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훼
*주의: 신체 훼손, 절단 등
사빈 유나는 외출을 마치고 늦게 귀가하고 있었다. 해가 완전히 저문 시간대에 돌아오는 것은 처음이었다. 오늘은 물건을 구하기 위해 많은 곳을 돌아야 했지만 결과적으로 사빈 유나는 만족했다. 유명 브로커인 어머니의 이름 없이도 오래된 서적을 구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아마 거래의 최종 단계에서 물건을 가지고 있던 자가 자신을 알아봤다는 사실은 평생 모를 것이다.— 고철마을 어디를 가도 그렇듯, 길거리는 사람이 가득했고 그런 사람 틈에서 누구 하나라도 건져보기 위한 호객행위로 혼잡했다. 이 모습은 밤에도 그대로였으며 따라서 사빈 유나는 어떤 위화감도 느끼지 못했다. 이런 긴 외출을 기다리다 못한 용병들이 마중을 나오겠다고 연락했을 때도 유난이라고 생각했다.
약속한 건물이 코앞이었다. 바로 몇 걸음이면 익숙한 얼굴이 보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옆 골목에서 애원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사빈 유나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발을 멈췄다. 그 안으로 들여다보이는 것은 사빈 유나가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팔을 톱으로 개조한 자가 사람 한 명을 붙들고 목을 잘랐다. 그의 신체가 바닥에 떨어지자, 옆에 서 있던 자가 능숙한 솜씨로 신체에 붙어 있던 기계 팔 한 쌍을 적출해 챙겼다. 30년이 약간 넘은 사빈 유나가 평생동안 상상한 적 없는 장면. 사빈 유나는 떨리는 다리로 도망쳤으나 발각이 더 빨랐다. 그들은 추격하려 했다. 곱게 자란 듯한 상대를 복잡한 골목길로 몰아넣고 사냥하려 했다. 하지만 사빈 유나가 발을 내딛은 큰길에는 고용주를 마중하러 나온 용병이 있었고, 그들은 순식간에 두동강났다.
용병, 카타나라는 이름을 가진 자는 충격에 떠는 사빈 유나를 어떻게든 진정시키며 집으로 데려왔다. 이런 잡무도 10년 전 사빈 유나의 어머니가 제시한 고용 조건에 포함되어 있었다. 절대로 사람이나 사이보그가 죽는 모습을 보여주지 말 것, 혹여나 사고로라도 이에 준하는 모습을 사빈 유나가 목격했을 경우 즉시 진정시키고 본인에게 연락할 것. 굉장한 과보호에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으나 그만큼 보수가 대단했기에 카타나를 포함한 몇몇 용병들이 이를 수락하며 공생이 이어졌다. 지금 그 공생이 끝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은 카타나는 물론 집에서 대기하던 용병들 안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집으로 돌아온 사빈 유나는 의외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카타나가 발견했을 당시에 비하면 굉장히 침착해 보였다. 그는 가져온 책 두 권을 거실 서재에 꽂고, 테이블에 올려두었던 책을 아주 느리게 읽은 뒤, 평소와 같이 ‘다들 잘 자’ 라는 인사를 전하며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연락을 담당한 디웨이가 좀 어떻냐고 물을 새도 없었다. 이 시점에서 사빈 유나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사빈 유나는 온갖 매연과 맞닿았을 얼굴을 씻어내고 한참동안 거울을 바라보았다. 등 뒤로 잘린 목이 떠다니며 ‘제발 살려줘!’ 하고 외쳤다. 이 마을에서는 살인과 죽음, 강도가 이토록 흔한 것이었나? 그는 욕실에서 나와 다시 옷을 챙겨입었다. 그리고 카타나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는 오늘 자신이 보는 앞에서 두 명을 살해했다. 그것은 정당한 행동이었다. 상대는 범죄자고, 카타나는 자신을 지켜야 했으므로 당연한 행동이었다. 사빈 유나가 아까의 사건을 곱씹으며 기다렸지만, 방문 안에서는 응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사빈 유나는 아래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두컴컴한 거실에서 카타나와 디웨이가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괜찮은 걸까? 진정되어 보이긴 했어.”
“하지만 아무 말도 안 했잖아. 보통은 오늘은 어디서 무슨 일이 있었고 누구를 만나서 무슨 대화를 했다며 줄줄 늘어놨는데.”
“충격이 아예 없어지지는 않으니까…”
“저기…”
그 틈으로 사빈 유나가 끼어들었다. 두 사람은 그의 옷차림을 보고 당황했다.
“자러 간 거 아니었어? 왜 그대로 내려온 거야.”
“잠깐 나갔다 오고 싶어서. 같이 가 줄거지?”
“이 밤에?”
“응.”
