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에서 인어는 목소리를 잃지만

정쿱

윤정한은 인어였고, 물 위에서는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신나게 재잘거리다가도 뭍사람들 귀에 아무 소리가 닿지 않는 걸 확인하면 대번에 질렸다는 표정을 했다.

평범한 사람, 그것도 내륙 도시의 사람인 최승철은, 그 표정을 볼 때마다 서운했다.

“왜 질렸다는 표정을 짓냐고오… 다시 말해주면 되잖아… 문자도 있구.”

하지만 개그는 원래 두 번 반복하거나 설명을 곁들이는 순간 망하는 것이다.

최승철은 수영을 크게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여름에 사람이 바글바글한 수영장이나 해변가에 가서 어푸어푸 좀 하고 새빨갛게 익은 걸로 끝이었다.

그러다가 윤정한을 만나고, 승철은 수영장에서 깊이 잠수하는 법과 물 속에서 눈을 뜨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으면 정한이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니까. 재잘재잘 떠들면서 즐거워 죽겠다는 표정을 짓는 정한이의 얼굴을 보지 못하니까.

-너 진짜 못생겼엌ㅋㅋㅋ아이구 숨도 못 쉬어~ 복어처럼 볼만 빵빵한 거 봐! 나가 나가.

기껏 이런 소리나 듣곤 했지만.

밝은 조명 아래에서 물 속은 투명하고 파도가 없는 물소리가 무겁게 철렁철렁 흘렀다.

승철은 열이 뻗쳐서 물 속에서 느리고 힘이 원하는 대로 실리지 않는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고 수면 위로 고개를 들었다. 귀를 먹먹하게 하던 물이 사라지고 시야가 환해졌다.

“푸하…!”

뒤이어 정한이 파문도 일으키지 않고 쏙 수면 위로 올라왔다. 수모 아래로 금빛으로 염색한 머리카락이 몇 가닥 물에 젖어 흔들렸다. 정한은 배를 잡고 웃고 있었지만 이미 공기 중에는 짜랑짜랑한 웃음 소리가 퍼지지 않았다. 공기가 물결칠 뿐.

젖은 손가락을 닦고 말린 후에야 스마트폰을 든 승철이 문자를 보냈다.

야 연습 많이 했으니까 우리 스쿠버 다이빙 하러 가자

너는 연습 더 해야 돼

답장을 확인한 최승철의 얼굴이 이모티콘처럼 부루퉁해지자 정한은 웃었다. 말로도 문자로도 승철이 쏴댔다.

내가 뭘 못하냐 이정도면 잘하거든? 오나전 잘하거든?

ㅋㅋㅋ알았어 알았어 우리 철이 잘하지~ 못생겨지긴 하는데 잘하지~

죽인다

그리고 그걸 확인한 걸 보고서야 최승철이 정한의 목을 잡고 짤짤 흔들었다. 목에 닿은 손바닥으로 정한이 웃는 진동이 울렸다. 비록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도.

나 진짜 못해? 위험해?

괜찮아 할 수 있어 스쿠버 다이빙은 어차피 다 장비빨이잖아

ㅋㅋㅋ노력하는 사람의 기운 꺾지 마라 좀… 다 장비빨이면 뭐하러 면허를 따는데…

내 눈엔 다 거기서 거기니까

당연하지. 물속은 인어라면 몰라도 인간이 살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물속에서 졸업한지 이억년은 됐는데. 귀와 코에 물이 차오르는 느낌도 힘들고 숨을 못 쉬고 눈도 못 뜨고 팔다리는 무겁지, 압박감과 동시에 이상하게 둥둥 뜨지….

승철은 한참을 투덜거렸지만 수영 연습을 더 잡았고 따뜻한 바다로 가기 위한 비행기 표와 스쿠버 다이빙을 예약했다.

여전히 그는 물속을 사랑하지 않았다.

단지 물 속에서만 깨끗하게 들리는 윤정한의 웃음소리를 제대로 듣고 싶을 뿐이었다. 물 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윤정한을, 그가 태어나고 사랑하는 세상을 같이 들여다보고 싶을 뿐.

*

스쿠버 다이빙 어드밴스드 과정까지 마쳤기 때문에 승철은 다른 파트너를 선택하지 않고 혼자 다이빙을 할 수 있었다. 그 뒤로 몰래 윤정한이 잠수해서 따라와 수심 이십 미터 아래에서 둘은 다시 만났다.

