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라녀전기

홍라녀전기-발단(發端)

백로(白露)

치즈의 화덕 b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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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지 않은 부탁

-괴이를 하나 퇴마해줬으면 하네.

붉은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고 있는 여인, 자칭 ‘홍라녀’라고 말하는 괴이는 수수께끼에 휩싸인 존재였다.

당사자와 계약을 했을 것이 분명한 가문은—홍라녀의 말에 의하자면— 6·25 전쟁 때 피난으로 내려오다 대부분의 고서들을 분실해버렸다고 했나. 알 수 있는 정보는 500년 전 한 괴이를 제압하고 그것을 봉인하는 대신 계약을 맺었다는 구전 정도가 전부. 결국 맨땅에서부터 헤딩하는 식으로 정보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퇴마해달라는 의뢰를 받고 호적까지 옮겼는데, 결과적으로 웬 이상한 괴이만 자신에게 떠넘기고선 단서는 하나도 없는 게 아닌가! 이미 선불로 받은 거금만 아니였더라도 진작에 때려치고 말았으리라.

지헌은 홍라녀와의 첫 만남을 생각하며 작게 이를 갈았다. 예의는 어디로 밥 말아먹은 건지 자고 있는 사람 위로 올라와서 괴롭히질 않나. 500년 묵은 괴이라길래 어디 꼬부랑 할범이라도 나올 줄 알았는데 정작 보이는 건 바닥에 뿌려진 소금들을 아까워하는 이상한 여자 귀신뿐이었다.

-오늘은 칼춤이니? 이러다가 퇴마사가 아니라 무당 되겠어~ 의외로 소질 있는 거 아니야?

-사람이 집중을, 하고, 있으면, 좀, 닥쳐!

그러나 5세기가 넘도록 퇴마하지 못했다는 악명만큼은 진짜인지, 부적으로 튜닝을 한 야구배트—학창 시절 나름 못하는 운동이 없었던 지헌이 제일 아끼는 수제 퇴마 무기였다—로 옴팡 휘두르고 말피로 샤워를 해도 눈앞의 이 괴이는 언제나 싱글벙글 웃기만 할 뿐이었다.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기어코 작두를 타다 상처가 난 발바닥이 욱신거렸다.

그러나 이대로 퇴마를 포기할 수도 없는 법인지라.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나름의 인맥을 동원해서라도 어떻게든 단서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지금 찾아가는 이 역시 그런 지헌의 노력 중 일부였다.

지헌이 잠시 소개하길, (“대놓고 관심없다는 표정 짓지 말고 귓구멍 열고 잘 들어라”) 예전에 스승님 아래서 잠깐 같이 배웠던 퇴마사 선배인데 무속인 집안 출신치고 유독 기가 약해다고 했다. 그에 비해 영기를 느끼는 눈과 귀는 예민해 어렸을 때부터 온갖 잡귀들의 장난에 앓는 일이 많았노라고. 무당들이 쉽게 보지 못하는 것들도 종종 보던 사람이었으니, 어쩌면 자신이 발견하지 못한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지 않겠냐 말하는 지헌.

“예전부터 신내림을 받자고 집안 사람들이 설득했지만 선배가 악을 쓰고 거부했다고 들었어. 결국 누름굿을 한 뒤 그대로 둘 순 없으니 박수(남자 무당)대신 퇴마사를 시켰지만 그조차도 체질 때문에 오래 하지 못하고 지금은 은퇴했지. 마지막으로 들었던 소식이… 검정고시를 본 후에 지방에서 초등 교사로 부임했다 그랬나.”

통화를 끝내고 휴대폰으로 지도를 확인한 지헌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온다. 검은 바지에 묶어서 고정한 은색 벨트. 직접 수선한 청 자켓과 귀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피어싱까지, 겉으로만 살피면 퇴마사와는 전혀 연관지을 수 없는 청년의 모습이다. 나도 이렇게 멀리 나오는 건 출장을 제외하고 오랜만이긴 한데…….

“아무튼 가자. 선배가 일하는 곳이 어딘지 찾았어.”

능숙하게 역으로 걸어가 기차표를 끊는 손이 잠시 멈춘다. 때 아닌 침묵. 지헌, 미묘복잡한 얼굴로 홍라녀를 힐끗거리고.

“…그런데 귀신도 사람으로 쳐야 하나?”

그 말을 들은 홍라녀가 기차역에서 30분 동안 박장대소한 일은 사소한 해프닝으로 남겨질 일이다. 부적으로 그 입 봉인해버리기 전에 제발 조용히 해. 네 말은 나 밖에 못 듣잖아.

선배가 있는 곳은 기차를 타 버스를 두어 번 갈아타고도 꽤 오래 가야하는 시골. 생각보다도 더 한적한 곳이다. 앞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뒤에는 작지 않은 산이 하나 위치해 있다. 그리고 그 산을 뒤에 놓고 지어진 작은 학교가 하나. 늦여름답게 선선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만연하다. 검은색의 단단한 워커가 포장되어있지 않은 흙바닥을 밟는다.

“이런 곳에 그 영안인가 뭔가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말이지?”

주위를 쭉 살펴본 홍라녀가 산을 향해 작게 손을 모아 야호— 하며 장난스레 외쳐 봐. 소리는 돌아오지 않는다. 지헌, 그 모양이 이제는 익숙한지 퉁명스럽게 대답해.

“그래. 스승님이 말씀해주셨으니 여기가 맞겠지.”

마을 사람들이서 운영하는 아담한 시골 학교인 탓인지,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지인이라는 말에 반갑게 맞이하는 사람들. 부드러운 인상의 50대의 중년 여성이 보기 좋게 웃으며 최 선생님을 데리고 오겠다고 말한다.

복도에서 선배를 기다리는 동안 창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려온다. 곤충잡기가 숙제인 모양인지, 자기는 대왕 사슴벌레를 가져왔노라 떠벌거리는 아이의 목소리가 유독 크다.

“야! 넌 이런 거 못 잡지! 이건 우리 아빠랑 같이 산에서 잡은 거거든!”

“대박! 엄청 커! 저기 한 마리 더 있다!”

그 말에 움츠려드는 더벅머리의 아이. 헤진 티셔츠의 뒤로 소심하게 숨긴 채집 통 속에는 작은 흰 나비 한마리만 덜렁 날아다니고 있다. 반면에 사슴벌레가 들어가 있는 채집 통 안에는 흙과 곤충먹이가 그럴싸하게 채워져 있는 모습. 삼삼오오모여 신기해하는 아이들 뒤로 소심한 기색의 아이 혼자 덩그러니 서 있다.

“애들아~ 너희 또 동하 괴롭히니? 선생님이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 했지요?”

친구를 놀리면 못 써요~ 유리창으로 아이들을 구경하고 있던 찰나, 선배를 데리고 온 여자 선생님이 타이밍 좋게 나타난다.

“자, 최 쌤. 여기가 최 선생님 찾아온 분들이세요. 선생님한테도 이런 젊은 친구가 있을 줄 몰랐네. 애들은 제가 보고 있을 테니 둘이서 천천히 이야기하다 들어와요~”

호호, 웃음을 남기며 아이들에게로 멀어지는 선생님. 여성이 반으로 들어가자 복도에는 한 사람이 남겨졌다. 머리카락을 한데 묶고는 갈색 뿔테 안경을 걸쳤으나, 한 눈에 보아도 날카롭고 예민한 인상의 남성이다. 지헌이 먼저 꾸벅 고개 숙이며 인사한다.

“오랜만입니다, 선배.”

“그래. …크흠. 마지막으로 본지 3년이 넘었던가? 그동안 뭐, 잘 지냈어?”

스승님은 잘 계시고? 예. 아직 정정하시던데요. 퇴마사 때려치더니 인사도 하러 안 오냐고 노발대발 하셨습니다. 아니, 거 이제 나이도 있으신 분이…….

지헌의 인사를 받아주는 선배. 그러나 표정만큼은 떨떠름함을 숨기지 못한다. 이후로도 짧은 안부인사가 오가고. 대화하는 내내 불안한 듯 눈치를 보던 선배가 끝내 어색한 기류를 참지 못하겠는 듯 뒷목을 매만진다.

“뭐,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네가 직접 찾아온 걸 보면 많이 중요한 건가 봐?”

“민망하지만 그렇습니다. 실은 선배가 봐주셨으면 싶은 게 있는데—”

말을 잇기 전에 텅 빈 복도를 살펴보는 지헌. 이내 눈짓을 하고, 그 눈짓을 받은 홍라녀가 어깨를 으쓱하다 모습을 들어낸다. 갑자기 복도에 나타난 붉은 저고리의 여자. 홍라녀의 모습을 보자 놀람으로 당황하던 가득하던 선배의 얼굴이 이내 새하얗게 질려버린다.

“대, 대체 너! 뭘 여기에 데리고 온……!”

“쉿. 자세한 건 이동해서 이야기합시다. 듣는 이들이 많으니까요.”

