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내림을 받아도 아이돌이 될 수 있나요? - 2화
안녕하세요, 박수 곽람입니다.
직접 찾은 처녀 고개는 사진으로 본 것보다 더 황량했다. 예전에는 오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 오솔길이나마 잘 닦여 있었지만 빙 둘러 큰 도로가 뚫리면서는 통행량이 급감한 탓이다. 흙으로 다져진 길의 가운데에는 풀도 무성하게 자라있었다. 람은 적당한 공터에 차를 대놓고 야트막한 고개를 걸어서 올라보았다.
시신이 묻힌 곳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언덕을 반쯤 오르니 길가에 투박한 돌탑이 여러 개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억울하게 죽었음에도 악귀가 되어 날뛰지는 않는다더니, 이렇게나마 명복을 빌어주었던 덕분인가 싶었다.
람은 그 앞에 가만히 서서 풀과 나무를 뒤흔드는 초여름의 바람을 마주했다. 태양에 적당히 달구어진 훈풍이었다. 부드러운 바람에 머리카락을 내맡긴 그가 딛고 선 땅을 발로 두어 번 두드렸다. 어쩐지 좋은 예감이 들었다.
금세 위령제를 지내기 위한 제단이 꾸려졌다. 의뢰를 맡긴 노부인뿐 아니라 인근 마을의 주민들이 모두 손을 보탰다. 다들 이곳에서 피붙이를 하나씩은 잃은 사람들이었다. 얼굴도 본 적 없는 고모이고 이모였지만 그들의 억울한 죽음은 어린 시절에 보았던 어른들 가슴께의 낫지 않는 피멍 자국으로 남아있었다. 이 마을에 그 설움을 푸는 걸 저어하는 이는 없었다.
“그러면,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너무 가까이 다가오진 말아주세요.”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제례복을 떨쳐입은 람이 부채를 펴들었다. 길게 불어오는 바람에 소맷부리가 펄럭였다. 머리 위로 들어 올렸던 두 팔이 나붓하게 떨어지며 진혼의 춤사위가 시작되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부인은 끝이 누렇게 바랜 모시 손수건으로 눈가를 조심히 닦았다. 나부끼는 흰 옷자락이 산골짝을 떠나는 철새들의 날갯짓을 닮았다. 그 새들이 마치 언니의 가여운 혼인 양 느껴져서 자꾸만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인은 지팡이를 땅에 놓고 두 손을 모아 정성스레 빌었다. 언니, 극락왕생 하소서. 기원은 염이 되어 길 위에 누운 풀잎을 어루만지고 먼 하늘로 너울너울 날아올랐다.
머리 위에 떠 있던 해가 어느덧 서쪽의 산머리에 걸렸다. 축문을 적은 종이를 태우는 것으로 위령제의 모든 절차가 끝났다. 람은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넘기며 노을빛으로 물들어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고요하고 평온했다. 좋은 날이었다. 그는 저와 같은 모습을 눈에 담으며 말없이 선 노부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품에 넣어 챙겨왔던 가락지를 꺼내들었다.
“어르신, 저번에 이걸 두고 가셨어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옥가락지가 람의 손바닥 위에서 가만히 반짝였다. 노부인은 이렇다 할 대꾸 없이 한참이나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람의 손가락을 접어 가락지를 그에게 도로 쥐여 주었다.
“이게 어딜 갔는가 했더니, 보살님께 있었군요. 평생 이 늙은이의 손에서 떠난 적이 없던 것인데. 아무래도 스스로 새 주인을 찾은 모양이야.”
“그렇게 오래 간직하신 거라면, 어르신께도 무척 소중한 물건이 아닌가요?”
“언니가 남기고 간 가락지였어요. 보살님 덕에 언니도 좋은 곳에 갔으니 괜찮으면 보살님이 맡아주지 않으시겠어요?
람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노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그의 얼굴이 너무나도 평온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제가 가지고 가서 가끔씩 제사라도 올릴게요. 람이 말했다. 노부인은 환하게 웃으며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한발 한발 멀어져 갔다.
