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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무정

[백업] 2023 제 1회 특촬 포스타입 온라인 온리전 ⟪변신 대상입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출품 - 가면라이더 W 팬 소설

앞서 읽기

* 제 1회 특촬 온라인 온리전 ⟪변신 대상입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의 출품 소설입니다.

* 본 소설은 가면라이더 W의 팬 창작 작품이며, 작품 본편과 연관이 없음을 밝힙니다.

* 본 소설은 W RETURNS 가면라이더 이터널의 후반부 내용을 기반으로 한 IF 소설입니다. 본편의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으므로, 해당 V시네마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스포일러에 유의해주세요.

* Non-CP를 상정하고 썼지만... 제가 보기엔 아리송합니다(...) 때문에 커플 해석은 자유롭게 맡깁니다. (커플링 유무를 비롯한 모든 해석 OK)

* 아무쪼록 즐겁게 감상해주세요!

감상 박스

https://forms.gle/TMQTRiQPu4rMz2Lh8


천둥과 번개를 머금은 구름이 짙게 깔린 밤, 날카로운 언성이 먹구름을 갈라 버려진 건물을 집어삼켰다.

조금 전, NEVER는 개별로 각개격파를 한 뒤 합류 지점에서 모일 예정이었었다. 하지만 목표물의 방해로 합류 시점과 기습 시점을 동시에 놓치고 말았다. 기습을 놓친 탓에 퇴로가 차단되었고, 강제로 전면전을 벌인 덕에 임무 완료 예정 시점보다 2시간이나 늦어지게 되었었다. 이번 임무는 사적 복수로서 감정 청산에 해당하는 일이었기에 약속된 보수 그대로를 받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오늘 일을 유야무야 넘어가는가 싶었지만, 작전을 재조정하던 중 카츠미가 그때를 언급하며 레이카를 크게 질타한 것을 계기로, 그녀가 반발하면서 언쟁이 시작되었던 것이었다.

카츠미는 평소에도 돌발 상황이 발생하거나, 엇나간 판단으로 낭비를 보아도 크게 신경 쓰는 남자는 아니었지만, 최근 들어서 이상하게도 신경질적인 반응을 자주 보였었다. 그런 날은 오늘도 예외가 아니었었다.

"네가 그때 총알을 덜 날렸었어도 그 상황에서 더 일찍 나올 수 있었다. 왜 또 내 말을 안 들은 거지?"

"너야말로 그 상황에서 다 내버려 두고 나올 생각이었어? 그놈들을 그냥 뒀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뻔히 알면서 그러는 거야 지금?"

"그냥 뒀었더라면 후방 지원으로 소탕했었을 거란 생각도 못 하나?"

"아, 그래? 정말 그렇게 했었더라면 아저씨들이 함정에 빠지는 것도 뻔히 아는데도?"

서로가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노려본다. 한 치의 양보도 없으면서 의미도 없는 눈싸움이 채 오래가기도 전에, 먼저 넌더리가 난 레이카가 얼굴을 구기며 그대로 쏘아 붙는다.

"너 정말 다 지긋지긋한 거 알기나 하지? 그래, 그래서 네가 그딴 생각으로 미나까지 버리려고 했던 거지."

"지금 뭐라 했지?"

카츠미의 반응으로 순식간에 험악한 분위기로 엉켜버린다. 두 사람을 안절부절못하게 지켜보던 쿄우스이가 나서서 둘 사이를 가로막아 선다.

"카츠미쨩… 일단 머리 좀 식히고 오는 게 어때? 레이카는 내가 알아서 해볼 테니까……."

레이카를 죽일 기세로 한참이나 노려보던 카츠미는 그제야 연구실을 나가버렸다.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레이카는 카츠미가 나간 쪽을 향해 험한 욕설을 쏟아붓다 제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뜨린다.

"도대체 이게 뭐냐고! 어린애 달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왜 이래야 하는데?"

레이카의 성이 그대로 쿄우스이에게 넘어간다. 하지만 그녀가 그러거나 말거나, 의미 없는 싸움에 지쳐버린 쿄우스이는 뚱해진 얼굴로 그녀 가까이에 있는 기둥에 기대어 선다.

"뭐— 그게 어떻게 한다고 되겠니? 네가 아직 카츠미를 믿지 않아서 그랬다는 건 이해하지만……."

"이해하면 뭐? 아저씨들도 똑같은 생각 했다는 거 아냐? 그러면 왜 말을 하지 않는 건데?!"

"……그야, 말을 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아?"

멀찍이서 지켜보던 고조가 입을 열었다.

