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맢릭밐힐/릭힐데] 어리광 (상)

* 마피아 보스 릭 x 미카엘 힐데 If.

칙칙한 색만을 담은 방 안. 달그락, 빈 잔이 놓이는 소리가 들렸다. 주변인을 전부 물린 채 혼자 테이블 앞에 앉아 잔을 기울이던 리카르도가 느리게 소파 등받이에 등을 기댄 채 고개를 뒤로 젖혔다. 질 좋은 가죽 소파가 부드럽게 눌리는 소리를 흘렸다. 잘 마시지도 않던 술을 연거푸 들이키고 있음에도 속에서 끓어대는 감정이 좀체 가라앉질 않았다.

미카엘. …… 힐데베르트.

그렇게 그를 부르면, 그는 퍽 상냥하게도 웃으며 왜? 하고 되물어오곤 했다. 모든 것을 사랑할 것만 같은, 오롯하게 사랑만이 담겨있을 것 같은 그 눈동자를, 리카르도는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습게도 독점욕이었다. 그가 가진 크기의 사랑에서 일부를 떼어 건네는 사랑이 아닌, 그가 지닌 크기의 모든 사랑이 자신의 것이기를 바랬다. 그런 욕망이 목 끝까지 차올랐을 때, 그의 손 끝을 쥐며 그 감정을 토해냈더랬다. 답지 않게 떨리던 목소리로, 그와 시선을 마주치지도 못하고.

당신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다시 입을 열려던 찰나, 자신이 쥐고 있던 그의 손끝이 느리게 빠져나갔다. 그제야 리카르도의 고개가 퍼뜩 들렸다. 마치 그가 힐데베르트에게 어떤 감정을 토해낼지 알고 있는 것처럼, 미안해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짓는 그의 얼굴에 리카르도의 입이 느리게 닫혔다. 붕 떠있던 기분이 단숨에 나락으로 쳐박혔다.

미안.

결코 허락의 의미가 아닐 사과에, 리카르도는 더더욱 비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지독한 회상에서 깨어난 리카르도가 느리게 눈을 떠냈다. 동시에 똑똑, 문을 조심스레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수하들은 아닐터다. 제 잔뜩 날이 선 으름장에 그들은 이 방의 근처에도 서성이지 못했을테니. 그렇다면 그 문을 두드리며 허락을 구하는 이는 딱 한 명 뿐일터였다. 그것을 알기에 일부러 대답하지 않았다. 명백한 거절의 의미를 담고 있었음에도 초조한 듯 방 앞을 서성이는 기척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괜히 짜증이 치밀었다. 그깟 잠기지도 않은 문 따위, 그냥 열어 젖히고 오면 되는 일이 아닌가. 왜 이런 순간조차 자신에게 다정하게 구는 것인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리카르도가 성큼성큼 문 앞으로 다가가 거칠게 문을 열어 젖혔다. 갑자기 열린 문에 금안의 눈동자가 동글게 띄였다. 훅 끼쳐온 술냄새를 맡기라도 한 건지, 그의 얼굴이 걱정으로 물들었다. 아, …… 빌어먹을.

“릭…….”

“아무도, … 들이지 말라고 했는데….”

“알아, 내가 고집 피운거야.”

“아. 결국 그 새끼들도 내 말보단 당신 말이 우선이라는 거겠죠~. 내 권위가 언제부터 이렇게 바닥을 기었는지….”

“릭!”

일부러 그를 들쑤시듯 자극적인 단어만을 토해냈다. 그는 퍽 당혹스러워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우물쭈물대던 그가 결국 고개를 떨어트리며 사과를 건넸다.

“미안, 네가 그렇게 느꼈을 줄은 몰랐어. … 다음부턴 이런 일 없도록 할게.”

그의 모습에 리카르도가 아랫입술을 자근 깨물었다. 괜한 화풀이인 것을 그도 알고 있을텐데. 그가 이런 억지를 받아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이런 억지를 받아주길 바란 것도 아니였다. 그가 자신에게 쏟은 특별한 애정을 잘 안다. 하지만 그게 늘 자신이 바라던 방향이 아니였던 것 뿐이다. 힐데베르트에게 리카르도는 언제까지고 자신이 투정을 받아줘야 하는 아이였을 뿐이었다. 그게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화풀이를 한 건데, 그것마저 받아줄 거라곤 생각하지도 못했다. 이걸 기껍게 여겨야 하는 것일지, 아니면……. 그 모든 것을 꾹꾹 씹어삼키던 리카르도가 나직하게 한숨을 내뱉으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들어오세요…. 저 보러 오신거잖아요~?”

“고마워, 실례할게.”

