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백업

[인사반파] 썰 백업 / 24.05.25

심구랑 류청가 이야기 메모 (+약 청가심구)

인사반파 본편 완결 이후 시점 (맞춤법 / 오탈자 체크 안 했음)
아직 미완. 기력 생길 때마다 이어서 씀…

어떻게 심원청추 쪽 일이 잘 풀린 뒤의 히든 특전? 심원이 무의식적으로 빈 희망사항? 같은 걸로,
심구가 이야기의 주박에서 해방된 상태로 과거로 돌아갔으면 좋겠음.
즉 이야기가 정해두었던 '악역'의 역할에서 벗어나서...뭐든 될 수 있는 심구가 된 것임.

사실 심구는 비극을 겪었고 하는 일마다 다 꼬였으며 성질도 드러웠지만, 이건 어느정도 심구를 악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세계에서 정해둔 규칙의 영향도 있어서, 어떻게 잘 넘어갈 수 있는 일도 꼭 한 번 더 꼬아서 생각하게 되고 말도 못된 어조로만 내뱉도록 개인의 인성을 조종당한...느낌이 좀 있었음. 부정적인 감정이 증폭되도록 설정되어 있던 것임.
그러니까 온 세상 만인에게 미움받았던 거지...

빙형에 의해 완전히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눈을 다시 떠보니 과거의 청정봉이고 낙빙하를 갓 자기 제자로 데려온 즈음이었음. 악역 역할에서 해방된 상태에서 자신의 옛 기억들을 되돌아보니 자기가 봐도 심청추는 쓰레기 인성 새끼였음.

꼭 그렇게 반응 안 해도 된다고, 다른 말을 내뱉으려고 머릿 속에서 생각하고 있었어도,
정작 입에서 튀어나가는 건 뇌를 안 거친 듯한 험한 말들만.
돌이켜보니 자기가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될 정도의 부정적으로만 치우친 행동들이었고
거기에 질린 심청추는 그냥 다 지쳐서...이번엔 잘 해보자< 이럴 기운도 없었음.

그냥 다 내려놓고 쉬고 싶었음. 애초에 숨이 끊어지는 순간 드디어 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왜 또 눈을 뜨게 된 건지도 알 수 없고 짜증나기만 했으니까 (심원청추의 무의식: 힝ㅠ)

그래서 심구는 떠나기로 했음.
일단은 막 자기가 데려와서 괴롭히기 시작했던 낙빙하를 악청원 제자로 보내버림.
왜 그러느냐 묻는 악청원에게는 '봉주를 그만두고 하산하겠다'는 뜻을 전했으며,
왜 그러시느냐 묻는 낙빙하에게는 '내가 널 키울 그릇이 되지 못한다. 주제 넘게 데리고와서 미안하다'고 함.

그럼에도 낙빙하는 처음 자신을 골라줬던 심청추를 스승으로서 존경했기에 (비록 청정봉으로 오자마자 학대 받은 기억밖에 없음에도…
처음 본 존재를 어미로 생각하는 아기새처럼 매달렸음) 심구를 따라 하산하겠다고까지 했으나, 심구가 울 듯이 표정을 구기면서 '제발 나를 쉬게 내버려다오' 라고 꺼질듯한 목소리로 말하니 말문을 잃고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음.

심구의 그런 태도는 다른 청정봉 제자들 및 다른 봉 사람들에게도 전해져서, 대부분은 결국 입을 다물고 심구의 뜻을 존중하게 됨.
이따금 험한 말을 던지는 자들도 있었는데, 대표적으로는 류청가로 '그렇게 할 짓 못 할 짓 다 해가며 봉주 자리를 꿰어찼으면서 이제와서 도망가는 거냐'고 비웃었는데, 평소라면 그런 말을 듣는 즉시 살기를 내뿜었을 심청추가 그저 무표정하게 가만히 있는 것을 보니, 이전의 심청추와는 분명 달라졌다는 것을 모두가 인정할 수 밖에 없었음.

