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타브] 유리

NCT DREAM - Icanttfeelanything 들으면서 썼음

승천아타+타브 if

2체형 야생마법 소서러 로렌 드로우 타브

타브 이름 나옵니다. 설정:

아스타리온이 가문의 이름은 직위로만 쓰고 다른 성을 쓰는 그게뭔데쓰니야…. 설정이 있습니다.

뭘 하고 있었더라.

케오그렌은 문득 그렇게 생각했다. 

눈을 감았다 뜰 때 마다 풍경은 바뀌어있다. 어제의 잿가루와 내일의 악몽과 오늘의 피 냄새가 뒤죽박죽이다.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면 한낮의 햇살 아래, 눈을 두 번 감았다 뜨면 가시덩굴 한 가운데, 눈을 세 번 감았다 뜨면 새빨간 홍채가 가득하다. 핏방울같은 눈동자가 흔들거리다가 윙윙거렸다가 나를 부여잡는다. 휘저어댄다. 심장을 저민다. 입술을 열어 힐난한다. 아니, 사랑을 말한다. 아니, 비난하고 증오한다. 아니,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눈을 두 번 깜빡거리면 아득한 어둠 속에 잠겨있을 것 같았는데. 게일에게 어둠 마법을 배워둘 걸 그랬다. 눈 앞의 어둠은 새파랗기만 하다.

다시 눈을 깜빡거리니 사슴처럼 길고 가는 목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아득히 의식 저 편에서 피 냄새가 코를 찌르듯이 짓쳐든다.

왜 피 냄새가 날까. 우리 야영지에서 사슴고기는 언제나 창백했는데. 이상하네. 아니, 이게 피 냄새가 맞을까? 이렇게나 향기로웠던가? 이건 피가 아니라 포도주잖아. 가죽 부대 안에 가득히 담긴 포도주. 이렇게나 붉고 묵직한 포도주.

눈을 감았다 뜨니 포근한 양털 이불 속에.

눈을 걈았다 뜨니 따스한 품 안에.

눈을 감았다 뜨니….

온 방 안이 난장판이다. 익숙하게도.

아스타리온은 어디 있지? 아스타리온, 너를 지켜야 하는데. 너 자신조차도 너를 해칠 수 없도록. 불과 얼음과 번개와 달콤한 혓바닥 또 그 무엇이든간에.

입을 열어 그를 부르자 내 목소리가 아닌 쉬어터진 소리가 새어나온다. 아스타리온, 위험해, 또 형제들이 찾아왔나봐. 왜 우리를 그냥 두지 않는거야.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닌데. 엘더 브레인이 지하에서 날뛰고 있는데. 한 번은 참았지만 두 번은 안 돼. 데려갈 수 없어. 빼앗아 갈 수 없어. 죽여야 해. 

손을 뻗어 끌어안긴 품에서는 낯선 냄새가 났다.

따스한 살결 아래로 달큰한 땀 내음과 비누 냄새가 났다. 목덜미에 얼굴을 묻다가 의아하게 바라보았지만 여전히 복슬복슬한, 내가 아주 좋아하는 은발, 석류알같은 눈동자, 옅게 패인 입가. 

손을 뻗어 품을 밀어내니 그제서야 익숙한 향기가 났다. 그에게 안겨 잠들 때 나는 향기, 시체를 염할 때 나는 싸늘한 향기가 내 손목에서 났다.

손목에서

났다.

-

7천의 제물을 바쳐 얻은 새로운 힘에 취하고 그 힘으로 네더 브레인을 추락시키는 일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아스타리온 자신은 강해졌고 영원을 함께 할 반려는 품에 고이 잠들어있었으며 해야 할 일들이 넘쳐났다.

윗 도시가 거의 박살나고 재건되는 난장 속에서 자르 성을 통채로 가로채는 일이 예상처럼 쉽지만은 않았지만 즐거웠다. 

위더스 덕택으로 조우한 옛 인연들의 덕을 다소 봤다는 점도 부정하지는 않으리라. 

그럼에도 짧지 않은 다소간의 시간이 흐르고 기어이 원하던 대로 자르 공 아스타리온 뒤샨이 된 날, 미소지으며 안겨온 품은 그 모든 것 중 가장 아름다웠다.

