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Amazarashi를 계속해서 듣고 있는가?

21.10.30 작성.



※철학에 대해서 깊게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최선을 다했으나 이론의 이해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지적은 덧글이나 쪽지로 부탁드립니다.


│Amazarashi와 나의 만남

2013년 4월. 나는 처음으로 amzarashi를 알게 되었다.

그때 들은 노래는 러브송이었다.

처음에는 노래에 실린 박력과 리듬이 귀를 잡아끈다고 생각했다. 가사를 단숨에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호소력이 짙다는 건 쉽게 알 수 있는 노래였다. 그 와중에 몇 줄의 가사가 선명하게 다가왔다.

愛すら知らない人が 居るのは確かだ

아이스라 시라나이 히토가 이루노와 타시카다

사랑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それを無視するのは何故だ それを無視するのが愛か?

소레오 무시스루노와 나제다 소레오 무시스루노가 아이카?

그걸 무시하는건 어째서냐 그걸 무시하는게 사랑인가?

愛こそ全て 信じ給え

아이코소 스베테 신지타마에

사랑이야말로 모든 것 믿어나가라

그 가사만을 이해했을 때에는 노래가 사랑의 가치나 소중함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체 가사를 찾아보니 분위기는 내가 상상한 것과 전혀 달랐다. 통째로 무덤이 된 마을, 병에 걸린 여동생, 돌아오지 않는 형. 비 오는 날 우산을 살 형편도 되지 않는 환경. 암울하고 어두운 이미지들이 짧은 단어들과 함께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쳐지나간다. 그럼에도 사랑을 사야한다고 외치는 목소리는 그 말 자체만으로 현대사회에 흐르는 물질만능주의와 그에 대한 비판을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다. 마지막 한 줄은 2021년의 내가 그럴 듯하게 덧붙인 것이다. 2013년의 나는 그런 것을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머리가 여문 인간이 아니었다.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러니까 당시의 내가 느낀 것은 파노라마 같은 이미지와 깊은 목소리에 대한 인상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그 가수에게 흥미를 가지고 다른 노래를 찾아보기에는 충분했다. 그렇게 나는 텅 빈 하늘에 짓눌리다(空っぽの空に潰される)와 이름 없는 사람(ナモナキヒト), 폭탄을 만드는 방법(爆弾の作り方)을 들었고 마침내 amazarashi에 '입덕'했다.

그로부터 약 8년이 지났고, 나는 그동안 amazarashi의 앨범 가사들을 번역했고 틈틈이 인터뷰도 번역해서 올리게 되었다. 그동안 발매된 앨범들을 아마존 직배송 혹은 배송대행 사이트 등을 이용해 다수 구매했음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그들이 내는 앨범이라면 곧장 구매할 의향이 있다. 내가 그동안 좋아한 뮤지션은 상당수 존재하지만 이렇게까지 하는 이들은 솔직히 말해 amazarashi가 처음이자 유일한 존재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처음으로 amazarashi를 들었을 때에는 국내에 그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다고 말하기 힘들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 밴드를 알리겠다며 열심히 가사를 번역했다. 그 근간에 깔려있던 것은 amazarashi를 향한 나의 애정이었다. 이 밴드가 좋다, 노래가 좋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

그러나 나는 내가 『왜』 그들을 좋아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들의 음색, 가사, 시상詩想에 강한 인상과 감명을 받으면서도 내 마음의 어떤 부분이 무엇 때문에, 어떤 식으로 반응하고 있는지 전혀 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가사가 좋으니까」, 「목소리가 마음을 울리니까」, 「다른 이들과는 무언가가 다르다」같은 생각만 했을 뿐.

다만 이번에 좁은 식견으로나마 그들의 시상詩想에 다가갈 수 있는 철학을 알게 되었으므로, 약간의 글을 써보고자 한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장 폴 사르트르라는 실존주의자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이걸 알기 쉽게 풀이하자면 가위나 스테이플러 같이 "목적(본질)"에 맞춰 존재하는 무자각적 존재와 달리 자각적 존재인 인간은 존재하는 "목적(본질)"보다 "존재(실존)"이 앞선다는 뜻이다. "존재"와 "자아"가 선행하는 존재인 인간은 「그렇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도구나 식물과는 다르다. 그는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본질을 직접 만들어나갈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이 제 삶의 창조자와 같다는 의미로도 풀어쓸 수 있다.