심구가 하산하는 날, 끝까지 만류하려 노력하던 악청원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던 심구는, 다른 봉주들과 남겨질 제자들과 낙빙하 등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하며 운을 뗀 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부탁을 하고 떠남.

'백전봉주 저 자식 하는 꼬라지 보면 분명 자기가 제 기운 감당을 못해서 수 년 안에 주화입마에 걸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특히 혼자 폐관수련 하려고 설치다가 심혈 꼬이는 것 아닐까 싶은데, 안 일어난다면야 문제 없겠지만 저 성질 머리면 꼭 일을 칠 듯 하단 말입니다. 그러니 장문 사형이 가끔 살펴보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봉주가 주화입마로 혼자 뒈졌다고 하면 창궁산파의 인상에도 영향이 갈 것 아닙니까.'

악청원이 이걸 기억해서, 류청가가 영서동에 폐관 수련하러 들어갔을 때 살펴보러 가준다면, 어쩌면 안 죽고 살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자기가 가면 못 막아서 죽고, 자기가 안 가면 아무도 몰라서 죽는다면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 가면 살릴 수 있지 않을까.

류청가의 죽음 이후로 벌어졌던 오해와 모함과 상대를 잘못 찾은 원망에 심구 본인이 겪었던 참상을 생각하면, 이 새끼는 살아야만 했음. 이놈이 뒈지는 바람에 꼬인 일이 대체 얼마였던가. 그렇다고 시일까지 구체적으로 알려서 '그날 영서동에 가서 류청가의 폭주를 막으세요'라 하면 그런 정보를 어떻게 알았냐고 캐물을 게 뻔하니, 대충 저러다 지 홧병에 지가 죽지 식으로 에둘러서 말을 전한 것이었음. 이러고도 혹 류청가가 죽는다면...뭐 자기 운명이려니 하라지. 심구는 어차피 오늘부로 하산하니 얽힐 일은 없을 터.




그렇게 창궁산파에서 내려온 심구는 발 닿는 곳으로 여기저기 다녀봄.

지독했던 과거에 매몰된 탓에 심구는 스스로의 존재 가치에 집착하는 면이 있었는데, 봉주가 되려 한 것과 (물론 심구의 노력 외에도 전대봉주는 심구를 마음에 들어했으니 자연스레 후임으로 심구를 골랐을 것 같지만) 주변과 자신을 끝없이 비교하여 열등감을 느끼고, 그로 인해 출신이 좋은 류청가를 미워했으며, 재능 넘치는 낙빙하가 제대로 큰다면 자신보다 높아질 것이 뻔했기에 새싹부터 짓밟고 싶어서 괴롭히기도 했음.

하지만 그 모든 걸 내려놓고 산을 내려와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떠하던가. 어쩌면 '자유롭고' '혼자'인 신분으로 세상을 마주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을지도 모름. 그리고 심구가 내뱉은 첫 감상은...아무것도 아니다, 였음. 그냥 모두가 태어나서, 주어진 환경에서 아득바득 살아가다가 죽어갈 뿐. 그 안에서 느낄 희노애락과 비참함은 천차만별일지라도 그냥..인세는 그뿐이었음.

지독하게 괴로웠었지만, 결국에 살아남아 창궁산파에 입문하여 선인이 된 것만으로도 자기는 충분히 운이 좋은 편이었거늘.
그때 만족하고 남을 미워하기를 멈췄더라면, 다른 놈들과 얽히지 않았더라면 류청가가 주화입마로 죽었어도 자신이 미움받을 일은 없었을 것이며, 낙빙하가 혼세마왕이 되든말든 자신을 집중적으로 노려 복수할 일도 없었을 것이고, 악청원 역시 자신을 구하려 목숨까지 버려가며 맞서다가 개죽음당하지는 않았겠지. 그 결과 창궁산파 자체가 멸문했대도, 그 모든 원망의 구심점이 자신이 되진 않았을텐데.