"카츠미가 그때 그 아가씨를 그대로 두려고 했었던 것도 이유가 있었을 텐데— 너도 그걸 모르지는 않잖아?"

"그래서 하는 말이라니까? 아저씨들은 포기하지 않으려고 했으면서, 왜 꼭 그때만은 포기하려고 했었는데?"

"그건……."

고조는 그걸 모르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차갑게 남겨진 이 공간에서는 그걸 모르는 이들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금기를 입에 담는 것은 제 수족의 주인—카츠미—라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었으니.

고조는 옆에 조용히 있었던 켄, 쿄우스이와 함께 지난날을 떠올려본다.


—희망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영웅을 따라 발버둥 치며 내일을 붙잡을 수 있었던 순간. 앞으로 나아갈 세상 역시 지옥과 다름이 없음을 깨달았던 그 순간, 애써 탈출하고자 노력했던 쿼크스의 인간들은 더 이상 없었다. 그 누구보다도 미래를 갈망했던 미나 또한 그곳에 없었다.

없었을 터였다.

"이봐, 저 애도 NEVER로……."

"……이젠 됐어!"

레이카가 카츠미에게 간청했지만, 되돌아온 반응은 너무나도 차가운 모습이었다.

"우리들은 미래만 바라보면 돼."

남겨진 자들이 우리들 뿐이라면, 희생된 이들의 자유를 등에 짊어진 그대로 미래로 이어 나가면 될 뿐이었다. 하지만 그 결의를 받아들이기엔 그 사실은 너무나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잔혹했다. 레이카 또한 마찬가지였다. 부정하지 않고선 견딜 수 없었던 그 현실에서 이겨내기 위해, 그녀는 처음으로 반항을 선택했다.

모두가 수송기에 올라 이륙을 준비할 때쯤, 레이카가 뭔가를 끌고 수송선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가 죽은 미나를 끌고 수송선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렇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카츠미 일행은 동요하지 않았다. 아무리 사자(死者)가 되었다고 한들, 희생당한 이들을 생각해 NEVER로 만들지 않겠다는 애도의 뜻은 변함이 없었으니. 또 만약, 미나를 위해 장례를 치르겠다고 한다면 오히려 동의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 생각도 잠시였다. 수송기가 공중에 뜨는 순간, 모든 생각이 틀어졌다.

죽은 줄 알았던 미나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모두를 바라보았다.

모든 생각이 비틀리고, 애도와 염원이 재로 돌아갔다.


—고조와 켄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이 이렇게 틀어진 이상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아야 했지만, 뾰족한 해법은커녕, 적당한 묘수조차도 나올 리가 없었다. 아직도 해결 방법이 나오지 않으니 원활하게 임무를 할 수 없는 건 당연지사였다.

고조가 이젠 어쩌면 좋냐며 중얼거리던 사이, 프로페서 마리아가 손에 뭔가를 쥔 채 그들 앞에 나타난다. 그녀는 이번에도 빼곡하게 적힌 의료 기록을 들고 있었던 것을 보아 이번에도 출입이 통제된 방에서 나온 듯했다.

"어때? 그 녀석의 상태는?"

멀찍이서 관찰하던 켄이 입을 열자, 일제히 마리아 쪽으로 시선이 쏠렸다.

"이전과 다른 변화는 없어. ……기억상실 상태도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 같지 않아."

마리아는 어두운 표정 그대로 담담하게 입을 열며 그동안 제게 있었던 일을 떠올려본다.

미나는 참변의 현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녀에게 맡겨진 채 NEVER와 격리된 생활을 보냈어야 했다. 미나는 빌리지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을, 카츠미와 어떻게 만났으며 그가 어떤 인물인지, 그를 따른 끝에 어떤 최후를 맞이했었는지조차 떠올리지 못했었다. 단편의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는 그녀를 보며, 마리아는 연민의 감정을 느꼈을 테다. 그랬기에 절실했다. 이 사람이라면, 분명 카츠미를 바로 잡아줄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그 기억 상실은 절박한 모두의 마음을 잡아주지 못했다.

프로페서의 진단에도 호전될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에 NEVER 일행이 한숨을 내지였다. 유일한 생존자의 안위보다도, 카츠미를 위해 자신들이 무엇이라도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이 짓누른다. 지금이 아니라도, 앞으로의 미래에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면 우리는 수장에게 신뢰를 기대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그 순간 레이카가 자리를 박차고 미나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임에도, 자리에 남아 있는 그들은 나서서 말리지 않았다. 그러나 만일의 상황을 예의주시하듯 일제히 시선을 고정했다.

"이봐, 정말로 아무런 기억도 안 나는 거야?"

"……."

