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라이즈
8/20 :: 힐데베르트 탈레브 생일 기념. NCP.
* 8/20 힐데베르트 탈레브 생일 기념 연성. 힐데 생일 축하해!
어쩐지 심란한 표정의 힐데베르트가 막 자판기에서 뽑은 물병을 손에 쥔 채 복도에 비치된 의자에 앉아있었다. 시원한 물병을 손안으로 이리저리 굴린 그가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요즘 주변인들의 분위기가 뭔가 이상하다. 선임들은 물론이고, 제 동족들조차도. 간만에 본 얼굴이 반가워 인사를 건네면 그 인사는 잘 받아주면서, 그 이상 무언가 대화를 이어나가는 법이 없었다. 점심이 아직이라면 같이 나가서 먹자는 말에도 (아~, 미안, 다음에….), 요즘 임무는 많이 바쁘지 않냐는 물음에도 (응! 임무는 별로 안 바쁜데, 다른 일로 바빠서! 다음에 또 봥, 힐데!), 요즘 뭐하고 지내냐는 물음에도 (나야 늘 그렇듯 잘 지내고 있지. 다음에 같이 식사나 할까, 대장. 먼저 가볼게.), 같이 몸이나 풀러 가자는 제안에도 (…… 그거 솔깃하긴 한데. 미안, 단장.) ……. 각자의 이유로 자신과의 긴 대화를 모두 이어가주지 않았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회상하며 힐데베르트는 요 며칠 스스로의 행동을 돌아보던 참이였다. 내가 또 뭘 잘못했나. 하지만 아무리 되짚어봐도 이거다! 하고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돌덩이가 가슴팍에 얹힌 것처럼 갑갑했다.
“내가 뭔가 잘못했다면 그냥 속 시원하게 말해주면 좋을텐데.”
한참 손 안에서 굴린 탓에 이젠 미지근해진 냉수를 까서 들이킨 힐데베르트의 한숨이 한층 더 깊어졌다.
그 심란한 마음이 심상에도 영향을 끼친 건지, 간만에 꿈을 꾸었다. 익숙한 이들이 서있었다. 검은색의 긴 머리카락, 하얀색의 짧은 머리카락. 제 소중한 친구들. 레이의 금빛 눈동자가 웃음으로 물들며 무어라 큰 소리로 신나게 떠들었다. 카일도 레이의 말에 동조하듯 웃음을 띄우며 레이의 어깨에 팔을 걸친 채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힐데, —…… 해!
목소리가 뭉게지듯 들렸다. 뭐라고? 잘 안 들려. 그렇게 내뱉었던가? 아닌가? 잘 모르겠다. 그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음에도 제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져가고 있는 것은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간만에 가슴이 아릿할만큼 번지는 기쁨. 그런 제 얼굴을 들여다보던 두 사람의 얼굴에 짓궂은 표정이 떠올랐다. 무언가 불길한 기분을 느낀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으나 그들이 더 빨랐다. 덥석, 팔이 잡히는 느낌과 함께, 무언가 하얀, 크림같은 것이 시야를 화악, 덮쳤다.
“…….”
느리게 눈꺼풀을 밀어 올려 꿈에서 깨어났음에도, 시야가 이상하게 갑갑하고, …… 하얗다. 복슬복슬하고……. …… 복슬복슬?
“삐우.”
“…… 밀크?”
작은 생명체의 이름을 웅얼대자 땡그란 눈동자와 곧장 마주쳤다. 조심스레 제 얼굴에서 떼어내며 몸을 일으키니 밀크가 제 손 안에 작은 머리통을 비벼대는 것이 느껴졌다. 밀크가 왜 여기있지? 혹시 어제 자신이 오두막이 아닌 곳에서 잠들었나 싶었지만, 이 익숙한 풍경은 자신의 스윗홈이 맞았다. 설마 밀크가 제 오두막집을 열고 여기까지 저벅저벅 온 건가. 생각의 회로가 이상한 쪽으로 빠져들 때즈음, 1층에서 무언가 부시럭대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아까부터 계속 들렸는데, 정신이 차츰 돌아오니 이제야 인지를 했다. 밀크를 제 어깨에 조심히 얹은 채 침대에서 내려선 찰나,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와 함께 익숙한, 붉은색의 머리카락이 쏙 올라왔다.
“대장, 일어났나? 밀크가 어디갔나 했더니.”
카이로스가 모습을 드러내자 밀크는 제 어깨에서 톳톳 내려가 금세 그에게로 달려가버렸다. 어쩐지 아쉬운 기분을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아, 응.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야?”
아까의 인기척은 카이로스 였나? …… 아니, 아닌데. 아직 아래에 몇 명이 더 있는 것 같았다. 동족들? 선임들? 아니면, 둘 다 인가? 갑자기 내 오두막엔 왜 모인거야? 연락도 없이? 제 표정에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났는지 그가 시원스레 웃었다.
“마침 잘 됐어. 다들 오늘만을 기다렸으니 내려가지.”
“…… 응?”
오늘? 오늘이 무슨 날인데? 소리로 만들어지지 못한 의문을 읽어내기라도 한 듯, 카이로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정말 모르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뭔데…….”
