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린바람 시리즈

현악합주

안유린 개인로그

현악합주

유린은 처음으로 바이올린 활을 잡던 날을 기억했다. 마치 제 손에 쥐여진 날처럼 벼려진 활의 끝. 떨리는 손 끝. 흥분감을 감추며 자신을 바라보던 어머니의 눈길을 기억했다. 그녀가 바이올린 현을 따라 활을 움직이면, 소리가 울려퍼졌다. 어머니는 기쁨을 표하며 칭찬을 하였다. 유린이라면 어느 곡이든 쉬이 연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유린은 그것이 좋아, 더더욱 연주하고 싶었다. 그렇게만 한다면 자신의 어머니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터였다. 그녀는 자신이 기억하는 짧은 독일어 가곡 가사를 외쳤다. 주위의 사람들과 어머니가 화들짝 놀랐다. 그러니까 7살 아이의 재롱은 언제나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마련이었다.

“다음은 안유린 학생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 입니다.”

16살의 유린이 마주한 벽은, 그러나 견고하고 높아서. 머릿속의 줄이 끊어진 것은 어찌해야할까. 유린은 심사위원과 눈을 마주치고서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그저 외운 음계를 되풀이 할 뿐. 유린아, 오늘도 멋졌어. 멋진 안유린. 그런 말을 하는 어머니와 눈을 마주쳐도, 유린은 그저 눈을 감았다. 피곤하단 말과 함께 복도를 걸어가노라면 콩쿨 연주장은 저마다의 대화로 분주했다. 유린은 떠올렸다. 스스로가 달음질쳐오던 길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유린은 그대로 손을 유리창으로 내질렀다. 곳곳에서 비명이 차오르고, 끝나는 기억. 손등에 남은 흉을 큰 밴드로 가리고 다닐 무렵이었다.

“유린아. 우리 다른 학교로 전학갈까?”

“…아니오.”

유린은 하지만 다른 것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순위권 외의 예술이란. 그렇게도 지리멸렬하여서. 그녀는 악보들을 침대 밑으로 밀어넣어버렸다. 그저 침대에 누워있으면, 찰랑이는 가로등 빛이 창 너머로 일렁이다 사라질 뿐이었다. 유린은 한동안 제 손을 바라보았다. 어스름 아래에 일렁이는 환상. 그녀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그래야만 했다. 적어도 그녀는 그렇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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