그 때까지만 해도 람은 까맣게 몰랐다. 그 옥가락지가 제게 무슨 경험을 선사해주게 될 지를.
✦✧✦
볼일이 있어 위령청에 들렀다. 한동안 발걸음을 하지 않았더니 만나는 사람마다 오랜만이라고 인사를 건네 왔다. 넉살 좋고 온정도 많은 람은 그렇게 날아드는 인사를 하나도 흘리지 않고 모두 되돌려주었다.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그랬다. 일찍부터 신령님들의 눈에 들어 점지를 받고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된 아이들을 보면 꼭 주전부리라도 하나씩 쥐여 주곤 하는 것이다. 열아홉 살의 제가 미신장을 만났던 게 생각나서인지 뭔지.
“청장님, 저 왔어요!”
미닫이문을 붙들고 서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목을 잘게 움츠리고 있는 꼴이 꼭 겁을 집어먹은 자라 같았다. 왜 이러냐고? 그야, 이렇게 안쪽의 동향을 먼저 살피지 않고 냅다 들어갔다가는…….
“이놈아, 꼭 일이 있어야만 들르지!”
이렇게 사랑의 매가 날아온다. 웃돈을 얹어주고도 못 구할 장인의 공예품을 저런 식으로 휘두르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을 텐데, 그 중의 하나가 우리 청장님이라니. 람은 재빠르게 몸을 물려 단단한 담뱃대를 피하며 속으로 몰래 혀를 찼다.
“정말 바빴다니까요. 죄송해요!”
이크, 이번엔 맞을 뻔 했다. 한 발을 또 물러서서 매타작을 피한 그가 혀를 날름 빼물며 애교스럽게 웃었다. 위령청의 청장 백가야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훑어보곤 휘두르던 담뱃대를 태연하게 입에 물었다. 어휴. 다행히 오늘의 환영 인사는 이걸로 끝인가 보다.
밀린 이야기를 나누고 이런저런 일을 돕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수원에 있는 집까지 가기엔 늦은 터라 람은 객실에서 하룻밤을 묵어가기로 했다. 오래 된 한옥이라서 현대식 건물에 익숙한 이들에겐 여러모로 불편하긴 했지만 가끔씩 신세를 지기에는 괜찮았다. 벽장에서 이불 뭉치를 한아름 꺼내온 그는 잘 준비를 마치고 주머니에 잘 넣어두었던 옥가락지를 꺼내 머리맡에 두었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한 번 더 제를 올려줄 생각이었다.
불을 껐지만 방 안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문밖의 훤한 달빛이 창호지를 투과하여 비쳐드는 덕분이다. 람은 한동안 그 달빛을 바라보다가 스르륵 잠에 빠져들었다. 길었던 하루가 완전히 저물어가는 안온한 밤이었다.
그 안온한 밤……이 그대로 이어졌어야 했는데. 람은 무언가가 뺨을 살며시 스치는 감각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 몽롱한 정신으로도 아침이 오려면 한참 멀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집이었다면 강아지가 와서 비비적거리는 거겠지만 여긴 위령청이 아닌가?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잠기운이 싹 달아났다.
‘뭐, 뭐지?’
람은 조심스럽게 실눈을 떴다. 바르르 떨리는 눈꺼풀이 아주 천천히 트였다. 그 다음 순간, 흰자위가 없는 새까만 눈과 시선이 정면으로 맞아버렸다.
“으헉!”
아이고, 깜짝이야! 귀신이잖아. 람은 한 손으로 이불을 움켜쥐며 놀란 가슴을 달랬다. 박수가 된 이래로 허구한 날 보는 게 귀이고 혼이었지만, 익숙해졌다고 해서 이렇게 깜짝 놀라는 일이 아예 없어진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건 장르의 문제였다. 호러와 스릴러의 차이라고 할까? 잘 자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나면 그게 칠공에서 피를 줄줄 쏟는 충격적인 비주얼이 아니라고 해도 놀라기 마련이다. 바로 지금처럼.
