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될

신내림을 받아도 아이돌이 될 수 있나요? - 3화

제게도 꿈이 있었습니다.

더위가 날로 기승을 부렸다. 에어컨 없이는 실내의 온도가 30도 이하로 떨어질 생각을 않았고, 한낮의 태양은 정수리를 통째로 익혀버릴 듯 뜨거웠다. 여름이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계절이다. 람은 귀갓길에 편의점에 들러 맥주와 아이스크림을 조금 샀다. 가게를 나서자마자 까만 비닐봉투를 부스럭거리더니 메로나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역시 스테디셀러가 최고다. 달고 시원한 아이스크림이 하루 종일 돌아다니느라 지친 몸을 달래주는 것 같았다.

최근 며칠 동안 람은 몹시 바빴다. 박수로 사는 것 외에도 댄스 학원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아버지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을 돕는 등, 그를 부르는 곳이 꽤 많았다. 그런 와중에 신령님께 꼬박꼬박 치성 드리는 것도 잊지 않으려니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래도 당분간은 특별한 일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급한 의뢰가 들어오는 게 아닌 이상은 조금 쉬어도 좋으리라.

머릿속으로 스케줄을 체크하며 막 집 앞에 다다른 때였다. 바지 뒷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길게 진동했다. 지이잉-, 지이잉-. 이 시간에 전화가 올 만한 곳이 있던가? 람은 도어락에 비밀번호를 입력하면서 핸드폰 화면에 뜬 연락처를 확인했다. 위령청에서 사무 업무를 보고 있는 강 실장이었다.

“여보세요?”

“어, 람이 씨! 늦은 시간에 연락해서 미안해요.”

수화기 너머로 강 실장이 반색을 했다. 어지간히 급했는지 평소와 다르게 서론이 길지 않았다. 그에게서 곧장 용건이 튀어나왔다. 간소하게나마 위령제를 지내줄 사람을 찾는다는 거였다. 그것뿐이라면 크게 고민이 될 이유가 없었겠지만, 문제는 의뢰의 주체였다.

“아니이, 그쪽에서도 급하게 요청한 거라서 시간 맞는다는 사람 찾기가 너무 힘든 거 있죠. 람이 씨가 방송계 쪽의 의뢰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거 잘 아는데, 이번 한 번만 어떻게 안 될까?”

의뢰인이 누구냐 물었더니 요즈음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의 제작진이란다. 여름을 맞아 남량특집을 기획했는데, 총괄 PD가 촬영을 며칠 앞두고 자꾸 악몽을 꾼다나? 촬영지로 점찍어 둔 묘지에 다녀온 이후부터 그랬다며, 동티라도 난 게 아닌지 불안함에 제라도 올리려 한다고. 람은 속으로 혀를 차며 핸드폰을 고쳐 쥐었다. 띠리릭, 철컥. 등 뒤로 닫힌 문에서 도어락 잠기는 소리가 났다.

“정 사람이 없다면 어쩔 수 없죠. 제가 가볼게요. 장소랑 요청한 시간 메시지로 넣어주세요. 네.”

전화를 끊고 난 뒤 람은 불도 켜지 않은 채 한참을 그 자리에 서있었다. 마음이 심란해서였다. 방송계로부터 일부러 시선을 돌리고 살았는데, 결국 이어질 인연은 어떻게 해도 피할 수 없다는 걸까. 그는 주먹을 꾸욱 쥐었다가 폈다. 감정을 다스리는 건 스스로의 몫이었다.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으니, 그저 별 일 없이 지나가기를 바랄 수밖에.

일정이 급하다더니 과연 그랬다. 강 실장의 전화를 받고 이틀 뒤, 람은 보조인 둘을 데리고 촬영장을 찾았다. 연고 없는 이들을 모셔둔 공동묘지가 바로 그 문제의 장소였다. 도착하자마자 전체적인 상황을 살펴본 람은 쓴 웃음을 지으며 한숨을 삼켰다.

“그렇지 않아도 설움이 많은 망자들의 잠을 이렇게 방해했으니 꿈자리가 사납지…….”