물론 인간이 제 삶의 모든 조건을 일일이 선택할 수는 없다. 애당초 탄생조차 인간 자신의 선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우연과 불안의 틈바구니에서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하다못해 자신의 마음가짐이라도 선택할 수 있다. 사르트르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인간의 주체성이 발휘되고 자신의 본질을 결정지을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고 보았다.

어떤 것을 선택하여, 그 선택에서 이어지는 일정한 필연성을 스스로 완수한다. 그리하여 무력하고 더럽혀진 현실의 자신, 기존의 일상적인 자신에서 벗어나 "밖으로 넘어가는" 자기초월이라는 과제를 적극적으로 달성하고자 결의한다. 이것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주체성이자 자유이며,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말의 주요 골자가 된다.

철학 이야기를 길게 했으니 이제 본래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혹자는 amazarashi를 이해하는데 사르트르가 왜 필요한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amazarashi의 기반을 이루는 철학은 실존주의다. 이것은 amazarashi의 보컬이자 작곡·작사를 담당하는 아키타 히로무가 만들어낸 가사를 몇 줄 살펴보면 알아차릴 수 있다. 그 대표격이라고 생각하는 미래가 되지 못했던 그 밤에게(未来になれなかったあの夜に)의 가사를 일부 살펴보자.

夢も理想も愛する人も 信じることも諦めたけど

유메모 리소오모 아이스루 히토모 신지루 코토모 아키라메타케도

꿈도 이상도 사랑하는 사람도 믿는 것도 포기해버렸지만

ただ一つだけ言えること僕は 僕に問うこと諦めなかった

타다 히토츠다케 이에루 코토 보쿠와 보쿠니 토우 코토 아키라메나캇타

딱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 나는 나에게 질문하는 걸 포기하지 않았어

자신이 자신에게 묻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고, 그걸 채우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고, 주체성을 가지며 실존하기 위해 발버둥쳤다는 의미다. 아는 사람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아키타 히로무는 고교 졸업 이후 한 번 도쿄로 상경하였다가 꿈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한 채 고향으로 돌아온 경험이 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꿈을 향해, 그만두고 좌절한 음악을 다시 한 번 시작하고 유지하는 것은 상당한 마음의 부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키타 히로무는 좌절하고 현실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대신 자신의 꿈을 향해 다시 나아가는 것을 택했다. 쥬브나일(ジュブナイル)의 가사를 보자.

そこから一歩も動かないのなら 君は「侮辱された人間」だ

소코카라 잇포모 우고카나이노나라 키미와 부죠쿠사레타 닌겐다

거기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면 너는 「모욕당한 인간」이야

そこから一歩 歩き出せたら 君は「負けなかった人間」だ

소코카라 잇포 아루키다세타라 키미와 마케나캇타 닌겐다

거기서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다면 너는 「지지 않은 인간」이야

제목인 쥬브나일juvenile은 청소년을 뜻하는 영어단어지만 그 내용은 사회인이 듣기에도 무리가 없다. 그 이유는 노래의 가사가 청소년들의 마음을 위로할 뿐만 아니라 꺾여버린 마음으로라도 힘을 내어 나아갈 것을 주장하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좌절을 겪지 않고, 괴로운 심정을 맛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나 꿈을 잡기 위해 달려간 아키타 히로무는 우리에게 다시 일어설 것을 노래한다. 우리는 amazarashi의 노래를 들으며 그의 결심을 조금 나누어 받는 셈이다.