미나가 말없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답답함을 호소하는 말투와 신경질적인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히 성질이 났음에도 그녀는 인내라도 하는 듯 입술을 꾹 물며 깊은숨을 내쉬고 있었다.

"너— 솔직히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 이해가 안 가거든? 다 잊어버렸다고 하면서 왜 계속 여기 있으려고 하는 거야? 왜 우리 같은 걸 두려워하지 않냐고!"

"……."

 레이카가 인내하는 모습에서 간절함을 포착하려는 순간, 그녀가 미나의 두 어깨를 강하게 붙잡았다.

"야! 뭐라고 말 좀 해보라니까?"

그녀의 간절함이 더 선명해졌지만, 그뿐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해도 해줄 수 있는 일은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서로가 잘 알고 있었다. 미나가 침묵을 이어갈수록, 간절함이 레이카를 짓눌렀다. 그녀가 미나의 두 어깨를 흔들어 보지만, 망설이는 듯한 눈은 변함없었다.

"내가 여기에 있는 건……딱히 뜻이 있어서 여기 있는 게 아니지만……."

"……?"

"……나는 여기 있어야 한다고, 그런 느낌이 들었을 뿐인걸……."

"……뭐?"

"그리고……지금 이런다고 달라지는 건……없잖…아?"

미나가 말끝을 흐린다. 그러나 애매한 대답과는 다르게 그녀를 대하는 모습에는 이상하게도 두려움이 보이지 않았다. 기묘한 방향으로 공기가 흐르자 그에 반항하듯 레이카가 또다시 성을 낸다.

"……그러면 왜 모른 척을 하는 건데? 우리가 우스워서 아무 짓도 안 하는 거야? 우리 앞에서 뻔히 모르는 척하려나 본데— 네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니까?"

"설마, 또 그거야……? 대체 내가 뭘, 해결할 수 있다는……건데?"

"ㄱ, 그건! ……그건……."

그녀의 반문에 말문이 막힌 레이카는 답을 망설였다. 물론, 자기를 포함한 동료들이 빙빙 돌려가며 회유를 시도하더라도 수장이 고집불통이라면 모든 게 허사라는 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의 원인이 되는 사람이라도 나서야 뒷일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레이카 스스로가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레이카는 이제, 이렇게 말해야 하는 순서조차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내 미나를 똑바로 바라보더니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예상했던 대로 돌발상황이 일어나자 레이카를 지켜보던 동료들이 재빨리 레이카 뒤를 따라간다.

그들이 향한 길 끝에는 언제나 카츠미가 있었다.

카츠미는 그들이 제게 볼 일이 있든 말든 아무도 없는 텅 빈 실험장을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레이카 또한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곧장 미나를 제 앞에 세운다.

"자, 카츠미. 우리 이야기가 아직 안 끝난 건 알고는 있겠지?"

레이카는 그의 비겁함으로 물꼬를 텄다. 하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인 그의 반응에 레이카가 다시 언성을 높였다.

"넌 여전히 무시만 하는구나? 그래— 네가 그렇게 무시해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아. 얘는 멀쩡하게 살아 있어.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더라도 멀쩡히 네 앞에 서 있다고! 그런데도 여전히 투명 인간 취급하는 건 너무하지 않아?"

"……레이카."

카츠미가 냉혹한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본다. 그의 눈에는 분노가 담겨 있었지만, 당장 그들에게 향한 분노가 아닌 듯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미나가 직접 입을 열었다. 

"ㅈ, 잠깐…만……. 설마 내가 죽었다……는 이유로 서로한테 화라도 냈던……거야?"

"……."

카츠미는 귀를 의심하듯 눈을 가늘게 뜬다.

"그랬……구나. 어떤 상황인 건지는 나도 잘 이해한 건 아니지만……그래서……."

"그래서라고? ……지금 네가 뭘 안다고—"

"믿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거……맞지?"

그는 마치 들어선 안 될 것을 들었다는 듯이 다시 눈을 가늘게 뜬다. 이어 그 눈초리는 아직 허락하지 않은 공간에 들어온 이방인에 대한 분노처럼 변화했다. 살기와도 비슷한 기류를 감지한 미나가 속으로 움찔했지만, 꿋꿋하게 뜻을 굽히지 않았다.

"들어 봐……. 분명, 너는 내가—"

"……네가 뭘 안다고 떠들어."

험악한 그의 목소리가 미나를 위협한다. 갈 곳 없는 분노가 정확히 목표를 노리고 있었다. 위협을 감지한 레이카가 그녀를 제치고 앞에 선다.

"너 미쳤어?! 왜 얘한테까지 화내는 건데?! 얘가 너한테 어떤—"

"닥쳐!"

