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시즈] 너의 생을 위하여
몇 번의 시도 끝에서, 나는 너를 온전히 구할 수 있을까.
카르마는 뜨거운 햇빛에 눈을 찡그리고는 비척대면서 일어났다. 제발, 좀 멀쩡한 곳에 놓아주면 안 되는 것인가? 이렇게 꼭 길거리 한복판에 날 내던져야 하는 이유라도 있나? 카르마는 몇 번을 겪어도 짜증 난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흙이 조금 묻은 옷을 툭툭 가볍게 털고는 몸을 한번 움직이며 이상이 없는지 확인했다. 이번에도 괜찮은 것 같았다. 카르마는 자신을 미친놈처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익숙하게 발걸음을 움직였다. 주어진 시간은 5년이었으니 누구는 넉넉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글쎄, 여태 성공을 못했으니 이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카르마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자조적으로 웃으며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했다.
첫 번째, 앞으로 5년 뒤 시즈는 죽는다. 원인을 알 수 없다.
두 번째, 시즈가 죽으면 나는 회귀한다. 5년 전으로, 시즈를 만나기 전의 시간으로. 이유는 알 수 없다.
세 번째, 나는 지금 두 자리 수가 넘어가는 회귀를 반복하고 있다.
카르마는 생각을 마쳤다.
“…미치겠군.”
그 많은 시간을 돌아갔으면서도 카르마는 시즈의 죽음에 한 발자국도 가까워지지 못했다. 시즈는 언제나 그날에 죽을 뿐이었고 그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 자리에 있었다. 빌어먹게도 말이다.
구해야만 한다, 라는 생각은 어느새 구할 수 있긴 할까, 라는 생각으로 바뀌고 카르마의 상태는 조금씩 무너져갔다. 육체적인 의미가 아니라 정신적인 의미로. 카르마는 예전과 같이 멀쩡하진 못했다. 수없이 제가 아끼는 사람의 죽음을 봐야 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카르마는 다급하게 시즈를 찾아갔다. 쉐어 하우스, 항상 그곳에서 언제나 웃으면서 맞이해 주는 모습이 떠올랐다가 곧바로 희미해졌다. 카르마가 기억하는 시즈의 모습은 언제나 죽어가는 순간이었으니, 행복했던 기억들은 퇴색되어 이젠 잘 기억나지 않았다.
쉐어하우스와 카르마가 눈을 뜬 곳은 그리 멀지 않았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한 카르마는 심호흡을 하고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하면서 문을 열어줄 것이다.
“누구세요?”
문을 열고 나온 시즈의 모습은 여전했다. 카르마는 말을 내뱉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
“…모험가. 이곳에, 머무르고 싶은데.”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매번 보는 모습인데도, 언제나 그렇듯 익숙한 모습인데도, 왜 이번에는 유독 더 서럽게 느껴지는 것인지. 카르마는 제 상태가 불안정하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쉐어 하우스는 언제나 모험가 여러분을 환영하고 있어요! 저, 근데… 어디 아프신가요?”
시즈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카르마의 안색을 살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유난히 창백한 얼굴이나 마른 체형이 무척이나 아픈 사람 같다 생각해 실례일지도 모르나 물어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괜찮아. 나는, 괜찮아.”
카르마는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노력해야만 했다. 나는 괜찮아. 스스로를 세뇌하는 것에 가까운 중얼거림. 카르마는 제 목이 졸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이렇게 괴로울 수가 있나.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아, 어서 들어오세요!”
“…고맙군.”
무한한 시간의 반복 속에서 카르마는 처음으로 시즈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가시밭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시즈의 생활 패턴은 무난했다. 모험가를 맞이하거나 쉐어 하우스를 관리하기도 하며, 제 여가 시간을 가졌다가 고양이를 만나러 혹은 일을 하기 위해 외출하기도 했다. 슬슬 스냥폰 업데이트에도 신경을 쓰는 듯 해 카르마는 자연스러운 타이밍에 끼어들었다. 매번 반복했던 것이었으니 그리 어려울 것도 없었다.
AI 개발, 신형 스냥폰 발명…. 카르마는 이 시간이 멈추길 바랐다. 제발, 여기서 멈췄으면 하고.
“카르마 씨는 되게 능숙하시네요!”
“…능숙하지. 능숙할 수밖에 없으니까.”
“앗, 자주 해보신 건가요?”
“어. 질릴 만큼 자주.”
