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내림을 받아도 아이돌이 될 수 있나요? - 4화
제게도 꿈이 있었습니다.
둥, 둥, 북소리가 울렸다. 오와 열을 맞춰 가지런히 놓인 제사상을 앞에 두고 람이 흰 무복 자락을 넓게 펼쳤다. 그의 손에 들린 방울이 짜랑짜랑한 소리를 내며 군중의 시선을 끌었다. 나붓한 걸음을 따라 부드러운 기운이 들풀을 쓸어 눕히듯 불어왔다. 구석진 자리에서 그 모양을 지켜보던 RSB의 리더 송재현은 미미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시선이 중앙에 선 무복 차림의 람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유세차(維歲次)-, 모년(某年)모월(某月)모일(某日)에 신제자 곽람이 두어 자 글줄로 망자에게 고하나이다.”
축문을 읊고, 무령과 무선을 흔들어 망자를 달래는 진혼제의 서막을 열었다. 이 순간만큼은 사사로운 모든 감정의 골을 저만치에 버려두고 오롯하게 신을 담는 그릇으로서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했다. 신을 모신지 일곱 해째에 접어든 그는 누가 보아도 어엿한 무속인이었다.
결국 재현은 진혼제가 끝나기 전에 돌아서고 말았다. 형, 어디가? 다른 멤버들이 그의 팔을 잡았지만 툭 뿌리치고서 대꾸도 없이 세트장 뒤로 사라져버렸다.
발끝이 땅에 끌렸다. 커다란 돌을 하나 얹은 양 가슴이 답답하게 옥죄어 왔다. 나무에 등을 기댄 재현은 뜻 모를 한숨을 크게 내쉬며 눈을 감았다. 북과 징의 소리에 더하여 진혼가를 부르는 람의 목소리가 나지막히 들려왔다. 끊어질 듯 끊이지 않고, 계속.
“수고하셨습니다. 영진 형님, 학철 형님, 고생 많으셨어요.”
제례는 무탈하게 막을 내렸다. 꼼꼼하게 마무리까지 마친 람은 뻐근하게 아파오는 어깨를 주무르며 보조인들에게 공을 돌렸다. 서글서글한 낯으로 웃으며 재잘대는 조카뻘의 아이를 누가 예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북과 징을 치며 혼 달래기에 손을 보탰던 두 보조인은 제사상에 올렸던 떡을 하나 집어 람의 입에 쑥 넣어주곤 그의 머리를 북북 쓰다듬었다.
“뒷정리는 우리가 할 테니 먼저 차에 가서 쉬고 있어. 이 땀 좀 봐라, 에이그.”
“우-음……. 아이, 같이 해야 빨리 끝나죠.”
“우리가 착착 하는 게 더 빨라. 가, 어여.”
람은 애교스럽게 웃으며 조금 더 버티는 시늉을 하다가 못이기는 척 걸음을 뗐다. 비록 규모는 작더라도 엄연히 위령제였다. 해야 할 건 빠짐없이 모두 갖추었다. 그런 제를 혼자 주관하는 일은 여간 피곤한 게 아니었다. 체력 좋은 그로서도 한바탕 뛰고 나면 진이 쏙 빠지곤 하는 것이다. 게다가 여름이 아니던가. 가뜩이나 무복을 겹겹이 껴입어 더운데 그렇게 움직였으니 땀이 줄줄 흐르는 건 당연했다.
‘으, 척척해.’
제일 안에 받쳐 입은 적삼이 땀으로 젖어 몸에 늘어붙었다. 돌아가는 길에 형님들이랑 같이 사우나라도 들러야겠다. 람은 옷이라도 평상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공터에 주차해둔 차로 향하면서 열심히 검색을 했다. 사우나, 사우나……. 오, 20분 거리에 하나 있다. 여기 괜찮아 보이네. 목욕 하고 나서 우리 형님들 맛있는 걸로 식사 한 끼 대접해야지. 이번에는 근처에 있는 맛집 검색을 하느라 핸드폰에 시선을 콕 박았다. 그런 까닭에 그는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나서야 누군가가 제 앞에 서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
하얀 운동화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람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은 재현이 말없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재현아. 머뭇거리다가 조그맣게 이름을 불러보았다. 이렇다 할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 쓰게 웃으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 때, 재현으로부터 한 박자 늦은 말이 들려왔다.