수모를 쓰지 않아 하늘하늘하게 금빛 머리카락을 후광 어린 해초처럼 사방에 흐트리며 윤정한이 불쑥 등장했다. 어두운 바다 아래에서 인어는 희미하게 비늘이 돋아 은빛으로 살결이 빛났다.

승철이 약속해둔 대로 손을 흔들자 정한이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너 그거 무니까 볼 빵빵하네. 호빵 먹은 것 같다 호빵.

그렇다고 레귤레이터를 뱉어 던질 수는 없어서 완전 삐졌고 화가 났다는 시늉만 하니까 정한은 오히려 더 좋아했다.

윤정한은 실없는 소리를 하며 수영장보다 훨씬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그에겐 레귤레이터도 무거운 웨이트벨트도 공기 탱크도 그 무엇도 필요 없었다. 가벼운 수영복 차림으로, 인간은 도저히 숨을 쉴 수 없는 바다 아래를 유영하며 재잘거렸다.

높은 톤, 하도 빨리 말해 뭉개지는 발음, 크게 입을 벌린 웃음소리, 검푸른 은빛이 도는 팔다리가 쭉쭉 자연스럽게 헤엄치는 동작들.

최승철은 그런 윤정한의 모습을 사랑했다.

그럼에도.

‘난 얘 진짜 사랑하는 게 맞나?’

어쩌다 가끔만, 선심 쓰듯, 바다 속에서 만나주고 수영장에서 만나주고.

말을 못한다는 것이 이렇게 답답한데.

답답해하는 윤정한을 아는데.

물 속에서는 저렇게 좋아하는 걸 아는데. 저렇게 자유로운데.

육지에선 정한이 목소리를 잃고 바다에선 승철이 목소리를 잃었다. 둘 모두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울릴 장소는 없었다.

- 육지 음식도 자주 먹다 보니까 이제 불 안 닿은 건 배가 차겠다는 생각이 든다니깐. 뜨끈한 국밥 뚝딱 말아야 되는데. 해외니까 없겠지? 검색해보고 없으면 들어갈 때 사리곰탕면이라도 사가지고 가자.

신나게 떠들다 문득 거의 날아가듯 멀리 헤엄쳐 간 정한의 옆얼굴에는 대꾸를 하지 못하는 상대에게 떠들어댄 쓴웃음이 번져 있었다.

듣고 있어. 네 말을 듣고 있어.

승철이 하나하나 속으로 대꾸를 했어도, 텔레파시라도 통하지 않는 이상 정한은 알지 못할 것이다.

승철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가 그를 향해 헤엄쳐 가며 손을 내밀었다. 몸 주변은 물로 가득차 무거웠고 조류로 힘을 더 써야했다. 몇 번을 허우적거리고 난 끝에야 정한이 알아차리고 휙 다가왔다.

- 잠깐만 참아. 시간도 다 됐고 올라가자 야. 집에 가야지. 어우 얼굴 왜 찡그려어~ 더 못생겨진다 그러다?

승철은 그냥 정한의 손만 꽉 쥐었다. 내 욕심이 너무 큰 거 아니지. 너를 육지로 끌고 올라가는 게.

*

“미스터 최!”

장비를 정리하고 있으니 강사가 따라와서 같이 정리하며 살갑게 말을 걸었다.

“저쪽 해안으로만 가세요? 거긴 산호초도 없고 해류가 거칠어서 사람들이 많이 안 가는 장손데.”

“그쵸… 그렇긴 한데, 어, 근데 볼 건 많아요.”

“그래요? 어때요? 거기 소개 좀 해주세요. 다른 파트너 분 중에서도 분명히 흥미가 있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파트너 때문이구나.

영어로 떠듬떠듬 해명하는 와중에 시야 가장자리에서 슬리퍼 짝짝 끌며 오는 정한이 보였다. 승철은 심정적으로 불퉁해졌다.

쟤 때문에요. 쟤가 인어라서 데이트 좀 하려면 거기가 좋아서.

라고 솔직하게 얘기할 수는 없으니 승철은 결국 ‘거기 사는 생물을 연구합니다’ 같은 맞는 듯 아닌 듯한 소리를 주워섬겼다.