정돈되지 않은 무덤 근처에 촬영에 쓰일 장비와 소품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이며 벌건 흙이 드러난 봉분을 밟고 돌아다니질 않나. 거기에 한 술을 더 떠 세트장은 아예 비쳐드는 해를 가려 묘지에 응달이 지게 만들었다. 촬영장 상태가 이런 꼴이라면 사전 답사를 나왔을 때 어떤 태도를 취했을지는 안 봐도 뻔했다. 결국 자업자득이라는 소리다.

하고 싶은 말들이 턱 밑까지 차올랐지만 참아야 했다. 람은 보조인들과 눈짓만 한 번 교환하고서 제를 올릴 준비를 서둘렀다. 분주히 제사상을 차리는 그에게로 담당자가 다가와 말을 붙였다.

“안녕하세요, 보살님! 멀리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죠! 오늘 정말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고생은요,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간단히 인사가 오갔다. 분위기는 제법 좋았다. 그러나 람은 좀처럼 대화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방송계 종사자를 대할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그 스스로가 갈피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벌써 7년이나 흘렀는데도 여전히 가시 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편했다. 그러나 조금 수다스러운 담당자는 그런 그의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방긋 웃으며 연신 감탄사를 터트렸다.

“와아, 그런데 보살님 정말 잘생기셨어요. 이런 마스크 연예계에서도 보기 드문데 너무 아깝다. 아이돌 해보라는 권유 많이 들어보지 않으셨어요?”

람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었다. 그는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려 웃으면서 겨우 ‘과찬이세요.’ 라고 한 마디를 돌려주었다. 그리고는 제례 준비가 바쁘다는 핑계로 담당자와의 대화를 잘라냈다. 돌아선 그의 얼굴 위로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복잡한 심정이 슬며시 스쳐갔다.

“너 괜찮냐?”

“괜찮아요. 염려 마세요, 형님.”

“저 치가 괜히 쓸데없는 소릴 해서는.”

“저 분이 알고 했겠어요? 평범하게 칭찬한 거겠죠. 제 상황이 특이해서 그렇지, 나쁜 말은 아니잖아요.”

“그도 그렇다만……. 에휴, 욕 봐라.”

제사상 차리는 것을 거들던 보조인들 중 하나가 가볍게 등을 두드려주었다. 람은 조금 전과 달리 말갛고 환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제 기분을 살펴주는 그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기 때문이다.

“출연진들도 금방 도착한대요. 올 사람 다 오면 바로 시작해야 하니까 우리 좀 서둘러요, 형님.”

제례복의 허리띠를 다시 맸다. 하얀 맨발에 버선을 신고 머리에는 빳빳하게 풀을 먹인 고깔을 썼다. 곱게 접힌 부채를 챙겨 드는 람의 손길이 퍽 분주했다. 그러는 사이 짙게 선팅을 한 밴 몇 대가 줄지어 들어왔다. 기다리던 출연진이 이제야 도착한 것이다. 준비를 마친 람은 마지막으로 빠뜨린 것이 없는지 살펴보곤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누가 왔으려나? 참석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전해들은 바가 없었기에 그도 알지 못했다.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 같아 굳이 묻지 않은 까닭도 있었다.

그러지 말 걸. 람은 꼭 한 대 얻어맞은 사람처럼 당황하며 모든 움직임을 멈추었다. 심지어 숨을 쉬는 것까지도. 그의 눈길은 밴에서 막 내리는 다섯 명의 남자들에게 꽂혀있었다. 꾸준히 인기 몰이를 하고 있는 남성 5인조 아이돌 그룹 ‘RSB’였다.

그들이 여기저기 인사를 나누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람은 점점 가까워지는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마침내 그들이 담당자의 인솔을 따라 람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그의 얼굴을 본 그들의 표정도 점차 굳어져갔다.

“자, 서로 인사들 나누세요. 이쪽은 보살님도 아시죠? RSB 친구들이에요. 그리고 이쪽은 오늘 제사를 맡아주실 곽람 씨.”

“……안녕,하세요. 박수 곽람입니다.”

람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자신에게 주먹을 날렸던 옛 친구를 향해.

카테고리
#오리지널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