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가
2022.05.24.
돌보는 마음 (김유담 소설)
자본주의 사회의 임금 노동자가 장시간 노동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가족 중 누군가가 돌봄 노동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단정한 차림새와 같이 개인의 업무 능력 외 조건을 요구하는 기업은, 그들이 지급하는 한 사람 몫의 임금보다 더 많은 노동력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노동이되 노동이 아닌 ‘돌봄 노동’은 애덤 스미스의 경제학 시스템 설계 단계부터 완전히 배제된 상태로 존재해 왔다.
이러한 상황은 근대와 현대에 걸쳐 일어난 여러 변화에 의해 공고히 자리 잡았다. 편리함을 추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들은 결과적으로 더 많은 노동을 필요로 하는 것들이었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한 세균의 발견, 세제나 세탁기의 발명으로 우리의 삶은 세탁을 자주 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의학의 발전과 충분한 영양 상태, 복지 증진 등으로 인해 인간의 수명이 길어졌고, 이는 노인 부양의 요구로 이어졌다. 그리고 가정 내 노동의 역할은 오로지 여성에게 부여되었다. 이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사실은, 점차 많은 수의 여성이 임금 노동 시장으로 진출한 반면 무급 돌봄 노동을 하는 남성의 수는 현저히 적다는 것이다. 결국 현재에 이르러 여성들은 임금 노동과 무급 돌봄 노동을 동시에 부담하는 상황에 봉착했다.
작가는 이 이야기에서, 복직을 위해 베이비시터를 구하는 한 여성의 혼란스러운 내면을 제시한다. 독자들은 어딘가 익숙한 냄새가 나는 내용을 읽어내리며 현실에 존재할 수많은 ‘미연’들에게 이입하게 된다. 온갖 불안과 피로로 점철된 이야기를 따라 책장을 넘기다 보면, 육아와 직장 생활을 장대의 양 끝에 달고서 외줄 타기를 하는 삶에 몰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오히려 너무 몰입이 되어서 문제다. 당장 내 일은 아니지만, 나의 할머니와 나의 어머니, 그리고 이 사회의 수많은 여성이 겪었거나—겪고 있거나—겪게 될 일이라고 생각하면 입안이 쓰다. 사회가 변하지 않으면 그것은 실현된다. “당신은 대한민국에 눈치 안 보고 육아휴직 2년 쓸 수 있는 조직이 얼마나 있다고 생각해?”라는 미연의 대사는 사회의 부조리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늘 집에서 지내는 사람이 아닌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라면—그것도 여자라면, 주위 눈치 보지 않고 아이를 기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가정 내의 일들과 특정 직업군을 통틀어, 돌봄 노동이 그들 노동자에게 고되게 다가오는 이유는 노동자의 감정을 동원해야 하는 업무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은 작중에 나오는 미연이 승주에게 건네는 대사를 통해 이해해볼 수 있다. “진심으로 상대를 위하는 마음을 느끼게 해 주는 게 나는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한 번 더 환하게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불편한 건 없는지 마음으로 세심하게 살펴 주는 거, 그런 게 진짜 고객 만족 서비스지.” 미연은 대학병원의 고객 서비스 만족부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고객을 응대하고 그 태도를 평가받는 전형적인 감정 노동의 현장이다. 결국 미연은 감정 노동자인 동시에 돌봄 노동의 사용자이다. “실은 정순에게 하고 싶은 말을 승주에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라는 서술로 말미암아, 미연이 생각하는 그 두 업무에 임하는 노동자의 필수적인 마음가짐은 정확히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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