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能

Sentinels & Guides

  • 2022.11.02


눈앞의 이가 상관이니 자신의 행동이 명백한 상관 폭행에 해당하는 것임을 인지는 했다.

 

그래, 인지만 했다.

 

악셀의 불 같은 성미는 늘 그랬다. 인지, 판단 이전에 행동. 그리고 결과. 

그 증거로 실적 이력만큼이나 화려한 징계 이력이 있었다. 참고 넘어가는 것은 외려 드문 일이고, 그런 일이 있었다면 순전히 내켜서 넘어간 것에 가깝다. 하물며 남아있는 정신력은 바닥을 쳤고 제 앞의 이는 흑역사나 다름없는 과거의 친우였으며, 그 친우가 한 말은 남아있는 정신마저 저 멀리 선대의 고향이라는 세르비아까지 날리기 충분했다. 

"제가 뭐 틀린 말 했습니까? 가이드가 생기기 전에는 변이종과 별다를 거 없는 취급을 받았던 게 센티넬입니다. 피 깎고, 살 깎아가며 사람으로 살아가게끔 도와주면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

 

멱살을 쥔 손이 분노에 터질 듯 파들거렸다. 홧김에 치켜든 손이 원결 옆의 벽을 내리쳤다. 벽이 울리며 불씨가 타닥 튄다. 마지막 남은 이성으로 간신히 꺾어낸 궤는 그러고도 참지 못해 부들거렸다. 눈이 돌아갈 정도의 분노가 치솟자, 눈앞의 이를 태워버리고 싶은 본능만 남았다. 새벽의 알싸한 향도, 희미하게 들리는 타인의 기척도, 제 숨 하나까지 태우려는 본능을 기어코 억누르는 것은, 지난 시간 이어온 오랜 강박의 결과물이다. 제 혀를 짓씹어 입안에 낸 피를 삼키고 꾹꾹 눌러 뱉은 문장을 겨우 뱉어낸다. 

 

"센티넬을 써먹으려 만들어 낸 주제에... "

 

'변이종과 대적이 가능했던 것은 센티넬 뿐이었다.' 

'그 센티넬을 다루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가이드다. '

그리고,

 

'센티넬은 가이드에게 절대적 호감을 느끼게 된다.' 

 

이미 수천 번 들어서 알고 있는 명제다.

악셀은, 생각했다.

8년 전. 제 형이 죽었을 때. 그 대단한 명제 때문에 자신은 유일한 가족을 잃었다고. 

 

"그러면, 센티넬이 피 흘리고 제 살 찢어가며 변이종 멱 따는 동안 너넨 뭐했는데? 원해서 가이드 된 거 아냐? 선택지가 주어져서 그걸 고른 거면! 맡은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

 

결국 터져 나온 분노는 악셀이 터트리는 불꽃의 폭압만큼이나 큰 소릴 내며 울렸다. 통제되지 않는 감정은, 본능에 민감한 그의 몸은. 그 접촉을 이유 없이 반기게 하는 가이드가 싫었다. 유일한 가족을 앗아간 원인도 싫었고, 그 원인과 똑같은 족속들을 원해야 하는 것도 싫었다.

희생? 웃기지 말라 그래. 그럼 내 감정은? 통제되지 않는 것은 강제적이지 않다고 할 수 있나? 

 

"센티넬로 태어나면 평생이 저당 잡히지. 알 거 아냐? 그럼 그건 희생이 아냐? 희생해서 싸워주면! 그럼 너네도 고마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

 

"그런데 뭐, 영웅놀이? 변이종이랑 다를게 없어? "

 

"소령이란 새끼가... 그걸 영웅 놀이라고 폄하하는 건 어디서 가져온 정신머린데? "

 

쳐낸 손을 떨어뜨리고 꽈악 주먹을 쥐었다. 이걸 한 대 더 때려, 말어? 고민은 잠시였지만 이내 사그라들었다. 다시 치고 싶은 마음을 굴뚝같지만, 남아있는 정신마저 혼미해져 그대로 죄 태워버리고 싶은 욕구만 부글부글 끓었다. 

 

" ...그리고 다시 만났을 때 레프 중위가 비웃은 그 순간 친구놀이는 끝난 줄 알았는데요. "

"아~ 그러셔? 그때 속없이 너 좋다고 챙긴 게, 네가 가이드라서였던 걸, 환멸 나도 꼴에 옛 친구라고. 지금껏 친구로 생각했는데. 고작 그거 갖고 끝내셨다? 와~ 내가 존나게 미안하네. 어?"

 

부글부글 끓는 체내의 열이 머리 위로 몰리는 기분에 마지막 남은 이성마저 아슬하게 무저갱 아래로 한발을 걸쳤다. 그럼에도 남은 한 발이 잡아주고 있을 때, 물었다. 

 

"너 그 생각. 생도 때도 그랬겠다? 센티넬이랑 변이종이 같다는 생각. 근데도 용케 친구라고 생각하긴 했나 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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