“누구세요? 누구신데 이렇게 불쑥 나타나셨어, 또.”
상체를 일으켜 앉은 그가 이리저리 뻗친 머리를 손으로 꾹 눌렀다. 거의 백발에 가깝게 물들여놓은 연회색 머리카락은 잦은 탈색과 염색 탓에 많이 상해있었다. 그러다보니 어디에 머리만 댔다가 떼면 아주 사방팔방으로 뻗어버려서 손질에 애를 먹곤 했다. 자업자득이긴 해도, 저기 발치에 조르륵 앉아있는 여자애들의 윤기 나는 머리타래 같은 건 부러워도 흉내를 낼 수가, 우아악! 람은 또 한 번 비명을 질렀다. 하나가 아니었어?
가닥가닥 땋은 머리채들이 삼단마냥 검었다. 나잇대는 저마다 조금씩 달라도 얼굴이 하나같이 앳된 걸 보니 많아봐야 스물을 넘지 못한 소녀들인 것 같았다. 람은 저를 빤히 바라보고 앉은 그들의 면면을 둘러보고, 제 머리맡에 가만히 놓여있는 옥가락지도 한 번 확인하고서야 어찌 된 영문인지를 알아차렸다. 곱게 저승으로 갔어야 할 혼령들이 잘 가다 말고 이 가락지를 따라 몰려온 것이다. 그나마 한은 다 풀렸는지, 삿된 기운이 느껴지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내가 못 살아. 람이 손바닥에 얼굴을 폭 파묻으며 웅얼댔다. 이런 실수를 다 하다니. 청장님이 아셨다간 그놈의 장죽으로 볼기짝을 두들겨 맞고도 남을 일이다. 옥가락지를 받아 올 거면 그 자리에서 간단하게 치성이라도 드리고 올 것을, 노부인의 감성에 너무 동화되어서 물렁하게 굴었다가 일이 성가시게 되어버렸다. 람은 핸드폰을 켜서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축시(丑時)가 지나지 않았다.
‘어떻게든 첫 닭이 울기 전에 해결을 해보자.’
위령제까지 지낸 후이니 어쩌면 대화가 통할지도 몰랐다. 람은 한숨을 눌러 삼키며 고개를 들었다.
“저기요, 이런 말씀 드리기는 뭐하지만 여기 계시면 안 되는 거 다들 아시죠?”
새까만 눈들이 도르륵 굴렀다. 대답은 안 하고 저들끼리 눈짓을 주고받는가 싶더니, 람의 곁에 가장 가까이 붙어 앉은 첫 번째 처녀가 분홍빛 입술을 부드럽게 늘이며 미소를 지었다.
“알아. 그런데 네가 내 가락지를 가져갔잖니.”
람은 얼른 머리맡의 옥가락지를 집었다. 이거 말이지요?
“그래, 그거.”
처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람은 그가 다음 말을 꺼내기 전에 냉큼 대답했다.
“날이 밝는 대로 태워드릴게요. 그러니 천문이 닫히기 전에 얼른들 돌아가세요.”
됐다, 이제 가겠다. 람은 처녀가 가락지를 잘 볼 수 있게 앞으로 조금 더 내밀며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처녀는, 여전히 예쁘게 웃는 얼굴로 고개를 살살 저었다.
“그건 너 하렴. 내 막냇동생이 네게 줬으니까. 가락지를 보고 따라온 건 맞지만 그걸 돌려받으려는 건 아니란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요? 람은 처녀와 마주보고 웃던 그대로 제꺽 굳어버렸다. 네? 그러니까 목적은 따로 있으시다구요? 그게 도대체 뭘까. 원한이 남은 것도 아니고, 물건을 받으려는 것도 아니면? 그의 머리가 팽팽 돌았다.