선배의 외침에 다급하게 입을 틀어막는 지헌.

“역시 선배라면 보이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읍! 읍읍!”

“예, 오랜만에 만난 후배랑 좀 더 해후를 풀고 싶으시다고요. 저도 그런데 다행이네요.”

“으으읍! 읍!”

고개를 주억이며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지헌. 그런데 여기 조용한 곳이 어디 있습니까? 선배,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런 지헌을 바라본다. 이미 두 눈으로는 욕을 하고 있다.

“으읍! 으브읍!”

격렬한 저항에 단단히 선배를 붙잡는 지헌, 잠깐 고민하다 속삭이고.

“저도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러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긴 학교잖아요. 다른 분께 민폐를 끼칠 수는 없죠. 질문은 나중에 받을테니 일단은 조용히 합시다. 도망치지도 마시고요. 제가 선배보다 달리기 더 빠른 거 아시죠?”

“…븝.”

“좋아요. 선배를 믿겠습니다.”

지헌이 물러서기 무섭게 푸하! 하며 호흡을 크게 들이 마시는 선배.

“귀! 귀신이 여기— 읍! 으으읍!!!”

복도에 동떨어진 홍라녀만 옆에서 멀뚱멀뚱 그 모양을 바라본다.

혹시 선배라는 게 사실 네 돈 떼먹고 나른 사람이니?

아니니까 초 치지 마. 예전에… 퇴마하다가 귀신 보고 도망친 적이 한 둘이 아니여서. 그냥 겁이 좀 많은 사람이니 양해해.

결국 10여분이 지나고 나서야 지헌, 입을 풀어준다. 불만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표정으로 지헌을 바라보다, 아직까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홍라녀에 시선을 마저 마주치지도 못하고 황급히 고개를 돌려.

“이, 일단 그거, 그거? 아니, 그분은 좀 나중에…….”

“어머. 너무 빠른 소박인데? 우리 인사도 못하고 참 매몰찬 거 아니니?”

필사적으로 홍라녀의 눈을 피하던 선배가 썩은 얼굴을 일그러뜨리자, 지헌이 그만하라고 가볍게 핀잔을 준다. 붙지마. 떨어져. 제 시야에서 홍라녀의 모습이 사라지자 그제야 살겠다는 표정의 선배. 대낮부터 이게 왠 날벼락이냐는 생각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난다. 무척이나 꺼림직한 목소리로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는 선배. 그렇게 세 사람은 자리를 옮긴다.

음악실로 사용 중인 빈 교실 안, 지헌에게서 보다 자세한 사정을 듣게 된 선배는 강경하게 부탁을 거절한다. 처음에는 차분하게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한 모양이지만, 말이 길어질 수록 점점 높아지는 목소리.

“너 지금 장난해? 오랜만에 찾아와서 한다는 말이, 뭐? 그 정도로 오래되고 위험한 귀신이라면 제대로 보는 것만으로도 접신 걸릴 수 있는 건 알고 말하는 거야?!”

“갑작스러운 부탁이고, 선배 입장에서 충분히 위험할 수 있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해를 끼치는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최대한 가만히 있겠다고….”

“대체 누가! 네 옆에 있을 그 귀신이? 퇴마사라는 놈이 진짜 그 말을 다 믿는 건 아니겠지?”

“…….”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하고 도르륵 눈을 굴리는 지헌. 미친 거 아니야?! 선배, 한참 열을 내다 묵묵히 침묵을 지키는 지헌의 모습에 한숨을 크게 푹 내쉰다.

“네 일에 도움이 되지 못한 건 미안하지만, 그건 힘들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는 찾아오지 마.”

“아까 전 일은 죄송합니다 선배. 하지만…….”

“하아, 내가 진짜 어쩌다가 이런 놈을 후배로 만들어서…. 너랑 얼굴 안 보겠다는 게 아니야. 말 그대로, 여기로 오지 말라는 말이라고. 너 스승님께 내 위치 물어봐서 왔지? 이 학교가 곧 폐교해서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났거든. 작은 마을에 학생 수가 줄어들기도 했고…….”

마른세수를 하던 선배가 얼굴을 긁적이더니 이건 중요한 건 아닌데, 하며 덧붙인다.

“요즘 뒷산이 좀 흉흉해. 이상한 게 들린 건지, 산에 귀신이야 안 꼬이는 게 더 이상하다지만 요즘 잡귀들이 내려와서 해코지를 하려고 드는 일이 잦아졌어. 일단 금줄은 쳐놨고 마을 사람들한테 이야기도 해놨으니 급한 건 아니지만…. 이상한 기운이 묻을 수도 있으니 빨리 떠나서 나쁠 건 없지. 저런 괴이를 달고 다니는 너는 더더욱.”

“그러면 빨리 들어가서 퇴마시켜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서라. 아무리 그래도 혼자서 산 전체를 혼자서 어떻게 하려고? 일단 상황 알리고 요청은 해놨는데, 이런 산지가 우리나라에 어디 한두 곳이야? 이미 부적도 붙여놨으니 너도 괜히 들어가서 건드릴 생각일랑 하지 마. 이쪽에서 먼저 건드릴 필요는 없잖아.”

때마침 교시를 알리는 종이 조용한 교정 안에 울려 퍼진다.

“아무튼 여기에 네 볼일은 없으니 바로 올라가라. 알겠지? 스승님께는 대신 안부인사 전해주고. 나 간다!”

“잠깐만요, 선배!”

드르륵, 매몰차게 교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결국 더 이상의 설득도 시도해보지 못한 체 학교에서 내쫓긴다.

“텃네, 텃어~ 여기까지 왔는데 참 아쉬워. 그치? 그래도 오랜만에 맑은 공기 마셨다고 생각하렴~”

자신을 놀리는 건지, 이미 버스가 오는 시간이 지난 터라 바로 출발하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 지헌. 이렇게 도망갈 줄 았으면 천천히 설명하는 거였는데. 너무 급하게 홍라녀를 보여줬나. 그러나 이미 일은 엎질러진 물. 방 안에서 한숨만 푹 내쉰다.

“무언가 일이 잘 안 풀리셨나 봅니다.”

“아, 이장님.”

“방은 괜찮습니까? 아직 따뜻한 날씨라지만 밤에는 추우니까요. 이불을 좀 가져왔습니다.”

넉살좋게 웃는 이장에 지헌이 서둘러 이불을 받아든다.

“갑작스럽게 찾아왔는데도 잘 곳을 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원래 손님이 오면 자주 내어주던 곳이니 신경 쓰지 말고 편히 주무시다 가셔도 됩니다.”

“마을에 외지인들이 자주 찾아오는 편입니까?”

“무척 드물지는 않지요. 이곳이 아무리 시골이더라두 말입니다. 그래도 요 근방에서는 터미널과 가장 가까운 마을이기도 하고, 뒷산이 예전에 서원까지 지어졌을 정도로 기운이 꽤 영험하더랍니다. 그래서 가끔 등산객들이 찾아오곤 하지요. 왜, 최근에도 젊은 청년 여럿이서 찾아오기도 했고요. 산 탄다는 양반들이 카메라니 뭐니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내 기억에 남네요.”

이부자리를 깔다가 뒷산 이야기에 관심이 생긴 듯, 고개를 돌리는 지헌.

“뒷산이요? 혹시 그 이후에 별 일은 없으셨고요?”

“글쎄요, 그렇게 물어보셔도…. 원체 예전부터 귀신 두엇 정도는 심심찮게 목격되던 곳이라 큰 사고는 없었죠. 그나마도 엊그제 선생이 뒷산에 한번 들린 이후로는 웬만해선 산에 가고 있지 않습니다.”

슬쩍 시선을 위로 올리니 홍라녀가 이부자리 위를 둥둥 떠나디며 이장의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듣고 있다. 그 모습에 어쩐지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고.

지헌, 가만히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지헌과 시선을 마주치니 뭉근한 웃음이 더 짙어지는 홍라녀. 역시나 쉽게 읽어낼 수 없는 표정이다.

“거 천장에 뭐 벌레라도 있습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만 들어가 보시죠.”

#귀곡성

다섯 명이 가까스로 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골목골목을 누비던 것도 잠시 뿐, 시골의 밤은 일찍 찾아오는 법. 집에 들어가 내일을 기약하는 마을 사람들과 달리 베개 위에 머리를 뉘인 지헌은 결국 잠에 들지 못한다.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한 체 이대로 돌아가야 하나 싶다가도 머릿속에 낮에 들었던 이야기가 계속 머무르며 신경 쓰이는 지헌. 뭐 마려운 개처럼 계속 이럴거면 그냥 마을이라도 한 바퀴 뛰고 오렴. 보는 괴이 심란하게 만들지 말고! 홍라녀의 타박에 결국 등 떠밀리듯 밤 산책을 나오게 된다.