그의 말 한마디가 두 사람을 짓누른다.

"카츠미……."

"내 수족이 되어야 할 놈이 말을 듣지 않는군. 뭐, 좋아. 지금부터 확실히 말해두지."

우리가 알던 미나는 죽었다. 그 녀석이 이 세상에 돌아올 일은 없어.

내게 또 한 번 되지도 않는 설득을 시도하려 한다면—

그때는 정말로 가만두지 않겠다.

카츠미는 제 말을 끝으로 다시 그 자리를 떠났다.

당사자의 설득에도, 회유하지 못한 자와 그것을 지켜보는 자들만이 남아버렸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레이카가 제 머리를 헝클어뜨리다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는다. 그 모습을 본 미나가 놀란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가지만, 레이카는 그조차도 막아버린다.

그제야 들려오는 빗소리에 따라 레이카가 천천히 고개를 푹 숙여버린다. 미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무엇이라도 돕고 싶었다.

"……저기……."

"……진짜 자기가 뭐라고 그러는 거야……."

"……."

그녀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레이카가 간절했던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발버둥 친 끝에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우리의 의미는 틀림없었다고. 기억 같은 게 없어져도 멀쩡히 살아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겠냐고.

우리가 그토록 간절하게 살아남길 바랐던 사람은 변함없이 우리 앞에 서 있다고.

미나는 레이카의 마음에 아무런 답을 할 수 없었다.

미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미나는 홀로 격리된 채, 그들의 아지트 안에서 지냈다. 날마다 임무로 떠나는 그들을 멀리서 지켜보거나, 때로는 마리아 옆에서 가까이 지켜보며 그들의 안부를 멀리서나마 살피기만 해야 했다. 그녀는 NEVER 일행을 지켜보기만 하는 하루하루가 마땅히 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자신을 마냥 무력한 존재로 여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그들의 뜻에 순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한 달을 채우던 날, 미나는 문득 어떤 속삭임을 들었다. 분명히 본인의 목소리였음에도, 본인의 의지에서 기인한 목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 처음에는 환청이라 여겨, 간간이 상태를 보러 오는 프로페서에게도 물어봤지만— 마리아는 들어본 적이 없는 증상이라며 미묘하게 신경 쓰려고 하지 않는 눈치였었다.

점점 사자(死者)에 가까워지는 듯한 착각이 이어질 때쯤, 미나 스스로가 카츠미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직접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직접 내뱉은 말에 혼자 놀라버렸지만, 이내 중얼거린 말을 곱씹어보며 창문 너머로 비치는 아지트 풍경을 바라보았다. 아들의 선택을 방관하는 프로페서, 교착 상태를 전복하려 해도 항상 행동을 제지하는 그의 수족들— 과묵한 과보호라는 이유로 항상 통제받고 있지만, 이 상황을 해결할 순간은 지금뿐이라고. 그 속삭임이 말을 걸고 있었다.

미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츠미가 있는 곳으로 발을 옮긴다. 그저 그래야만 한다는 마음속 목소리를 따라, 무작정 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녀가 여기저기 돌아다닌 끝에 작전실에 홀로 남아 있는 카츠미를 찾아낸다. 카츠미는 누가 찾아왔는지 모르는 것인지, 혹은 새로운 작전을 설계하느라 관심이 없는 것인지 외부의 발걸음 따위에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미나는 천천히 문을 열어 방 안으로 들어온다.

"……무슨 볼일이지."

무신경하게 있을 줄 알았던 그가 고개를 들어 상대방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동안 미나를 바라봤던 이전의 얼굴과는 다르게, 하고 있던 일 그대로 평온한 얼굴은 변하지 않았다. 어쩌면, 자기를 찾아왔을 때부터 그녀가 왔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듯했다.

"……할 말이 있어서……왔어."

 그는 여전히 변함없는 얼굴이었지만, 이내 자세를 바꿔 상 모서리에 걸터앉는다. 일단은 들어보자 싶은 그의 모습에 미나는 심호흡으로 속을 가다듬고서 그가 있는 곳으로 거리를 좁혀 간다.

"……넌 여전히 내가 죽었다는 생각에는……변함없는 거지?"

"……맞아. 내 생각은 변함없어."

미나의 고개는 조금씩 바닥을 향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있잖아. ……카츠미."

"……말해 봐."

그녀는 다시 천천히 상대를 바라보았다. 그는 변함없이 미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변함없이 바라봐주는 그의 모습은, 지금이라면 제 생각이 닿을 것 같았다.

