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주전자와 거북의 공통점에 관하여
과제로그/4학년 변신술/줄리엣 클락 w. 일라이 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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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릴 적에만 해도,”라며 마침내 가짜 거북이 아주 고요한 목소리로, 하지만 여전히 때때로 흐느끼면서 말을 시작했다.
“바다 속에 있는 학교엘 다녔었지. 선생님은 늙은 거북이었는데… 우린 그를 땅거북이라 불렀지…”
“아니, 왜 땅에 사는 거북도 아닌데 땅거북이라 부르신 거예요?”라고 앨리스가 물었다.
“우리들을 가르치기 때문에 땅거북이라 부른 거지.”라며 가짜 거북이 화를 내며 말했다. “넌 어쩜 그리 아둔하니!”
-루이스 캐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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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술 과제를 같이 하기로 한 것 치고는 줄리엣은 약속한 시각에, 약속한 교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일라이는 익숙하게 15분을 더 기다리다 불성실한 스터디 메이트를 찾아 나섰다.
“안녕하세요, 리엘로 부인. 좋은 오후예요. 혹시 줄리엣 클락이라는 아이 보셨나요? 4학년에, 슬리데린이고, 키가 이만하고….”
“뮐러 꼬맹이군. 왜, 그 건방진 계집애가 결국 로맘 가의 영애에게 달려들기라도 했다니? …공손하게 물었으니 말해주마. 요즘 것들은 말이야, 어찌나 버릇이 없는지, 내가 여기 벽에 달려 있다고 해서 무슨 표지판이라도 되는 줄 알고 매일 얘는 어딨냐, 저기는 어떻게 가는 거냐…. 저쪽으로 가더구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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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한 뒤, 같이 깃펜으로 바르게 글씨를 쓰는 법을 알려줄 겸 과제를 같이 하고 가끔씩은 간식을 먹는, 한마디로 정리해 스터디 메이트가 되기로 한 두 아이가 처음으로 같이 한 과제는 천문학이었다. 일라이는 잔뜩 긴장한 채 목성의 달 이름을 외우다 혼자 말을 더듬고는 했고, 줄리엣은 옆에서 이걸 왜 외워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궁시렁거렸다.
그래도 두 아이 다 처음 배우는 지식을 알아가는 것에 아예 흥미가 없는 사람은 아니었고, 또 별을 보며(비록 진짜 별은 아니고 실감나는 사진과 약도들이었지만) 공부한다는 건 꽤 낭만적이니까…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지금에 비하면 훨씬 더 마음도 편했고.
일라이는 속으로 조금 한숨을 쉬며 자꾸 뒤를 돌아보는 줄리엣을 엇나가는 양처럼 몰아 교실로 데려왔다.
“하지만, 일리, 마감기한이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걸. 꼭 지금 해야 할까? 지금 막 우리 기숙사에서 헨리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일리, 이 과제 마감기한 다음 주 화요일이야. 그리고 방금 로맘 선배랑 있다 온 거 다 알아.”
“…정말? 앗, 그건 또 어떻게 안 거야?”
줄리엣이 눈동자를 굴렸다. 일라이는 족히 몸의 반의 무게는 나갈 것 같은 과제와 책꾸러미를 (드디어) 내려놓으며 조금 미소지었다. 과장되게 근엄한 목소리로,
“한창 때인 건 인정하지만.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고.”
“으악, 꼭 교수님 같잖아. 그리고 너 나랑 동갑인 것 잊었어?”
예상대로의 답이 돌아왔다. 줄리엣은 옆으로 힐끔 시선을 두었다.
“그런데 찻잔은 왜 그렇게 많이 가져왔어? 우리 단체 티 파티 해? 방금 거북이로 바꾸던 찻잔들로? 그건 좀 잔인한 것 같은데.“
“아, (-머쓱한 웃음-) 내가 미리 예습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 그래서 실패해도 계속 끊기지 않고 연습할 수 있게. 좀 많이 가져왔어.”
“…난 저녁 시간 되면 저녁 먹으러 갈 거야.”
“그럼 그전까지 열심히 연습해서 성공하면 되겠다, 그치?”
“….”
-우리의 세계가 멸망하기까지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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