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뭐하지

: 윤여진

: oc by 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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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들면 허리까지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이 정전기로 비산한다. 머리 위에서 정체 모를 이국적 형상의 싸구려 전구가 몸을 일으키듯 드문드문 깜박인다. 세면대는 영문을 알 수 없는 금으로 가득하고, 형이상학적인 무늬가 음각된 채도 높은 타일에는 물때가 잔뜩 끼어 색이 바래 죽어간다. 반쯤 감긴 눈이 무상하게 시야는 또렷했다. 

습기에 부옇게 달아오른 유리면에는 형체가 부정형으로 어른거린다. 그 사이 맨거울에 비친 낯은 반사광에 감싸여 파랗게 질려 있다. 틈새 없이 꾹 닫혀있는 입, 상 맺힌 거울의 너머에서 갇힌 그대는 달싹이며 속삭였다, 네게 그럴 자격은 없어. 그 짧은 머리카락을 흔들며, 답답함에 호흡을 연신 뱉으면서도. 윤여진은 그 기괴함을 안다. 흘러나오는 말은 언어가 되어 닿지 못하고 그만큼의 거리는 새까만 활자열로 메워져 버릴 것이다. 

물고기는 애초부터 땅 위를 유영할 수 없어서, 그 바깥으로 끌려나오면 사정없이 질식하여 숨 쉴 수 없음에 메말라 갈증에 괴로워하며 죽어버린다. 사람은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해, 그리고 나는 또한 너희가 그것을 깨닫지 않기를 바란다. 피를 나누어 퍽 닮은 무기질적인 시선이 교차한다. 방관자의 속성은 지독한 저주처럼 대를 타고 내려왔으므로, 또한 그 천성에 완벽히 부합하는 이들이었으므로. 어른의 팔은 아이 한 명쯤 들 수 있을 만큼 든든했고 한없이 어릴 적의 여진은 그저 정방향에 고개를 고정한 채 무거운 머리를 가누며 멍하니 바라보았댔다. 

그 광경을 잊을 수 없다. 저 바닥 연못에서 튀어오른 잉어는 빼곡한 수중의 밀집도가 못내 버거웠는지 땅에 물 흥건히 문지르며 펄떡거렸다. 흙 패이고, 돌덩이에 살점이 패여 짓눌러 떨어지면서도. 숨을 찾아 나왔으나 저도 알 수 없는 생리적 운명이 그 물고기를 옭아매고 재촉했다. 운명에 부름에 죽음은 기꺼이 걸음을 서두른다. 서서히 움직임이 잦아들고, 초점 없는 기이한 눈알이 도로록.

황급히 선생님이 학부모에게 다가온다. 죄송해요, 아머님 아버님. 그 처참한 고깃덩이는 수중에 가라앉는다. 그러나 정적도 잠시, 미약하게 꼬리를 살랑이며 물살을 가르던 그 뒷모습. 원생 등록하러 오셨댔죠? 우리 어른스러운 친구 이름을 선생님꼐 말해 줄래요...? ..우리 친구, 오늘은 말할 기분이 아닌가 보네요. 다음에 꼭 알려주세요? 그럼 여기 이쪽 원장실로 모셔드릴게요.. 

그때가 언젠데. 짧은 머리가 성기다. 막 다듬어 머리카락 파편들이 목에 엉켜 들어갔던지 따끔거리는 피부, 타들어가는 속, 환기조차 시키지 않는 밀폐된 실내 삭막한 공기에 외려 갈증이 났다. 피부가 건조하게 말라붙어 바스라진다. 물병을 입에라도 댈세라치면 초점 없이 찌들은 눈빛이 저를 향해 모인다. 시계는 점점 자정을 향해 똑딱이고, 하늘은 무력하게 태양을 놔 버리고 휴식에 들어간 지가 오랜데, 가망없는 휴식과 한도로 치달아오르는 뇌가 뜨겁게 달아올라 삶을 집어삼킨다. 

이것밖에 못 해요? 알잖아, 잘 하자. 응? 이렇게 일 못해서야 되겠어? 또 누군가가 무작위를 겨냥하여 날카롭고 눈먼 비수를 토해낸다. 물끄러미 응시한다. 그저 깔끔하게 헤집고 지나가는 언어들은 제게 문제되지 않았다. 한 번 지긋이 눈을 감았다 뜨면 어느새 아물어 있을 그런 상흔들이다. 겨우 남짓에 불과하지 않던가. 흔적으로 점철되었더라도 결국 아픔조차 잊힐 그런 예비된 망각이로소. 그러나 진실로 호흡을 고되게 하는 건 제가 앉은 이 자리, 의지를 접어 억지로 틀에 구겨넣었음을 증거하는 현재 자체가. 엘리제를 위하여, 그 비루하게 편곡된 종소리가 고막에 감돌았다. 결국 달라진 건 없었다. 

졸업을 하면 바로 취업을 하고 싶어요. 그게 네 결정이라면. 어느 날인가 나누었던 대화가 그리도 선한데. 그럼에도 여전히, 몇 번이고 시도한 변화에도 갑갑한 족쇄는 풀리지 않는다, 현실에 처박히기를 반복한다. 극적인 상승과 하강에 잇따라 아무런 중력에도 구애받지 않는 사고를. 무기력하게 반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유영하며 오로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아, 이대로 죽어서 질식해 갈 제 미래를.

그만둘게요. 아무런 절차도 없이, 그저 차분히 내뱉어지는 말. 수런거리던 모든 잡음이 가라앉고, 명료하게 목적과 삶을 바로세운다. 아니, 축약하자면 그리 거창하지 않았다. 무계획적이고, 철없고, 즉흥적인 결심에 불과하다. 현실은 비루하고도 구질해서. 윤여진은 어울리지 않는 몽상에 빠져 있어야만 했다. 과분한 명제, 턱없는 이상에 잠겨 오래오래 가라앉아야만 한다. 그래서 죽더라도 한 호흡의 숨을 뱉어 살고 싶다. 

뭐가 문제야? 여행을 가고 싶어요. 그리 말하자 상대의 미간은 완전히 구겨졌다. 혀 차는 소리, 기겁하는 소리, 누군가가 빠르게 타자를 두들겨 이 소식을 전한다. 타다다닥. 그럼에도 상관 않는다. 그저 제 앞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다 스치듯 교차한다. 시선을 아래로 비껴내린 상대는 보험 약관을 읊듯 빠르게 웅얼거렸다. 퇴직금은 줄 수 없어, 또 우리 회사 사정이 좀 어려워서, 알지? 그 말을 끝으로 상사였던 사람은 붙잡지 않았고, 그것 하나만큼은 매우 기꺼웠다.

체불된 육개월의 임금은 돌려받지 못했다. 퇴직금 또한 들어오는 일 없었다. 그럼에도 침묵했으며 부조리를 감내한다. 그저 무작정 집을 팔아 목돈을 마련했다. 퇴직을 말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주가 채 지나가기 전이었다. 윤여진은 마치 불에 홀린 부나방처럼 대책 없이 스스로를 내던졌다. 기겁하여 말릴 만도 하다, 그러나 무엇인가. 분명한 것은 이 또한 생존을 잇는 본능이었다. 하나의 이름을 짊어진 마땅히 존재로써 사유하여 기능하기 위한 몸부림을 과연 헛된 일에 치부하여 비웃을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이번 당첨 번호는, 4, 27, 36,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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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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