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무를 위해

The fault, dear Brutus, is not in our stars

줄리엣 클락 > 스텅 오브라이언

너는 나의 슬픔이야, 브레어.

별로 대단한 사람이 아냐

그냥 비겁한 위선자야

망원경 아이디어 남의 거 훔치고

높으신 권력자께 엎드려 절하고

힘없는 멍청이들 가루로 만들고

그냥 그런 놈이야

햄릿보다 비천하고

맥베스보다 소심하고

로미오처럼 독약을 마시거나

담을 넘지도 못해

-뮤지컬 <최후진술>, 넘버 “증언” 인용 및 변형(2인칭>1인칭)

스텅 오브라이언. 6월의 초여름날 특별하게 태어난 아이. 화형당하지 않은 붉은머리 마녀들의 후손. 수천 년을 그저 버텨온. “별종”이란 칭호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너겠지.

나는 말했다. 언제나 말했다. 나는 나약하고, 또 비겁해서. 지켜줄 사람이 필요해서. 돌벽에 기생하는 담쟁이 같은 사람이라서. 당신과 함께할 수는 없겠다고. 지상에서 손을 흔들어 줄 수는 있어도 함께 비행하지는 못하리라고. 멍청하게, 호구같이 살아남을 거라고. 당신은 말했다. 수많은 말들 가운데, 그래도 괜찮다고. 바라는 건 단 두 가지라고. 내가 잘 지내고, 우리가 친구로 남는다면. 사실 내가 당신에게 바라는 것도 같았다. 세월이 흐르고, 우리는 여전히 친구지만, 당신은 잘 지내지 못했다. 늘 괜찮았지만 괜찮은 적 없었다. 결국, 그 결과로 지금 당신은 떠나려 하고 있지 않은가. 언젠가는 분명 당신도 이 세계를 좋아했을 텐데. 그런데 내가 어떻게 그걸로 되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내가 널 필요로 한다면 언제든 오겠다고. 하지만 네가 필요할 때는 내가 갈 수 없는데. 나는 정말 소중했던 이들은 절반이 잘려나간 채 여전히 여기에 남을 텐데. 그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

마리안느의 말이 맞았다. 줄리엣 클락은 혼혈과 머글 태생들의 편이 아니고, 따라서 친구가 될 수도 없다. 가끔 지나가다 인사는 할 수 있겠지. 편지로 안부도 전할 수 있을 것이고. 시시콜콜한 수다도 떨 수 있을 것이고. 하지만 나는 당신들의 아픔에 온전히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언제나 눈치를 볼 것이고 당신들은 언제나 나를 의심할 것이다.

버티고 있는 당신에게, 뒷줄에 안전히 서 있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그것은 본질적으로 기만이다. 당신의 고통에서 눈을 돌려도, 눈을 돌리지 않아도 행동하지 않는 이상 방관이다. 이것은 자격지심이나 열등감이 아닌 현실의 서술, 사실의 기술이다.

따라서, 그러하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 당신은 나의 슬픔이 된다. 비겁함을 조명하고, 상처를 드러낸다. 태양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달은 희미해지듯이. 분명히 말하건대 그건 당신의 잘못도 책임도 아니며, 당신이 나를 그런 식으로 대한 적 없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안다. 굳이 따지자면 잘못은 나의 선택에 있으니까(The fault, dear Brutus, is not in our stars, but in ourselves, for we are underlings -Wiliam Shakespeare). 지금도, 당신을 위로하겠답시고 한 말로 상처나 주고 있지 않은가. (하나 첨언하자면 당신의 고통이 과거에 있다 말하려 한 것이 아니다. 온전히 극복해내지 못했음이 이렇게 선명한데. 어쩌면 나는 이렇게 말했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네가 겪는 것을 안다고. 네가 당하는 것을 안다고.)

나는 나 홀로 꿋꿋하게 살 수도 없고, 떳떳하게 살 수도 없다.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사실은 그게 더 편하고 쉽다는 걸 너무 일찍부터 배운 탓이고, 열네 살인 지금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아버지에게 기대다 이제는 약혼자에게 기대고, 두 줄 사이에서조차 고르지 못해 줄타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살아서 지키지 못하는 게 있다는 것쯤은 예전부터 알았지만-신념이나, 긍지 같은 것들-그게 당신들이 될 것이라고는 체감하지 못한 탓이다. 자, 비로소 결말이다. 어쩌면 비극적인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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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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