아! 반려와 같은 성을 쓴다는 건 어찌 이리도 달콤한지! 둘만의 가족, 둘만의 가문, 둘만의 안식처에서 영원히 행복하리라.

모든 것이 완벽했다.

재회의 야영지에서 돌아온 뒤로 내내 기운이 없기에 배불리 먹여 재웠던 그가 명상에 들어 꼼짝도 하지 않은 지가 삼 일 째라는 보고를 받기 전까지는.

처음에는 동화처럼, 키스만으로 손쉽게 정신을 차렸다.

머쓱해하며 깨어난 얼굴이 귀여워 이번엔 봐 주지만 다음은 없노라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다음 번, 그 다음 번, 또 그 다음 번.

사흘, 이레, 열흘, 열닷새.

명상에서 깨는 간격은 길어지기만 하더니 종래에는 한 달에 하루도 깨어있지 못 하게 되었다.

이제 케오그렌 뒤샨은 거기에 없었다.

그는 안으로 침잠하여 기억을 여행하고 있었다.

때때로 눈을 뜬 케오그렌은 어리광을 부렸다. 여관의 비좁은 침대에 나란히 눕던 때 처럼. 

가슴팍에 고개를 파묻고 한참을 있다가 허리를 끌어안고 농밀한 장난을 치며 모험하던 때를 오늘 일처럼 이야기했다. 

때로는 형제들을 불태워야 한다고 중얼대며 온 방 안을 불꽃으로 뒤덮었다. 그러더니 그들을 풀어주자고 아스타리온의 발치에 엎드려 빌었다. 

당신은 첫 희생자를 만나 괴로웠을 텐데 옹졸하게 질투나 해댔다며 곰살맞게 사과해왔다.

어떤 날에는 한참을 울다가 아이들을 납치했을 때 당신이 얼마나 괴로웠을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며 끌어안기도 했다. 

그들은 이미 한 줌 핏물이 된 지 오래인데도.

금실로 수놓은 옷을 입히고 고이 빗은 머리칼에 비단 리본을 달아 묶어도 그의 넋은 아스타리온의 곁에 없었다. 

“대체 왜 그러는거야! 우리에게는 행복할 날만이 남았는데, 무엇이 마음에 안 들어, 무엇이 부족해! 내가 이리도 널 사랑하는데, 너는 어디를 헤메이고 있지? 할신이, 자헤이라가 그 날 네게 대체 무엇을 불어넣었기에 내 곁을 떠나 혼자 헤메이고 있느냔 말이야!“

소리치며 흔들어도 옛 연인과 동료의 이름에 희미하게 반응할 뿐. 예전처럼 똑바로 바라보아 오는 시선은 돌아오지 않았다.

씨근덕대며 돌아선 아스타리온이 결국 할신을 부르게 된 건 해가 지고 달이 떠오르듯 당연한 일이었다.

무슨 말을 했기에 저리 되었냐는 추궁도 죽여버리기 전에 고쳐놓으라는 협박도 없이 간결하게 적은 편지 한 장이 아홉 수레의 아버지에게로 도달했다.

그가 명상에 드는 시간이 계속 길어지고 있다.

그 뿐이었다.

-

호박처럼 투명했던 홍채 대신 루비처럼 붉은 눈이 할신을 반듯하게 응시한다. 참나무처럼 단단한 사내는 옛 사랑의 손을 쥐고 안도와 안타까움이 뒤섞인 긴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 할신. 번거롭게 했네. 조금 머리가 복잡했을 뿐이야. 우리는 어차피 긴 시간이 있으니… 아스타리온도 별스럽지 않게 생각할 줄 알았는데. 그는 나를 너무 물가에 내놓은 애처럼 여긴다니까.“

“그렇다기엔 명상이 너무 길었소. 우리들에게 길어지는 명상이란 한 가지만을 의미하니 그도 불안할 수 밖에.”