어떤 생물이냐면 바위가 많고(그림자가 져서 언뜻 봐선 한 사람 더 있는 거 모르고) 해류가 세고(그래야 윤정한이 존나 떠들어도 거리가 멀어지면 잘 못 듣고) 깊어야(그러면 인어가 진짜 안 보이긴 하더라구요) 잘 나타나는… 그런 생물.

진짜 있겠냐? 싶지만 강사는 납득했다.

‘이걸 납득해? 역시 바다는 이상한 동네야…….’

강사는 그래도 여전히 걱정스런 투였다.

“근데 해류가 세서 그런가 거기서 사고가 많이 나거든요.”

“사고요?”

“맞아요, 아래 더 깊이 들어가진 않으시죠? 사고도 많고 그러니까 파트너가 있으면 좋을 텐데.”

“아하하! 그 아래로 절대 안 가죠. 저도 목숨이라는 게 소중하고….”

정한이 가까이 다가와 승철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승철은 부산하게 돌아보고 강사에게 인사했다.

“아, 일행이 와서… 그럼 가보겠습니다.”

“내일도 예약이시죠?”

“네, 같은 시간에.”

나가자마자 정한이 이미 써둔 메모 앱을 눈앞에 들이댔다.

존나 배고파

“어, 나두. 근데 우리 머리도 안 말리고 홀딱 젖었는데 밥 먹으러 가도 되냐?”

윤정한은 어이없어하면서 다시 핸드폰 화면을 들이대고 손가락으로 탁탁 쳤다. ‘읽어.’

“어우, 내가 더 배고프거든?”

해안 근처를 싹 다 뒤져봐도 국밥집은 없었다. 온도가 28도나 되는데도 둘은 뱃속이 춥다 어쩐다 하는 글을 나눴다.

난 한국 떠나면 죽을지도ㅎㅎ

국밥에 대한 열망을 표현하려는 말이었지만, 그건 자신의 바다와 이별하고 온 정한에게 보여줄 말은 아니었다. 승철은 눈치 보고 얼른 쭉쭉 아무 말이나 하며 말을 밀어올렸다.

사리곰탕면 사자! 비싸도!

???? 당연하지 안 먹을 생각했어? 너 어디 편찮냐?

사리곰탕면 좀 안 살 생각했다고 바로 편찮은 사람이 되어버린 최승철은 입술을 삐쭉거렸다.

“니는 진짜아 나 안 놀리면 입에 가시가 돋지.”

그러는 동시에 손가락은 다른 말을 썼다.

야 나 내일 파트너 있을 거 같다

헐 니가 사회활동을

니는 진짜 나 안 놀리면 뭐 어떻게 되는 병 걸렸어?

ㅇㅇ

왕창 째려보자 정한이 키득거리면서 승철의 팔짱을 잡았다.

웃느라 고개를 숙인 정한이 무어라고 말한 듯 낮은 주파수의 웅웅거리는 소리가 몸 속까지 부드럽게 흔들렸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그 진동이 몸 안에서 수없이 진동하며 뱃속을 간지럽혔다.

얇은 티셔츠 한 장 위에 겹쳐온 정한의 손을 가만히 마주잡으며 승철이 눈을 마주치려 고개를 기울였다. 정한이 고개를 쌩 돌렸다.

“아 쪼옴~!”

데이트 취소 위기에 미안해진 승철이 몇 번 정도는 따라갔지만, 곧 승질을 못 이기고 홱 정한의 목덜미를 잡았다.

잡은 목덜미를 짤짤 흔들자 무슨 종잇조각처럼 휘휘 흔들리며 정한은 또 켈켈켈 웃음 소리를 냈다.

어우씨, 이럼 더 뭐라고도 못하고.

“장난 그만 치구.”

너 인어인 거 들키면 어떻게 해왔어?

문자를 확인한 정한이 태연하게 윙크하면서 손날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

승철의 세모입이 크게 벌어졌다.

“죽였다고?”

한 박자 늦게 정한은 베시시 웃으며 문자를 더했다.

농담이고 보통은 그냥 바다로 끌고 들어가기만 해

죽잖아!!!!!!!!!!!!!!!!

놀라서 쭈르륵 늘어선 느낌표를 보고도 윤정한은 그저 천진하게 장난치듯 웃기만 했다.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너 나는 어떡할라고! 무서워 윤정한

너도 뭐 기대해라

야 니는 너 때문에 스쿠버 다이빙하는 사람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

실제로 강사는 단단히 준비한 모양이었다. 전날 어떻게든 빼고 빼서 혼자 바다를 다녀온 게 굉장히 맘에 걸린 듯 혼자가 좋다고 죽어라고 말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이제 괴담까지 얘기하기 시작했다.