듬성듬성 서로 멀리도 서 있는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나아가는 길. 찌르르 벌레 우는 소리가 고요하게 울려 퍼진다. 어둑해지는 밤하늘에 하나 둘 씩 떠오르는 별빛의 모양. 뒷산의 이야기만 뺀다면 정말 한적한 마을의 모습과 다름이 없다. 이곳에서 자신은 대체 어떤 직감을 느낀 걸까. 지시자도 모르는 기묘한 예감이 자헌의 등 뒤를 계속 찌르는 것만 같다.

-사, 사, 살려주세요…!!!

이만 돌아가려는 지헌의 귀에 누군가의 세찬 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아마 상념에 빠져있다면 놓쳤을 것이 분명한 미약한 소리였으나, 퇴마사의 감인지 용케도 그 소리를 잡아낸 지헌. 곧장 망설임 없이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달려 나간다. 길을 벗어나니 빛을 잃은 시야가 금세 어두워졌지만 뜀박질에는 멈춤이 없다. 소리의 근원은 바로 학교 뒷산. 선배와 이장의 이야기에서 모두 언급된 곳.

엉거주춤 뒷걸음질을 치다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는지, 그만 아이가 등을 대고 주저앉은 나무에는 금줄이 묶여 있는 체 대롱대롱 흔들리고 있다. 겁에 질린 아이의 낯이 익숙하다. 어디에서 보았더라, 기억을 더듬고 있자 그렇게 느긋한 시간은 주지 않겠다는 듯 곧바로 아이에게 달려드는 귀신이 보인다.

반사적으로 부적부터 꺼내든 지헌. 힘이 강하지 않은 잡귀였는지 어렵지 않게 제압에 성공했다. 그러나 금줄로 묶인 귀신의 반항이 예상보다 공격적이었는지 흙이 묻은 제 청색 자켓을 훌훌 털었다. 귀신에게 관심이 생겼는지 조용히 살펴보는 홍라녀를 뒤로 뒤고, 지헌은 뒤돌아 아이에게 다가간다.

“괜찮아?”

“귀, 귀시인…!”

“어디 혼이 상한 데는 없는 것 같고. 다친 곳은… 무릎만 살짝 까졌네. 다행이다. 일어날 수 있겠어?”

딸꾹, 많이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딸꾹질을 하는 아이. 오래되었는지 빛이 약한 후레쉬 하나와 낡은 채집망이 흙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눈에 익은 더벅머리에 그제야 학교에서의 모습을 떠올리고. 동하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어색하게 두 눈을 데구루루 굴린다. 지헌의 모습을 살펴보다가 천천히 끄덕이는 고개.

“좋아. 다리에 힘이 풀렸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고. 이쪽으로 손을 줄래?”

그 말에 다시 한 번 끄덕여지는 동하의 고갯짓. 원래 조용한 성격인지, 아니면 놀라 말을 못하는 건지. 아이를 달래려는 듯 지헌은 천천히 손을 앞으로 내민다. 아이를 일으켜주며 생각한다. 선배가 말했던 잡귀가 이건가.

확실히 아무것도 모르는 민간인들에게는 위협적이지만, 퇴마가 특별히 까다롭진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금줄 주변을 살펴보고 있을 찰나, 갑자기 몸이 굳으며 덜컥 창백하게 질리는 아이의 얼굴. 지헌이 이상함을 깨닫기도 전에 등 뒤에서 수많은 악귀들의 기운이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다급히 고개를 돌렸으나 한 박자 늦었는지 습격을 피하진 못하고.

사한 기운이 온 몸을 통과하는 충격에 흙바닥을 한 바퀴 뒹군 지헌이 급하게 자세를 다잡는다. 회청색 눈을 일그러뜨리며 바로 행동한다. 허공에서 찢겨지며 불꽃으로 타들어 가는 괴황지에 주춤하는 귀신들. 지헌, 그 찰나에 상황을 파악하고.

이상할 정도로 한 자리에 모인 십 수 귀의 악귀들. 이 정도라면 산에 있는 모든 잡귀들이 몰려왔다고 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의 수였다. 대체 어디서 이만한 귀신들이 몰려온 거지? 주변 온도도 눈에 띄게 내려갔군. 제 뒤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아이를 힐끗 쳐다봤으나 이내 조용히 고개를 젓는다.

아니야. 특별히 별다른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어. 자신 주위를 포위하는 귀신들을 살펴보다, 곧 그들의 목적이 불안정한 금줄을 넘으려는 것을 깨닫고선 다급히 소리쳐.

“홍라녀! 네가 금줄을 지켜!”

“뭐? 지금 나보고 애를 맡기는 거니?”

“금줄을 타고 넘어가려는 거야! 생(生)문이 지켜지기만 하면 귀신들이 마을로 내려갈 방법은 없어!”

허, 한탄을 내뱉는 홍라녀. 못 이기겠다는 듯 지헌의 말에 결국 땅에 두 발을 디딛는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낯선 한복 차림의 여성에게 깜짝 놀랐는지 숨이 넘어갈 듯한 모양의 동하. 그러나 홍라녀는 개의치 않고 아이에게 다가가 손을 포개잡는다. 그리고선 겹쳐 잡은 손으로 흔들리는 금줄을 단단히 붙잡아.

아이와 홍라녀, 그리고 유일한 생문인 금줄을 뒤로 하고서 눈빛을 예리하게 빛내는 지헌. 홍라녀. 그 모습을 지켜본다.

결국 다사다난 끝에 힘겹게 악귀 무리들을 퇴치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안심하기 무섭게 산 정상 쪽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곧바로 이 소란을 눈치 챘는지 천천히 아래로 내려올 기색을 보인다.

“낮부터 이상한 게 느껴진다 싶었는데, 귀신들이 쫓기던 게 바로 저거였군.”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 굳어가는 지헌의 얼굴을 보고 드디어 입을 여는 홍라녀. 입가에는 즐거운 미소가 달려있다.

“그래. 악귀가 마을 사람에게 원한을 품어 내려온 게 아니라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저것에게서 도망친 거야. 자, 이제 어떻게 할 거니? 잡귀 몇몇을 가두는 데에는 문제없어도, 저것까지 막기에는 그만큼 금줄이 튼튼하진 않을 것 같은데. 역시 마을로 내려가서…….”

“넌 아이를 데리고 마을로 내려가. 나는 산 쪽으로 올라갈 테니.”

지헌의 말에 홍라녀의 말이 뚝 끊긴다. 이윽고 매서운 눈으로 지헌을 바라보는 홍라녀.

“너 미쳤니? 아무리 네 영기가 강하다지만 산 하나를 독점하고 있는 놈이랑 싸워보겠다고? 심지어 나도 없이 단 둘이서? 이전에 내가 등에 적어준 경문이 아니었으면 처음에 나가떨어졌을 거라는 건 알고 하는 말이지?”

“마을로 내려가서 지원을 기다리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라. 그동안 대피할 주민들이 화를 입지 않을지도 의문이고. 차라리 산 아래로 내려오지 못하게 위에서 시선을 끄는 게 낫다.”

“그래서 지금 나한테 애를 마을까지 데려가 달라고. 저기, 잊었나본데. 난 너한테 붙어있는 저주지 진짜 수호신이랑은 거리가 멀 거든?”

“네가 내려가서 선배를 데려와야 나도 살 것 아니야. 너랑 입 싸움할 시간 없으니 빨리 가기나 해.”

그러나 지헌은 아랑곳없이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오로지 산 정산에만 시선을 고정한다. 옆에서 무어라 말하든 전혀 신경쓰지 않는 모양새다. 얼굴에는 고집이 달라붙어 있어. 그런 지헌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결국 항복하는 듯 한숨을 푹 내쉬는 홍라녀. 다시 동하의 손을 마주 잡는다.

“혹시나 해서 말해두겠는데, 네가 죽으면 다른 장손이고 뭐고 몇 달 동안 숨어 있다가 계약 끝나자마자 날뛸 테니까? 네 목숨에 달려 있을 사람들을 잘 생각해보렴. 얘는 오늘 밤에 자다가 악몽 꿔도 난 모른다~!”

“그러던가. 내려가면서 애 넘어지지 않게 길이나 잘 봐.”

“…하여튼 저 생고집을 누가 말려. 가자, 얘야.”

우물쭈물, 지헌과 홍라녀를 번갈아 쳐다보는 아이의 불안한 눈빛에도 빛 하나 없는 산 길을 성금성금 내려가는 홍라녀의 발걸음엔 망설임이 없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둠으로 사라져가는 두 사람에 지헌은 아이가 떨어트린 후레쉬를 입에 물어. 길게 땋아내려 거추장스러운 머리를 돌돌 말아 올리고는 산 위로 거침없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등산객들이 종종 왔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산은 길을 내지 않은 수풀로 가득하다. 기운은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지는데 주변은 고요하기만 해. 소리 하나 없는 산 속이 소름끼친다. 조심스레 기운이 위치한 곳 근처에 다가가자 보이는 오래된 한옥 건물 하나.