“잠깐 이야기 좀 하자.”
재현은 그 한 마디만 던지고 쌀쌀맞게 몸을 돌렸다. 따라오는 걸 기다리지 않고 먼저 걸어가는 바람에 그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졌다. 생각지 못했던 전개에 놀라 멍하니 있던 람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발을 재게 놀렸다. 아직 갈아입지 못한 무복 자락이 다급하게 펄럭였다.
둘은 촬영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멈추어 섰다. 재현은 불러놓고도 말이 없었고, 람은 먼저 입을 떼지 못하고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람의 가슴에 여즉 남아있는 심적인 빚이 그들의 관계를 그렇게 만들었으므로. 오 분쯤을 불편한 침묵 속에 있었을까. 재현이 드디어 말문을 텄다.
“넌 도대체 무슨 낯으로 여길 왔냐?”
“…….”
“네 발로 걷어차고 나갔잖아. 못 하겠다며. 너 때문에 우리 팀 데뷔 그대로 엎어질 뻔했던 거 몰라?”
“그게, 재현아.”
“씨발, 내 이름 좀 그만 부르고!”
대답을 해보라고, 대답을. 재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는 보라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을 거칠게 넘기며 울컥 올라오는 분을 삼켰다. 그의 앞에서 람은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였다. 제례를 올릴 때는 또랑또랑하던 목소리가 침울하게 가라앉았다.
“급한 일이라고 부탁을 받아서 온 거야. 너희랑 마주칠 줄은 정말 몰랐어.”
“알았으면 안 왔을 거라고?”
“아마도…….”
람은 점점 더 작아졌다. 아래로 내리깐 눈꺼풀이 가늘게 떨렸다. 그는 어쩔 줄 몰라하며 붉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변명을 하자면 할 수 있으나 차마 그럴 엄두도 나지 않는다는 것처럼. 그보다 키가 반 뼘 정도 더 큰 재현은 그 모습을 똑똑히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화가 났다. 어금니를 까드득 갈아붙이던 재현은 끝내 람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하얀 무복이 단단한 손끝에 실린 힘을 이기지 못하고 엉망으로 구겨져버렸다.
“삼 년 동안 우리 같이 고생하고 노력했던 거, 네겐 진짜 아무것도 아니었냐? 데뷔 확정까지 난 마당에 그걸 포기하고 떠나면서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때려치우고서 된 게 고작 이거냐고.”
강제로 고개를 들어 올리게 된 람은 옛 친구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미안하다는 말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런데 그가 원하는 것이 그런 사과가 아니라는 걸 알아서. 입가에 걸려있던 쓰디쓴 웃음마저도 거두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춤을 추고 노래하는 게 좋았다. 그래서 아이돌이 되고 싶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서부터 시작된 연습생 생활은 무척 고되었지만 즐겁기도 했다. 같은 꿈을 가진 친구들과 함께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데뷔가 확정되면서 꿈에 한 발 가까워졌을 때는 환호성까지 질렀다. 이제 됐다고, 앞으로도 우리는 잘 해나갈 수 있을 거라고 서로를 얼싸안으며 기뻐했었다. 람에게 신의 손길이 닿기 전까지는.
그게 벌써 7년 전의 일이었다. 람은 제 어깨 위에 올라선 신에게 저항하지 않았다. 네게 내리겠다 속삭이는 신의 발치에 가만히 엎드려 휘어진 운명을 받아들였다. 신의 횡포로 사위와 딸을 모두 앞세운 외조모가 신병 난 손주를 보자마자 거의 실신을 해가며 설득한 결과였다.