카르마는 자신만이 그 모든 일들을 기억한다는 것이 끔찍하게도 싫었다. 그렇다고 시즈가 이젠 존재하지도 않는 일을 기억하길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이런 대화를 할 때면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태연함을 가장했다. 멀쩡한 척했다. 제 속이 문드러진 것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카르마는 애썼다. 죽도록 애썼다.
그렇기에 평범한 모든 일상 속에서 카르마 혼자만 괴로웠다.
“카르마 씨, 또 일에만 집중하시죠! 식사는 꼬박꼬박 하셔야 한다니까요?”
“밥 안 먹는다고 안 쓰러진다.”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이 생겼잖아요!”
“…….”
그건 내가 아니라 너야. 카르마는 하고 싶은 말을 능숙하게 입 안으로 삼키며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시즈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진 않았다.
“뭐래. 내가 툭치면 쓰러진다고?”
“말이 그렇다는 거죠….”
“그래, 간다, 가.”
식사 패턴도 똑같을까. 저번에는 똑같았던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하며 카르마는 몸을 움직였다.
식사는, 달랐다. 카르마의 취향에 맞는 담백한 음식이 보였다.
“…왜?”
“네? 아, 카르마 씨가 영 식사를 안 하시는 듯 해서요. 한 번 메뉴를 바꿔봤죠! 마음에 드세요?”
“⋯무척, 마음에 드네. 고맙다.”
기대를 해봐도 좋은 걸까. 처음부터 무언가 다른 기분이 들었는데, 이번에는 시즈를 살릴 수 있는 건가? 카르마는 제 희망이 언제나 부서졌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믿고 싶었다. 이번에는 시즈를 살릴 수 있을 거라고. 카르마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즈를 죽게 한 원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평화로운 시간은, 이쯤이면 충분했다.
“그럼 그렇지.”
시즈는 그 어떤 증상도 없었다. 잘 지내다가 갑자기 다음 날, 고통 한 번 없이 죽은 것이었다. 이 단서로 무엇을 알 수 있겠는가? 수 십 번의 반복동안 카르마는 온갖 의학서를 찾아봤다. 그렇게 해서도 알 수 없던 것을, 이제 와 무얼 할 수 있다고. 헛된 희망을 가졌던 스스로가 우스워 미칠 지경이었다.
“외출할 때마다 따라다녀야 하나.”
밖에서 뭐에 중독되기라도 한 걸까. 카르마는 초조한 마음에 제 입술을 잘근잘근 짓이겼다.
“카르마 씨! 그러다가 피나요!”
시즈의 당황한 목소리에 카르마는 하던 것을 그대로 멈추고는 옆을 쳐다봤다.
“…아.”
“아, 는 무슨!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대체 뭘 한 거예요?”
“생각 좀 하느라.”
시즈는 여전히 걱정이 많은 듯 했다. 이 정도로 피난다고 안 죽는데. 자기 몸이나 걱정할 것이지. 카르마는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미묘한 표정으로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괜찮아.”
“…처음 봤을 때도 그렇고 뭐가 그렇게 항상 괜찮아요? 보는 사람은 안 괜찮다구요.”
그 말이 뭐가 그렇게 서럽다고 아프게 느껴졌을까. 지금 입을 열면 목멘 소리가 나올 것을 확신한 카르마는 입을 꾹 다물고는 시즈를 쳐다봤다.
시즈.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카르마는 자신이 울고 있지 않길 바랐다.
최근 며칠, 시즈의 행동이 이상해졌다. 카르마는 언제나 시즈를 보고 있던 터라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간혹 저를 보며 우는 듯한 표정을 짓거나, 미안해하는 듯 했다.
“카르마 씨.”
“…왜.”
“…무리하지 마시라구요. 스스로를 조금 더 아껴주세요.”
왜 네가 그런 표정을 짓는 건데. 카르마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아무런 확신 없이는 감히 말을 할 수 없었다. 그가 하는 것은 언제나처럼 꾹 참고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시즈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 있잖아요.”
“듣고 있어.”
“…감사해요.”
그 의미 모를 말을 듣는 순간 카르마는 목이 막혔다. 또한 당장이라도 묻고 싶었다. 알고 있냐고, 너도 기억하는 거냐고. 그러나 곧바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평소처럼 돌아간 시즈의 모습에 카르마는 알겠다며 고개를 두어 번 끄덕거렸다. 시즈가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면, 같이 외출하실래요?”
“밖에 나가자고?”
“네, 날씨가 좋으니까요!”
“네가 그렇게 원하는데 가줘야지, 안 그래?”
“말 참 예쁘게도 하시네요.”