바로 앞의 녹슨 목제 표지판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도산서원禱山書院'

#향사(享祀)

떨어진 기왓장, 허물어진 벽. 귀곡성이 저절로 흘러나오는 서원에서 지헌의 발길을 이끈 기운은 위패를 모시는 작은 사당에서 스며나오고 있었다. 사당에 적혀진 문패가 용캐 떨어지지 않고 제 이름을 밝혔다. ‘혜덕사(惠德祠)’.

입구를 지나 사당으로 발을 들이자마자 엄청난 압박감이 지헌의 몸을 짓눌렀다. 아까부터 느껴지던 시선이 진득하니 이전과는 다르게 노골적으로 몸을 한차례 훑고 지나간다. 썩은 피 냄새가 진동을 하는 장원 안에서 지헌은 조심스럽게 한 발자국씩 마당의 중심으로 향한다. 지헌의 발걸음 뒤로 폭풍이라도 휩쓸고 지나간 듯 사방에 무분별하게 널브러져 있는 제기(祭器)들과 온갖 잡동사니들이 덜그럭거리기 시작해. 그의 등을 향해 보이지 않는 시선이 늘어나더니 마당 안을 다 메울듯하다. 그 존재감을 고스란히 느끼면서도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고조되는 긴장감.

사당 안에는 돼지의 사체와 촛불 두 개가 나란히 불붙어져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맨 윗줄 중앙에 봉안된 위패에 먼지 하나 쌓여있지 않는 것이 눈에 띈다. 불길하게 빛나더니 위패의 뒤로 연기가 모여 무언가의 형상을 이루기 시작한다. 지헌, 그 모습에 시선을 때지 못하고 손에 감은 금줄에 힘이 들어갈 때.

갑작스럽게 사당이 떠나가듯 들려오는 목소리.

재례(在禮)─국궁(鞠躬)─! (예에 맞추어 허리를 숙이고-)

목소리는 생각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이 이어진다.

배(拜)─! (-절 하시오!)

그 직후 재빨리 머리를 숙이는 지헌. 동시에 머리 바로 위에서 세찬 파열음이 들린다. 말 그대로 공기를 찢은 듯 허공에서 일어난 폭발에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지헌의 몸이 순식간에 굳는다. 눈동자만 굴려 옆을 바라봐. 식은땀이 흐르는 지헌.

현관(獻官)─삼상향(三上香)─! (현관은 세 번 향을 올리시오!)

또다시 아까와 같은 소리가 들리더니 향로에서 세 가닥의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느껴지던 압박감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순식간에 강해진다. 드문드문 서 있던 인기척이, 이제는 빈 장원 안에 사람이 빼곡하게 들어찬 것처럼.

지헌은 생각했다.

정말, 잘못하면, 자기가 죽을 수도 있겠다고.

알자(謁者)─인(引)─초(初)─관(官)─예(詣)─세위(洗位)─! (알자는 초헌관을 안내하여 예를 갖추어 서시오!)

현관(獻官)─봉잔(奉盞)─수집(授執)─사자(事者)─! (현관은 술잔을 받아 잔을 올리시오!)

또다시 의문의 목소리가 사당 안에 울려 퍼진다. 지헌은 그 목소리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제례의 진행 순서를 읽는 찬자(贊者)의 창홀(唱笏)소리가 쩌렁쩌렁하다. 어느새 제 앞에 생긴 작(爵)(유제로 만든 제례용 술잔)을 들어 올린 지헌이 조심스럽게 작판(爵版) 위에 올려놓는다. 곧이어 달그락,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술잔 안에 담겼던 탁한 액체가 사라지고 작판 바닥에 새어나오는 것은 진득한 핏물. 동일한 음절로 축문을 읊는 소리가 마치 저승사자가 제 이름을 부는 것만 같이 오싹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서원은 교육기관인 동시에 성현들에게 제사를 올리는 제사원이기도 한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위치한 성균관이나 향교에 비해, 옛 서원들이 산과 강을 끼고 자연에 가깝도록 지어진 데에는 이러한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정말 제사를 잘 지냈으면 지금 이 꼴이 나진 않았겠지.

혼잣말을 삼키고 매서운 눈빛으로 사당 안을 훑어본다. 제사를 지내는 동안 누가 억울한 죽임을 당했든, 혹은 악귀가 주인 노릇을 하는 것이든, 생전에 '저것'이 이곳에서 제사를 받았음을 확신하는 지헌.

악귀 중에서도 바라는 것이 명확한 것은 전생에 미련이 있는 것이니 쉽게 사람을 해치지 않아 퇴마하기 가장 쉽다. 바라는 것이 없는 악귀는 무작정 사람을 해치는 법이니 곧바로 무력으로 제압해야 한다. 하지만 바라는 것이 뚜렷하면서도 사람을 해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것은 다른 악귀들 중에서도 퇴마하기 가장 까다로운 법이다. 귀신의 변덕이 밥 먹듯이 하니 조금만 수틀려도 살아있는 것들을 전부 죽여야 성이 풀리기 때문.

과연, 지금 제 앞에 있는 '저것'이 바로 마지막에 해당할 터였다.

행(行)─아(亞)─현례(獻禮)─! (아현례를 올리겠소!)

흥(興)─! 배(拜)─! 흥(興)─! 평신(平身)─! (고개를 숙이고 엎드렸다가 몸을 펴시오!)

독축이 끝나자 지헌은 상황을 살피면서 다시 깊이 무릎 숙여 절을 한다. 두 번째 술잔을 올리니 위패 뒤에 있는 형상의 모습이 조금 더 뚜렷해진다. 달그락. 또다시 작판 아래로 스며 나온 피가 제례상 아래로 흘러내렸다.

인강(引降)─복위(復位)─! (안내를 받아 자기자리로 돌아가시오!)

조용히 자리에서 도로 일어난 지헌의 손 안에는 이미 금줄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건 단 한 잔의 술잔. 지헌이 벌 수 있는 시간 역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리다.

지금까지 지헌이 이렇게 순서에 맞춰 예식을 올릴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과거 스승님을 따라 비슷한 제례를 지켜본 덕이었다. ‘초헌례—아헌례—종헌례’, 총 세 번에 걸쳐 술잔을 올리는 의식은 어느 제례이든 대거 다 비슷한 법이니까. 그러나 지헌도 ‘진짜’ 항례는 경험이 없었다. 저 많고 긴 홀기를 다 듣고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단지 반복되는 음절이나 처음과 끝에 들어가는 말을 듣고 순서를 짐작할 뿐. 언젠가는 한계가 올 것이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알자(謁者)─인(引)─종(終)─관(官)─예(詣)─세위(洗位)─! (알자는 종헌관을 안내하여 예를 갖추어 서시오!)

집사(執事)승(陞)─! (집사가 오르오!)

다시 무릎을 꿇고 제례상 위를 바라본 지헌은 그만 방금 뜬 두 눈을 다시 감을 수밖에 없었다.

상 위에 올려진 두 잔의 작(爵). 동시에 지헌의 오른편에 제례상과 향로, 작편이 새로이 생겨난다.

사람은 한 명인데 올려야 하는 잔은 두 개라.

술잔을 올릴 때마다 다른 사람인 양 속이고 나갔다 들어왔다 하는 것도 이제는 통하지 않을 터였다. 땀 한 방울이 지헌의 턱을 타고 떨어진다. 고개를 위로 들자 그곳에는 어느새 이목구비를 제외하고 형체가 선명해진 악귀가 허리를 구부린 채 뒷짐을 지고 지헌을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래로 쭉 내뺀 노인의 얼굴이 어쩐지 웃고 있는 것만 같다. 제기랄. 입 안에서 육두문자가 저절로 튀어나오는 군.

이대로 가다간 꼼짝없이 다른 악귀들처럼 저것한테 잡아먹히고 말 것이다. 지헌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래. 하다못해 저 위패에 부적이라도 붙여 기운을 억제할 수 있다면…….

그 순간 지헌의 불손한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노인이 지헌의 목을 낚아채듯 잡아 올린 건 한순간이었다. 컥, 작은 신음이 터졌다. 아마도 입이 있을 것이 분명한 구멍에서 괴상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낄낄 웃는 것 같기도, 무언가는 호통 치듯 외치는 것 같기도 한 소리. 제 면상을 들이미는 노인에 지헌은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목을 틀어막고 있는 팔은 꼼짝달싹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노인과 이마가 닿는 순간 지헌의 눈앞이 점멸하더니 어떤 기억이 흘러들어온다.


배경은 어느 한 조선시대의 향촌. 마치 노이즈가 낀 흑백 무성 영화를 보는 듯 화질이 좋지 않은 화면은 조용히 어느 한 건물을 비춘다. 건물의 문패에는 ‘惠德祠’란 글자가 힘 있게 새겨져있다.

