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렐리아의 가장무도회02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너, 가장무도회에 가본 적은 있냐?”

“작은 파티 정도라면…요.”

“파티 말고, 데뷔당트 같은 건전한 분위기의 연회장 말고 말이다. 야심한 시간에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마차와 적당히 있어보이기에 열중한 자들이 모이는 곳, 신분이 보장되고 비밀은 지켜지지. 설령 진실을 알아도 모두가 함구하는 게 규칙인 곳이니까. 가장 아름답고 어지러운 향수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곳, 귀족들의 값비싼 유흥장이 바로 가장무도회다.

우습지? 인간의 추악한 본성의 근원지는 악마라는 반증처럼, 이 세상에 가장 먼저 당도하신 게 악마들의 가장무도회라니! 제1구역의 사망자 중 대다수는 제발로 그 지옥을 향해 들어갔다. 경쾌한 왈츠에 3박자로 춤을 추면서 들어간 자도 있고, 탐스러운 향을 좇은 자와 미색을 갈구한 자도 많았지. 보기 좋은 형태로 인간을 현혹시킨다…… 가끔은 고리타분한 노친네들의 말이 정답이었던 거다.

덕분에 잠입하는 입장에서는 아주 수월했어. 발정난 개새끼들 속에 섞이기는 아주 쉬웠거든. 일단 그들은 제 아랫도리 한 풀기에 급급한 나머지 떨거지들에겐 지대한 관심이 없으셔. 퇴폐적인 향수가 섞여 우리가 지옥에서 왔는지 천국에서 왔는지 코가 썩어 구별할 수도 없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니 인세 정보가 있는 악마들의 시선을 살 일도 없었어. 뭐, 그나마 걱정인 건 체형이었는데 그마저도 큰 놈, 작은 놈, 중간 놈 골고루 섞인 터라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가장무도회 컨셉에 맞게 가면도 제멋대로 치장한 놈들이 많더군. 변주를 기깔나게도 주셔서 이성종족인 나로서는 지옥 생물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이해하기도 싫었고?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 거다. 제1구역의 가장 큰 핵 보유 용의자, 마담 모렐리아는 도대체 이중에 어딨는 거지? 도무지 구별할 방법이 없었어.“


“……망할.”

다이아몬드로 치장된 샹들리에가 강하게 내리쬤다. 한여름의 오후처럼 머리 위로 이글거리는 것이 마치 태양 같았다. 정수리가 이글이글 익는 것 같는 기분이었다. 반짝이는 귀한 것은 다 좋아하지만 도저히 고개를 들어 저 화려한 장신구를 구경하고픈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입구에서부터 풍기는 기름진 음식 냄새와 퀘퀘한 시가 향, 바닐라 에센스와 꽃이 잔뜩 들어간 향수 향이 섞여 속이 울렁였다. 당장이라도 속을 게어내고 싶었다.

“헉슬리 씨, 저, 토할 것 같…….”

아름다움 속 모순된 악취를 맡는 건 비단 자신만이 아니었다. 팔짱을 낀 벡키의 팔이 후들거렸다. 양 가면 낯은 보이지 않지만 상상이 갔다. 차라리 쓰레기장 안에 있는다면 모를까, 값비싼 사치품들의 혼종에 벡키는 유독 약했다.

“웁.”

“야, 야, 야, 야. 제발, 조금만 참아 봐!”

“우욱…….”

신을 찾는 가장 간절한 순간 순위권이다. 순간 기지를 발휘하여 인파를 뚫고 가장 가까운 테라스로 벡키를 끌고 나갔는데, 오늘 쓸 운이란 운을 다 소진한 것 같았다. 쌀쌀한 바람이 타이밍 좋게 우리를 반겼다. 덜컥. 무거운 유리문이 닫히자 벨벳 커튼이 스스로 그 위를 덮었다. 테라스 난간에 몸을 맡긴 벡키가 유난히 처량했다. 호기롭게 무도회장에 발을 디딘 아가씨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무슨 냄새가 이렇게 나요. 진짜, 너무 역하다고요.”

