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오웬] 유령과 여름꽃

like a miracle by s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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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인오웬. 모브 시점.

* 본축과는 완전히 상관없는 au 입니다.

* 오웬이 카인의 엄마()입니다… 카인이 젊을 적 세상을 떠나, 오웬이 어린 카인을 만들어냈다는 설정.

당연히 나이 차도 있음. 수위있는 묘사는 없습니다만 그런 분위기나 설정이 어려우신 분은 관람을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 익명의 트친님의 썰을 보고 감명받아 분위기대로 써버린 3차창작입니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유령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밀랍 인형 같은 혈색 없는 얼굴은 유기물보단 무기물들과 더 가까워 보였다. 몹시 마른 몸이 만들어 내는 가느다란 선과 짧지만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는 은빛 머리카락은 언뜻 봐선 그의 성별을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조그마한 얼굴이 고개를 들고 이쪽을 보면 그 이목구비는 놀랍도록 단정하다. 다만 그것은 어느 성적인 아름다움이라기보다 잘 만들어진 공예품의 아름다움이었다. 깨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것 같은 덧없는 아름다움.

검은 자켓과 하얀 블라우스, 검은 긴 바지. 거리를 5분만 걸으면 열 명쯤 마주칠 듯한 특색 없는 옷차림이었지만 그 묘하게 건조하고 무기질적인,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조차 잠시 의심해 봐야 할 듯한 분위기는 그를 조금 특별하게 만들었다.

그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더 있다. 매번 그가 꼬옥 붙들고 있는-아니, 붙들려 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작은 남자아이가 그와는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색을 전부 어딘가 두고 온 듯한 그와는 다르게 세상의 색이 자신에게 집중되어있는 것처럼 반짝이는 아이였다. 고급 비로드와 같이 찰랑이는 붉은 머리카락을 대강 뒤로 넘겨 하나로 묶은 아이는, 바깥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지 가끔 무릎이나 얼굴에 커다란 반창고를 붙이고 왔다. 활동적인 분위기와는 다르게 옷차림은-가끔 무릎께나 소매가 너덜너덜 찢어져 있을지언정-늘 어딘가 어울리지 않게 점잔빼는 스타일인 것이 묘하게 인상에 남아있다.

두 사람은 가게에서 대화를 많이 나누지 않았다. 아이는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신나서 카운터로 달려왔고, 그는 두어 발짝 뒤에 가만히 서 있을 따름이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추측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혈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닮지 않았고, 선생과 제자라고 보기에는 너무 위계가 느껴지지 않았으며,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고 하기에는 너무 친밀했다.

이거 주세요, 아이스크림의 종류를 일생의 중대사라도 되듯 살피던 아이는 '세'를 '데'에 가까운 어린아이 특유의 조금 웅얼이는 발음으로 말했다. 그리고 조그마한 손 안에 꼬옥 쥐고 있던 은색 동전을 자신만만하게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얼마나 꼭 쥐고 있었던지 손바닥에 조그마한 빨간 자국이 보였다. 하루는 그걸 문득 쳐다보고 있자니 아이는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손을 툭툭 털고는 눈을 마주쳐 오며 씩 웃어 보였다. 빛이 흘러넘치는 듯한 미소였다. 아무리 보아도 동행인과는 전혀 닮지 않은 아이였다. 굳이 자세히 살피자면 눈동자의 색이 닮았다. 진홍빛의 보석 같은 아름다운 눈동자와, 그보다 조금 옅은, 벌꿀색 눈동자.

아이가 눈을 빛내며 아이스크림을 받아 들면 그는 말 하나 건네지 않고 몸을 돌렸다. 아이는 그것이 익숙한 듯 별 반응도 없이 그에게로 곧장 달려가서 한 점 망설임 없이 그의 손을 끌어당겨 잡았다. 그는 보통 검은 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딱 하루, 어째서인지 장갑을 끼고 있지 않은 날이 있었다. 너무나도 핏기가 없어서 얼음장처럼 차가워 보이는 손이었다. 그날도 아이는 주저 없이 그의 새하얀 손을 잡았다. 아이 특유의 조금 뜨겁기까지 한 체온이 닿으면 그 손은 녹아버리는 것이 아닐까?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었다. 새하얀 손가락엔 반지가 없었다.

어느 여름날이었다. 언제나와 같은 시간, 예의 두 사람이 가게에 오는 시간이다. 그런데 그날은 평소와 달랐다. 딸랑, 하고 문에 달려있는 종이 울리고 들어온 것은 작은 아이뿐이었다. 아이들은 어른 없이 가게에 들어오는 것을 주저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는 혼자 가게에 들어오는 데에도 별다른 불안감이 없어 보였다. 씩씩하게 걸어들어와서는 여느 때처럼 진지하게 아이스크림을 고른다. 말을 건넨 것은 충동적이었다.

- 안녕, 오늘은 혼자네.

아이는 눈을 크게 떴지만, 곧바로 여름꽃처럼 해사한 미소를 돌려주었다.

- 응, 오늘은 오웬이 바쁘대. 그치만 저 건너에서 만나기로 했어.

그렇구나, 하고 마주 웃었다. 오웬? 늘 같이 오는 동행인의 이름일까?

- 늘 같이 오던 사람은…

- 오웬 말하는 거야?

