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위한 검을 바치겠다.

욕구가 있었다.

완벽한 조형의 검을 만드는 일, 모방하는 일, 그 실물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검을 만들고 싶었다.

지옥과도 같은 풍경에 앉아 매일 쇠를 두드리며 검을 휘두르고, 무너뜨리고, 버리고, 박아 넣으며, 무던하게 검들을 쌓아 올렸다.

뭐... 쌓아 올렸다, 는 표현보다는 죽은 검들을 묻은 땅 위에서 검을 다시 만들고 있을 뿐인가.

그렇다고 해도 상관 없는 일이었다.

이세노쿠니, 쿠와나의 도공이긴 하나 괴팍한 영감에게 전투를 종용할 이도 없고, 기껏 해봐야 검을 만드는 것 말곤 재능이 없는 나를 불러낼 마스터가 있는지부터가 의문이었다.

그렇기에 그저 욕구에 충실했다.

매끈한 날의 형태로 변모한 시점부터 철의 존재는 지워지나 좋은 검으로 남는다면 누군가의 기억에는 남지 않겠나.

나라는 철은 너를 만남으로 인해 검으로 변모되었다.

너의 첫인상은 어리고 얼빠진 여자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시대에 떨어져 제 목숨 하나 부지하기도 괴로울 녀석이 눈앞의 아이에게 넋이 나가 제 발로 위험으로 달려들었다.

아이의 목숨을 구해준 일은 확실히 감사해야 할 일이었지만 자신의 위치도 자각하지 못하고 마냥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성인에 갓 가까워질 법한 연령대의 아이는 순수했다. 결코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사람을 저버리지 못하고 끝내 그 불에 화상을 입는다고 해도 손을 뻗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모두 없던 일이 되어버린다 해도, 그 안에서 숨을 쉬던, 자신이 만났었던 이들은 존재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처럼.

아이는 그런 순함이 있었다. 그 점이 얼빠졌다.

손이 많이 갔고, 어린 녀석답게 세상에 대해 모르는 점도 많았다. 썩 귀엽다가도 거추장스러웠다. 이 아이가 나름의 모남 없이 자랐다면 제법 괜찮은 보호자가 있었겠지 싶었다.

아이는 얼마 보지 않은 자신에게도 곧잘 친근하게 다가와 " 할아버지! " 하며 미소 짓고는 했다.

작별할 때조차 손이 많이 가는 녀석들이었다. 함께 온 무사는 무인이기에, 아이로 볼 필요는 없었겠다만 둘이 땅을 딛고 있는 모습이 참, 이유는 모르겠지만 눈에 밟혔으므로 그럴 수가 없었다. 제 눈에는 전부 무서움 없이 자라기만 하면 좋을 아이들로 보였으니까.

그러나 다시 만났을 때의 아이는 조금 달랐다.

티 없이 맑은 눈을 하던 곧은 눈동자는 어쩐지 피로와 자책, 죄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꼭 자신이 죄를 지은 것처럼, 금방이라도 눈물을 한 움큼 떨굴 표정으로 자신을 보며 미소 짓고 있었으나 자각은 없어 보였다.

타인의 걱정을 반쯤 거부하는 듯 행동하는 아이가 거울을 마주한다면 한동안 자신을 피해 다닐지도 모를 노릇이라 눈을 감고 모르는 척을 해주기로 했다. 간절하게 만나고 싶었다며, 손을 내밀었고 자신은 그것을 붙잡는다.

아이는 완전히 어린 티를 벗어나지는 않았다. 부드러운 미소는 여전했다. 이채가 돌던 눈동자가 조금 내려앉은 것뿐이었다.

대장간에서 이틀 정도 나가지 않았을 때 아이는 결국 령주까지 써가며 휴식을 권장했다. 거부권이 없으니 따를 수밖에는 없나. 자신과 함께 말을 섞을 때는 그때처럼, 눈이 반짝이고 있어 안심했다고 한다면… 다 늙어서 주책이군.

영령은 살아있는 인간처럼 늙어갈 수 없는데도 감정의 무게나 색은 더욱 짙어졌다. 감각이 느려진 탓에 자각은 더 늦어져 발을 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은 것뿐.

빨갛게 달궈진 쇠를 망치로 내려치며 검의 형태를 잡아간다.

속으로 한숨을 삼킨 뒤 망치질을 그만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쇠를 식히고, 달궈가며 원하는 형태가 나올 때까지 반복했다. 제법 쓸만한 게 나왔다지만 역시 일회용에 불과했다.

역시 이 번민의 영향이 큰 걸까. 그녀를 떠올리면 심장 부근이 묵직하게 움직였다. 아이에게 단순히 관심을 들이는 일과 다르다.

그래서? 이 나이에 그 녀석을 뭐 어떻게 해보겠다고? 자신에게 반문하는 일은 제 생각을 다시 곱씹는 것과 다름이 없는데도 이런 습관이 자리잡힐 정도로 그녀를 생각하는 일이 잦아졌다.

역시 노망이 들 나이가 되긴 했어. 도대체 몇 살을 어린 녀석한테 사랑을 느끼나. 하물며 살아가는 시간의 체감부터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는데.

