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메시지

10화

변하지 않는 것(2)

우리는 도우갈의 인사에 한 박자 늦게 이름을 알려주었다. 솔직히 조금 당황스럽기도 한 마음이다. 인간이 살만한 곳이 절대 안 되는, 마치 지옥이라도 되는 이 땅에 홀로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의 태도 때문이 더 컸다.

사람은 자신을 향하는 감정에는 예민하기 마련이다. 도우갈이 보내는 시선에는 인간을 만났다는 반가움 한 톨 없을뿐더러, 과장하면 우리를 귀찮은 먼짓덩이를 보듯 했다.

아무튼 우리는 막 이 땅에 도착했고 주민인 그에게 얻어야 할 정보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도우갈에게 섣불리 불편함을 드러내지 않고 물었다.

“왜 당신 혼자서 이곳에 남아있나요?”

“여러 가지 사정이 있지만, 별로 좋아서 남아있는 건 아닙니다.”

도우갈이 슬쩍 자신이 든 지팡이를 두드렸다. 그에 따라 시선을 옮겼다가 다시 끌어올리고는 난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이곳은 티르 나 노이가 아닌 거죠?”

타르라크가 묘사했던 대로, 이 땅은 낙원이라고 부르기엔 섬뜩했다. 눈물도 고통도 없다는 희망에 찬 대지… 그렇게 묘사하는 사람들의 상상과는 영 딴판이니까.

내 말에 도우갈은 헛웃음을 흘렸다.

“하하하…. 살다 보니 이런 질문도 다 들어보는군요. 뭐, 본인도 아시는 것 같아 말은 줄이겠습니다만. 확실한 건 이 세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마족들의 땅이란 겁니다.”

“티르 나 노이가 아니라서 다행이군.”

블래시가 투덜대듯 말했다. 그는 도우갈의 차가운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은 듯 내내 불편한 표정이었다. 그에 반해 엔더는 도우갈에게 큰 흥미를 느끼는 모양이다.

“도우갈 씨? 당신에게서 상당히 묘한 느낌이 나네요.”

면전에다 대고 그런 말을 하는 엔더도 상당히 고약한 성격이 아닐까 생각이 잠깐 들었다. 하지만 예의를 버린 건 아닌지 곧 그는 나쁜 뜻은 아니라고 첨언했다.

엔더의 질문에 도우갈이 그의 모습을 다시 살피곤, 밍밍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 당신은 드루이드인 건가요? 보통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열에 아홉은 드루이드더군요.”

덕분에 분위기가 미묘해졌다. 잠깐의 침묵 후, 도우갈은 제가 만든 공기를 환기하려는 듯 화제를 돌렸다.

“흠. 초행으로 보이니 말씀드리는 겁니다만. 만약 당신들이 이곳에서 전멸하게 된다면 본래 있던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게 될 거라는 점, 알고 계신가요?”

“쫓겨난다는 뜻인가요?”

“네에, 정확합니다. 어쨌든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이니까요.”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다. 우리가 싸울 상대가 상대니만큼 파티 전멸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 잔뼈가 굵은 밀레시안들은 보통 여러 번은 죽어봤으니 죽음에 대한 공포는 다른 인간보다 적기 때문에 그쪽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쫓겨난다면 다시 준비해 아까의 일을 반복해야 하니….

지금은 시간이 금이다. 하루를 놓치면 글라스 기브넨이 부활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블래시와 엔더도 나만큼은 아니지만, 사안의 심각함을 알기 때문인지 덩달아 진지해졌다.

우리 셋을 보던 도우갈이 느릿하게 입을 연 건 그때였다.

“…갑자기 그럴듯한 생각이 나는군요.”

도우갈이 손가락을 곧게 뻗어 가리킨 곳은 묘지였다.

“저기에는 좀비들이 있습니다. 영혼이 없는 존재이지요. 저들을 여럿 정도 잡아줄 수 있습니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관찰할 필요가 있거든요.”

“어떤 현상이라면….”

“에디드 소울 현상…, 그러니까 영혼이 자신의 한 부분이었던 육신을 떠나지 못해 주변을 맴도는 현상을 말하죠.”

에디드 소울 현상은 글라스기브넨에 대해 조사한 타르라크의 자료에서 잠깐 본 적이 있다. 글라스 기브넨을 소환할 때도 벌어지는 현상으로 영혼의 맴돌이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다.

도우갈에게 한 마디한 이후로 줄곧 유심히 상황을 지켜보던 엔더가 중얼거렸다.

“그렇군요. 에디드 소울 현상으로 저희의 육체에 영혼을 묶어두면 굳이 세상 밖으로 쫓겨날 필요가 없겠어요.”

“응? 그런 게 인위적으로 가능하긴 해?”

“못할 것도 없지요. 도우갈 씨가 말했다시피 좀비들은 영혼이 없는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영혼과 육체가 기묘하게 이어지는 현상으로 인해 시체인 상태로 움직일 수 있죠. 추측입니다만, 이것 또한 에디드 소울 현상과 연관이 없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 바로 가자!”