“진짜 이런 말씀까지 드려야 되나 했는데… 그 근처에서 최근에 사람이 죽었어요. 어제도 그래서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정말로 혼자 가기 위험합니다. 안그래도 미스터 최처럼 혼자 다니시는 분이 있거든요. 그 쪽 근처로 가신다고 해서… 파트너처럼 같이 다니고 그러는 게 아니고 그냥 시야에 닿는 부분까지만! 제발!”

비슷한 사고가 계속 빈발하니 안전 이슈가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소개 받은 사람은 최승철만큼 키가 크고 제법 건장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음침한 인상이었다. 스쿠버 다이빙을 하는 인종들은 대체로 활기가 넘치다 못해 그게 밖으로 줄줄 새서 양기가 넘쳤는데.

‘나도 뭐 그쪽은 아니지만…….’

최승철은 상대방을 분석평가하는 일을 그만두고 미소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윌이라고 소개받은 남자는 고개만 좀 끄덕이고 묵묵히 물러나서 장비를 갖췄다.

강사가 승철의 눈치를 보면서 분위기를 수습해보려고 했지만 승철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손을 내저었다.

“괜찮아요. 서로 낯서니까.”

그런 윌에게도 친구가 있긴 했다. 덩치는 비슷한데 엄청난 양기 뿜뿜남이 와서 장비를 살펴주고 파트너가 어쩌고 하면서 같이 장비를 챙겼다. 윌은 그 친구에게도 똑같이 무뚝뚝했고 말을 걸고 싶어하지 않았다.

처음 만난 사람은 물론 강사한테도 친구한테도 그 태도니 차라리 납득이 간다고 할까, 승철은 정한이에게 카톡을 보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카톡 제 때 봐야 되는데 물 들어간다고 못 보면 어떡하지. 어제 이럴 수도 있다고 말하긴 했지만….’

얼핏 멀리서 봤을 때야 모를 수 있지만 누군가가 있으면 역시 위험했다. 아예 만나지 않는 것이 상책이었다.

매일 같이 바다에서 만날 수 있을 거라곤 처음부터 기대도 안했지만, 그래도 이틀도 안 되어서 뚝 꺾여버리자 승철은 갑자기 만사가 귀찮아졌다.

‘내가 걔 아님 왜 바다를 들어가냐…….’

카톡이 좋은 건 읽음 표시 때문이었다. 장비를 갖추며 승철은 계속 흘끔흘끔 카톡을 들여다보며 1이 사라졌는지 아닌지 봤지만 끝까지 1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아…….’

보트에 오를 때까지도 여전히 1은 남아있다가 마지막으로 준비했을 때 간신히 톡, 사라졌다. 읽은 건 확인했지만 답장을 기다릴 시간은 없었다. 이미 다른 사람들은 연달아 잠수했다.

다음으로 승철도 바로 바다로 다이브했다.

승철이 어쨌든 약속 장소로 향하자 윌도 뒤따라 오기 시작했다.

‘으유, 혼자 가려면 마스터 다이버로 넘어가든가 해야지.’

뭐 따고 뭐 더 필요했지.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따야 하는 수료증 목록이 쭉 지나갔다.

윌이 어느 정도 내려가자 더 이상 내려가지 않는다는 수신호를 했다. 승철도 정한이 없을 텐데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내려갈 생각이 없기 때문에 수긍하면서 멈췄다.

윌은 오케이 사인을 보내고 시야가 닿는 부분까지 멀어져갔다.

‘어우 다행이다….’

바닷속에서 사람들이 말을 못한다는 게 이렇게 다행일 수가 없었다.

승철은 눈으로 거리를 가늠하기만 했다.

오늘은 적당히 시야가 닿는 곳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좀 일찍 퇴장할 생각이었다.

들어가는 보트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바닷속에서 헤매는 것보단 보트 위에서 카톡이라도 할 셈이었다. 되면 마스터 다이버 공부도 좀 하고.

데이트(ㅋ)가 무산되자 비용도 비용이지만 이렇게 보내는 시간이 아까웠다.

‘차라리 그럼 그냥 해외 나온 기념 데이트라고 돌아다닐 걸.’

