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의 유혹에 빠지게 하소서
2022.05.08.
최순덕 성령충만기 (이기호 소설)
이 소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으로는 성경틱한 느낌을 주는 의고체와 2단 형식의 활용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와 교회가 주요 소재로 사용되며 주인공으로는 맹목적인 기독교도 순덕이 등장하는 소설을 담아내기에 절묘한 그릇이다. 이기호의 소설은 제도의 변두리에 주목하며,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류 사회로부터 배제된 이들이다. 이기호는 그들의 삶을 해학적으로 그려내면서도 읽는 이로 하여금 완전히 마음 놓고 웃을 수만은 없게 만든다. 조연정 평론가의 ‘웃을수록 미안해진다’라는 평이 딱 적절해 보인다.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이야기의 너머에는 묵직한 현실이 존재한다.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의인 최순덕(1:1)’이 하나님께 가진 신앙심은 맹목적이다. 또한 절대적이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만 살아가는 인물이며, 근대의 상징인 학교는 그에게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한다. 순덕의 신앙에서 비롯된 행동은 우스꽝스럽고 비상식적이다. 작중에서 교회 전도사가 순덕을 따로 불러 충고하는 것 역시 그에게서 비정상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신앙이 깊은 이의 눈에도 그렇게 비치는데, 하물며 기독교도가 아닌 이가 본다면 어떨까. 독자는 초점 화자인 순덕에게 이입하지 않고 이 소설을 그저 이야기로만 바라보게 된다. 이는 서술적 특징의 영향을 받아 심화된다. 익숙하지 않은 성경식 문장과 제3자 시점의 서술은 독자와 등장인물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멀어지게 한다.
한편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자신의 존재 의의를 향한 순덕의 불안이다. 순덕은 아담이 죄를 저지르는 순간을 기다려 그가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회개하길 바란다. 이에 기도하기를, ‘아담으로 하여금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아담이 되게 하소서 뱀의 유혹에 빠지게 하소서(9:13)’. 아담을 구원하기 위해 그의 악행을 바라고 기다리는 순덕의 모습은 모순적이다. (보라, 결국 누가 뱀인가?)
아담은 그의 기존 가정에서 탈출하여 순덕과 함께 새로운 가정을 이룬다. 사실상 법적으로는 인정받지 못한 결합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 앞에서 부부간의 예를 맺었으니(11:9)’ 상관없다며 개의치 않는다. 이 소설은 순덕이 아담에게 구원받기를 강제하는 내용이지만, 그의 회개 이후 결과적으로 그들의 삶이 어떻게 나아졌는지는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는 ‘지옥에서 천국으로 가는 건 불가능한 일이잖아요(8:29)’, ‘도망갈 수만 있다면 도망가고 싶었어요(10:46) 지옥에서라도(10:49) 천국으로(10:51)’라는 아담의 말에서 미리 암시되었던 일이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도망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므로 그들이 발 딛고 선 곳은 낙원일 수 없다. 부족한 사람과 부족한 사람이 만나면 결국 영유하게 되는 것은 미달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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