블래시가 자신만만하게 앞장서고, 그 뒤를 우리들이 따라갔다. 다리가 불편한 도우갈을 위해 나는 보폭을 줄였다. 그런 나를 보더니 도우갈을 눈가를 찡그렸다.

“배려해줄 필요 없습니다.”

정말로 까칠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나는 고개를 젓고 아무 말 없이 계속 느린 걸음을 유지했다. 바보 같은 사람이군요. 귓가로 한숨 같은 소리가 스치는 걸 무시하며.

묘지에 도착하니 좀비들이 우리를 인식하고 느릿하게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정말 오싹하게 생겼다. 어중간하게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지만, 이지를 잃어버린 눈이 정확히 적으로 규정한 이를 좇고 있다.

나는 검을 꺼냈다. 도우갈이 그런 내게 조언을 건넸다.

“검을 쓴다면, 좀비들의 카운터에 조심하세요.”

의외로 친절하잖아. 하기야 처음 보는 사람들이 죽어 번거로워지는 걸 신경 쓸 필요는 없을텐데 이렇게 따라온 걸 보면 나름 본인의 방식으로 상냥한 걸지도.

좀비를 꽤 많이 잡았다 싶을 때, 도우갈은 우리를 불렀다.

“이제 충분합니다. 예상이 맞았군요.”

“그럼 이제 얼른 여기서 벗어나자. 시체 썩는 냄새에 질식할 것 같아.”

블래시가 코를 막았다. 하기야 좀비를 베어가를 때마다 정말 냄새가 지독하긴 했다. 나도 얼른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묘지를 나와 다시 그 위치로 돌아간 우리에게 도우갈이 물었다.

“이 중에서 리더가 누굽니까?”

블래시와 엔더가 동시에 나를 가리켰다. 덕분에 나도 모르게 바보처럼 손을 들어버렸다. 도우갈은 희미하게 비웃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표정을 짓곤, 내게 손을 건네었다.

“이제 죽더라도 이곳에서 부활할 만큼 저와 교류를 나누실 겁니다. 죄송하지만 이 작업은 한 사람에게만 가능하므로 리더인 당신께 해드리겠어요.”

아. 나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다른 두 명이 죽으면 그대로 둘은 원래 세상으로 가버리는 건가? 도우갈은 이런 내 고민을 다른 의미로 해석한 모양이다.

“이런, 저와 교류하는 게 탐탁지 않은 표정이군요.”

“네?”

깜짝 놀라 손을 들어 부인하려고 하자 도우갈이 그 손을 잡았다. 그리곤 재빨리 뭔가를 했는지, 영혼에 새로운 링크가 생긴 느낌이 들었다. 내가 밀레시안이 아니었다면 느끼지 못할 감각이었다.

“아무튼 이걸로 되었습니다. 이제 당신이 이 세상에서 행동 불능이 되면 제 근처에서 부활할 수 있을 거예요.”

“아…, 고마워요.”

“조금 피곤하군요. 그럼 전 들어가 볼테니 당신들은 소기의 목적을 이루러 가보시죠.”

그렇게 말하곤 도우갈은 정말로 제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남겨진 우리는 황망히 서 있다, 이내 이동하기로 했다. 목적지는 이 마을의 북쪽이었다. 티르 코네일과 이곳이 정말 비슷하다면, 그쪽에 알비 던전처럼 다른 던전이 자리 잡았을지도 모르니까.

걷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두 명이 먼저 죽으면 원래 세상으로 가게 되니 상관없을 테지만, 내가 먼저 죽으면 이 둘은 그 자리에 남겨지는 건가?

생각해보니 그랬다. 전투가 취미고 주인 이 둘보다 내가 더 약한 건 사실이니, 당하면 내가 먼저 당할 듯싶다.

이거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는데. 나는 고심하다가 운을 떼었다.

“저, 혹시나 제가 먼저 죽으면, 두 분은 남겨지게 되잖아요? 그땐 그냥 도망치도록 하세요.”

“음?”

두 사람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빠르게 내 말의 뜻을 깨달은 엔더가 턱을 문질렀다.

“하긴, 그런 경우도 생각해봐야겠네요. 어차피 솔라 씨는 도우갈 씨 옆에서 부활할 테니까.”

“네. 제 욕심으로 두 분을 끌어들인 거니….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어요.”

“욕심이라뇨? 엄연히 세상을 구하는 일 아닌가요? 하하.”

엔더가 넉살 좋게 웃었다. 블래시는 팔짱을 낀 채로 고민에 빠진 모습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때가 되면 저희가 알아서 판단하고 행동할 테니까요.”

“그렇지만, 음. 네….”

나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괜한 걱정이었나.

대화하느라 멈췄던 걸음을 다시 옮겼다. 세 발자국쯤 갔을 때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 블래시를 발견했다.

“블래시?”

“있잖아.”

블래시가 씩 웃고는, 날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런 상황이 오지 않게끔 해줄게.”

“네?”

이해하지 못한 내가 되물었지만 블래시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훌쩍 앞으로 나아갔다. 엔더와 나는 같은 심정으로 서로에게 시선을 교환하다가 블래시의 재촉에 정신 차리고 따라 움직였다.

카테고리
#2차창작
추가태그
#마비노기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