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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노미 MV]결국 어떤 부모도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2023. 02. 08 작성.

*개인적인 생각을 적은 글입니다. 가볍게 읽어주세요.

* amazarashi 안티노미 MV 인형극 대사 번역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존재한다. 그 배경에는 그를 이 세상에 탄생시킨 부모가 있다. 무에서 유가 창조될 수 없듯이 세상에 부모 없이 태어나는 자는 없고 그렇게 우리는 사회의 최소단위인 가족을, 혹은 그에 준하는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간다. 공동체에 소속된 어린 존재는 자신이 지내는 공간과 접하는 인물 등을 세상 전부라고 인식하며 사회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습득한다.

그렇게 성장하다보면 자신이 키워지던 공동체를 벗어나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건 성인식과 같은 시련이기도 하고 졸업과 같은 의례행사이기도 하다. 그 순간을 통과한 순간 우리는 자신의 행동을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존재가 된다.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었던 어린 시절을 졸업하고 의젓한 어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컨테이너에서 자동으로 출하되는 제품이 아니다. 남들과 똑같은 과정을 거쳤다고 해서 모두가 저절로 어른스러운 마음을 가지지는 못하는 법이다. 애초에 어른스러운 마음이란 뭘까?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뭘까? 아버지, 어머니,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태어난 건가요?

나는 기계. 우리들은 기계.

우리들은 적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군단.

우리들은 매일 매일 적을 죽여나간다.

인형극 안티노미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은 기계다. 기계는 인간과 달리 철저히 목적을 위해 설계되고 만들어지는 존재다. 그래서 주인공은 전쟁에 나가 싸우라 하는 아빠와 엄마의 말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주인공의 이러한 신뢰와 달리 아빠와 엄마는 주인공의 시각과 청각을 빼앗고 종국에는 무언가를 말할 입마저 빼앗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빠와 엄마가 자신들을 지켜주지 않았음을 깨달은 주인공은 부모를 몰아붙여 파괴시키고 만세를 부르지만 자신이 또 다시 실패했음을 깨닫는다.

안티노미의 내용은 기계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나 그 극을 보는 우리들의 마음에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 그 이유는 인형극 속 주인공이 보이는 행보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도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부모의 말을 의심하지 않는다. 아이는 부모의 말을 의심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부모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아이 또한 언젠가 부모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 없음을 깨닫는다.

어쩌면 이 세상 어딘가에는 정말로 완벽하고 완전한 부모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아이의 잘못을 알려주고, 아이의 기쁨에 함께 기뻐해주는 부모 말이다. 하지만 그런 완벽한 부모도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미래의 길을 모두 알려줄 수는 없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대다수의 부모는 아이보다 오래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인형극 속 주인공은 아빠와 엄마를 다시 만드는 것으로 부모가 남긴 공백을 극복하려 한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주인공은 108번째의 시도가 전부 실패할 정도로 오랜 시간동안 완벽한 아빠와 엄마를 찾아 헤매지만 완벽한 부모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리고 독백한다. 어쩌면, 그런 사람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이 세상에 내던져져 홀로 살아가며, 누구도 의지하지 못하는 게 불안하고 쓸쓸해서 엄마와 아빠를 찾고 있는 거라고.

우리도 똑같다.

우리는 스스로 지구에 선택하기를 바라며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를 낳기로 결정한 것은 부모의 선택이지 우리 자신의 선택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에게 생명을 준 부모를 따르며 살아간다. 하지만 아이를 완벽하게 길러내는 부모는 많지 않다. 적어도 나는 부모에게서 적지 않은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나는 부모를 떠날 수 없었다. 버릴 수 없었다. 1. 부모는 나에게 상처를 준다. 2. 나는 그들을 사랑해야한다. 마음속에서 명제가 충돌하고 안티노미가 발생한다. 결국 나는 감정을 버리기를 선택했다. 부모님의 상처를 막을 길이 없으므로 내 감정의 스위치를 내리고 사랑을 꾸며낸 것이다.

나는 부모님에게 정신적으로 버림받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부모님의 존재를 갈구했다. 혼자 남는 것이 두렵고 무서워서 내 감정을 짓밟으며 불완전한 부모를 만능의 존재로 재인식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돌리려 해도 사실은 사실로서 존재했다. 부모는 나를 상처 입혔다. 나는 상처 입었다. 이 세상에 나를 태어나게 한 존재들이 나를 괴롭게 한다는 사실은 나를 오랫동안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이럴 거면 왜 태어난 걸까. 태어난 의미가 뭘까.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의미는 사실 없는 게 아닐까?

인형극의 엔딩 또한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나에게 깊은 허무와 슬픔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에, amazarashi의 안티노미가 흘러나온다.