제사 준비를 하는 듯 인부들이 바삐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펄럭이는 선비 옷을 입은 사람이 사당 안에 있던 기존의 위패를 치우고서 새 위패를 걸어놓는다. 그 뒤로 부축을 받으며 준비를 감시하고 있는 한 노인. 농민들에게서 수탈한 쌀로 밥을 지어 노인에게 올리자 노인은 고개를 끄덕여. 음습하게 올린 입 꼬리가 흡족한 곡선을 그린다. 천천히 제기의 뚜껑을 덮음과 동시에 찾아온 암흑. 연이어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

-오늘날 성현의 이름을 팔아서 사람들을 못살게 하는 도적들의 소굴이 된지 오래됐으니 어찌 놔둘 수 있겠는가?

-제현을 존중한다면서 자기 가문 조상을 모시는 게 서원이더냐? 산 사람을 모시는 사당은 또 무엇이냐?

-너희들은 서원이 없으면 성현을 모실 수 없단 말이더냐?

그리고 쿵.

"진실로 백성에게 해가 되는 것이 있으면 비록 공자가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나는 용서하지 않겠다!"

쿵.

시간은 무섭도록 빠르게 흘러간다. 쿵. 화면은 사당을 비추며 흘러간 세월들을 보여주고 있다. 해가 지고, 뜨고, 별들이 흘러가고, 비가 오고, 눈이 내리고, 해가 매섭게 내리쬐고….

쿵. 사람들이 찾지 않으니 허물어진 건물이 황폐해지는 건 한순간이다. 상아색의 벽체에는 넝쿨이, 단정했던 푸른 기와 위로는 먼지와 낡은 이끼들이 올라탔다. 쿵. 화면은 점점 문패로 다가간다. 쿵. 눈앞이 꽉 들어차도록 가까워지는 화면. 쿵. 그렇게 눈 앞에 혜덕사 세 글자만이 가득찼을 무렵,

쿵.

"찾았다! 와, 진짜 여기에 아직 서원이 남아있네?"

#습격

그 말을 끝으로 지헌의 시야가 돌아온다. 익숙한 비린내 속에 맡아지는 은은한 제사향과 작은 촛불에 의지한 어두운 한옥 안의 모습. 그리고 제 바로 눈 앞, 한 치 거리에서 입이 기괴하게 찢어진 노인이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 있다. 아까보다 얼굴이 조금 더 뚜렷해진 노인은 그대로 고개를 뒤틀며 말한다.

-곡식은 썩고… 고기엔 파리만 들끓는구나…….

-네 놈의 살점으로… 내 배를 채우리라……!

지헌,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이 손을 움직인다.

퍽!

바닥에 구른 지헌이 밭은 기침을 내뱉어. 고개를 숙인 노인은 얼굴에 부적이 붙여진 채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허우적거리며 제 얼굴을 긁어내던 노인이 끝내 기이하게 긴 손가락으로 부적을 거칠게 잡아 뜯는다. 수십 초도 버티지 못하고 재로 변해 삭아버리는 괴황지를 보며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지헌의 얼굴. 노인이 구부러진 허리를 쭉 필 새도 없이 앞으로 달려들고, 지헌은 가까스로 팔을 내리치며 막아선다. 부적을 덕지덕지 붙인 호신용 봉이 마치 금속과 부딪힌 듯 높은 울음을 내지른다. 지헌은 애써 봉을 다잡으며 눈앞의 노인을 노려봐.

노인의 형상은 어디까지나 눈속임일 뿐, 악귀의 사념이 깃든 본체는 분명 다른 곳에 있을 터였다. 그 본체를 없애야지만 자신이 살 수 있으리라 지헌은 직감해.

-네놈이… 감히……!

“말하는 투를 들어보니 누구랑은 다르게 이쪽은 진짜 나이를 먹은 느낌이 나네. 그런데 그 나이 먹고 하는 짓이 후손 괴롭히는 거면 더이상 조상 취급 받을 자격도 없지. 안 그래?”

노인이 분노에 가득 찬 괴음을 내지른다. 그와 동시에 지헌 역시 땅을 박차며 앞으로 달려간다.

노인은 다가오는 지헌을 막지 않았고, 바로 지금 이 순간!

지헌이 품 안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 노인에게 던진다. 뜯어진 종이 주머니에서 붉은 홍색 가루가 노인의 눈에 흩뿌려져. 예상치 못한 고통에 노인이 비명을 지르고 뻗은 손이 휘청거릴 때에, 지헌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몸을 던져 바닥을 구른다. 노인의 비명에 낡은 기와가 떨어지며 깨지는 소리가 단말마마냥 울렸으나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아. 지헌, 몸을 일으켜 그대로 사당 안쪽으로 달려간다. 손에는 괴황지에 붉은 경면주사로 문양이 적힌 부적이 들려있다.

-나에게 어서 예를 갖추어라…!

그리고 그 말을 받아채며 또다시 들려오는 음정 없는 목소리.

현관(獻官)─이하(以下)─개(皆)─서립(序立)──! (헌관 이하는 자리에서 일어나시오!)

마치 자신을 압박하는 듯 귓가에서 괴이한 소리가 스며들어.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속삭이는 소리. 작은 소리가 뭉치고 뭉쳐, 머릿속으로 기어들어온 목소리는 점점 괴성이 되었다. 지헌은 이를 악물며 눈앞의 위패에게도 달려들었지만 말보다 손이 더 빠를 수는 없는 법.

국궁배(鞠躬拜)흥(興)─! 배(拜)! (몸을 똑바로 하고 바닥에 엎드리시오!)

흥(興)─!

그렇게 마지막 절을 알리는 말소리가 끝나기 직전.

—쾡! 쾡! 쾌쾡! 쾡!

말끝을 자르는 요란한 소리가 사당 안을 갑작스럽게 덮친다. 사당의 입구 쪽에서 나타나는 인물은 반가운 얼굴의 손님. 온 몸에서 땀을 흘리는 선배가 시끄럽게 꽹과리를 치며 장원 안으로 들어온다.

그 소리에 짜증이 인 듯, 목소리는 다시 소리를 높였지만 꽹과리 역시 지지 않고 더욱 더 크게 자신을 울릴 뿐. 손으로 꽹과리를 치고 악귀를 노려보던 선배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빽 소리친다.

"야! 뭐 해! 하던 것부터 빨리 끝내!"

그 말에 번뜩 정신을 차린 지헌, 급히 부적을 꺼내들었다.

기운을 억제하거나 봉인하는데 사용하는 방진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방위(方位). 사당이 남향이니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쪽이 북향임이 틀림없었다. 위패의 양옆과 앞뒤에 만든 사방진. 그리고 중앙에 위치한 위패에 마저 부적을 붙여 오방진(五方陣)을 이룬 지헌이 주문을 읊는다. 그러자 푸른 빛을 내뿜으며 기운을 연기처럼 뿜어내는 부적들. 진법은 성공이다.

제 영력을 불어넣으며 지헌, 이를 악문다. 제발 좀 꺼져라. 제발!

-윽, 흐윽, 으아아악!!!

지헌이 황급히 사당 밖으로 나오자 불에 타오르는 노인의 모습이 보인다.

머릿속을 울리던 찬자의 목소리도 어느새 그친지 오래. 불에 타 몸부림치는 모습이 마치 신기루처럼 혼란스러운 잔상으로 남아 겹쳐 보인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주춤 꽹과리를 내려든 선배가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어.

"끄, 끝난 건가…?"

"미쳤어요? 그 말 하면 안 끝나는 거 모르십니까!?"

이 선배가 진짜! 그 말에 고개를 획 돌려 선배를 바라보는 지헌. 아니나 다를까 갑작스럽게 온 산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경기를 일으키듯 몸을 주체하지 못하던 노인의 형상이 이상하게 왜곡된다. 허공에 노이즈가 끼고 누군가 강제로 잡아 비튼 듯한 모양새. 온전한 사람의 형상은 어디로 가고 이전의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점점 꺼져가기 시작하는 불을 보는 지헌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너희들이 누구의 땅에서 난 곡식으로 배를 채울 수 있었더냐? 누구의 허락으로 마른 목을 실 수 있었더냐?

-내 땡볕 아래 노동하는 이들을 친히 가엾서 하였거늘, 이곳에는 은혜를 잊은 금수의 후손밖에 없구나!

곧이어 아까워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지진과 함께 엄청난 흙먼지가 일어난다. 우르르, 거대한 언덕이 움직이는 것 같은 소리. 어느 순간부터 빙빙 돌던 산의 영기가 한 곳으로 몰리기 시작해.

"사, 산사태다! 마을이!"

“큭……!”

얼굴에 혼란과 공포가 가득한 채로 다급하게 외치는 선배. 지헌, 급히 몸을 움직이려다가 어딘가 잘못 부딪쳤는지 명치깨를 부여잡으며 신음을 내뱉는다. 설상가상으로 먹구름이 둥글게 모이며 거센 폭풍이 이는 듯. 바람이 칼날이 되어 몸을 스쳐지나간다. 노인의 고함소리가 곧 천둥처럼 온 하늘을 울린다.

-나는 이 고을의 신이다! 이 몸을 경배하지 않은 이들은 모두 죗값을!