긴 정적 끝에 카타나는 디웨이에게 눈짓했다. 자기가 다녀오겠다는 신호였다. 이렇게까지 무리한 부탁은 고용 이후로 처음이었으나, 카타나는 이 또한 설명할 기회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지금 11시를 조금 넘겼으니까… 자정이 되기 전에 돌아오는 거야.”
디웨이가 애써 말리지 않고 말했다. 사빈 유나는 긍정하며 문을 나섰다.
아직 거리에는 열기와 활기가 가득했다. 아주 조용해지려면 몇 시간은 더 기다려야 했다. 돌아올 때에 비해 취객이 늘었고, 노점 몇 군데는 문을 닫았다는 정도의 차이만이 있었다. 사빈 유나는 길을 걸으며 마주치는 모든 골목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은 텅 비어있기도 했고, 사람이 한 명 서서 흡연을 하고 있기도 했고, 아까와 같은 폭력이 펼쳐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또 달려든 사람을 카타나가 베어넘겼을 때 사빈 유나는 주먹이 떨릴 때까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렇게 열 개 블록을 지나고 나서 사빈 유나는 조용히 물었다.
“팩토리는 뭘 하는 거지?”
“팩토리는 이런 일에 개입하지 않아. 팩토리에 해를 끼치거나, 자렘에 도전하거나, 살아 있는 상태에서 신체 부품을 빼돌리는 정도… 그런 게 팩토리에서 규정하는 진짜 범죄지.”
사빈 유나는 생각이 점점 복잡해졌다. 살해한 뒤 신체 부품을 가져가는 것은 산 사람의 부품을 강탈하는 일이 아니란 말인가? 이미 살해했으니까? 죽은 자를 발견해 뜯어먹은 일이니까?
“유나. 네가 모르는 많은 일들이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어. 지금껏 일부러 말해주지 않은 사실을 이런 방식으로 마주하게 될 줄은 누구도 몰랐지.”
“너희들이 나를 위해 저지르는 살인은 정당하다고 생각했어.”
사빈 유나가 카타나의 말을 끊고 완전히 다른 주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죽어도 괜찮은, 죽더라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은 누가 정하는 걸까? 팩토리? 상황? 자렘?”
카타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어….”
“그러지 않는 게 좋아. 그리고 앞으로는 외출할 때 꼭 누군가와 동행하고, 너무 늦은 시각까지 밖에 있지 마. 이제 돌아가자.”
사빈 유나는 돌아오면서도 다시 그 골목들을 바라보았다. 카타나가 설명을 위해 하는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 생명의 삶과 죽음이 어디에 달려 있는지만이 궁금했다.
밤은 깨어 있을 수만 있다면 사유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제공했다. 사빈 유나는 돌아온 뒤로 전혀 잠들 수 없어 깬 채로 밤을 보냈다. 여전히 머릿속은 생명에 대한 것으로 가득차 복잡했다. 브로커인 어머니는 분명히 이 사회를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20년동안이나, 어쩌면 사빈 유나의 평생동안이나 사회의 이면을 보여주지 않았다. 같은 일을 경험하지 않았으면 해서, 아니면 행복을 안겨주고 싶어서. 직접 물어보지 않는 한 해답은 알아낼 수 없었다.
새벽 4시 55분, 사빈 유나는 깨달았다.
오전 9시, 길에 사람이 들어차고 모든 가게가 문을 여는 시각. 사빈 유나는 유동인구가 많은 가장 큰 길 가운데에 서서 외쳤다. 그 어떤 동행도 없는 채였다. 눈은 광기로 크게 뜨이고, 제스처에는 거침이 없었다. 그는 팔을 넓게 펼치고 첫마디를 시작했다.
“우리를 규명하는 것은 대체 무엇입니까?”
큰 소리로 외치는 데에 몇몇 이목이 집중되었다.
“육체? 정신? 가족? 그것도 아니라면 권력과 돈?”
몇몇 사람이 멈춰 광인에게 집중했다. 연설의 내용 때문이 아닌, 길거리 쇼로 보고 모여든 자들이 더 많았다. 개중에는 디스티 노바도 있었다.
“크흐흐, 아니요, 그 무엇도 우리 개개인을 규명할 수 없습니다! 당신을 보세요. 당신은 사이보그네요. 그렇다면 그 사이보그 육체가 당신이 인간으로서 존재하지 못하게 합니까? … 아니죠? 당신은 인간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당신의 정신은 스스로 사이보그임을 인정하나요? … 그래요, 그렇다면 당신은 인간이기도 하고, 사이보그이기도 하네요. 그런데 그럴 수가 있습니까? 인간이면 인간이고, 사이보그면 사이보그 아닌가요? 대체 어떤 것이 당신을 사이보그이자 인간으로 인식하게 하며, 그 두 개념이 충돌하지 않게 할 것 같습니까?”