意味を捨て 意志をとれ 生き延びて 生き延びて 息をするんだ

의미를 버려 의지를 가져 이렇게 살아 이렇게 살아서 이 숨을 쉬어

自分殺し生きている アンチノミー アンチノミー 心のバグだ

자신을 죽이고 살아있어 안티노미 안티노미 마음의 버그인거야

의미를 버려라. 의지를 가져라. 살아라. 살아서 숨을 쉬어라. 아키타 히로무의 메시지는 심플하지만 강렬하다. 이전 amazarashi와 실존주의에 대해서 쓴 글에서 적었던 사실이지만 아키타 히로무는 그 누구보다도 강한 회의감과 우울 속에 살아가다 다시 일어난 사람이다. 그러한 사람이 이렇게 외치고 있다. 살아갈 의미(목적)에 매달리지 마라. 살아가려는 의지를 가져라. 자신을 죽이지 말고,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라.

어떻게 보면 이 노래는 인형극 안티노미의 주인공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보내는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다. 세상과 부모는 불합리한 명제를 제시하며 우리의 감정을 짓밟는다. 우리는 부모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혹은 보호받고 싶어서 자신의 감정을 짓밟고 자아를 죽이며 이율배반의 명제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는 분노하고 눈물 흘려야 마땅하다. 사람은 그러한 방식으로 존재해야하기 때문이다.

人として憤れ 感情を踏みにじる全てへ

사람으로서 분노하라 감정을 짓밟는 모든 것에게

機械仕掛けの涙 それに震えるこの心は誰のもの

기계장치의 눈물 그 눈물에 떨리는 이 마음은 누구의 것일까

그 인형극을 보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주인공의 입장에 공감하고 슬픔을 느꼈을 것이다. 부모의 무자비한 행동에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부모를 파괴시켰을 때 우리는 통쾌함보다는 슬픔을 느낀다. 남겨진 주인공의 고독과 슬픔이 하염없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생각한다. 주인공이 행복하기를. 평온함을 얻을 수 있기를.

만약 당신이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다면 당신은 어엿한 의지를 가진 한 사람의 인간이다. 그 순간에 느낀 슬픔과 분노, 행복을 바라는 마음은 어느 누가 시켜서 기계적으로 나올 수 있는 반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누군가의 행복을 비는 당신의 의지이자 다른 무엇보다 순수한 당신 자신의 마음이다. .

결국 어떤 부모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만약 그들이 아주 현명한 사람이어서 이 세상을 이겨나갈 키워드를 미리 알려주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당신에게 주어진 과제이니까. 마음껏 망설이고 고민해도 좋다. 그러다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하더라도 좋다. 그렇게 생각하고 고뇌하며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의지야말로 당신이 사람으로서 존재하는 증거이며, 우리를 슬픔에서 구원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君と僕の違いは何? 痛み喜びもこんなに似てる

너와 나의 차이는 무엇일까? 아픔도 기쁨도 이렇게나 닮았어

似てるから求め合う? 憎しみ合う?

닮았기에 서로 원하는걸까? 서로 미워하는걸까?

そういえば、この憎しみもよく似てる

그러고보면 이 미움도 쏙 빼닮았네

『니어 오토마타』를 자세히 모르지만 안드로이드와 기계생명체가 대립하는 것만을 알고 있었던 나는 이 가사가 작중에서 서로 대립하는 두 존재를 가리킨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인형극 『안티노미』의 말미에서 이 가사가 흘러나오는 순간 너와 나는 인형극 속 주인공과 모니터 속 우리로 등치된다. 아픔도 기쁨도 이렇게나 닮은 우리는 서로의 행복을 원하기도 하고 혹은 서로를 미워하기도 해. 하지만 이 미워하는 마음까지도 꼭 닮았어. 그렇다면 우리의 차이는 무엇일까?

涙声 離せない あなたの手 あなたの手 まだ温いんだ

울먹이는 소리 놓지 않을거야 당신의 손 당신의 손 아직 따뜻해

屍として生まれ アンチノミー アンチノミー 世界のバグだ

시체나 다름없이 태어나 안티노미 안티노미 세계의 버그인거야

답을 내는 대신에 우리는 울먹이는 이의 손을 맞잡는다. 서로의 손은 아직 따뜻하다. 삶의 의미가 없는, 혹은 삶의 의미를 강제로 부여당한 우리는 시체나 다름없이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있다. 살아있는 한 의지와 마음을 가진다. 의미에 대한 맹목을 버리고 스스로 살아가기를 선택한다면, 그 의지가 우리를 진정으로 살아가게 하리라.

嬉しくて笑い、悲しくて泣き 

기뻐서 웃게 되고, 슬퍼서 울게 되고

初めからそう設計されてんのかな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되어 있는 걸까

だけど痛いと泣く心を 僕は疑えやしないよ

하지만 아프다고 눈물 짓는 마음을 나는 의심하지 않을거야

자신을 의심하지 않고.

의지와 함께 살아가기를.

그리고 행복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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