

꿈의 시작(1)

※ 이 글은 마비노기 팬픽션으로 메인스트림 등의 마비노기 컨텐츠를 참고하여 쓰여졌습니다. 공식 설정 개변이 있습니다.

※ 오래된 게임이고, 제가 그만큼 오래 플레이한 게 아니라 과거의 사소한 설정들까지 고려하지 못했습니. 유의해주세요.

※ 타 사이트에서 연재했던 글을 옮겨왔습니다.

하얀 머릿결의 여자가 눈앞에 서 있다.

[ 안녕하세요. 르나..., 르나 씨죠? ]

나를 알지 못하는 이름으로 지칭하는 여자는 익숙한 얼굴이다. 나오 마리오타 프라데이리. 밀레시안이라면 모를 리 없는 그들의 인도자. 그런데 나오가 건네는 인사는 다소 이상했다.

[ 르나 씨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여자분이셨군요? ]

그래, 마치 나를 처음 본 마냥.

그러나 의아함을 드러내야 마땅한 나는 나오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그제야 나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꿈을 꾸고 있음을 깨달았다.

꿈은 무의식의 영역. 나는 어째서 이런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저번도 그렇고.

나오는 나에게 앞으로 가게 될 ‘에린’에 대해 설명해주고선 인사를 건네었다. 하얗게 점멸하는 시야와 함께 소울스트림에서 벗어난 나는 에린으로 진입했다.

창공과 밝게 타오르는 팔라라, 주위를 둘러보면 수풀과 나무군락, 그 밖에 기웃거리는 동물들. 티르 코네일의 익숙한 정경이다. 나는 천천히 물가로 걸어갔다. 양손 안에 담긴 물이 비춘 얼굴은, 당연하지만 내가 아니었다.

르나.

이 자는 누구일까? 나와 같은 밀레시안인 건 나오의 존재로 확실했지만, 난 왜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의 꿈을 꾸는 걸까?

르나는 물로 목을 축이고 일어났다. 이후 내게 기억을 강제로 욱여넣듯 빠르게 많은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에린에 발을 디딘 그녀의 일상은 단순했다. 한가로이 마을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가끔 던전에 들렀다. 의도를 알 수 없는 일상의 나열이다.

그러다 어느 날, 던컨 촌장이 르나를 불렀다. 귀걸이를 찾아달라는 내용의 부탁을 위해서였다. 르나는 알겠다 답하며 시드 스넷타를 향해 걸어갔다. 추울 테니 솜을 누빈 로브를 입어야겠어, 혼자서 중얼거린 르나는 옷을 껴입고 눈 덮인 언덕으로 향해갔다.

여태껏 르나와 같은 시야를 공유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르나의 뒷모습만 보였다. 멀어질수록 작아지는 등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직후, 나는 꿈에서 추방 당했다.

멍하게 반 감긴 눈을 뜬 채로 현실과 꿈의 경계에서 헤매길 잠시, 곧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아무래도 풀밭에서 잠이 든 모양으로, 이슬에 옷이 살짝 젖어 몸이 서늘했다.

“요즘 이상한 꿈을 자주 꾸네…….”

나는 팔에 도는 한기를 떨쳐내고자 손으로 강하게 비볐다. 머지않아 한기는 사라졌다.

“하아….”

…아직도 선명한 꿈이다. 그러나 어쩐지 강렬하게 꽂히는 감각이라 무시하기도 힘들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주변을 돌아다니며 ‘르나’라는 자의 흔적을 찾았다.

그녀가 실존 인물이라면 분명 티르 코네일 주민들은 르나를 알고 있어야 정상이지만, 그들은 몰랐다. 던컨 촌장님에게서도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냥 단순한 꿈이었구나. 그렇게 결론을 내리면서도 나는 어쩐지 이 결론이 마음에 차지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자네에게 부탁할 게 있었는데, 마침 잘 됐구먼.”

실망스러워하는 나를 위로해주던 촌장님은 화제를 돌려, 내게 부탁을 했다. 그 ‘부탁’의 내용을 듣고 별안간 벼락에 맞은 기분이었다.

“시드 스넷타 말씀이시죠?”

“그래, 아마 그곳 눈사람에 섞여 들어간 모양인데, 알아봐 줄 수 있겠나?”