- 오웬이라고 하는구나. 친척이니?

- 으응…

막힘없이 대답하던 아이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렇지만 왼쪽 위를 바라보던 아이는 이내 방긋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 엄마. 오웬은 엄마야.

그것이 비유적인 이야기인지 정말인지는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렇구나, 자 여기. 피스타치오 아몬드 맛 아이스크림을 건넸더니 아이는 그날도 빛이 쏟아지듯 웃으며 은색 동전을 주었다. 문득 스친 손가락은 몹시도 따뜻했다.

“왜 그렇게 신경 쓰는데?”

“그게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하여튼 인상에 남는다니까. 너도 보면 알 거야.”

가게의 라커룸은 세 사람이 들어오면 꽉 차는 좁은 공간이다. 그 너머, 가게의 카운터와도 벽 사이로 소리가 잘 울린다. 유니폼을 사복으로 갈아입으며, 가게에 들르는 독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이 가게는 규모가 크지 않아서 한 시간대에 한 사람이 근무하면 충분하다. 가게의 시프트는 안정적으로 고정되어 있다. 그 둘은 대체로 같은 시간에 가게에 온다. 그럼에도 매일같이 가게에서 보는 특이한 두 사람을 자신밖에 모른다니 어쩐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갈게. 응. 조심히 들어가. 시답잖은 수다를 마치고 짐을 챙겨 가게를 나선다. 여름 내내 그렇게나 더웠는데 거리는 이제 완연한 가을이라 조금 쌀쌀한 바람이 코끝을 스친다. 옷을 좀 더 두껍게 입어도 되겠어. 우리 가게도 슬슬 손님이 줄까.

그때였다.

평소 늘 지나는 길, 공원을 통과해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익숙한 인영이 시야 한구석에 스쳤다. 새하얀 잔상이 남을 정도로 창백한 얼굴. 부드러워 보이는 은빛 머리카락. 자연광 아래에서 보니 그는 정말로 빛에 녹아 사라질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 얼굴이 어쩐지 잊지 못할 정도로 강렬하게 시야에 눌어붙은 건 그가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의 무기질적인 표정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정한 웃음. 그 시선의 끝에는 그 아이가 있었다. 여름꽃같이 웃는 남자아이. 그가 만약 정말 유령이라면, 그를 세상에 매어두는 건 저 아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은 벤치에 앉아 크레페를 먹고 있었다. 크림이 잔뜩 든 달콤한 과자. 아이의 콧잔등에 새하얀 크림이 묻어있었다. 아이는 먹는 데에 집중해서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무심하게 그 크림을 살짝 손가락으로 쓸어 자기 입에 넣었다. 아이가 있는 보호자라면 으레 하곤 하는 행동이다. 내가 놀란 건 다음 순간이었다.

자기 과자를 거의 다 먹은 아이가 그가 먹는 크레페를 한 입 달라고 한 모양이다. 그는 새침하게 고개를 저었다. 어른답지 못하네. 그 정도의 감상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그의 목덜미 쪽 카라를 잡아당겼다. 그리고선 그에게 입을 맞췄다.

잠시 사고가 멈췄다. 왜? 보통 입을 맞추나? 어린아이와 어른의, 친애의 입맞춤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었다. 문득 붉은 잔영이 시야에 스쳤다. 두 사람은 혀를 섞고 있는 것이다. 나는 세상이 어그러지는 것 같은 기분으로 놀라서 숨도 쉬지 못하고 그쪽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눈이 마주쳤다.

매여있는 건, 어느 쪽?

급히 시선을 거뒀다. 덜덜 떨리는 손을 애써 고쳐잡으며 집까지 뛰었다. 오한이 들었다.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썼다. 가게를 며칠인가 쉬었다. 심한 여름감기였다. 이제 가을인데, 아직도 여름이니. 같이 일하던 동료가 웃었다.

그 후 두 사람은 가게에 오지 않았다.

애초에 나밖에 모르던 단골이었다. 내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는.

그렇지만 꽤 오래 그 독특한 두 사람은 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여름꽃이 피듯 행복하게 활짝 웃던 아이와 그 손을 꼬옥 잡고 있던 유령 같은 사람.

몇 년인가 지나고, 그 가게에서의 아르바이트도 한참 전에 그만두어 모든 기억에 먼지가 쌓여 희미해졌을 때쯤, 우연히 길을 걷다 그 둘과 비슷한 사람들을 봤다.

훌쩍 키가 큰, 붙임성 좋아 보이는 붉은 머리의 잘생긴 소년과 나이도 성별도 알기 어려운, 인형처럼 아름다운 청년의, 관계를 알 수 없는 일행이었다. 두 사람은 잡화점에서 물건을 구경하고 있었다. 소년이 장난을 치듯 커다란 곰인형을 청년 앞에 불쑥 내밀고 곰인형 뒤에 숨어 팔을 흔들었다. 청년은 미간을 찌푸리고 곰인형을 팔로 밀어냈지만 정말로 싫은 기색은 아니었다. 소년은 즐겁게 웃었다. 빛이 쏟아지는 것 같은 미소였다. 청년도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소년의 색이 그에게 스며든 듯 했다. 두 사람은 몹시 행복해 보였다.

그 둘인지 아닌지 알 길은 없다.

다만 행복하길 바란다고, 작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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