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사건이 사건조차 되지 못하는

2022.03.26.

모자 (황정은 소설)

환상문학이란 단순히 실재하지 않는 존재나 사건이 등장하는 문학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며, 일견 모순적이게도 사실주의를 필수적 구성 요소로 가진다. 상상력에 의존하는 초자연적 요소가 작중 세계에 드러나되, 이러한 환상성의 발현은 사회 현실에 대한 사유와 구현 욕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한국 환상문학에 대한 일반적 인식이라 할 수 있다. “환상문학은 특정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현실 대신 비현실을 썼고 리얼리즘 문학은 반대로 현실을 도구로 썼을 뿐”이라는 이영도의 주장에서 알 수 있듯이, 환상문학과 리얼리즘 문학은 대척하지 않으며 두 범주 모두에게 작품과 현실의 관계는 중요하게 여겨지는 부분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황정은의 소설은 환상과 현실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고, 다만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긴장감을 형성한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황정은은 그의 소설 속에서 ‘변신’이라는 환상적 모티프를 사용하여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든다. 이야기 속에서, 세 남매의 아버지는 종종 모자의 모습으로 화한다. 분명 정상적이지 않은 사건임에도 인물들은 그것을 일상으로 받아들인다. 어떤 인물도 불가해에 대한 당혹감이나 공포, 미지에 대한 호기심 따위의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다. 독자는 이러한 양상을 통해 비일상을 일상 속으로 끌어내리는 시도가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작중에서, 아버지가 모자로 변한 모습을 본 이웃 사람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 ‘아무튼 유감’과 같이 관망하는 표현을 사용하며 남의 사정에 개입하지 않으려 한다. 또, 첫째가 예비군 훈련병에게 추행을 당했다는 것을 인지한 세 남매는 ‘만진’ 것인지, 아니면 ‘닿은’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면서, 마치 타인의 일이라도 되는 듯 객관적이고 초연한 반응을 보인다.

이렇듯 감정적 관여가 결여된 태도는 갈등과 충돌로부터 자유로우며, 더 나아가 환상성과 비일상을 설명하거나 이해할 필요가 없는 세상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단조롭고도 평화로운 세상에서 모자가 아닌 상태의 아버지는 이질적인 존재다. 언젠가 아내(세 남매의 어머니)와 그의 모친이 다투는 모습을 보고 화를 내던 아버지의 모습, 첫째가 추행당했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파출소로 달려가는 아버지의 모습은 주위에 비해 지나치게 감정적이어서 도드라진다. 그렇기에 아버지가 모자로 변신하는 것은 당혹스러운 사건으로 생각되지 않으며, 되려 그들 공동체의 기묘한 평화를 되찾아오는 장치로 기능하게 된다.

‘아버지는 왜 모자가 되는 걸까요.’라는 둘째의 질문은 모자로 변신하는 당사자인 아버지와 그것을 곁에서 지켜보는 세 남매에게 있어 풀리지 않는 난제이지만, 소설 밖의 독자는 비참한 상황이 가져다주는 무력감이나 감당하기 힘든 현실 앞에서의 도피 욕구 운운하며 여러 가설을 세워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지점은 작중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한다. 과거에 일어났고 현재에 일어나는 아버지의 변신, 그리고 그때의 정황은 세 남매에게 있어 ‘그거 지독하네’, ‘그것도 지독하네’ 정도로 치부된다. 세 남매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친이 기억하는 변신은 발화조차 되지 못한다. 아버지가 어째서 모자로 변하는지는 그들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이다. ‘세 남매의 아버지는 자주 모자가 되었다.’, 남는 것은 이것뿐이다. 그들은 이 잘 만들어진 농담과도 같은 세상을 그저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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