“애초에 난 진짜 엘프도 아닌걸? 우리를 종종 그린엘프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 건 알지만. 하긴, 난 동족하고도 별로 이야기 못 해봐서 죽을 때가 되면 어떻게 될 지 모르네. 확실한 건 내가 정말 죽더라도 아스타리온은 강하니까, 금세 떨쳐내고 또 즐거운 일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이제까지 그래왔으니까.“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이며 하는 말이 가벼웠다. 함께 여행할 때 머리에 올챙이를 넣고도 경쾌하게 뛰어다니던 그때 그대로였다. 죽는다는 말을 쉽게 하는 것 마저도.

그래서 되려 불안했다. 재회의 야영지에서 보았던 모습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거듭할 수록 깊어지는 법이오, 케오그렌. 그런 생각은 정말 필요할 때만 해야지. 내가 그 때의 일로 당신과 아스타리온에게 실망한 것이 진실일지언정 그대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거짓이라는 말과 같은 뜻은 아니야.“

엄히 타이르는 말에 어린 드로우가 비죽 웃었다.

“알아, 할신. 그 마음을 왜 모르겠어. 너무 걱정하지 마. 알잖아, 난 깊은 생각 잘 안 하는 거. 그리고…. 이건, 음. 정말 미안하지만 지금 당장 돌아가는게 좋겠어. 무슨 생각으로 아스타리온이 당신을 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기분이 계속 나빠지고 있는 게 느껴지거든. 난 아홉 수레 아이들의 아버지를 빼앗은 자라는 명패를 굳이 아스타리온에게 달아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그래, 나도 이 추악한 성에 길게 머무를 생각은 없었으니…. 그대가 깨어난 걸 보았으니 되었다 생각하고 이만 떠나지. 그래도 혹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라이스윈이 열려있음을 기억해주시오.“

어쩔 수 없게도 따스한 말을 남기고 급히 달려왔던 길을 되짚어 참나무 드루이드가 떠나는 뒷모습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느껴지는 기세만으로는 당장이라도 방으로 달려들어 할신을 죽일 듯 했던 아스타리온도 시종의 급보를 받고 윗 도시 어딘가로 향했다.

케오그렌은 그제서야 안도의 긴 한숨을 내뱉었다.

더 이상은 아스타리온이 아는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보고싶지 않았다.

지옥구멍같은 수렁 속에서 더 곱씹을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기실, 그리 오래도록 스스로의 안으로 파고 들 생각은 없었다.

할신을 부른 이유도 짐작은 간다. 야생마법을 전혀 제어하지 못하던 시절 그대로 미친 놈의 표본같은 상태였겠지. 어쩌면 퇴행했을지도 모르고. 

그렇지만 케오그렌은 정말이지 아스타리온을 걱정시킬 생각은 없었다. 

그저 후회할 뿐이었다. 모든 걸 외면한 것을.

칠천의 목숨도, 아스타리온의 두려움도, 그 모든 슬픔과 고통도 모두 내가 외면하고 내버렸지.

그저 아스타리온이 행복하기만을 바래. 그럴 수 있을거라 생각했어. 누가 무슨 말을 하며 말려도 그가 햇볕을 보고, 다시 인간의 기쁨을 누리는 것만을 바랐어.

그런데 눈을 감으면 비명이, 눈을 뜨면 피눈물이 어룽진다.

채 외면하지 못한 죄책감이 쫓아와 뒤꿈치를 물어뜯고 진창에 처박는다. 응당 그래야 했다는 듯이.

그래, 아스타리온은 죄가 없다.

모든 것은 나의 죄였다. 

아스타리온을 사랑해서 그 많은 사람을 죽인 건 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다.

나는 나를 견딜 수 없어 이제 불꽃으로 도망치리라. 영원히 재 한 줌 남지 않고 흩어지리라. 어떠한 의미도 갖지 못하는 채로. 속죄할 수 조차 없는 원한을 끌어안고 그렇게 도망치리라.

참, 마지막까지도 아스타리온을 닮은 연극적인 말투네.

그리 생각하며 케오그렌은 웃었다. 

낡아 부스러진 누더기처럼 초라한 웃음이었다.

-

햇볕이 쨍쨍한 어느 날에, 아스타리온은 한탄했다.

어찌 그리도 모질 수가 있나.

고운 재가 담긴 자그만 단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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