벡키가 두어 번의 시도로 양 가면을 들어올렸다. 헛구열질로 인한 고생이 눈가에 훤했다.

“섞여서 구리긴 한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 않냐?”

“그 정도로 치부할 정도가 아니에요! 헉슬리 씨 코 막혔어요? 냄새가 안 맡아져요?”

“엄살도 자랑이다. 너 향수 섞인 냄새 처음 맡아 본 애새끼마냥 왜 그래?”

아이씨…. 벽에 대화하는 기분이야. 벡키가 작게 지껄였다. 두 귀도 한 코도 멀쩡했으나 딱히 말꼬리를 잡지 않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소대의 두 수인보다 감각이 예민한가 보다라고 구름처럼 가볍게 스쳤다. 또 말마따나 그 과장스럽고 특별한 역함을 느끼진 못했기 때문이다.

봄바람이 뺨을 스쳤다. 달빛을 머금고 하늘을 향해 활짝 고개를 내민 꽃무리들로부터 불어왔다. 향긋하지만 살갗에 질척하게 달라붙는 감각이었다. 마냥 좋은지고 감상할 풍경이라기엔 지나치게 화려했고 아름다웠으며 그렇기에 이질적이었다.

그때, 곡률적인 흐름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제비꽃 향이 났다.

발도하지 않았다. 벡키 역시 파묻힌 고개를 살짝 틀었다. 이 향을 알고 있었다.

“….”

살랑거리는 달콤한 악취를 등진 고양이 가면, 게빌이 가볍게 난간 위로 착지했다. 무감한 시선이 나를 지나 아르마딜로처럼 웅크린 벡키에게로 향했다. 그가 코를 킁킁거렸다.

“…!!!”

코를 부여잡고 주춤거린 게빌의 몸이 중심을 잃었다. 몸의 축이 뒤로 완전히 나빠지기 전, 다시 한 번 익숙한 인영이 뚝 떨어졌다.

“엄살.”

퍽, 둔탁한 발길질에 게빌은 요란스럽게도 앞으로 휜 몸을 감아 대리석 바닥을 굴러 멋지게 착지했다. 상냥한 폭력이 게빌의 목숨을 살렸다. 얼토당토없는 이유로 하나뿐인 목숨을 소진할 뻔한 게빌이 멋쩍게 목을 긁었다. 모르는 척 넘어갔다. 동료의 뻘짓을 눈감아주는 나, 꽤나 젠틀하다.

“살아있어서 유감이네, 단장.”

“걱정 고맙군. 헉슬리.”

경쾌한 분위기였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북풍에 월화미인이 담겨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생과 사의 경계만 아니었더라면 더할나위 없이 좋았겠다. 오케스트라의 다장조가 시작됐다. 슈 단장이 입을 열었고 바이올린이 현을 그었다.


“벡키는 양, 단장은 개, 게빌은 고양이 그리고 나는 까마귀. 나름 황태자 전용 살롱에서 특별히 제작한 거다? 신성소대 양반들은 꿈도 못 꿀 어마무시한 금액이 들어갔단 말씀.”

“이 쬐깐한 가면에… 진짜요?”

“아니? 거처와 가장 가까운 세탁소에 대강 의뢰했다. 미감은 볼만 하다만 원단이 싸구려인 게 거슬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컨디션도 회복할 겸 근 한 시간 동안의 정보를 추합해봤다. 나와 벡키가 중앙홀, 남은 둘이 휴게실을 거처 본관 안으로 잠입했다. 알다시피 이쪽은 건질거리가 없었어. 더럽게 느글거리고 고약했지만 예상한 바였으니 특이점이 안 보였지. 유난히 벡키가 멀미로 고생한 게 전부였고.

다행이도 단장네는 유의미한 정보를 물었지.

물론 유의미하다는 게 언제나 긍정적이진 않잖아?

우리도 세쌍둥이가 부군을 게걸스럽게 씹어먹었단 이야기를 썩 유쾌하게 듣진 않았거든.“


굶주린 들개 같았다. 새끼가 아비를 물어뜯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있던 것으로 보아 시간이 오래 경과되지 않은 것 같다. 번지는 가설 하나, 부인의 사주, 둘, 부군의 자살, 셋, 세쌍둥이의 반항이 가장 유력했다.