“그걸 이제 알았냐.”
이 평온한 일상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카르마는 걸음을 옮기면서도 계속 그 생각에 머물러 있었다. 시즈가 도착했어요, 라는 말을 외치기 전까지.
“…뭐야?”
“바다죠! 어때요? 예쁘지 않아요?”
물감을 풀어놓은 듯 진한 순청빛의 바다와 해가 저무는 황혼의 시간에서 꼭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바다를 등지고 물속으로 가라앉는 해를 등진 채, 따스한 붉은빛에 물든 시즈의 모습을 보며, 카르마는 눈을 감았다 뜨면 이 모든 게 다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부서질 것만 같은 현실에 카르마는 시즈를 잡으려고 뻗은 손을 거두었다.
“…예쁘네.”
잊지 못하겠어. 뭉그러지는 발음으로 중얼거린 말을 시즈는 들은 것인지 더 환하게 웃었다. 카르마 씨가 기뻐하니 저도 기분 좋네요, 라고 외치면서.
이 모든 상황이 그에게 잔인했다. 잊지 못할 추억이 생겼는데, 내가 어떻게 너를 포기할 수 있겠어. 가슴이 먹먹해져서 울고 싶은 순간이었다.
알아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제 곧, 그날이 다가올 텐데. 카르마는 더 무너졌고, 더 초조해졌다. 몇 번이고 물어뜯은 손톱은 해져서 처음 모양을 유지하고 있지 않았다.
시즈는 평소와 같이 웃고 기뻐하며 하루를 보냈다. 카르마의 상태가 좋지 않다 싶으면 손을 꼭 붙잡아주거나 토닥이는 등 여전히 다정한 모습을 보였다. 카르마는 그 모습에 정말이지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이라 시즈에게 사실을 말하기로 했다. 믿지 않는 다면 어쩔 수 없다. 어쩌면 스스로를 위한 일일지도 모르겠으나, 카르마는 적어도 시즈에게 다 털어놓고 싶었다.
곧바로 시즈에게 찾아간 카르마는 답지 않게 말을 망설였다. 허무맹랑한 소리라며 저를 이상하게 쳐다봐도 상관없는데 만약 충격받아서 쓰러진다면? 카르마는 시즈의 상태가 걱정되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너도 알아야 할 권리는 있지 않겠냐. 카르마는 쓴웃음을 지었다.
“시즈, 저기.”
“네?”
“할 말이…. 할 말이 있는데.”
평소와 다른 카르마에 모습에도 시즈는 놀라지 않았다. 그저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조용히 미소 지을 뿐이었다.
“무슨 일인데요?”
“그게…. 안 믿을지도 모르, 아니, 안 믿을 거 아는데,”
“제가 죽는다는 거요?”
심장이 곤두박질친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카르마는 놀라 숨을 쉬는 것도 멈춘 채로 시즈를 바라봤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냐는 물음이 나오기도 전에 시즈가 느릿하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꿈을 꿨어요.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 꾼 꿈이었지만, 아주 길고 생생하더라구요. 거기서, 거기서, 전부 다 봤어요.”
시즈는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카르마의 손을 붙잡았다. 창백하게 질린 카르마의 얼굴을 보며 손을 천천히 토닥였다. 괜찮아요, 라며 위로하는 듯.
“카르마 씨, 혼자 그런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해요.”
“시즈……?”
“그러니까, 음, 절 살리기 위해서, 엄청 애쓰잖아요. 전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런 저를 위해서 단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요.”
카르마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감사해요. 정말로, 감사하고 있어요.”
“…….”
“그렇지만 이제는 그만해도 돼요. 괜찮아요, 카르마 씨가 책임지지 않아도 돼요.”
너는 왜, 이런 순간에서도, 여전히 내게 다정할 수 있는지.
카르마는 시즈의 손에 제 이마를 가져다 대며 몸을 숙였다. 울고 있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다는 것보다는 시즈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제 실패를 수없이 봤음에도 원망 하나 없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는가. 한 번은 무척 지쳐서 모든 걸 다 놓았던 때도 있었다. 시즈를 찾으러 갔으나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흘려보낸 5년이 있었다.
“생생하다고 한 것은, 무슨 의미야.”
“그대로, 느꼈다는 의미…?”
그 긴 시간을 한 번에 받아들였다. 죽는 순간을 수없이 겪었다. 그럼에도 시즈는 괜찮아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제가 죽어가 듯 괴로워 무너지던 카르마와 다르게 시즈는 꿋꿋했다.