그 때만 해도 람은 아직 인다리의 무서움을 잘 몰랐다. 그래서 꿈을 접고 박수의 생을 살기로 결정하기까지가 무척 힘겨웠다. 솔직히 말해 지금 다시 선택을 할 기회가 온다고 해도 망설이지 않을 자신이 없을 정도로. 당사자의 마음이 그러한데, 신과 무관한 타인에겐 어찌 보이겠나. 당시에도 재현은 람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펄쩍 뛰었다.
‘그따위 미신 때문에 데뷔를 포기한다고? 너 제정신이야?’
그런 반응이 일반적이긴 하지. 람도 알았다. 자신으로 인해 함께 데뷔할 예정이었던 팀원들이 피해를 볼 게 걱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피할 길이 없는 것을 어찌할까. 그는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고, 막대한 위약금을 물면서까지 회사를 나왔다. 짐을 챙겨 나오는 람의 입술은 재현이 날린 주먹에 맞아 터져있었다.
그 날부터 람은 연예계 쪽으로 발길을 뚝 끊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배울 것이 많아 바쁘기도 했거니와 기웃거릴 염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말인즉슨, 재현과 람이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꼬박 7년 만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수많은 연습생들 중에서도 가장 친했던 두 사람인데.
감았던 눈을 뜬 람이 재현을 올려다보았다. 마주친 두 쌍의 눈이 모두 눅눅했다.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곧 터질 듯한 눈물을 애써 누르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람은 제 멱을 쥔 재현의 손등을 가만가만 다독이며 말했다.
“미안해. 하지만 나로서는 그게 최선이었어. 너는 여전히 믿지도, 납득하지도 못하겠지만.”
마치 도돌이표 같았다. 재현은 이를 악물고 울컥 치솟는 무언가를 목 너머로 삼켰다. 점점 더 위태롭게 흐르는 공기를 대변이라도 하듯 구름이 해를 가렸다. 한바탕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람은 재현의 손을 조심히 떼어냈다. 힘이 풀린 손은 어렵지 않게 떨어졌지만, 구겨진 무복의 옷깃은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았다. 공을 들여 주름진 부분을 펴야만 했다. 엉망으로 일그러진 그들의 관계처럼. 옷은 되돌릴 수 있다지만, 과연 너와 나도 돌아갈 수 있을까? 람은 그 답을 감히 어림하지 못했다. 하지만 딱 하나, 이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너희들을 생각하지 않았던 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재현아, 네가 신벌이라는 걸 평생 믿지 않아도 상관없어. 그래도 되게 하고자 내가 신을 받은 거니까. 너희들만큼은 지켜보려고, 신에게 얽힐 필요 없게 하려고. 그러니까, 내가 원망스러운 건 이해하지만, 조금만…….”
조금만, 덜 미워해주면 안 되겠니. 뒷말은 너무 작아 거의 들리지도 않았다. 람은 제 할 말을 마치고 천천히 물러났다. 한 발짝, 두 발짝, 거리가 벌어졌다. 다섯 걸음 정도를 사이에 둔 채로 멈추었던 그는 잠시 기다렸다. 그러나 재현은 끝끝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 그렇구나. 람은 고개를 숙이고 치렁한 소매로 눈가를 닦았다. 그리고는 재현을 뒤로 한 채 돌아섰다. 타박타박 걷는 그의 발자국 위로 내내 구름에 고여 있던 빗방울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가늘게 내리던 빗줄기는 금세 굵어졌다. 희뿌연 물안개가 차올라 시야를 흐렸다. 아니, 어쩌면 눈물이 흐르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람은 그 비를 고스란히 다 맞으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품에서 핸드폰이 울릴 때까지.
서두를 기력도 빠져버린 탓인지 메시지를 확인하는 동작에 맥아리가 없었다. 발신자를 보지도 않고 내용을 읽었던 그가 뒤늦게 보낸 사람의 이름을 확인했다. ‘태림이 형’이었다.
[내일 어떡할래? 올 거면 오전에 와라.]
람은 짤막한 그 메시지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마찬가지로 짧게 답장을 보냈다. 갈게.
그는 핸드폰을 손에 쥐고 멈췄던 걸음을 옮겼다. 오늘따라 하루가 참 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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