르나가 받은 부탁과 똑같았다. 나는 미심쩍은 기분으로 촌장님께 물었다.


“혹시 이 부탁…, 다른 사람에게 한 적은 없나요?”

“나도 얘기를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아직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네만..., 뭔가 문제라도 있는가?”

뭔가 말하려다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우연이라고 치기엔 절묘했다. 하지만 촌장님께 확신을 가지고 말하기엔 애매했다.

나는 그 길로 티르 코네일 북쪽을 향해갔다. 드레스 룸에서 옷을 꺼내 단단히 입고 있으니 어쩐지 르나와 같은 행동을 하는 기분이었다.

늘 마을 북쪽에 서 있는 자경단원 트레보가 나를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솔라 씨. 저번에 뵌 이후 처음이군요.”

“아, 그렇네요.”

아무래도 트레보는 예전에 만났던 나를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던전에 가시는 길입니까?”

“아니요. 부탁을 하나 받아서 시드 스넷타로…”

“그렇군요, 모쪼록 춥고 위험한 곳이니 조심하시길.”

“네.”

나는 알비던전으로 가는 길의 왼 편, 사람들이 잘 들리지 않아 길조차 푸릇하게 풀이 올라온 시드 스넷타 진입로로 들어갔다. 조금 더 가니 네 개의 비석으로 둘러싸인 의미를 알 수 없는 구조물이 있었다.

구조물을 통해 들어간 시드 스넷타의 들판은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있었다. 순식간에 추위가 몰아쳐 왔다. 입김이 차가운 공기와 만나 뿌옇게 피어오르는 걸 보니 방금 전까지 티르 코네일의 온화한 날씨가 환상 같았다.

푹푹 빠지는 눈 밭을 걸어 눈사람이 잔뜩 모여있는 곳에 다다라 나는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많은 눈사람 사이에 섞인 귀걸이를 어떻게 찾으라고?

어쩔 수 없이 나는 손수 눈사람을 뒤져가며 귀걸이를 찾아야 했다. 귀걸이는 손발이 꽁꽁 얼어붙기 직전이 되어서야 찾을 수 있었다.

‘르나도 이걸 찾았을까?’

알 수는 없겠지만 어려운 일은 아니니 찾지 않았을까. 나는 귀걸이를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드디어 등을 폈다. 새삼 다시 둘러본 시드 스넷타는 간간히 코요테의 짖는 소리를 제외하면 고요했다.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없다.

소리마저 백색의 세상. 기분이 묘해진 나는 빠르게 티르 코네일로 돌아가 촌장님에게 귀걸이를 전했다.

“오…, 용케 찾아왔군. 어디 보자, 이 귀걸이가 맞네. 수고했군.”

촌장님의 말에 따르면 귀걸이의 주인은 시드 스넷타로 향하는 구조물을 본 기념으로 눈사람을 만들다가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아까 내가 봤던 그거구나. 그 구조물은 눈사람 무덤의 뒤에도 하나 더 있었다.

촌장님은 내가 본 시드 스넷타의 통로가 마법의 힘이 걸린 구조물이며 그걸 타고 북쪽으로 가게 되면 가족을 잃은 드루이드가 곰으로 변해 울고 있다는 항간에 떠도는 소문을 말해주며 덧붙였다.

“그 곰이 마나 허브를 좋아한다고 하니, 혹시나 가게 될 일이 있다면 챙겨가도록 하게. 그러고 보니, 마침 내가 가지고 있는 게 있으니 몇 개 챙겨주면 되겠군.”

푸른색 허브 다발이 품에 들어왔다. 나는 난감해 하면서도 꾸벅 인사하고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마나 허브는 많이 있어서 굳이 주지 않아도 되는데…….

그리고나서 나는 시드 스넷타가 아닌 낭만 농장으로 향했다.

르나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도 있으니 곰을 찾으러 갈 예정이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은 밤이라 눈 덮인 언덕으로 가는 건 위험하기도 하고, 또 정신적인 피로감이 좀 있어서 먼저 자두는 게 좋을 것 같다. 내일 일찍 일어나면 되겠지. 급한 일도 아니고….

개척이 덜 되어 그리 넓지 않은 편인 농장에는 덩그러니 작은 집이 한 채 있었다. 그 삭막한 집에 들어간 나는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곧바로 침대에 누워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두 번째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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