그러자 또 다른 자아가 바로 반박했다.

‘그래가지고 마스터 다이브 언제 따? 그럼 돈만 버리고 아무 것도 없지.’

Vs

‘마스터 다이브 자격증 같은 거 근데 내 인생에 뭐가 중요해? 지금 내가 데이트하자고 바다 들어왔지 아님 왜 들어왔는데!’

차가운 물 속에서 헤엄치는데도, 짜증이 나자 머리가 뜨거워졌다.

여전히 윤정한이 너무 좋다. 그러나 인어라는 건 다른 문제였다.

‘……이런 걸 신경 쓰고 다 포옹해주지 못하는 건 속좁은 거겠지?’

그래서 승철은 또다시 그 생각을 했다.

‘나는 윤정한을 진짜 사랑하는 게 맞냐?’

사랑만 하면 어떤 어려움이든 다 이겨낼 수 있고, 하나도 안 힘들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니냐고. 인어인 게 밝혀져도 언제나 윤정한 편에 서고…….

‘사람은 죽였을 수도 있는데 착한 애예요!’

그치만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이게. 어떤 놈이든 이렇게 말했으면 당장 가서 발로 차 버릴 거야.

아니 근데… 이게 맞지 않냐? 내가 윤정한 편 안 들어주면 대체 누가 윤정한 편을 들어줘.

승철은 팔짱을 끼고 보그르르 뒤로 돌아서 헤엄쳤다.

‘헛생각 하지 말고 킥이나 연습하자.’

그 순간 시야 한구석에서 라이트의 빛이 슬그머니 줄어들며 가려졌다. 혹시나 정한이 보이기라도 할까봐 윌에게 신경을 잔뜩 쓰고 있던 터라 승철은 금방 캐치했지만, 의식적으로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확인했다.

라이트는 다시 켜지지 않는다.

윌도 아까 보트 위에서 거의 강박적으로 보일 정도로 장비를 체크한 걸 보고 왔기 때문에 라이트가 꺼지고 바로 다음 라이트가 들어오지 않는 건 장비라기보다 윌 자체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었다.

‘윤정한.’

갑자기 머릿속에 정한이 장난기 어린 얼굴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한 게 떠올랐다.

심장이 뚝 떨어졌다.

-정체를 들키면 바닷속으로 끌고 들어가

심지어 들은 게 아니라 텍스트로 본 건데도, 바로 어제 바닷속에서 재잘거리는 정한의 목소리를 들은 탓인지 머릿속에서 환청처럼 울렸다. 한 세 번쯤 잔잔하게.

‘진짜… 진짜 윤정한이 나 때문에 얼쩡거리다가 윌한테 들켜서 히히 살인멸구~ 하면서 어떻게 해버린 건 아니겠지. 그거는 완전 나 때문 아니야? 나 때문에 윤정한이… 들켜서… 살인을… 아, 안돼.’

빛이 들어오지 못하는 바닷속은 어둡다. 승철은 급하게 자기 장비를 점검하고 게이지를 확인한 다음 윌이 있었던 쪽으로 헤엄쳐갔다.

턱,

누군가 물살을 헤치며 승철의 어깨를 잡았다.

심장이 또 한 번 뚝 떨어졌다. 너무 놀라서 레귤레이터를 뱉을 뻔 했는지 급하게 들이마신 호흡 속에 찝찔한 바닷물이 훅 차올랐다.

‘정한아?’

그러나 어깨를 잡은 건 윤정한이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당황한 데다 상대방은 웻슈트를 입고 마스크까지 쓰고 있어 누구인지 한눈에는 알아볼 수 없었다.

‘윌?’

라이트가 꺼져서 도움을 요청하러 왔나?

그러나 상대방이 누군지에 대한 궁금증은 더 급한 사안에 밀려 사라졌다.

그는 멀쩡해보였지만 최승철은 멀쩡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레귤레이터에서 공기가 나오지 않았다. 윌에게 다가가기 전에 실린더를 확인해봤을 때 넉넉했으므로 절대……

입안으로 바닷물이 가득 찼다.

승철은 급하게 상대방 - 아마 윌일 게 분명한 - 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보조 호흡기나 뭐 그런 거 필요하다고. 위험한 상황이라고.

이런 미친 일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니라서 연습으로만 반복했고 진짜 위급할 때 해보는 건 처음이었다.

