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가 아니라야 다시 거꾸로가 된다
2022.04.12.
아오이가든 (편혜영 소설)
편혜영 초기 소설의 대표적인 특징으로는 그가 그려내는 세계에 기괴함과 섬뜩함이 잔뜩 번져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 소설은 불쾌감을 유발할 정도로 노골적인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충격적이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그 불쾌함은 곧 감탄으로 승화한다. 편혜영은 분명 그의 소설을 통해 몰락과 붕괴, 썩어 문드러짐에 대해 논했음에도 독자는 그 기저에 깔린 심미를 느낀다.
이를테면 포스트 아포칼립스, 즉 가상의 재난과 맞닥뜨린 세상에 관한 이야기이다. 홍콩의 사스 대유행에서 영감을 얻어 2005년에 발표된 작품인데도, 평범했던 일상을 어그러뜨린 재난이 전염병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은 코로나 사태를 겪고 있는 우리에게 익숙하게 다가온다. 집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생활한다는 대목이 특히 그렇다. 주민들과 가족 간에 소독약을 뿌려대고 이상 증세를 두려워하며 서로를 의심하고 멀리하는 생활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모르는 삶의 방식이 아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소설 속에 존재하는 의학은 인간을 치료함에 쓰이지 않는다는 사실일 것이다. “의사들은 환자와 접촉하려 들지 않”으며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됨은 몇 년 후, 몇백 년 후에나 일어날 사건이다. 사람들은 신앙에 매달리기도 하고 사혈 요법과 수은을 사용한 치료법을 행함으로써 현대 의학의 발전 이전으로 퇴보한다. 인간을 위해 연구되고 축적된 의학적 지식은 인간을 치료하지는 못하며 고양이의 자궁 적출 수술에서나 쓰이게 된다. 이러한 ‘거꾸로’의 이미지는 작중에 만연해 있다. 독자는 그러한 비정상성에서 기괴함과 꺼림칙함을 느끼게 된다. 이 소설이 그로테스크하다 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일 것이다.
아파트 단지 ‘아오이가든’은 ‘푸른(あおい) 정원(garden)’이라는 그 이름의 뜻과는 대비되게 죽음의 기운이 가득한 공간으로 변모하여 등장한다. 하수도는 역류 현상이 일어나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화자는 역아인 채 태어나 세상과 마주했다. 고양이는 베란다 유리창을 통해 바깥으로 던져버려도 계속해서 집으로 돌아오며, 그것의 목숨이 무려 일곱이나 된다는 것이 작중에서 언급되기도 한다. 덧붙여 ‘그녀’의 기분에 따라 많아지거나 줄어드는 화자의 나이, 소설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교묘하게 맞물리듯 제시된 것 역시 역행이나 회귀의 이미지와 관련이 있다. 첫 장면에서 비와 섞여 바닥으로 떨어지는 개구리들. 마지막 장면에서 ‘누이’가 낳은 개구리들을 베란다 유리창을 통해 밖으로 쏟아내는 ‘그녀’ 그리고 그 개구리들과 함께 뛰어내리는 ‘나’. 이 두 장면은 ‘개구리의 낙하’라는 사건을 반복적으로 서술하여 끝에서 시작으로 되돌아감의 양상을 드러낸다. 편혜영은 사건의 비인과적 배치와 회귀 플롯을 활용함으로써, 지난 시간 동안 서사의 완결성 유지를 위해 지켜져 온 근대소설의 규율을 거스른다.
삶과 죽음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함의 또한 찾아볼 수 있다. 역병을 옮기는 소녀에 대한 소문은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가지는 공포와 불안감을 상징한다. 소녀의 빨간 스카프는 죽음의 표지다. 한편 고양이를 수술하는 장면에서 ‘나’는 고양이의 핏방울을 두고 ‘눈부시도록 붉은’ 색이라 묘사한다. 고양이의 복강은 따뜻하며 내장은 여전히 벌떡벌떡 뛴다. 피가 발하는 선명한 붉은색은 삶의 표지다. 따라서 붉은색은 삶이기도 하며 죽음이기도 하다. 그 둘은 완전히 분리될 수 없으며 끊임없이 연결된다. 이는 앞서 언급한 회귀의 이미지와도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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