"어머~ 시끄러워라."

그리고 그 목소리를 단번에 끊는 한 사람. 아니, 한 괴이(怪異).

폭풍의 눈 속에 어느 순간 싸리눈이 휘날리는 듯하다. 늦여름의 밤인데도 스멀스멀 땅에서부터 한파가 올라와. 눈꽃처럼 피어나는 고요한 광기. 그것들이 일제히 하나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 곧 이 소란에도 눈 위를 사박사박 걷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고.

급박한 상황임에도 지헌은 희게 변하는 땅바닥을 멍하니 내려다보다, 그 소리를 따라 시선을 올렸다. 휘몰아치는 바람에 붉은 홍색 저고리와 검은 치마폭을 날리면서도 유일하게 허리를 몸을 꼿꼿이 세우고 있는 사람.

"요즘 귀신들은 왜 이리 목청만 커서는. 화통을 삶아 먹기라도 했니?"

홍라녀가 검은 머리를 휘날리며 그곳에 서 있었다.

가볍게 방긋 올라가는 붉은 입 꼬리.

"세상이 참 말세야~ 고작 절 몇 번 받았다고 이젠 개나 소나 다 신이라고 주장한다니까?"

-어딜 감히 아녀자가 이곳에 발을 들이는가……!

"어머, 심지어 꼰대이기까지? 얘, 요즘 조상들이 그러면 후손들한테 제사밥도 못 얻어먹어!"

그리고 나 퇴계 이황이랑 동년배야~ 말 조심하렴.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가볍게 들린다. 이제는 부형상의 악귀가 폭풍을 등에 업고 더욱 더 제 덩치를 불려간다. 다분히 위협적인 모습에도 입 위에 손을 올리는 홍라녀의 모습은 태연하기 짝이 없다.

"하여튼 참 우스워~ 이런 놈도 조상신이긴 조상신이라고."

지헌의 시야에서 여인의 붉은 눈이 반달처럼 휘어져.

순간 홍라녀를 둘러싼 주변으로 거대한 기가 한차레 휩쓸고 지나간다. 시야가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세게 몰아치는 눈보라에 눈앞을 양 팔로 막는 지헌. 숨은 새하얀 서리가 되어 공중으로 흩어진다.

두 눈을 부릅떠보지만 두 혼(魂)의 모습은 어느덧 몰아치는 겨울 폭풍과 함께 하늘 위로 올라가버렸다. 그 모습을 자세히 보기 위해 황급히 움직였다가 다시 바닥으로 고꾸라져. 급히 자신을 부축하는 손길이 느껴졌지만 지헌의 시선은 홍라녀에게서 멀어질 줄 몰랐다.

무언가에 홀리면 마치 이런 기분일까. 눈발 사이로 물결치는 검은 치마자락처럼, 무시할래야 무시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감이 그의 영혼을 잡아끌고 외치는 것만 같다.

나로부터 한 치라도 눈을 떼지 말라고. 네가 퇴마해야하는 것이 바로 자신이라고.

이쪽으로 시선을 건네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혈통을 타고 이어진 숙명. 결코 사라지지 않을 계약. 꼬박 500년을 거슬러 오른 괴이가 자신의 존재를 과시한다. 쿵, 쿵, …심장이 미친듯이 뛴다.

눈보라 안의 소리는 들려오지 않지만, 벙긋 움직이는 악귀의 입 모양에서 간신히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대체 저 안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 건지 짐작하지 쉽지 않다.

-고작 저런 아해 멍청한……!

-…비난할 때가 우습구나… 미련…….

-너 역시 죽여버리겠……!

조용히 미소를 띄운 체 악귀의 말을 듣고만 있는 홍라녀. 그 모습이 불안해 보이는건 단지 지헌의 기우일 뿐일까. 한계를 맞이한 듯 집중하던 지헌의 초점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위태로운 시야 사이로 요살스러운 홍안과 마주쳤을 때,

자신에게 친절히 웃음 짓는 얼굴을 보며 완전한 암흑이 찾아온다.

그리하여 기억과 사고는 모두 이곳에서 끝났다.

#후일

이후 지헌이 의식을 차린 건 근처 도시의 병원.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건너편의 여인이 시야에 들어온다. 지헌이 깨어날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입을 여는 홍라녀. 지헌이 쓰러진 이후 사건이 잘 마무리되었음을 알려준다.

"서원 근처에서 고장 난 카메라를 발견했다고 하더라. 내가 보기엔 고물이나 다름없던 상태인데 내장 칩이니 뭐니— 도통 어려운 소리를 하더니만 네 선배가 가져가서는 금방 영상을 확인했지 뭐니.“

입을 여는 홍라녀의 얼굴에는 따분함이 묻어있다.

“무슨 전통 무속 답사 동아리라고 하던가. 아주 지들끼리 신이 나서 뭣도 모르고 제례를 준비하는 모습이 그대로 찍혀져 있던 걸~ 그 탓에 잘 자고 있던 노망난 할아범이 깨어난 모양이고. 깜짝 놀라 도망친 장면까지가 영상의 끝. 저만한 악귀를 상대로 인명 피해 없이 끝났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산에서 시신까지 찾을 필요는 없으니 얼마나 잘 된 일이니? 하여튼, 모은 일의 근원은 언제나 인간의 호기심 때문이라니까."

"…그쪽이 더 나이가 많을 텐데 할아범이라고 부르는 게 맞는 건가?"

"얘는, 내 말을 지금 듣기는 들은 거니?"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은 홍라녀가 자리를 털고 가볍게 일어나.

"이번엔 운이 정말 좋았단다. 썩어도 준치라고, 네 선배라는 사람이 제때 소음으로 창홀을 덮지 않았다면 목이 날아간 건 진작에 너였을 텐데. 양기가 많이 상했을 테니 한동안은 보양이나 잘하렴. 알아듣겠어?"

그런 홍라녀를 가만히 올려다보는 지헌. 할 말을 정리하는 듯 잠시 입가를 매만진다. 한참을 침묵하다 꺼낸 건 다소 뜬금없는 주제. 그러나 이전부터 신경을 자극하던 의문. 지헌, 결국 참지 못하고 입 밖으로 내뱉는다.

“…왜 날 도와준 거지?”

“잘 끝내놓고선 왜 또 갑자기 뚱딴지같은 소리래?”

“내가 사라지면 너한테는 오히려 좋지 않나? 네 입으로 직접 말했잖아. 숨어서 계약이 끝나기를 기다리겠다고.”

“어머~ 맨 처음 부탁했던 사람이 누구인데 이제 와서?”

“말 돌리지 마. 그건 내가 위험을 부담하려던 거였잖아. 마지막에 네가 나선 것과는 다르지. …산귀(山鬼)와 직접 맞붙으면서까지 나를 도움 까닭이 뭐지? 영원히 악귀로 남는 것 보다 뒤늦게라도 퇴마 당해 극락왕생을 시도하고 싶었나? 지금까지 쭉 비협조적이었으면서, 이제 와서?”

지헌의 미간이 좁혀졌다.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홍라녀의 시선에 지헌은 그제야 확신한다. 자신이 지금까지 느낀 기묘한 불편함은 비단 산의 악귀 때문이 아니라고. 홍라녀, 생각을 읽을 수 없는 특유의 무채적인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삐딱거린다.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묻어나오고.

“내기를 했으니까.”

“뭐?”

“네가 죽는다고 계약이 더 빨리 끝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몇 개월만 지나면 전부 죽을 걸 초상 치루는 것도 번거롭잖니~ 병상에 누워 끙끙거리는 꼴 구경하기보다는 말 통하는 놈 하나 붙잡아 놓는 게 훨씬 낫지. 그래서 도와준 거야.”

그래서, 우리 퇴마사님의 궁금증은 풀리셨나? 순식간에 방긋 그린 듯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홍라녀에 지헌은 입을 다물어. 묻고 싶은 말은 물론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악귀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에게도 힘을 사용하는 게 가능한지,

악귀와 대체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그날 나누었던 대화에, 어째서 너는 화가 나 보였는지.

그러나 결국 입을 열지 못하는 지헌. 당장 아쉬운 쪽은 이쪽이고, 추궁해보았자 홍라녀가 대답을 해줄 리가 만무했다. 다만 지금의 기억을 머릿속에 잘 넣어두는 수밖에. 두 청회색 눈동자가 순순히 접혔다.

짧은 정막을 깨듯 타이밍 좋게 들려오는 노크소리. 드르륵 소리를 내며 병실 문이 열린다. 지헌이 깨어있을 줄은 몰랐는지 눈을 살짝 크게 뜨는 선배. 지헌도 그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일어나 있을 줄은 몰랐는데. 상태는 어때? 좀 괜찮아?”

“방금 막 일어났습니다. 생각보다 살 만 하네요.”

무언가 가득 찬 스포츠 가방을 매고 병실 안으로 들어온 선배가 안도의 숨을 내쉰다. 지헌, 살짝 허리를 숙여 선배의 한쪽 손을 차지하고 있는 아이와 눈을 맞춰.

