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 Baker St. 221B. London. England
Dear. my dearest. Shinohara Ai
나는 이런 비효율적인 의사소통에 익숙하지 않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본론부터 적겠네. 자네, 나랑 같이 사는 것은 어떤가. 그리 나쁜 제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네만. 물론 자네가 바란다면 흡연은 외부에서 하고 약도 줄이겠네.
물론 완전히 줄인다고는 하지 못하지만. 내가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자네도 알고 있을테지. 이걸 읽고 있을 자네라면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어이없어할지도 모르겠지만.
왓슨이 내게 글을 쓰는 방법을 알려준다 했을 때 배워둘 걸 그랬군.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될 줄은 나조차도 없었으니 지금에 와서야 투덜거릴 수도 없겠지만. 참으로 아쉽다네.
이런, 서두가 길어졌군. 뭐, 기분일세. 내 이야기를 조금은 하게 해 주게나. 답지 않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주게. 나도 인생을 살아가며 꽤 바뀌었으니 다른 것도 당연하겠지. 우선, 혼란스러워 할 자네를 위해 현재의 내 정보를 주겠네. 자네가 알다시피, 나는 자네의 여정이 끝나고 나의 고향으로 돌아왔다네. 그래, 영국 런던의 베이커가 221B.
허드슨 부인도, 왓슨도 없었지만, 그 건물만은 바뀐 것이 없더군.
현대의 런던은 내가 나설만한 미지의 사건, 사고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 데다가, 빌리 – 셜로키언인 자네는 알지도 모르겠지만 두개골 모형이라네. - 와 대화를 하는 것도 지루해지던 차에 자네의 얼굴이 떠오르지 뭔가. 내가 자네의 현재 위치를 어떻게 알았느냐는, 기본적인 것을 묻지 말아 줬으면 하네. 물론 자네가 내게 그런 질문을 던져 올 것 같지는 않지만.
오, 스토킹은 아니라네. 그저 자네의 마테리얼에서 자네가 거주하는 곳의 주소를 봤을 뿐이야.
아무튼, 자네와 일상을 함께 한다면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이 끔찍한 지루함이 어느 정도는 해소되지 않겠나. 뭐,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이고, 사실대로 털어놓자면 어미의 뒤를 따라다니는 병아리처럼 내게 달라붙어 있던 자네가 그리웠던 것일지도 모르겠네.
생각해 보면 자네와 나는 참으로 오랜 시간 동안 알고 지내왔지. 자네가 칼데아에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소환하게 되었다고 들었네. 처음부터 룰러 클래스를 소환하는 이는 드문데 말이야. 내가 그 당시의 자네의 모습을 추억하다니, 나도 인간들과 살아가며 조금은 인간다움을 배운 걸지도 모르겠어. 특히 영령인 내게 인간다움을 기대했던 자네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다네. 아직도 그 당시의 자네가 기억이 나는군. 자네는 내가 몇 번이고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자라는 느낌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눈을 순수함으로 무장한 채 나에게 다가왔지.
안온했던 일상을 하루아침 만에 빼앗긴 자네는 잠시 말수가 적어지고, 아무래도 조금 우울해했던 모양이네만, 내가 소환된 그 순간부터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며 칼데아의 마테리얼에 적혀있었지. 확실히 내 소환 이후 캐스터의 다빈치라던가, 닥터 로마니 아키만이라던가, 미스 키리에라이트 양이 상당히 미묘한 표정으로 자네를 보고는 했지.
하지만 나는 자네의 침울한 모습은 그다지 생각하지를 못하겠어. 나와 자네가 서로 눈이 마주친 그 순간부터, 내게 아무런 용건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질리지도 않는 것인지 매일같이 찾아와 애정을 담아 웃어 보이며 자네의 일상을 부드럽고 다정한 음색으로 노래하듯 재잘거리거나, 나나 캐스터 다빈치의 공방에서 연구나 자료 조사 같은 것들을 적당히 방해가 안 되는 선에서 도와주고는 했지.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네. 그 어떤 영령보다 이해하기 어렵다며 모두가 혀를 내두르고 내버려 두었음에도 자네는 우리가 거슬리지 않을 선을 절묘하게 지키며 우리 둘에게 도움을 주었지. 이미 지나간 이야기이기도 하고, 우리 둘이 있을 때 나누었던 대화인지라 분명 자네는 모르는 일이겠지만, 자네의 그 기묘한 재능에 다빈치도 혀를 내두르고는 했다네.
물론 지금은 자네가 나를 짝사랑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네. 그 당시에는 잘 몰랐었지만. 하하, 그 당시의 나는 참 어리석었지. 자네도 상당히 답답해했었을 테고.
아무튼, 다시 얘기로 돌아와서, 우리는 일곱 특이점의 정초 복원도, 그 후 시계탑에서 개위를 부여받은 뒤 향하게 된 네 개의 아종 특이점의 증명도, 2020년을 채 맞이하기도 전에 찾아온 칼데아 최대의 위기에도, 우리는 함께 헤쳐 나아갔지.
그리고 자네의 마지막 여정에서조차, 후방 지원인 나를 자네의 칼데아에 소환된 그 어느 누구보다 강하게 키워서는 전선에 세웠지. 하하. 정말, 그때는 매번 끌려가는 시계탑의 마술사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네. 나보다 더 강한 영령들이 많았음에도, 자네는 나를 선택해 주었지.
사실은, 조금 자만했는지도 모르겠다네. 많은 별 속에서도 자네에게는 내가 가장 밝게 빛난다는 것일 테니. 덕분에 나는 자네의 칼데아에서 최초의 타이틀을 가장 많이 딴 영령이 되었지. 상당히 주변에서 부러워하더랬지. 하하!
이런, 글을 쓰다 보니 다시 길어지고 말았군. 정말로 글 쓰는 방법을 배워둘 걸 그랬어.
작가 계열의 영령들도 있었다지만 가르쳐 달라 하고 싶지는 않았다네! 이리 보여도 난 부끄럼을 잘 타거든. 그리고 내게 있어 가장 글을 잘 쓰는 이는 왓슨인 것은 변하지 않았으니.
자네도 한번 즈음은 만나보았다면 좋았을 텐데, 참 아쉬울 뿐이라네. 분명 서로 마음에 들어했을 테지. 그는 상당히 인간적이고,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약자를 두고는 지나치지 못하는, 딱 자네와 비슷한 성정을 지녔거든.
그리고 그의 글은 일반인이라도 이해하기 쉽고, 읽기 간편했기에 그에게 배웠다면 자네가 열어 볼 이 편지도 좀 더 편히 썼을지도 모르겠어.
사실 지금도 몇 번이고 고민하며 글을 적고 있다네, 혹여 내가 전하고 싶은 바를 제대로 전하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부끄러운 일은 없을 테니. 하지만 아무리 다시 읽어보고 고쳐봐도 글을 쓰는 기교라고는 전혀 없고, 자네의 생각도 알 도리가 없다네. 하하.
내 이야기는 이만 줄일까. 사실 자네가 내게 자네의 일상을 노래했듯 나도 나의 일상을 들려주고 싶네만, 직접 만나 얼굴을 보며 얘기하고 싶다네. 자네가 그리워. 긍정적인 답을 기대하도록 하지. 세계 제일의 명탐정을 룸메이트로 삼아보지 않겠는가. 지루할 일은 만들지 않겠다 약속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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