│그러니까 다시 한 번

amazarashi가 노래하는 것은 한결같다. 「자신을 포기하지 마.」주체성을 잃지 말라는 메세지는 생명에 걸맞아(命にふさわしい)나 오래된 SF 영화(古いSF映画), 혹은 구멍을 파고 있어(穴を掘っている) 와 같은 곡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amazarashi의 이름 자체가 <우리들은 비를 흠뻑 맞고있지만(雨曝し) "그래도">라는 부분을 노래하고 싶어서 지어졌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닐 것이다. 현대 사회 속에서 마모되어가면서도 자신을 스스로 정의하고 그에 따른 과제를 실천하는 것. 그 모든 궤적이야말로 당신이 당신으로서 세상을 살아온 증거이자 미래를 위한 원동력이라고, 아키타 히로무는 노래한다.

心を失くすのに値した その喪失は

코코로오 나쿠스노니 아타이시타 소노 소오시츠와

마음을 잃어버리기 알맞았던 그 상실은,

喜びと悲しみは 引き換えじゃなかったはずだ

요로코비토 카나시미와 히키가에쟈 나캇타하즈다

기쁨과 슬픔은 서로 맞바꿀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어

道すがら何があった? その答えこそ今の僕で

미치스가라 나니가 앗타? 소노 코타에코소 이마노 보쿠데

길의 도중에는 무엇이 있었어? 그 해답이야말로 지금의 나 자신

人が人である理由が 人の中にしかないのなら

히토가 히토데아루 리유우가 히토노 나카니시카 나이노나라

사람이 사람으로 존재하는 이유를 사람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면

受け入れてはいけない事 それは君自身が決めなきゃ

우케이레테와 이케나이 코토 소레와 키미 지신가 키메나캬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것 그건 네 자신이 정해야지

人生そんなもんなのかもね 諦めは早けりゃ早い方がいい

진세이 손나몬나노카모네 아키라메와 하야케랴 하야이 호오가 이이

인생 그런 걸지도 모르지 포기하는건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

さもなきゃ 馬鹿な人間になってしまうぜ

사모나캬 바카나 닌겐니 낫테시마우제

그렇지 않으면 멍청한 인간이 되어버릴걸

その後に及んで諦めの悪い人間に 人間に

소노 고니 오욘데 아키라메노 와루이 닌겐니 닌겐니

그게 심해지면 단념할 줄 모르는 인간이 인간이

諦めの悪い人間になってしまうぜ

아키라메노 와루이 닌겐니 낫테시마우제

단념할 줄을 모르는 인간이 되어버리겠지

간단히 말해 나는 amazarashi의 그런 부분에 강하게 이끌린 셈이다. 좌절이나 절망, 우울과 같은 단어로 점철되어있는 인생이었다. 살아가는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살아갈 이유를 생각하면 할수록 차라리 사라지는 편이 모두를 위해 나를 위해 올바른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나는 살아있으니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모든 환경이 나를 비난하고 책망하고 있는데도. "차라리 죽지 그래." 나 자신을 향해 그런 말을 수십 번씩 반복하는 것은 특이한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살고 싶었다. 얼마 안되는 행복을 손가락으로 그러모아 살고 싶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고 여겼다. 지금도 내 안 어딘가에서 그런 어린애 같은 꿈이 이루어질 리 없다고 비웃는 소리가 들린다. 너 따위가 어떻게 할 수 있겠냐고 차갑게 묻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럴 때 amazarashi의 노래를 듣는다. 마음 속까지 울려퍼지는 노랫소리를 듣는다.

한 번.

한 번.

다시 한 번.

って言う諦めの果てで「それでも」って僕等言わなくちゃ

테 이우 아키라메노 하테데 소레데못테 보쿠라 이와나쿠챠

그렇게 포기했다 한들 우리는 「그래도」 를 말하지 않으면 안돼

遠くで戦っている 友よ 挫けるな

토오쿠데 타타캇테이루 토모요 쿠지케루나

저 멀리서 싸우는 친구여 꺾이지 마

이것이 내가 amazarashi를 계속 듣고, 기대하는 이유다. 앞으로 그들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amazarashi의 음악에 담긴 실존주의의 흔적을 더듬을 것이다. 나 또한 당신처럼 좌절했지만 이겨낼 수 있었노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마음의 힘을 얻게 되기를 바라면서. 내가 즉자적 존재가 아닌 대자적 존재가 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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