방금 전까지 제 말에 들쑤셔졌던 주제에, 자신의 허락에 금세 희미하게 웃음을 비추는 그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 고개를 돌려버렸다. 리카르도의 반응에 머쓱하게 뒷목을 만지작이던 움직임이 일순 멈췄다. 금안의 눈동자가 엉망이 된 바닥을 느리게 훑었다. 리카르도의 시선 역시 바닥으로 향했다. 수하들을 쫓아낸 직후, 감정이 격해져 조금 난동을 피웠던 흔적을 지우지 못한 것이다. 힐데베르트의 시선이 다시 리카르도에게 향했다.

“안 다쳤어?”

“유리에 조금 긁힌 걸로는 다친 걸로 취급 안 해요~.”

“상처가 나면 다 다친 거지, 무슨 소리야.”

“… 정말로 안 다쳤어요. 그리고 그런 상처는 금방 낫잖아요….”

저도 모르게 투정부리듯 웅얼거렸다. 제 말이 영 믿음직스럽지 못했던지, 그는 제 얼굴이고 손이고 꼼꼼히 살폈다. 정말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자신을 놓아주었다. 소파의 빈자리에 앉으라는 제 손짓에 그는 순순히 가 앉았다. 리카르도 역시 그의 맞은 편에 자리를 잡았다. 테이블 위엔 이미 두어병의 빈 위스키 병이 세워져 있었다.

“한 잔 드릴까요~?”

“릭.”

“듣고 있으니 말씀하세요….”

빈 잔을 하나 집어 힐데베르트의 앞에 놓은 리카르도가 그의 잔을 느릿하게 채웠다.

“…… 요즘 통 못 잔다며.”

“…….”

결국 제 걱정에 친히 이곳까지 걸음을 옮기셨다는 말이군. 자신의 잔에도 위스키를 반쯤 채운 리카르도가 그것을 집자 힐데베르트의 손이 그 위를 덮으며 그것을 부드럽게 저지했다. 녹안의 눈동자가 금안의 눈동자와 부딪혔다.

“이미 충분히 많이 마시지 않았어?”

“겨우 두 병인데요~.”

“두 병 씩이나 마신거지.”

“하…….”

가라앉았던 감정이 다시금 들끓었다. 받아주지 않을 거라면 이런 다정은 원치 않았다. 전부 억지임을 알면서도 그랬다. 당신이 이렇게 전부 받아주기만 하면, ……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잔을 쥐고 있던 손을 떼고 그의 손목을 덥석 움켜쥐었다. 갑작스러운 제 행동에 당황한 그는 맥없이 제 악력에 끌려왔다. 쨍그랑! 잔과 술병이 바닥을 나뒹굴며 깨지는 소리가 났다. 똑, 똑, 고여있던 술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와, 제 거칠어진 숨소리가 뒤섞여 울렸다. 소파에 눕혀진 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금안의 눈동자가 놀람으로 커져 있었으나, 자신을 밀어내거나 하지도 않았고, 무슨 짓이냐며 역정을 내지도 않았다.

“… 왜 안 밀어내세요?”

힐데베르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지독하게 올곧은 눈으로 리카르도의 표정을 살피고 있을 뿐이었다. 취기가 올라온걸까. 눈가에 서서히 설움이 차올랐다. 말라버려 더이상 나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눈물이 힐데베르트의 뺨 위로 뚝뚝 떨어졌다. 금안의 눈동자가 얕게 흔들렸다.

“릭.”

“차라리 밀어내고 욕을 하시지 그래요….”

“리카르도.”

“당신이 어디까지 제 어리광을 받아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하시는 건데요?”

내가 어디까지 원할 줄 알고. 제 물음에 침묵을 택했음에도 그 눈동자에 아른거리는 애정이, 그러나 자신과는 결코 같지 않을 애정이 제 속을 헤집었다. 리카르도가 고개를 느릿하게 떨어트렸다. 금방이라도 입술이 닿을 것 같은 거리감. 리카르도에게 잡힌 손목이 꿈틀거렸으나 힐데베르트는 결국 그를 쳐내지 못했다.

밀어내.

리카르도는 소리로 토해지지 못한 말을 삼키며 얼굴을 구겼다. 그의 힘이라면 충분히 자신을 바닥에 내던지고도 남았다. 강화신체 소지자라고 한들, 힐데베르트의 악력에는 비할 바가 아니였으니까.

“릭, … 후회할 짓 하지마.”

힐데베르트가 퍽 간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의 말에 우습다는 듯, 흐르는 눈물을 닦아낼 생각조차 하지 못하던 리카르도가 웃음을 터트렸다.

“후회하는 건 당신이겠죠. 이런 애새끼의 어리광 따위, 절대로 받아주지 말았어야 했다고….”

이렇게까지 당신에게 기어오르도록 놔두지 말았어야 했다고. 그래서, 다정하게 굴지 말았어야 했다고. 결코 이딴 역겨운 마음을 품고, 홀로 키워가도록 두지 말았어야 했다고. 당신은 그랬어야만 했어. 울음으로 뒤섞인 숨이 기어코 힐데베르트의 숨을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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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성인물이 되지 않을까 싶으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종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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