“너도 괜찮아? 어디 몸이 아프진 않고? 이상한 꿈은 안 꿨어?”

“저, 저는 괜찮아요…….”

부끄러움을 타는지 조용히 선배의 뒤로 숨는 동하. 홍라녀와 조금 긴 시간동안 접촉한 것 치고 상태가 괜찮아 보여 지헌은 고개를 끄덕인다.

“동하야, 선생님이 오빠 보면 뭐라고 하랬지?”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멋대로 산에 들어가서 죄송해요.”

쭈뼛쭈뼛 눈치를 보는 것과 달리 꾸벅 허리를 반으로 접으며 인사를 하는 아이. 그러고는 주변을 슬그머니 살펴본다. 이내 용기를 가진 듯 조금 더 커진 목소리로 말해.

“저… 엊그제 본 예쁜 언니는요…….”

자신을 쳐다보는 지헌에 홍라녀, 어깨를 으쓱인다. 알아서 하라는 침묵의 말에 미묘한 기류를 눈치 챈 선배가 먼저 입을 연다.

“어쩌지? 그 언니는 지금 많이 바쁜 모양인데.”

“언니한테도 고맙다고 하고 싶었는데….”

“나중에 동하가 고마워했다고 선생님이 대신 전해줄게. 밖에서 조금만 기다려줄 수 있겠니? 앉아서 책 읽고 있으면 간호사 언니들이 살펴주실 거야.”

꼭 전해줘야 해요? 그럼, 물론이지. 선생님이 약속할게.

드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작은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며 이후 짧은 정적. 문이 닫히자 간신히 유지하던 미소도 지워진 체 피곤함을 숨기지 못한 얼굴이다. 그렇게 크지 않은 병원의 평일은 무척이나 조용하다. 입을 못 떼는 선배 대신 지헌이 먼저 말을 건네.

“마을은 좀 어떻습니까?”

“…아직 어수선하지. 다친 사람은 없지만 지진 때문에 기와가 떨어진 집도 있고, 무엇보다 가축들이 깜짝 놀라서 사람들이 전부 깨어난 모양이더라. 야밤에 그 난리가 났으니 다들 뭔지는 몰라도 심상찮은 상황이었다는 건 알았겠지. 이장님이 곧 사람을 불러서 굿을 올린다고 하시던데…….”

손을 쓸어올려 마른세수를 하는 선배. 그러고 나서 다시 말을 잇는다.

“동하는 원래 보호자가 없어서, 너 보고 싶다고 하는 김에 내가 데리고 올라 왔어. 요즘 애들은 겁도 없더라. 나 같으면 인사고 뭐고 집에 틀어박혀 있었을 텐데, 귀신한테 죽을 뻔 하고서도 네 얼굴 볼 생각을 하니까 말이야.”

“그래 보이긴 합니다. 선배보다 더 용감한 것 같던데요.”

“나 아니었으면 넌 그때 죽었거든? 알아?”

“압니다. 그리고 제가 아니었으면 마을 사람들도 무사하진 못했겠죠.”

다시 짧은 정적. 그러나 이번에는 오래 기다릴 생각이 없다는 듯 지헌이 곧바로 입을 연다.

“선배. 모든 괴이는 퇴마하지 않으면 언젠간 곪아 터지기 마련입니다. 생각보다 남은 시간이 길진 않아요. 선배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잇 씨, 알겠어. 알겠다고!”

마지못해 성질을 부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선배. 그제야 지헌의 얼굴이 조금 밝아진다. 한숨을 쉬며 가져온 가방을 연다. 가방 안에서는 온갖 것들이 나오기 시작해. 그것들을 꺼내는 선배의 표정이 착잡했으나 지헌의 표정은 점점 이상해진다. 눈대중으로 물건의 가짓수를 세는 지헌.

“오색 감흥화에 고리짝, 넋당석, 영집, 송송개, 불보살번까지……. 와, 요즘도 살잽이 꽃을 만들어 판답니까? 이거 되게 비싸지 않아요? 조금이라도 혼을 가두거나 돌려보내는 무구들은 죄다 가져오셨군요.”

선배 혹시 어디 큰 무당 집이라도 털어오셨습니까?

본가 올라가서 우리 집 털었다, 왜. 어디 지역 귀신인지도 모르니 그냥 눈에 보이는데로 가져올 수밖에.

군문기를 문 양 옆에 매다며 선배가 대답해. 투덜거리는 목소리와 달리 종이를 묶는 손은 분주하다. 지헌, 침대에서 일어나 순식간에 가득 들어찬 병동 안을 둘러본다. 대나무 가지에 달린 기메와 첵지가 눈이 가는 곳마다 달려있고, 한쪽 벽은 아예 설경(設經)으로 가득 덮였다. 마지막으로 제 앞에 대철망까지 올려두는 것을 지켜본 지헌은 미묘한 표정을 숨길 수 없어.

“간호사 분들이 보시면 아주 까무러치겠군요.”

“넌 그게 중요하냐? 내가 이거 가져온 거 백부님께 들키면 아주 작살이라고.”

“‘보는’ 과정이 원래 이렇게 복잡한 겁니까?”

“아니. 원래 존재감이 강한 귀신일수록 쉽게 보이는데, 바로 그 부분이 문제라서 그래. 여기에 있는 구 할은 다 나를 보호하려고 가져온 거야. 중간에 이상한 거 보고 경기라도 일으키면 큰일이니까. 고모님들 말씀으로는, 신기라고 했나…. 아무튼 그런 게 활짝 열려있는 상태라고 하시던데. 아니 그럼 뭐, 내가 원할 때 보고 쉽게 닫을 수 있는 건 줄 알았어?”

“그냥 이 참에 영법사로 일하시는 건?”

“미쳤냐? 지금도 무서워서 손발이 덜덜 떨리는데 되겠어?”

오른손에 성수부채를, 왼손에 방울을 든 선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린다. 내 팔자가 문제지, 팔자가 문제야.

“하, 성수님들, 도령님들, 장군님들, 할미님들…. 진짜 무섭네. 저 좀 지켜주실 거죠? 맨날 싫다고 해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저희가 그동안 치성을 올린 정이 있는데, 이번만 지켜주시면 굿 진짜 거하게 올려드릴게요. 물론 제가 아니라 저희 고모님들이…….”

“선배 내림굿 안 받으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래도 괜찮아요?”

“괜찮아. 아마도? 우리 집에 무당 일 하시는 분만 몇 명인데, 신벌은 안 내리시겠지. 살 정도면 어르신들이 막아주시지 않을까.”

…무속인 집안이란 원래 다 이런 건가?

벽에 등을 기댄 지헌이 속으로 의문을 떠올리고 있자니 안경을 벗어 가지런히 가방 안에 넣는 선배. 긴장한 티를 벗어내지 못하고 몸을 몇 번 털더니 지헌 쪽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지헌, 그 시선을 받아 홍라녀에게 전달하고. 허공에 앉아 한 손으로 머리를 꼬며 그 모습을 보던 홍라녀가 훌쩍 바닥으로 내려온다. 툭, 바닥에 닿는 작은 발걸음 소리와 함께 실체화를 하는 홍라녀. 허공에 검은색 치마자락이 휘날린다.

야, 시발 잠시만. 이거 맞아?

맞습니다.

눈을 감은 선배는 다시 한 번 욕설을 중얼거리더니 무경을 구송하기 시작한다. 시야가 어두워지더니, 다시 환하게 밝아져.


이후 두 눈을 뜨며 갑작스럽게 제 상체를 일으키는 선배. 가쁘게 호흡하며 제 몸을 더듬더듬 확인한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난 후에야 진정이 되었는지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방 안 풍경.

그 동안 방 안 모습도 심상치가 않다. 붉은 글씨만 죄다 타버린 설경. 대나무 가지는 어느새 기가 꺾이고, 중앙의 대철망은 자물쇠가 산산이 부서진 모양이다. …미친. 이게 뭐야? 쩍 벌어진 입은 다물 줄을 모르는 듯.

“여파 한 번 화끈하네…. 왜 선배가 저렇게 바리바리 싸들고 왔는지 절절하게 깨달았습니다.”

끙끙거리며 침대 쪽 바닥에서 기어 나와 몸을 일으키는 지헌. 언제 들어갔는지 흰색의 환자복에 먼지가 묻어 나온다. 선배, 괜히 머쓱한 기분이 드는 모양.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새하얗게 질린 얼굴은 생기를 도통 되찾을 줄 몰라. 그 모습을 보며 다리를 훌훌 터는 지헌.

“일단 확실하게 뭘 보긴 하신 모양이군요.”

“그, 여, 여기에서 말해도 되는 부분인거냐? 왜, 괴이가 들으면,”

“예, 괜찮습니다. 걔는 애 보라고 진작 내보냈습니다. 안 그래도 동하가 보고 싶어 했잖아요.”