상대는 바로 허리를 뒤적거리더니 갑자기 라이트를 최승철의 얼굴에 대고 확 켰다.

어둠에 익숙한 눈에 갑자기 라이트의 빛이 비춰지자 눈앞이 하얗게 명멸했다.

승철은 반사적으로 눈앞을 손으로 막으며 고개를 돌렸지만, 상대는 라이트를 치우지 않고 오히려 들이댔다.

실수가 아닌 악의적인 행동에 차갑게 피가 얼어붙는 듯 했다.

‘이 새끼 뭐야?!’

레귤레이터에서는 여전히 부글거리는 바닷물만이 새어나와서 더 이상 물고 있을 수조차 없었다.

몸을 피하며 보조 호흡기를 물려고 하자 그 새끼도 따라와선 집요하게 라이트를 눈에 비추고 승철이 손목을 잡았다.

뿌리치려 해도 물속에서는 아무리 버둥거려봐야 지상에서만큼 제대로 힘이 나오지 않았다. 몸부림을 친 만큼 폐 속의 공기가 더 빨리 없어질 뿐이었다.

몸은 안 따라주지만 대신하듯 머리가 휑휑 돌았다.

‘이 근처에서 사고 난다는 건 이 새끼가 전부터 했던 일 아냐? 윌?’

간신히 보조호흡기를 잡았지만 몸싸움 중에 상대가 열어버린 실린더에선 잔량이 부족하다는 알람만 보였다.

‘!#!%($ㅕ@!!!!!!!!!!’

레귤레이터는 고장나고(이것도 저 인간이 건드렸을 거라는 데 승철은 뭐든 걸 수 있었다) 보조호흡기 호스도 빠지다니.

상대는 엉겨붙은 채 호흡이 가빠져 고통스러워하는 승철의 모습을 라이트로 끈질기게 관찰했다.

발로 걷어차거나 하다못해 무거운 탱크로 밀어버리려 해도 숨을 쉴 수 있는 상대와 그렇지 못한 승철 사이에는 움직임에 차이가 있었다.

차츰 공기방울이 입밖으로 새어나왔다. 승철은 입술을 깨물었다. 까딱하면 그대로 폐에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올 것 같았다.

‘내가… 우리나라도 아니고 이역만리 타국 바다에서 이렇게 죽는 거야?’

당장 위로 솟구쳐 올라간다 해도 숨이 부족했고, 그러지 못하게 상대는 승철을 물고 늘어지고 있었다.

“우리 따뚜한테 맘대로 손 대네~ 와~”

장난기 어린 목소리와 함께 웻슈트가 아닌 맨팔이 들이밀어졌다.

상대는 놀라서 라이트를 돌리려 했지만 물속에서 인어는 매우 빨랐다.

이미 작정하고 둘 사이를 가르듯 들어온 윤정한은 라이트를 빼앗아 멀리 던지고 그가 잡은 손목을 부드럽게 떼어냈다.

떼어내려고 했다. 아무튼.

몸싸움을 별로 해보지 못한 정한이라 둘을 떼어놓으려 해도 상대가 우악스럽게 승철을 쥐어짜자 어? 어? 하면서 휘둘렸는데 그 사이에 승철이 온몸을 빙글 돌려 뿌리쳤다.

둘이 떨어진 걸 확인하자마자 정한이 상대를 발로 걷어찼다. 그는 산호초 군락으로 팔다리를 휘저으며 굴러갔다. 거기엔 라이트를 끄고 숨죽이고 있던 윌이 있었고, 둘이 부딪치고 해류에 휩쓸려 허우적거렸다. 아예 사람을 보내버릴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시간은 확실히 벌 수 있었다.

정한은 그렇게 한 방에 두 명을 보내버리고 난 다음 몸을 틀었다.

“승쳐리 괜찮아?”

방금 전의 묘기로 승철은 숨이 모두 소진되어 꼴까닥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공기 한 방울 남지 않고 토해버린 폐가 짜부라들고 있었다. 숨이 막혀서 어지럽고 그동안 배웠던 셀프 레스큐 방법들이 의미 없이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승철은 두 사람이 부딪치는 장면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고, 상대가 윌인지 아닌지조차 궁금해할 정신이 없었다. 주마등이 보이고 있었으니까.

‘주, 죽는다 나….’

