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준은 앞에 놓인 케이크가 맛있다고 생각한다. 처음 와보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꽤나 좋은 곳이다. 다음에 아란이와 함께 오는 것도 좋겠지? 아니, 어쩌면 하나 사가는 것도 좋을지도? 걔 단 거를 좋아하니까 분명 먹으면 기운을 차릴 거야. 다시 생각해보면, 이것보다 조금 더 쓴 맛을 강조한 케이크를 좋아했던 거 같기도 하고. 한 입 한 입 포크로 썬 케이크를 먹으면서 준은 그런 생각을 한다. 별로 시답지 않은 생각. 딱히 지금 구태여하지 않아도 되는 생각. 애초에 지금 해보았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그런 생각을 한다.

“형님 듣고 계세요?”

“응응, 듣고 있어. 듣고있어.”

“전혀 듣고 계시지 않은 모양이네요, 그치 지아야?”

“그런 거 같아, 지한아.”

준은 그제야 케이크에 꽂혀있던 시선을 들어서 눈앞의 두명을 본다. 얼굴은 모른다. 단지 자신과 비슷한(어쩌면 똑같은) 색의 머리카락과 눈을 가진 두명이 맞은 편에 앉아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내 동생이라고 이야기했다. 나에게 동생이 있다. 밑으로 1살 차이나는 쌍둥이동생들. 지한과 지아. 그들은 나와 달랐다. 굴복하고 쓰러지고 그자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알고 있다. 그것이 그들이 선택한 그 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라는걸. 굴복하거나 도망치거나 그곳은 그 두개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어쩌면 다른 선택지가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역시 천륜을 저버리는 건 좀 그렇지. 무엇보다 자신이 그러고 싶지 않았고. 나한테 행하는 건 참을 수 있으니까.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그날 이래로 본 적도 없어서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아 솔직히 지금도 그들이 정말로 내 동생인지 확신이 전혀 서지 않는다. 이 빌어먹을 눈은 대인관계를 정말 엉망진창으로 만든다. 아란이를 다시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과 연을 맺어야한다. 노트라도 사서 적어두는게 좋으려나….

“아버지가 돌아오길 바라셔요.”

“지금이라도 온다면 모든 것을 용서하신다고 하셨어요.”

“여태까지의 잘못 그 모든 것을.”

“아버지가 굉장히 형님을 보고싶어하셔요.”

“더군다나 이번에 공석도 생겼고요. 저희가 몇가지 플랜을 짜놨어요. 저희 플랜대로 1~2년 있으면 바로 화려하게 데뷔하실 수 있을 거에요.”

준은 앞에 놓인 잔을 잡아 한모금 하려다가 아뜨 하며 입술을 뗀다. 와 이거 엄청 뜨겁네. 그래서 아란이가 아이스로만 마시나? 뜨거운 것이 이렇게까지 뜨거울 수 있구나. 그런 또 다시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한다. 지한은 준을 보면서 다시 입을 연다. 우리는 아버지를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잔을 든 채 안의 커피를 보던 준은 다시금 그들을 본다. 안다. 난 안다. 그가 날 원하는 이유. 또 만들기 힘들었겠지. 무엇보다 지한과 지아는 그의 성에 차지 않는 도구일 거다. 그렇기에 내가 필요하다. 그리고 내 자식도 필요할 거다. 본인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그는 내가 필요하다. 준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지한의 머리 위로 커피를 그대로 쏟아버린다.

“앗뜨!!”

“이, 이게 뭐 하는거에요!”

“아, 미안 염색 좀 시켜줄려고 했지. 그렇게 그 사람이 좋으면 똑같이 갈색머리라도 되면 어때? 어쩌면 이뻐해줄지도 모르잖아?”

“형님!”

“난 안 가. 그 사람이 만드는 건 싫거든. 그 사람은 단지 짜증이 났을 뿐이다. 본인이 열과 성을 들여서 기껏 만들어놓은 보기좋은 도구가 완성 직전에 혼자 튀쳐나간게 말이야. 그래서 다시 회수하려는 거고, 너희를 이용해서. 근데 난 너희를 봐도 그렇게 막 애뜻하지 않거든. 어차피 얼굴도 모르는데 그런 감정이 생길리가 없잖아?”

지아는 준의 눈을 본다. 자신들과 같은 푸른 빛. 항상 생각했다. 우리는 엄마와 닮았다. 가족사진을 보면 아버지 혼자만 갈색이고, 나머지는 전부 푸른 빛이었다. 첫째자식이어서 그런걸가. 언제나 고분고분했기 때문인 걸가. 아버지는 형님을 아끼셨다. 아버지 다음가는 정치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많이 노력하셨다. 형님의 눈은 항상 시리다. 얼어붙은 하늘마냥 차갑고 시리기만했다. 단 한번도 그 눈에 태양이 비추어진 적은 없다.

“…….”

“선우 진 의원님께 전해. 꼴리면 호적 파라고.”

준은 머리에 올려두었던 선글라스를 내려 낀다. 전에 아란이랑 세트로 맞추었던건데 지금같은데 쓰기 참 좋지. 소란이 되었지만, 뭐 어때. 그래도 케이크는 아깝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가게를 나간다. 대신 핫케이크와 초코시럽, 딸기 등을 사서 직접 팬케이크 타워를 만들어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를 건드리는 건 언제까지나 괜찮다. 항상 그래왔고, 그게 내가 태어나서 받아야하는 죄라면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내 친구를 건드리면 절대 가만히 있지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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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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