카이로스는 제 의문을 시원하게 해결해주는 대신, 웃음이나 한 번 슬쩍 띄우며 계단을 내려가버렸다. 아니, 진짜 뭔데! 황당한 심경이였으나, 뭐, 그건 아래로 내려가보면 해결될 의문일테니 더 불만을 표하진 않았다. 대장! 어서 내려와! 재촉하는 목소리에 더는 지체하지 않고 계단을 후다닥 내려갔다. 오두막 1층의 풍경이 전부 시야에 담기기도 전, 팡! 하고 무언가 터지는 소리에 계단을 내려가던 발걸음이 멈췄다.
“힐데, 생일 축하해!”
“축하드려요.”
“축하해~.”
아미의 신난 목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축하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1층에 서있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언제와서 꾸미기 시작한건지, 형형색색의 풍선과 색지, 맛있는 음식 냄새와 케이크까지. 그제야 오늘이 무슨 날인지 기억났다. 지구에서의, 나의 생일이다. 행정상이기는 했지만……. 어쩐지 기분이 미묘해져서, 입을 열었다가 닫길 반복했다. 그들은 나를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 이렇게 다 모이실만큼 제 오두막은 넓지 않은데.”
제 말에 그들의 얼굴에 황당하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들의 얼굴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제 웃음에 고개를 젓던 리카르도가 서있던 저를 가볍게 잡아 끌며 사람들 가운데로 자신을 세웠다.
“다른 사람들도 더 오고 싶어 했는데 일정이 안 맞았어~…. 그 녀석들에겐 따로 축하받아~.”
“더 왔었다간 앉을 자리도 없었을 겁니다.”
장난처럼 내뱉었던 제 말이 더 이상 장난이 아니게 되었겠지. 리카르도가 한걸음 물러나자 내내 케이크를 들고 있던 아미가 제 앞에 섰다. 막 불을 붙인 건지 초가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긴 초가 6개, 작은 초가 2개. 62…….
“나이대로 꽂기엔 초가 너무 많아질 것 같고, 힐데 나이도 정확히 알 수가 없어성…….”
그래서 제 기수의 숫자로 초를 꽂은 모양이었다. 하긴, 큰 초를 20개 꽂는대도 충분히 많았을거다……. 케이크에 꽂혔을 스무개가 넘는 초를 상상하다 고개를 저었다. 나이만큼의 초는 아니더라도, 이 숫자 역시 내게 의미가 깊다면 깊은 숫자가 아닌가. 자신이 블랙배저라는 두 번째 삶을 살아가게 된, 이제 나의 소속이 된 곳.
“감사합니다. 충분해요.”
“다행이다! 자, 그럼…….”
아미가 하나, 둘, 셋, 하고 숫자를 세자 생일 축하 노래가 동시에 흘러나왔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힐데베르트의 생일 축하합니다! 짧은 생일 축하 노래가 끝나고, 박수가 터져나옴과 동시에 초를 후, 불었다.
“소원도 빌었어?!”
아미의 신난 물음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이 자리에 모여있는 이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제 선임들, 자신의 동족들. 가슴 한 켠이 간질거리는 기분이 들어서,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꿈속에서 느꼈던 감정 못지 않게, 깊은 곳에서부터 퍼지는 기쁘다는 감정. 그런 제 얼굴을 보던 이들의 얼굴에 금세 짓궂은 표정이 떠올랐다.
“잠깐.”
뒤로 물러나려던 걸음이 어깨를 단단히 쥔 손에 의해 턱, 막혔다. 고개를 돌리니 이고르와 시선이 딱 마주친다. 그들 못지 않게 짓궂은 표정.
“야, 너,”
그런 배신감에 찬 말을 뱉기도 전, 시야 한가득 무언가 확 덮쳐들었다. 으악! 제 짧은 비명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터지는 웃음 소리가 들렸다. 얼굴을 타고 떨어지는 크림의 감촉, 코끝을 스치는 케이크 향과, 입안에 들어온 케이크에서 느껴진 달달한 맛. 웃음 섞인 한숨을 내뱉으며 카이로스가 건네준 수건으로 얼굴에 묻었던 크림을 닦아냈다. 이 자식, 이럴 줄 알고 수건까지 미리 준비한거야? 그를 가볍게 흘겨보자 그는 익숙한 웃음으로 화답할 뿐이었다. 웃음소리가 조금 잦아들었을즈음,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저, 기뻐요.”
잠시 적막이 흘렀으나 불편한 적막은 아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들엔 분명한 애정이 담겨있었으므로. 그제야, 그제서야. 자신이 꿈속에서 듣지 못했던 말이 무엇인지 알것만 같았다.
힐데, 생일 축하해!
이제 다시는 들을 수 없을, 레이의 신난 목소리 뒤로 따라붙던 카일의 목소리도……. 간신히 그 목소리와 얼굴, 뒤따르는 죄책감을 옆으로 밀어둔 채, 자신을 음식 앞으로 이끄는 손길에 순순히 끌렸다. 내게 그럴 자격이 없음을 잘 알면서도, 지금은, 그저 그들이 애써 준비해준 것에 집중하고 싶었다. 오늘 딱 하루 정도는, 그가 눈 감아주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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