사빈 유나의 주위에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귀기울이던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웅성거렸다. 디스티 노바는 그 틈에서 손을 슬쩍 들어올렸고, 사빈 유나는 그를 놓치지 않았다.
“거기, 특이한 안경을 하신 분. 내놓고 싶은 답이 있습니까?”
“아니요, 오히려 답을 어서 내주셨으면 합니다.”
“아하핫, 그렇군요. 역시 빠른 시간 내에 생각해내기에는 어려운 주제죠, 그렇죠?”
사빈 유나는 다시 말을 이어가기 위해 길게 심호흡했다. 물론 이 행동이 그의 흥분과 광기를 가라앉히는 데에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버릇처럼 하는 행동에 가까웠다.
“당신을 규명할 수 있는 건 당신 뿐입니다! 당연한 말이죠! 내가 규명할 수 있는 건 나 뿐이지, 당신 같은 사람들을 몇마디 말을 부려 조종할 수가 없단 말입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내 의지이지, 다른 외력에 조종당한 결과가 아닙니다. 이 광장에서 떠드는 것도 내 의지이지, 누군가가 시킨 일이 아니라고요! 거기, 지나가는 당신! 당신도 말해보세요. 당신의 행선지는 누가 정했습니까? 팩토리, 브로커, 가게 사장, 그런 건 모조리 변명입니다! 당신은 스스로의 의지로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고요!”
이쯤에서 관중이 술렁였다.
“시킨 걸 하고 겨우 밥먹는 게 일상인데 저게 무슨 소리람….”
“어디 잘못 걸린 사람 치고는 깨끗하게 입었는데.”
“스스로의 의지, 말이죠….”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인데, 누구였더라?”
그리고 그 혼란보다도 큰 목소리로 사빈 유나가 외쳤다.
“자신을 규명하지 못하고, 자신의 의지를 알지 못하는 자는 저 자렘에서 떨어지는 고철 쓰레기들과 다름이 없습니다! 자신의 삶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저 틈에 끼어서 죽는 편이 낫지요! 개척해나가지 못하는 자들이 스스로 인간이라 칭하며 살아갈 이유는—”
검날이 회전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빈 유나의 다리가 찢어졌다. 범인은 마지막으로 지목당했던 사람이었다.
“이게, 듣자듣자하니까! 지가 뭐라고 인간이네 마네 훈수질이야!”
사빈 유나는 무릎을 꿇고 손으로 땅을 지탱한 채로 상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당신의 행동은 나로 인한 것입니까? 아니면 당신이 저지르고 싶어서 하는 일인가요? 둘 사이에는 분명히…”
이번에는 허리가 잘려나갔다. 말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그 상태를 본 범인이 주변에 알렸다.
“헛소리 끝났소! 그만 구경하고 꺼지시지!”
군중은 모여들때와 같이 순식간에 해산했다. 단 한 명, 대답을 재촉했던 디스티 노바만이 조각난채로 숨을 거둔 사빈 유나에게 다가갔다.
“수술… 수술이다….”
길거리 사이버네틱 의사가 기괴한 울음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기어나왔으나 시신을 먼저 확보한 것은 결국 디스티 노바였다.
“비키세요! 당신들은 이 자의 가치를 전혀 몰라요. 오직 나만이 알아챘단 말입니다.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을….”
디스티 노바는 사빈 유나의 상반신을 챙겨 즉시 본인의 연구소로 돌아갔다.
“유나! 유나!”
카타나가 온 길목을 뛰어다니며 사빈 유나의 이름을 불렀다. 증언을 종합하면 여자는 광장 방향으로 향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광장에서 사빈 유나는 찾아볼 수 없었다. 비교적 최근에 흩뿌려진 피 냄새만이 났다. 근처 잡상인의 가판을 팍 치며 카타나가 물었다.
“파란 머리에 파란 눈을 한 여자, 봤나?”
“아, 그 사람이라면… 연설을 하다가…”
“하다가! 빨리 말해!”
위협이 들어오자 잡상인이 한껏 떨리는 목소리로 빠르게 대답했다.
“누군가 그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죽이고 말았어. 이상한 안경을 쓴 사내가 상체를 들고 가는 건 봤는데, 나머지 다리나 팔은 어떻게 됐는지 몰라. 정말이야!”
“젠장!”
카타나는 다시 가판을 세게 내리쳤다. 유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어딘가에서 이상한 시술을 받고 돌아오거나, 영영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사빈 리리아한테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벌써부터 골치가 아팠다.
“그 안경을 쓴 사내는 어떻게 생겼지?”
일단은 그자를 추적하는 것이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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