다 놓아두고 나와서 보니 하잘 것 없건만 당시에는 시야가 꽉 막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음.
그래놓고 무슨 선인이라고. 그저 내단을 맺어 힘 좀 얻었다고 으스대었을 뿐인 속세의 망령이었음.

심구는 분명 무위자연이니 생성화육이니를 찬양하며 속세와 멀어져야한다 주장하는 수행자들을 한심하게 꿈만 꾼다며 비웃는 입장이었는데, 돌이켜보니 자연스레 그쪽 방향으로 나아가는 자야말로 도를 알고 선을 닦는 선인 아닌가 싶어짐.
선인과 내단 가진 놈은 구분해서 불러야하는 거 아닌가~ 따위 생각을 하다보니 심구는 이제야 자신이 어떤 한 계단 위의 경지에 도달한 듯한 느낌이 들어 즐거워졌고 그렇게 시작된 유랑은 사소하지만 재밌었음. 아주 가끔 혼자 처리할만한 마물 등이 있으면 해결해주어 노잣돈을 벌고, 조금 귀찮아질 것 같은 사건은 근처 문파에 맡기라며 잽싸게 빠져나가면서 적당히 요깃거리를 하며 지내는 생활은, 조금 지저분하게 살아야한다는 점만 빼면 만족스러웠음.

남이 본다면 늘 혼자 다니는 것은 외로울 지도 모르겠지만, 심구는 이미 다시 눈 뜨기 전, 팔다리가 잘린 채 죽어갈 때까지의 삶 모두를 사람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날 정도로, 지겹도록 사람에게 시달리며 보냈음. 사람과 얽혀 울고 웃는 심구의 삶은 이미 충분히 겪었고,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새 기회를 얻었으니 이 기회마저 사람으로 인해 날릴 순 없었음.

내 삶에 더는 사람은 필요없다.
심구는 이제 인간이 지긋지긋했고, 그렇기에 더는 외롭지 않았음.




그렇게 발 닿는 곳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던 심구는 북쪽, 서쪽을 거쳐 남으로, 동으로 걷다가 해안지역에 도착하게 됨. 조금 더 가면 큰 항구 도시가 있는 지역이었으나 인근에도 작은 바닷가 마을들이 점재해 있었는데, 심구가 발을 디딘 곳은 그런 마을들 중에서 살짝 규모가 큰 곳이었음. 제법 번듯한 시장도 있고 물자의 유통도 원활하여 웬만한 물건은 다 구할 수 있었음.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망망대해가 참으로 시원하고 아름다웠기에, 이곳이 마음에 든 심구는 여기에 며칠 머무르기로 함.

그러다가 문득.

이 바다 너머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해졌음.

물론 이곳에서 북동쪽으로 뱃길을 타면 동영이라는 섬나라가 있다고 하니, 결국 바다 건너에도 사람 사는 땅이 있을 것이었음. 하지만 그게 아니라. 배편으로는 감히 가지 못할 멀고도 먼 바다에는 뭐가 있을지 궁금해진 것임. 이미 내륙 쪽의 가볼만한 곳은 충분히 돌아보았으니, 바다 쪽으로 나아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했음.

북동쪽은 확실하게 섬나라가 있다고 하였으니, 진로는 남동쪽 바다로.
아직 이 방향의 바닷길 너머에 무언가 있다는 이야기는 바닷사람들 사이에서도 들려오지 않은 듯 했으니, 가본 적이 없거나, 갔어도 돌아오지 못했거나 할 듯 했음. 그렇다면 배를 타고 갈 수 없는 곳에, 선인인 자신이라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그렇게 심구는 괜히 마을 사람들 눈에 띄여서 '저 사람 바다에 죽으러 간다' 같은 소문이 나서 귀찮아지지 않도록, 인적이 없는 밤시간에 어검을 하여 바다로 나아감. 수평선만이 보이는 평평한 바다 위를 빠르게 날아가는 수아검. 한 밤의 검은 바다, 일출의 보랏빛 바다, 한낮의 푸른 바다, 일몰의 붉은 바다 등 다양한 색깔을 보며 심구는 그저 앞으로 나아갔음.