바닷물을 삼키지 않으려고 한 손으로 입을 꽉 막고 다른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자 정한도 눈치챘는지 다급하게 가까이 다가왔다.

“손 치워봐.”

기다리지 않고 정한은 자신이 승철의 손목을 잡고 끌어당기며 입술을 붙였다.

인어의 입술은 물처럼 차가웠다.

비슷하게 차가운 혀끝이 살짝 승철의 입술을 가르고 들어왔다. 숨이 그 사이로 길게 이어졌다. 차가운 입술인데 숨결만은 따뜻했다.

간신히 그 짧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승철이 죽을 고비를 넘기는 동안 정한은 승철의 팔을 잡고 가볍게 몸을 띄웠다.

천천히 인어와 함께 승철은 바다 속에서 상승했다.

“응, 숨 한 번 뱉구.”

승철은 순순히 정한의 말에 따랐다. 입밖으로 뱉어낸 공기 방울은 검푸른 물 속에 포말이 되어 보글보글 흩어지며 길게 꼬리처럼 이어졌다.

정한은 조급해하지 않는다. 물속에서 발장구 몇 번만으로도 쑥 사라질 정도로 빨랐던 그는 느릿느릿 올라가며 승철을 붙들고 다시 입술을 붙이고 숨을 불어넣었다.

죽는다고 느꼈던 순간이 지나자 승철은 그제야 윌인지 뭔지에게 정한이 노출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대로 올라가면 분명히 누군가에게 들킬 거라는 것도.

햇빛은 아직도 저 멀리 머리 위를 비치는 작은 반짝임일 뿐이었다.

그래도 죽어라고 올라가면 어떻게 못 버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승철은 조금 바둥바둥거리며 정한을 멈추게 했다. 살살 올라가던 정한이 살랑살랑 멈췄다.

“왜?”

왜긴 왜야?!

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승철은 뻐끔뻐끔 몇 번 하다가 정한의 어깨를 잡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입술을 붙이자 정한이 고개를 꺾으며 숨을 불어넣어주려 했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승철은 입술을 붙인 채 천천히 입모양으로 말했다.

들, 키, 면, 안, 돼, 가

가, 그 입모양이 끝나기도 전에 정한이 살짝 입술을 뗐다.

“야, 괜찮아. 나 어차피 몰라.”

뽀그르르르르!!!

격렬하게 말이 안 되는 항의를 하거나 말거나 정한은 괜찮아 괜찮아 반복만 하다가 숨이나 쉬라고 입술을 막았다.

어느새 강사 근처까지 도착했는지 강사와 몇몇 사람들이 이상을 눈치채고 헤엄쳐 달려왔다.

분명히 다들 마스크 쓰고 레귤레이터를 물고 있어 얼굴 표정은 하나도 안 보였지만 승철과 정한의 꼴을 보고 당황해하는 건 느껴졌다.

깊은 데서부터 올라왔는데 한 명은 슈트도 없고 탱크도 없고 맨몸이고…… 그리고 여전히 정한의 맨살에는 검푸른 은빛이 돌고 있었다.

승철은 무심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정한이를 자기 뒤에 숨겼다. 그래봤자 아무 도움도 안 되고 오히려 수상할 뿐이라는 생각은 그 뒤에 들었다.

‘젠장, 물속인데도 식은땀 나네.’

등 뒤에서 정한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살짝 웃었다.

슈트 위에 입술을 붙이고 승철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윤정한이 속삭였다.

“고마웠어.”

나지막한 한 마디에 승철의 몸은 번개를 맞은 듯이 떨었다.

이대로 없어지는 건 아니지?

이대로 바닷속 깊이로 사라져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거 아니지?

그러나 바닷속에서는 텔레파시라도 없는 한 사람은 말을 전할 수 없었고, 승철은 헤엄쳐가려는 정한의 팔을 붙든 채 아무런 말도 못하고 그저 손에 힘만 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은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너도 이제 따뜻한 거 좋아한다 했잖아.

너 좋아하는 거 사놓을게. 사리곰탕면도. 국밥도 더 검색해볼게.

사람들은 뻔히 보고 있고 또다시 숨을 참을 수 있는 한계 시간이 가까워져 오는데,

눈앞의 윤정한은 난처하기만 한 얼굴인데,

승철은 도저히 놓을 수가 없었다.

그저 결연하게, 끌어안고 있을 뿐이다.

다시 나의 육지에 너를 끌고 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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