그녀는 다시 천천히 카츠미를 바라보았다. 그는 변함없이 미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변함없이 바라봐주는 그의 모습이라면 제 생각이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의 내가 전부 헤아릴 수는 없지만……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지는, 조금은 이해할 수 있어."

"……그래?"

"……네가 얻은 상실이, 너무 커다랗다고 해도……그걸 혼자서 감당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해……."

"……."

카츠미가 그녀를 배척하는 이유는 당연했다. 자신을 엿먹인 가이아 메모리에 복수하기 위해선 가장 큰 원동력이 필요했다. 분명히 빌리지에서 일어난 그 일은 충분한 연료가 되어줬지만, 그 독을 전부 들이킨 탓에 우리는 거기에 얼마나 잡아먹혀 버렸는가. 그랬기에 아직은 인간성이 남아 있었던 레이카가, 여전히 속으로는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NEVER가 염려했던 점이 그 부분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카츠미의 고통을 나눌 자격이 되지 못한다면, 적어도 유일한 생존자인 미나만이라도 이전처럼 동격으로 대해줬으면 한다고.

하지만, 카츠미는 침묵하고 있었다.

"네가 알고 있는 내가 정녕 죽었다 해도……. 그 사람은……아직 잠들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해. 언젠가는 깨어날 거야. 그렇다면—"

미나는 조금씩 고개를 숙여간다. 목소리도 가라앉아갔지만, 제 기억이 아닌 생각은 계속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미나."

그가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그는 어느새 미나 앞에 서서, 그녀의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눈물을 닦는 그 손은 어딘가 익숙할 정도로 다정했다.

"뭘 말하고 싶은 건지는 나도 알겠어. 하지만— 우리와 함께했던 그 녀석은……이미 내 삶에선 끝나버렸어."

"……."

"너까지 이렇게 말해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아."

"카츠미……."

카츠미는 제 손으로 직접 미나를 떠나보냈다. 다른 누구의 삶이 아닌 제 삶에서. 그랬던 과거를 지금 와서 바꾼다 한들, 그때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소용없는 것이 당연하다. 지금은 복수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잃어가는 과거에만 매달리고 있으면, 다가올 미래도 잡지 못한 채 바스러질 것이다.

카츠미는 이미 제 삶의 방향을 정해놨으며, 그 운명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난 나아가기 위해 애도를 선택했었어. 지금 네가 이렇게 설득해도, 내가 아는 그 녀석이 언제 돌아올지조차 모르지. ……나는 그런 불확실한 미래 같은 건 좋아하지 않아. 당장 찾아올 내일을 붙잡기 위해선—"

"……카츠미."

"……처음 널 데려왔을 때는 제대로 못 걸었던 것 같은데. 이젠 네게 새로운 삶으로 보내줘야 할 때가 온 것 같군."

그의 말에 미나는 아뿔싸 싶었다. 아직 미처 다 전하지 못한 생각이 부푼다. 제 생각도 아닌 제 생각이 가득히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오른다. 동시에 다정하게 눈가를 쓸어내리던 그의 손이 천천히 떨어졌다.

미나는 그의 손을 붙잡으려 했지만, 손을 뻗기도 전에 눈앞이 암전되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다.


후토로 이어지는 도시 입구 앞, 미나가 문턱 너머를 바라본다. 눈 부신 햇살 아래에 사람들의 잔상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미나가 경계선을 두고 불안한 눈빛으로 계속 입구 너머를 지켜보고 있는 사이, 카츠미를 제외한 NEVER가 어느 빌딩 꼭대기에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지트에서 출발한 이후로 지금까지 조용했던 레이카가 더욱더 고독해 보였기에, 그녀를 가장 신경 썼던 쿄우스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정말로 괜찮은 거야? 아직 저 애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었는걸."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답한 레이카가 동료들을 바라본다.

"알다시피, 우리에겐 나아질 길은 있었던 것 같지만……우리에겐 처음부터 이 운명이었던 거 같네."

우리는 처음부터 같은 길을 걸어 나갈 운명이 아니었다고.

그 운명은 영원히 바뀌지 않을 거라고.

레이카의 허무한 중얼거림이 허공에 흩어진다.

오래 지켜봤다고 느껴질 때쯤, 집결지로 모이라는 무전이 NEVER 모두에게 들어온다. NEVER는 그녀의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망설임 없이 먼저 그 자리를 떠난다.

이어, 혼자 남아버린 미나가 천천히 입구를 향해 발을 옮긴다.

한걸음, 한걸음.

후토의 품으로 들어온 그녀가 마지막으로 한번 더 뒤돌아보지만

—이내 무정한 어둠이 그녀의 눈앞을 덮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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