간단하게 띄워놓고 쉴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조각배를 옆구리에 끼고 날고 있었기에, 영력을 많이 소비해서 휴식이 필요할 땐 잠시 검에서 내려 배를 띄우고 앉아 쉬다가 다시 날았음. 풍랑이 험해질 경우에는 어검도, 조각배 위도 위험할 것이므로 그 경우에는 다시 해안가로 되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다행히도 요 며칠 날씨는 평온하고 좋기만 했음.

그렇게 동영까지의 거리는 훌쩍 넘어갔을 거리를 나아갔을 때, 심구는 자신의 영력이 조금 희미해짐을 느꼈음.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인지 걱정되어 급히 조각배에 내려 영맥을 살펴보았는데 딱히 문제될 것은 없었음. 단전에도 정상적으로 영력이 감돌고 있는데. 그런데도 그냥, 분명 가득차 있건만 그 가득찬 것의 밀도가 낮아져 흐려지는 느낌이랄까. 영력이 꽉 차있음에도 힘을 쓰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음.

그렇게, 이번엔 여기까지만 하고 다시 되돌아가야하나 고민하던 심구의 눈에 작은 바위섬이 하나 보임. 대부분 바위로 이루어졌으나 적당히 평탄한 땅도 있어 작게 해변을 이루었으며, 나무도 제법 나 있는 푸르른 섬이었음. 마침 영력의 상태가 이상하니 제대로 살펴보아야겠다 싶어진 심구는 시야에 들어온 저 섬에 머무르기로 함. 몸의 이상을 느꼈을 때 마침 망망대해에서 이 섬이 눈에 들어온 것은 천운일 수도, 필연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섬에는 물론 아무도 없었음. 당연하긴 했음, 이정도 거리에 배를 타고 도착할 수 있는 바닷사람은 없으며, 심구처럼 선인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이런 아무것도 없을 바다에 무작정 뛰어들만큼 한가하고 생각 없는 자는 없을 것임. 자신이야 죽었다 다시 깨어난 것이니 어디든 좋았기에, 더욱이나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라면 더더욱 흥미가 끌렸기에 온 것이지,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면 조각배 하나 챙겨서는 며칠을 바다 위를 날고 있는 심구의 행동은 자살행위나 다름 없긴 했음. 물론 언제 죽어도 상관없긴 했기에 무모한 행동을 한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자진해서 죽을 생각은 없었기에, 영력의 이상을 느낀 건 좀 위험한 상황이었음. 그러던 와중에 조각배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편히 쉴 수 있으면서 몸 상태를 살필 수 있는 무인도를 만났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그렇게 시간을 들여서 자신의 영맥을 천천히 훑던 심구는 한가지 이상한 점을 깨닫게 됨. 작은 바위섬은 동서 방향으로 가로로 살짝 길쭉하게 생겼었는데, 섬을 살펴보기 위해 동쪽으로 나아갈 수록 미세하게 영력이 약하게 느껴지고, 섬의 서쪽으로 오면 아까보다는 영력의 흐름이 강하게 느껴졌음.

방위가 영력에 영향을 끼치나?

심구는, 챙겨온 조각배에 몸을 싣고 섬의 동쪽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음. 만약 정말로 동쪽으로 갈 수록 영력이 약해지는 것이라면, 어검을 해서 가다가는 혹여나 중간에 영력의 흐름이 완전히 끊겨서 바다에 추락하는 일이 생길지도 몰랐기에, 배에 탄 채로 가보기로 한 것임.

그렇게 한 시진 정도 동쪽으로 천천히 나아가던 심구는, 어느 위치를 기점으로 완전히 몸에서 영력을 느끼지 못하게 됨. 급하게 다시 배를 서쪽으로 돌려 한 주 향 쯤 나아가자 이번에는 다시 미약하게나마 영력이 느껴지기 시작했음. 그렇게 동쪽으로 갔다가, 서쪽으로 갔다가를 몇 번 반복한 심구는 이내 확신하게 되었음.