" 무라쨩? "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부드러운 미소를 덧그린 그녀를 바라본다. 벚꽃을 녹여 만든 긴 머리카락, 총기 섞인 눈동자, 이름마저 부드러움으로 가득한 존재. 네게서는 초원의 풀 내음이 난다. 매일 탄 내, 쇳 내가 나는 자신과는 달랐다.

전하지 못할 마음이나마 갖고 있어도 괜찮은지 의문이 들고는 했다. 영령으로 승화된 자신은 영령, 그것도 어떠한 거창한 미래를 꿈꾸지도 못할 도공이었다.

완벽한 조형의 검을 만들어내고 싶다. 여전히 그 욕망은 속에 박혀 있었다. 매일 쇠를 두드리는 일 역시 그 욕망의 표출에 가까웠다.

그녀의 부름에 대답이 없자 곧 의아한 시선이 제 아래에서 올라왔다. 고개를 저으며 잠시 다른 생각을 했다며 무슨 일이냐 물었다. 손가락으로 손장난을 치던 그녀는 그저 말을 붙이고 싶었단다.

아아. 이거 문제가 제법 큰데.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져 가는 저울에 누군가 순진무구한 낯을 하고서 손가락을 얹고 있었다.

무게를 잡아야 하는 인물조차 자신의 감정의 바름을 찾아 나설 생각을 하고 있으니 이미 진 싸움이긴 하나, 포기할 일은 아니었다. 잘못된 저울을 사용했다면 고치면 그만, 검의 조형이 망가졌다고 그 검의 날을 버릴 것인가? 다시 녹여, 처음부터 만들어가면 될 일이었으므로.

시뮬레이터 룸, 몇 차례의 실험용 검을 휘둘렀다. 뒤에 선 그녀는 피해량 계측을 위한 실험이라며 혹시 이상이 생긴 것 같으면 말해달라고 덧붙였다.

제 눈에도 검을 휘두를 때마다 그래프가 출렁이며 유의미한 기록을 남기는 것이 보였다. 고요한 들판에 불을 지른 것처럼, 미소 하나 걸치지 않은 그녀는 신중했다.

어제 만들었던 검의 여덟 자루가 사멸했다. 완전히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으나 밤새워 만든 검을 꾸준히 죽이는 일은 조금 아쉽다. 다시 만들면 그만이긴 했지만.

" 아. 죄송해요! 역시 무리시킨 거죠! "

" 아니. 그런 건 아니다만. 확실히 나는 전투에 능한 서번트가 아니라서 영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르거든. 네가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했다면 뭐라고는 안 한다. 뭐, 기대한 수준이 아니라면 미안하긴 하네. "

" 아니, 아니요. 그냥… 습관이라고 해야 하나? 계속 꼼꼼히 뭔가를 해야지 안심이라고 해야 하나. 오늘은 여기까지 해도 될 것 같아요! "

" 어린놈이 뭘 벌써 그렇게 걱정이 많아? 원래 그 나이는 친구들이랑 놀 나이 아니냐. 이런 일에 휘말린 녀석이 여태 잘 버텨왔는데 뭐라고 할 인간이 있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겠지. 갑자기 얼굴 보기 싫은 녀석이 떠오르는구만. "

눈치를 보는 것은 그 나이를 짐작하게 만들고는 한다.

대개 필요한 일이라면 어쩔 수 없다며 괴로워하는 이들을 놓고 가기도 하는 어른들과 다르게 아이들은 아픈 사람의 곁에서 몇 차례나 발을 동동거리며 마지못해 앞서가 버린 어른들을 따라갔으니까. 그마저도 뒤를 돌아보며, 눈물을 떨구면서. 너도 여전히 그런 아이였다.

그런 네게 내가 다가가는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썩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런 감정이 무게를 싣고, 생각이 무게를 싣는다고 해도 저울은 쉽게 평행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아무리 나이를 먹고 죽음과 거리가 먼 존재가 되었어도 제 이기심을 놓는 일은 힘든가, 자신을 향한 우스갯소리를 던지며 침대 위에 몸을 던졌다.

그녀의 미소가 심장을 간지럽혔다. 손가락 끝을 구부리자 닿았던 머리카락의 감촉이 생경하다. 사춘기 지난 지가 한참이다, 영감. 어린 녀석한테는 다분한 호의와 다정함 정도면 충분하다.

시답지 않은 연정을 들이밀어 아이를 부담스럽게 하거나 다른 어른들에게 편견이 생기게 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젠장. 자신에게 하는 말이니 부메랑으로 날아와 머리에 꽂히고는 한다. 얼마나 어린 녀석인데, 기꺼이 몸을 내어준 녀석에게도 못 할 짓이다.

머리는 이해하는 주제에 감정은 주체하지 못하는 건가. 의뭉스러운 행위를 반복하는 스스로를 보며 타인더러 어린 녀석이라고 평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난밤의 다짐은 그녀와 마주한 뒤면 자연스럽게 휘발되어 혼자가 된 뒤에야 자연스럽게 그러 모여 자신의 양심을 찌르곤 했다.