처녀는 마치 람의 속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이번에도 해답을 순순히 내주었다. 그가 손을 뻗어 람의 턱과 뺨을 사르르 어루만졌다. 산 사람 아닌 것의 차갑고 냉한 손길이라 뒷목부터 허리께까지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너. 네가 예뻐 왔단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부자리의 발치에 가만히 앉아있던 처녀들이 사부작대며 일어섰다. 그러더니 람의 주위를 빙그르르 에워싸고 도로 앉아버렸다. 너, 네가 예뻐 왔단다. 네가 예뻐서. 속삭임이 아주 작게 들려오다가 점점 크게 겹쳐졌다. 흰자위 없는 눈들이 둥글게 휘고, 까르륵대는 웃음소리가 산 속의 메아리처럼 울렸다.
람은 처녀귀들에게 눌려 옴짝달싹 못하게 된 몸을 필사적으로 꼼질거리며 연신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주술청장 구세진이 짠 하고 나타나 그들의 마수로부터 구해줄 때까지.
✦✧✦
“손 똑바로 못 드느냐?!”
백가야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람은 얼른 조금 내려왔던 두 팔을 바짝 들어 귓가에 붙였다. 꿇어앉은 다리가 저릿하고 팔이 아파도 우는 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지금 혼나는 중이었으니까.
람이 커다란 눈망울을 힘없이 내리뜨며 제 양쪽으로 마주보고 앉은 가야와 세진의 얼굴을 번갈아 훔쳐보았다. 마주할 때마다 티격태격 싸워대는 위령청장과 주술청장이 이렇게 아침 찻상을 함께 하고 있다는 게 제법 신기하기는 했다. 비록 그게 간밤에 제가 친 사고 때문이기는 했어도. 이건 이를테면 보호자 면담 같은 걸까. 혼나고 있는 와중에도 다른 생각을 하느라 람의 눈이 도록도록 굴렀다.
향 좋은 차를 한 모금 머금던 세진이 그 모양을 보았는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그는 성을 내며 잔소리를 퍼붓는 가야를 본 체 만 체 하더니 여즉 엉망으로 뻗쳐 있는 람의 머리를 큼직한 손으로 석석 쓰다듬었다.
“그쯤 했으면 됐지. 그렇게 큰일도 아니었는데. 이그, 요 녀석아. 손 내려. 팔 아프겠다.”
“아직 내 말 안 끝났다!”
“그만 하래도, 정말.”
두 사람 사이에서 눈치를 보던 람은 얼른 팔을 내렸다. 그리곤 가야의 옆으로 조르르 다가가 두 손을 모으고 빌었다. 잘못했어요, 아버지! 진짜로 실수였다니까요! 이 방법은 대체로 효과가 좋았다. 호불호도 없을 만큼 예쁘게 생긴 애가 살살거리는데, 평소엔 청장님, 청장님 하고 부르느라 입에 잘 담지 않던 호칭까지 써준다. 가야는 특히나 이런 면에 약했으므로, 이번에도 그의 진노를 가라앉힌 건 신아들이라는 역할을 알차게 써먹은 람의 애교였다.
“쯧!”
결국 가야는 거세게 혀를 차며 담뱃대에 불을 당겼다. 그제야 람도 헤헤 웃으며 세진을 향해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제가 다음에 맛있는 거 사들고 다시 찾아뵐게요.”
“뭘, 그 정도 가지고. 정 고맙거든 다음에도 나랑 틱X이나 찍어줄래? 지난번의 그 영상 조회수 많더라.”
“좋아요, 얼마든지요!”
세진과 람은 방긋방긋 웃으며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의 다정한 대화 위로 여전히 심기가 불편한 가야의 호통소리가 또 다시 날아들었다. 시끄럽다, 이놈들아! 용건 끝났으면 썩 나가! 람은 까르르 웃으며 냉큼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도망쳤다.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손을 크게 흔드는 그의 머리 위로 아침의 햇살이 따스하게 내려앉았다. 정말로 맑은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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