이 바다 한 가운데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그 벽을 기준으로, 벽 안 쪽에서는 영력을 느끼고 행사할 수 있으나
벽 바깥에서는 영력이라는 기운 자체가 무효화 된다.

영력을 다루는 자와 다루지 못하는 자를 선인과 일반 양민으로 구분짓는다면. 이 너머로 가면 선인은 선인으로서의 힘을 잃게 된다는 소리였음. 그리고, 갈수록 차츰 힘이 약해지는 것으로 보아 어쩌면 벽이 가로막는다기 보다는, 영력이 유효한 범위에서 멀어졌기에 힘이 약해지는 것이 아니었을지.

그리고 그 유효한 범위란 바로 '대륙 땅' 그 자체.

그 옛날 여와가 대륙을 만들었을 때 어떤 힘의 핵을 대지에 숨겨두었고,
그 핵을 이용할 수 있는 자가 영력을 얻고 선인이 될 수 있었다면?

하긴, 대륙의 서쪽으로 나아가면 서역인들이 산다고 하는데, 그들 중에서 선인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음. 서역인들은 수련을 하지 않기에 영맥을 트지 못하여 그런 것이라고만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서역에서는 선인의 힘 자체가 발휘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었음.

물론 대부분의 선인들은 대륙을 벗어나려는 생각조차 안 하지만, 정말 심구같은 괴짜가 과거 단 한 명도 없었을까?
접경지대에서 간간히 전투가 일어난다고는 하지만 거기에 선인은 없었음. 선인의 힘은 막강하고, 잘못 쓰면 병기와도 다름 없기에 인세의 다툼에 힘을 빌려주는 건 금기이므로 (걸리면 모든 수선계의 질타를 받고 금단을 깨부수는 형에 처해질 정도) 전쟁에 참여한 선인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나, 자신의 힘만 믿고 서역을 정복해주겠다며 홀로 달려들었을 멍청이 선인이 수 백 년의 역사 속에 정말 단 한 명도 없었을까.

그럼에도 서역에서 선인으로 인해 피해를 입어 조정에 불만의 토로했다, 등의 소문도, 역사 기록도 들은 적이 없었음.
그리 생각하자 점점 어떤 방향으로 답이 굳어지는 듯 했음.

'선인의 영력은 대륙 안에서만 발휘될 수 있다.'

영력은 막강한 기운이기에 여와는, 이 힘을 펼칠 수 있는 구역에 제약을 걸었던 게 아닐까.
주체없이 뻗어나간다면 통제할 수 없기에, 대륙 안에서만 힘을 쓸 수 있게 제약을 걸어두고,
원시천존 등의 신들이 관리와 감시를 할 수 있도록 했다면.

물론 여와 운운은 자신의 추측이기는 하겠으나, 어쨌거나 대륙 밖에서는 영력을 못 쓴다는 점 자체는 분명한 사실일 것이며, 이에 눈치 챈 사람들이 과거에도 분명 있었을 것임. 하지만 모든 수선계 수련자들과, 특히나 눈치챈 당사자 자신의 마음을 꺾는 진실이었기에 구태여 기록에 남기지 않았고, 구전되지도 않았다면. 이미 대륙은 방대하고도 방대하여, '방랑' 자체에 목적을 두지 않는 이상은 일생동안 살아도 다 훑을 수 없을 만큼 컸기에 모두들 만족하며 이 땅에 살고 있기도 했음.

그리고, 이 사실을 눈치채려면 애초에 육로로는 서역땅으로 향하는 수밖에 없는데, 보통은 그쪽으로 향하다가 영맥의 이상을 느끼고, 몸이 만전의 상태가 아닌데 모르는 곳으로 향하는 것은 위험하기에 발을 되돌리는 경우가 일반적임. 또한 국경선은 나라에서 엄히 관리하고 있기에, 상단이라면 몰라도 관과 갈등을 빚고 싶지 않은 수선계 사람들은 으레 그쪽으로 가는 것을 피하고는 했음. 그렇다면 반대로는 이번의 심구처럼 바다를 통해 한계까지 나와보는 방법이 있겠지만, 계속 말했다시피 이런 망망대해를 대뜸 며칠이고 날아다닐 미친 놈은 없었음.