“어, 그랬긴 한데……. 잠깐. 아무리 그래도 애한테?”

“보니까 동하가 악몽도 안 꾸고 기가 있는 체질 같아서요. 그 난리를 부려도 멀쩡했는데 괜찮지 않겠습니까?”

“나는 이게 맞는지 모르겠다.”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내뱉는 선배에 침대에 걸터앉은 지헌이 옆에 있는 보조 의자를 가볍게 두드린다.

어서 빨리 이야기 해주십시오. …대체 뭘 보신 겁니까?

생각만 해도 입이 바짝 마르는 듯 쉽게 입을 때지 못하는 선배. 그 모습을 보고 옆에 있던 물병을 건네준다. 물병을 거의 비울 기세로 마신 뒤에야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가만히 숨을 고르는 모양새.

“…악신이야. 악신이 달라붙었어.”

“그야 당연히 그러겠죠. 500년 동안 조상신 흉내를 내왔지 않습니까. 어지간한 퇴마로는 꿈쩍하지도…….”

태평한 지헌의 대답에 선배, 무언가 욱한 듯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내뱉는다.

“가짜 조상신 따위를 말하는 게 아니야. 저건 진짜야. 악귀가 신으로 모셔졌다고! 그 난리를 겪고도 이런 말을 하는 게 우습긴 한데, 고작 억지로 올린 제사 몇 번 받은 거랑은 차원이 달라!”

지헌, 잠깐 침묵 후 다시 입을 연다.

“…그게 말이 됩니까? 500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저 괴이를 기억하는 사람도 없다고요. 악귀가 흉신으로 모셔지는 경우가 흔치 않긴 하지만, 대게 악귀를 모시는 이들이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힘을 잃기 마련 아닙니까? 그 노인 귀신도 서원이라도 남아서, 서원이 있었기 때문에 저 정도의 힘을 보인 거라고요. 걘 지박령도 아니에요. 애초에 악귀가 흉신이 되어 이성을 잃었다면 이 집안은 단명이 아니라 진작에 대가 끊겼을 겁니다.”

“그게 더 위험하다는 거야. 처음 들었을 때부터 이상하다 싶었지. 단순한 귀신이 조상신을 내쫓고 자기가 조상신 노릇을 해왔다고? 그것도 500년 동안? 옛날부터 퇴마사 집안이었다며. 그런 곳에서 모시는 조상신이 얼마나 강한지 네가 잘 모르나 본데 그게 얼마나 허무맹랑한 소리인데 알아야한다. 차라리 호랑이가 500년 동안 쑥만 먹고 사람 됐다는 말이 더 믿음직하겠어!”

그러고선 어느새 가라앉아 진중한 표정이 되어서는 말을 덧붙인다.

“잘 들어, 후배. 이건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원한으로 버틸 수 있는 게 아니야. 그 정도 시간이라면 최소 수백 명, 아니, 어제 보여준 대로라면 수만 명이 얽혀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네 선조들은, 대체 어떤 존재랑 계약을 맺은 거냐? 그리고 이 정도의 귀신과 집안이 통째로 묶여버렸는데 왜 다른 사람들한테 알리지 않은 거지? 이정도의 사념이 뭉칠 정도면 어떤 식으로든 분명 기록이 남아있어야 정상이라고.

던져진 의문 이후 둘은 한참동안 말이 없다. 자헌,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다가.

“잠깐. 그러면 정체를 알 수 있는 단서도 못 찾은 겁니까?”

“잘 모르겠어. 워낙 많은 사념들이 한 번에 스쳐 지나간 탓에 제대로 보이는 게 없어. 그래도 소리 중에는 어렴풋이 들려오는 게 있긴 한데, 마치 노랫소리 같은 거.”

“노래요?”

“어. 아, 그럼 아까는 퉁소 소리였나? 아마도 토속 민요인 모양인데. 억양이 너무 강해서 가사가 잘 들리지는…….”

가웃, 확신 없는 표정으로 말하는 선배의 이야기에 지헌의 두 눈이 번쩍 뜨인다. 그러고선 덥석 두 손을 마주잡는다.

“바로 그겁니다! 선배. 선배는 할 수 있습니다.”

“뭐, 뭐? 뭐가?”

생기를 되찾은 듯 반짝 빛나는 지헌의 얼굴을 부담스러워하며 마주하는 선배.

저 믿으시죠?

아니 그러니까 시발 뭐가?!

그리고 정확히 2시간 뒤, 초췌해진 얼굴로 병실 문을 열고 나온다.

“이만큼 들으셨으면 가락도 외우셨겠…….”

“안 불러! 부르다가 진짜로 귀신 들릴 일 있나! 그거나 받고 썩 사라져!”

“감사합니다. 나중에 몸보신에 좋은 부적 하나 써드리겠습니다.”

“필요 없어!!!”

2시간 동안 가사 하나 얻겠다고 사람을 이렇게 달달 볶는 놈은 네가 처음일거다!

빽, 옆에서 고함을 지르는 선배지만 지헌은 가뿐히 무시한다. 선배의 표정과는 달리 싱글벙글 웃으며 복도를 걷는 자헌. 그의 손에는 한 장의 종이가 들려있다.

「금수 강산이 제아므로 좋아도

정든 임 없으면 적막 강산이로다

에 ― 얼싸 좋다 얼 널널리 상사디야

뒷동산 숲속에서 두견이 우는 소리

임 여읜 이내 몸 슬퍼만 지는구나

에 ― 얼싸 좋다 얼 널널리 상사디야

무심한 저 달이 이다지도 밝으니

울적한 심회를 어이나 풀어 볼까

에 ― 얼싸 좋다 얼 널널리 상사디야

더 없는 세월이 자꾸만 흘러가

꽃다운 청춘이 언제나 백발될까

에 ― 얼싸 좋다 얼 널널리 상사디야

쓸쓸한 한세상 누굴 믿고 살아갈까

맹세도 허사로다 가 버린 그 님을 어이하리

에 ― 얼싸 좋다 얼 널널리 상사디야…」

동하와 인사를 한 뒤에 퇴원 수속을 밟고, 서울로 올라와 국악가를 찾아갈 때까지 지헌의 얼굴에는 희망이 가득 차 있다.

그래. 토속 민요만큼 더 확실한 단서가 없다. 어디 지역 출신인지를 알면 그래도 좀 할 만해지지. 일단 그곳으로 내려가서 근방에 전해져오는 설화들부터 싹….

“이거 이북 민요구만 그래.”

“예?”

“<애원성>이라는 함경도 노래네. 게다가 가사를 보아하니 함경북도 쪽에서 많이 불렸던 향토민요 같은데? 그쪽은 전해진 노래가 거의 없는데 용케도 이걸 들고 왔구먼. 내가 모르는 소리꾼 중에서 아직도 이쪽 노래를 하는 사람이 있던가? 자네, 이걸 대체 어디서 들은 건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듯 멍한 표정을 짓는 지헌. 그리고선 홍라녀가 있는 쪽으로 무섭게 고개를 돌려.

“…네가 북한 출신이었다고?”

“어머, 이상한 말이네~ 조선 팔도에서 나고 자랐는데 갑자기 후손들 때문에 갈라치기 당한 건 이쪽이란다? 하긴. 내가 서울말을 좀 잘하긴 해?”

방긋 미소 짓는 홍라녀를 바라본 지헌이 바보처럼 중얼거린다.

“내가 북한으로 올라 갈 수 있던가?”

“에이, 농담이지? 평양도 아니고 백두산 인근인데 되겠니? 배 타고 산맥 넘어 밀입국하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얘~”

까르륵 방 안을 울리는 웃음소리에 잠깐 마른세수를 한 뒤 싶게 숨을 고르는 지헌. 쓰으으읍. 후우우우우…….

“시이발. 퇴마 한 번 하기 진짜 빡세네…….”

그 혼잣말에 건너편에 있던 국악인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헌을 바라보다 혀를 찬다. 쯧쯧. 거, 젊은 사람이 벌써부터 노망이 나면 힘들 텐데.

결국 퇴마는 다시 도돌이표. 터덜터덜 본가로 걸어가는 길에 그제야 현실을 받아들인 듯, 허탈한 목소리로 지헌이 입을 열었다.

“애초에… 네 이름인 '홍라녀'는 뭘 의미하는 건데? 조선 초기에 왜 갑자기 발해 전설이 튀어나오는 거지? 그 시절 기준으로도 멸망한지 족히 500년은 더 지난 나라 아닌가?”

“글쎄~? 어떻게 된 일일까~?”

“진짜 미안한데 말피 묻힌 손으로 한 대만 때리면 안 되나?”

“웃긴다, 너. 그게 되겠니?”

허공에 둥둥 뜨며 깔깔 웃는 홍라녀.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되고 지헌과 홍라녀는 다시 돌아온다. 이를 바득 가는 지헌.

두고 봐라. 내가 어디 포기하나. 반드시. 반드시 퇴마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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