“카르마 씨 스스로를 더 아껴주세요. 절 아껴주신 것은 이제 충분하니까요.”
시즈는 봄날의 바람처럼 웃었다. 카르마는 제 세상이 무너진 사람처럼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지친 카르마의 손을 꼭 붙잡은 채 시즈는 카르마가 편히 잠들 때까지 옆에 있었다.
카르마가 잠들었다. 시즈는 자신의 손을 빼내어 소리 없 걸음을 옮겼다. 방으로 돌아가서는 아끼던 편지지에 손글씨로 곱게 글을 적어 내렸다. 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으로는 할 수 없는 말들을, 가장 온전한 진심을 담아서.
“이 정도면 괜찮겠죠…?”
고개를 갸웃거리며 끙끙대다가 한숨을 폭 내쉬고는 편지를 마무리한 시즈는 다시 조심스레 카르마의 방, 침대 바로 옆에 살짝 올려놓았다. 그가 잠에서 깨고 바로 볼 수 있도록.
“좋은 꿈 꿔요. 그리고, 행복해야 해요.”
시즈는 카르마의 얼굴을 한참 동안 보다가 훤히 드러난 이마에 가볍게 입술을 내렸다. 끝내 울지 않은 시즈는 다시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서 눈을 감았다.
다음 날, 시즈가 깨어나는 일은 없었다.
잠에서 깬 카르마는 다급하게 침대에서 일어났다가 어제까지만 해도 없던 편지가 보았다. 심장이 크게 뛰었지만 불안함을 애써 누르고 편지를 펼쳤다.
「To. 카르마 자이젠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하고 가요. 원인은, 저도 모르겠어요. 어쩌면 이것이 정령다운 끝일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괜찮아요. 저는 정말로 괜찮다구요!
사실 카르마 씨가 왜 매번 시간을 반복했는지 그 이유도 찾고 싶었는데 그것도 역시 알 수가 없네요. 그래도⋯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남길 수 있는 건 다행인 것 같아요. 말없이 떠나버리면 너무 미안하니까.
있죠, 카르마 씨와 함께 한 모든 시간들이 행복했어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그걸로 저는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이젠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 몫까지 행복하게 살아달라는 건 역시 어려운 부탁이려나요…. 그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아무튼요! 울고 계시다면 뚝 그치세요! 어휴, 그렇게 마음 약해서 어떻게 살아가려구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저를 너무 걱정시키지 말아 달라구요.
앗… 두서없이 뒤죽박죽으로 쓴 것 같은데, 카르마 씨라면 이해해 주리라 믿어요! 잘 지내요,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지 지켜볼 테니까요. 씩씩하게 살아야 해요.
그리고, 그리고… 사랑해요, 사랑했어요. 이 말로 제 마음을 전부 표현할 수 없을 만큼요. 그러니 언제까지나 저는 카르마 씨의 행복을 빌 거예요.
그럼, 정말 작별이에요.
From. 아주 아주 행복한 삶을 살았던 시즈 샤넌」
카르마는 편지를 들고는 곧바로 시즈 방으로 향했다. 손에 힘이 들어가려고 하는 것은 참았지만 뚝뚝 떨어지는 눈물까지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카르마가 할 수 있는 것은 편지가 눈물에 젖어 훼손되지 않게 하는 것뿐이었다.
“시즈, 시즈.”
물기 어린 목소리가 서글프게 울렸다. 카르마는 침대에 고이 누워있는 시즈가 보였다. 마치 좋은 꿈을 꾸는 듯 부드러운 웃음을 걸친 표정은 아픔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시즈.”
카르마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시즈….”
작별 인사도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네가 있어서 행복했다고, 사랑한다고 그 많은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제 진심을 전하지 못했다.
“사랑해. 나보다 너를 더 사랑했어….”
카르마의 몸이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너를 살릴 수만 있다면, 몇 번이고 반복해도 괜찮은데….”
울음이 섞였음에도 천천히 흘러나오는 말은 뚜렷했다. 카르마는 시간이 돌아가길 바랐다. 다시 돌아가서 하지 못한 말들을 전하고 싶었다. 그렇게만 한다면, 지금보다는 후회가 덜 하지 않을까. 네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 있지 않을까. 카르마의 눈에서 끊임없이 눈물이 떨어져 바닥을 적셨다.
제 어리석음에 후회하며 하루를 꼬박 울었지만, 카르마의 시간은 되돌아가지 않았다.
시즈가 죽고 나서 카르마가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일은 없었다.
카르마는 시즈가 없는 쉐어 하우스에서 살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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