[사용인조차 그를 주인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모렐리아는 그의 것이 아니다. 초라한 옥탑방조차 언제든 빼앗길 수 있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666도서관에서 발견한 제1구역 모렐리아의 가장무도회 발췌와 같이 부군의 영향력은 매우 미미하다. 만약 부인이 부군을 제거하고 싶었더라면, 사용인을 사용하는 등 간단한 방법을 시행하였을 것이다. 첫 번째 가설에 의거하면, 특별한 악감정이나 이유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두 번째 가설의 경우 마찬가지로 특별한 이유가 동반되리라 추측했다. 가지를 내려 또 하나, 부군 자신의 죽음이 스스로에게 자유롭지 않아 세쌍둥이를 이용했다. 가지를 내려 또 둘, 자신의 죽음이 부인에게 있어 또는 이 구역에게 있어 마이너스 작용을 하는 고의적인 선택이다. 둘 모두 양립할 수 있었다. 부군은 부인에게 좋은 감정 대신 질투, 분노 등 지옥에서 온 것 같이 파란 세상을 살았으니 이유야 차고 넘쳤다.

[부인은 자식에게 관심이 없다. 파티, 술, 음악, 4분의 3박자 속 새끼를 챙기는 마음이 낄 공간은 없다.] 모렐리아 부인은 자식에게 무관심한 부모다. 만약 그 또래처럼 부모의 관심을 끌고 싶은 인정욕일 수도 있다.

오케스트라의 화음이 멈췄다.

홀 안이 꺼졌다.

“무도회가 멈췄어요.”

커튼 너머 칠흑이 빛났다.

“에라이, 벌써 들켰네.”

쾌락은 흰 도화지다. 강한 빛깔로 범해가는 과정이 가장무도회다. 누군가 멋대로 도화지에 찬물을 부어버리면 화가는 화가 나기 망정이다. 특히 불순을 혐오하는 부인이 얼마나 분노했을지, 감히 예상할 수 없다.

커튼을 열어젖혔다. 오색의 밝은 샹들리에가 발콘 입구 앞에 떨어졌다. 유리파편과 금속이 나뒹굴어 미처 끝내지 못한 곡의 엔딩을 찍었다. 발치로 튕긴 조각 금 사이 조각난 얼굴이 스쳤다. 어둠이 잠긴 홀은 갈기갈기 찢긴 드레스들로 가득했다. 정장들이 테이블마다 장식처럼 꽂혀있다. 개중 드물게 인간이 보였다. 관절이 꺾인 채 행복한 미소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죽음을 인식하지 못한 듯했다.

레드카펫이 진득했다. 넓은 중앙홀에 단 네 명의 발자국만이 울렸다.

아무도 없었다.

나무 없는 숲에 은신하긴 불가능하다. 문제는 파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즉, 이쪽의 기척이 들키는 건 시간 문제다.

“무도회가 끝나면, 주최자인 모렐리아 부부가 마지막 작별인사를 한다. 송별한다. 우리의 마지막을 고한다.”

“이 지랄맞은 무도회가 영원하는 이유죠. 그럴 일은 없었고 없고 없을 테니까요.”

단장의 독백에 벡키가 날카롭게 대꾸했다. 마침 부군도 돌아가셨으니 부부로 묶일 일은 평생 없겠네요. 좋다며 빈정거렸다. 특별히 단장이 밉보인 건 아니다. 예상과 동부 제국만큼 멀어진 이례적인 상황과 드레스 끝단부터 질척거리는 감각이 거슬렸을 뿐이다. 특히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치장을 혐오하는 신경증의 한계였다. 여기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신기록이다. 종이장처럼 찢어지는 저 드레스 자락을 보아라. 싸구려 유리알 장식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너덜너덜한 드레스-드레스라고 부를 정도도 못된다. 저건 겉치레다-사이 까마귀가 반짝였다.

까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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