그러니 수선계 입장에서는, 영력을 행사하는 데 유효한 '범위'가 있다는 진실은
알기도 힘들고, 알 필요도 없는 것이었음. 그러니 알려질 리가.





지금은 많이 집착이 흐려졌지만, 이전 생의 심구는 선인이 되는 것에, 그리고 번듯한 자리를 취하는 것을 갈망했었음. 그로 인해 많은 것을 잃고 죽기까지 했지. 하지만 고작 동으로 몇 분 가느냐, 서로 몇 분 가느냐에 따라 '선인'으로서의 자신은 이토록 쉽게 평범한 양민으로 되돌아가고 말았음. 그렇게나 절절하고도 추하게, 모두에게 미움 받으며 매달렸던 힘이건만.

맥이 탁 풀려버린 심구는 다시 눈을 뜬 이후 두 번째로 '다 내려놓고 쉬고 싶다'는 기분을 느낌.
모든게 허망하고 부질 없다 느끼며, 기운이 빠졌음.

그렇게 깨달음을 얻고 아까의 무인도로 돌아간 심구는 다시금 제 몸에 돌아와있는 미약한 영력의 흐름을 느끼며, 해변가에 한참을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다가, 방랑 여행은 여기까지 해도 충분하겠다는 생각을 함.

그렇다면 앞으로는 무엇을 할까?

한참을 고민하던 심구는 문득 해가 지고, 별이 뜨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 섬에서 보이는 풍경이 제법 아름답다고 생각함. 몸을 일으켜서 섬을 다시 쭉 훑어보니 답답할 정도로 작지도 않으며, 곡기를 끊어도 크게 상관이 없는 선인에게는 머물기에 나쁘지 않은 환경이었음. 조용하게 파도 소리를 즐길 수 있으면서도, 이 곳에서는 오로지 심구 혼자였음. 해안가의 마을이나 도시 처럼 다른 사람을 신경쓸 필요도 없어. 그렇게 생각하니 심구는 제법 이 섬이 마음에 들었음.

큰 깨달음을 얻게 될 경계선 바로 근처에, 보란듯이 쉬어가라고 자리잡은 무인도. 어쩌면 여와가 자신처럼 바다의 경계선에 당도할 미래의 수련자를 위하여 마련해 둔 쉼터인 건 아닐런지.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섬의 위치는 절묘했으니까.

그렇다면, 다시 어딘가로 발길이 떨어질 때까지 이 섬에서 지내도록 하자.
그 누구의 시선도 신경써도 되지 않는 이 곳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며 쉬다가 벗어나고 싶어진다면 그때 다시 생각을 해보자고.

그렇게 심구는 망망대해 한 가운데에 떠있는 작은 섬을 자신의 거처로 삼기로 함.
창궁산을 내려온 후로 몇 년 간 이곳저곳 방랑만 하던 심구가 오랜만에 '정착'을 결심하던 순간이었음.









~ 그래서 그 뒤로 여차저차 생필품 사러 내륙으로 가끔 오는 심구를
사람들이 바다의 선사님이라고 해선님으로 부르는데 어쩌고
거기에 류청가가 찾아오는데 어쩌고

를 생각난 김에 써야 하는데 지금은 바빠서 더 붙잡고 있진 못하겠고 나중에 이어서 씀 22
넣고 싶은 장면이 있어서 시작한 거라 까먹기 전에 쓰기는 할 듯… (24.09.20 시점)


이쪽의 빙하가 좀 불쌍한 듯도 하지만 이후 어떤 방법으로든 심원청추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나요…
개인적으로 빙하의 구원은 심원청추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에, 심구는 자유롭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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