영령이 양심을 논하는가 마는가에 대한 논제는 뒤로 미뤄놓고 확실한 건 자신은 노인, 그녀는 아이다. 생전의 자신만큼도 살지 못한 아이란 말이다. 언제 이런 파렴치한 인간이 됐는가. 노망이 들었어. 노망이.

그녀가 정말 이 정도로 어렸다면 이런 감정도 갖지 않았을까.

쯧. 변명하고 싶어서 아무 이유나 갖다 붙이는 건 성미에 안 맞는데.

마냥 반짝거리기만 하는 녀석 이었다면 어느 날의 착각이었던 것처럼 흘려보낼 수 있었을 텐데. 봐버리지 않았나. 어린 녀석이 상처를 숨기고, 눈물을 삼켜가며 남을 위해 평화를 바라는 것을.

별이 정한 운명이라던가 억지력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크게 관심이 없는데.

그녀의 불안한 걸음이… 세상에서 지워질 결말인 것처럼 곧 잠겨버릴 모습이 덧없게도 아름답다는 걸 알아버려서. 시간이 지나도 감정의 휘발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깊이를 더해가고 무게를 차례로 더해가며 더할 나위 없는, 등을 간지럽히는 사춘기의 무엇과 닮아있는 감정이 속을 채웠다. 제 욕심만을 채우려 고백하는 일은 사절이었다. 거절하는 쪽 역시 상당히 곤란해지니까.

대장간 안에서 한참 망치질을 반복하고 있을 무렵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언제 왔는지 웃는 낯을 한 그녀는 물과 간식이 담긴 쟁반을 들고 있었고, 그제야 그녀가 정한 일정을 훌쩍 넘긴 시간임을 알았다.

" 아, 벌써 이런 시간이냐. 미안하다. 아무래도 쇠를 두드리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몰라서 말이야. 뭐, 이왕 영령인 몸으로 인간일 때 못 했던 작업량을 소화하는 것도 나쁜 경험은 아니다만. "

" 확실히 마력만 괜찮다면 체력이니 식사니, 수면이니 한 건 다른 쪽의 이야기긴 해요. 그래도 할아버지가 쉬어주면 좋겠는걸요. "

" 어이. 그렇게 말하면 내가 꼭 나쁜 쪽이 된 거 같잖냐. "

" 고의라고 하면 화내실 거예요? "

" 화내겠냐. 어린 녀석 걱정을 산 내 쪽이 나쁘겠지. "

헤헤, 짧은 웃음을 터뜨린 그녀는 근처에 대충 놓인 의자를 가져와 옆에 앉았다.

오늘 관측된 특이점이 있어요. 레이시프트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칼데아 내에 머무르고 있는 영령들의 영기를…

요컨대 내가 파장에 맞는 쪽이라 동행했으면 한다는 거지? 손뼉을 가볍게 친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가라앉았던 눈동자가 조금이나마 수면 위로 올라와 얕은 이채를 보인다.

도공은 전투 때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느냐며 말을 던질 생각이었는데, 저런 이채를 보이는 이를 어떻게 실망하게 할 수 있겠나. 제가 옆에 있으면 저 가라앉은 눈동자를 완전히 수면 밖으로 이끌 수도 있지 않겠나. 약간의 기대감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그럼 내일 1시까지 준비를 마치고 관제실로 와달라고 고했다.

더운 공방의 온도에 제법 목이 탄 건지 마시라고 가져온 물의 반절은 자신이 마셨다. 그것을 뒤늦게 깨닫고 멋쩍게 웃은 그녀가 녹차를 가져오겠다며 빠르게 대장간 밖으로 달려 나갔다. 안도를 감추지 못하는 모습은 그 나이의 아이다워 마음에 들었다.

입술을 댄 자국이 남은 컵을 들었다. 외모가 어려졌다고 해서 속까지 그 나이가 된 건 아닌데 말이야. 그 자국 위로 조심히 입술을 대고, 기울어진 잔을 따라 흘러내린 물을 조금 삼켰다.

포기할 수 없다.

포기해야 한다 단언한 것은 자신이면서도 그 감정을 피해 도망치는 것을 거부하는 것도 자신이다. 사랑은 양면성을 띤 감정이긴 하나 이렇게까지 생경하게 경험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쯧. 습관처럼 혀를 찬 뒤 돌아온 그녀가 준 녹차를 받았다. 가지고 온 떡의 맛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쪽이다. 아이들이 먹고 싶어 해서 주방에 선 녀석이 노력했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확실히 돌봐주는 걸 좋아하는 놈이지.

제 말을 듣자 할아버지도 그래요. 라며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웃어 보였다.

원래 어린 녀석들은 걱정 없이 지내는 게 좋거든. 이제 너도 자러 가라.

몇 번의 대화 끝에 자리를 뜨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이내 문이 닫히고, 벚꽃 같던 머리카락도 반짝이던 눈동자도 사라지고 나서야 눈을 감는다.

이미 한차례 입술을 댔던 잔을 들어 입술 가까이 가져다 댔다가 내려놓았다. 무슨 주책이냐 영감.

내일 1시, 1시. 그것이 주문인 것처럼 몇 번이나 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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