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힐데 정략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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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다 날조햇습니다

윤 성인 맞음


힐데베르트는 지구인을 이해한다.

자신들의 땅에 예고도 없이 찾아온 낯선 손님. 늙지 않고, 영생을 살며,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사용하는 외계의 존재들. 자신이 인간이었더라도 마땅히 그들을 경계했을 것이다. 하여 영생의 특권을 나누길 원하는 가당찮은 요청에도 응하였으며 동족이 살아갈 기반을 닦되 필요 이상으로 인간들을 자극하지 않도록 노력해왔다. 우리의 목표는 정복이 아닌 정착이었으니까.

“정략혼?”

이 또한 그런 작업의 일환이었다. 인간 측의 주요 인사들과 주기적으로 사교의 장을 가지는 것. 이런 소리를 들을 줄은 예상 못했으나.

힐데베르트는 의자에 반쯤 파묻혀있던 몸을 일으켰다.

“그건 저에게 하시는 요청입니까?”

눈 앞의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자신의 기분을 살피듯 조심스러운 기색이지만 발언을 철회하진 않는다. 홧김에 지른 것은 아니군.

“타이탄 측의 수장에게 드리는 요청입니다. 상대는 누구든 상관 없습니다.”

“아아.”

힐데베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닥에 시선을 꽂은 채 잠시 고민했다. 남자는 정중한 자세로 곁을 지켰다. 그러나 시선 속 열기는 숨겨지지 않는다. 볼 때마다 느끼지만 참으로 탐욕스러운 자다.

“빙제의 입장도 같습니까?”

“예.”

그리고 선을 지킬 줄 아는 자였다. 그러니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겠지.

“그렇군요.”

길게 고민할 필요는 없어보였다. 힐데베르트는 재떨이에 시가를 눌러 끄며 간단히 답했다.

“결혼 상대는 제가 될 겁니다. 나머지는 뜻대로 하시죠.”


“정략호오온?”

카일의 표정이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예상보다 반응이 더 격렬한데. 힐데베르트는 달리 할 말이 없어 머쓱하게 웃기만 했다. 카일은 밥 먹다 말고 수저까지 내려놓았다.

“니가 인간이랑 결혼을 왜 해?”

“다른 사람을 시킬 순 없잖아…….”

“아니, 애초에 그걸 왜 받아들이냐고?”

카일이 분통을 터트렸다. 심각할 필요 없지 않나? 목숨을 걸자는 것도 아니고 그냥 결혼인데. 그러나 그런 생각들을 입밖에 내진 않았다. 힐데베르트가 어물어물 답했다. “뭐, 그냥…….”

“넌 결혼이 그냥이냐?” 더 화나게 만든 것 같다.

다행히 옆에서 커피를 마시던 레이가 끼어들었다.

“지도자라는 건 원래 그런 거야. 내 인생이라고 내 맘대로만 살면 아랫 사람은 어떻게 책임져?”

“뭐라는 거야? 나도 알아, 이 자식아. 근데 결혼은 다른 문제지!”

물론 레이는 어그로 담당이었다. 카일을 진정 시키지는 못했고. 아무렴 내게서 관심이 떴으면 됐다. 힐데는 싸우기 시작한 둘을 내버려두고 마저 식사를 했다.

그렇게 이 주제는 넘어간 줄 알았으나.

“난 반대다.”

자기 전 양치를 하려는데 카일이 화장실 문을 벌컥 열고 쳐들어온 것이다. 힐데베르트는 비장하게 팔짱을 끼고 화장실 앞을 떡 막고 선 카일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나 양치할 건데.”

“정략혼 반대라고.”

소심하게 항의했으나 들어먹히지 않았다.

거실에서 레이가 소리쳤다. “그 주제 아직도 안 끝났냐?” 카일은 그 소리를 무시했다.

“이런 인생의 중대사를 어떻게 우리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결정할 수 있지?”

내 결혼을 친구 허락 받고 하는 쪽이 더 이상하지 않나. 그러나 카일은 의견이 다른 모양이었다. 심지어 레이마저도 이 발언에는 카일의 편을 들고 나섰다.

이렇게 통보식으로 결혼 소식을 들을 줄은 몰랐다. 하긴 그래. 우리가 보통 사이야? 먼저 상의 정도는 했어야지. 맞아. 정말 서운하다. 생각해 봐, 너도 카일이 내일 성녀님 손 잡고 찾아와서 ‘우리 결혼한다’ 이러면 좀 당황스럽지 않겠냐? 거기서 그 얘기가 왜 나오지? 충분히 나올만했다고 생각하는데. 너 요즘도 우리 몰래 성녀님 만나고 그러는 거 아니지? 레이 르뉘르. 거기까지 해라. 설마 아무 진전도 없었어? 야, 검 들고 따라 나와. 힐데 다녀올게!

그리고 둘은 또 싸웠다. 쟤넨 지겹지도 않나. 힐데베르트는 칫솔을 입에 물고 날 부딫히는 소리가 들리는 마당을 기웃기웃 내다보았다. 얘기하다 말고 갔으니 다 싸우면 또 찾아오겠군…….

“잎맥도 없는 인간에게 배우자 자리를 주겠다고?”

“어, 왔냐. 기다렸다.”

힐데베르트는 (또)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카일에게 놀라지도 않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카일이 힐데베르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이번에야말로 피하지 말고 답하라는 듯. 정말 해줄 말이 없는데. 달리 결혼하고 싶은 상대도 없고, 이 결혼은 그에게 아무 의미도 없다. 있으나마나한 배우자 자리를 내어주고 그들의 권력과 얄팍한 호의나마 얻을 수 있다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 그런 계산이었다.

“잎맥이 없으면 뭐 어때. 사랑할 것도 아닌데.”

“사랑할 게 아니니까. 감정전이도 안 되는 인간의 대체 무엇을 믿고 네 옆자리에 두는 거지?”

힐데베르트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저건 카일의 나쁜 버릇이었다. 감정전이가 불가능한 인간들의 말과 행동을 전부 거짓으로 취급하는 것. 제국이라고 모든 관계를 잎맥 위에 쌓아올렸던 것도 아닌데. 사람 간의 일은 늘 불확실성을 동반한다. 카일도 알 것이다. 그 범위가 인간에게까지 적용되지 않을 뿐.

사실 힐데베르트는 인간들의 사랑이라는 것이 퍽 낭만적이지 않은가 생각했다. ‘우리’와는 달리 상대의 감정을 확신할 수단이 없음에도 그것이 사랑임을 믿을 수 있는 용기가. 자신의 말과 행동에 감정을 담아 상대에게 닿길 간절히 기원하는 행위들이.

“자리는 자리일 뿐이야. 그 자는 내게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 할 거야.”

하지만 나와는 관련 없는 일이지. 이 결혼은 거래였다. 불안해하는 인간들을 달래기 위한 적절한 당근.

그러니 적당히 어울려주되 선을 넘게 두어선 안 될 것이었다.


힐데베르트는 결혼의 모든 준비를 전적으로 상대측에 일임했다. 하객 명단에도 관여하지 않았다. 눈치가 있는 자였으니 적당히 알아듣겠거니 했다.

카일은 여전히 불만스러워보였으나 대거리한 후로는 네 결정이니 믿고 지켜보겠다며 한 발 물러나주었다.

그러니까, 내 결혼인데 왜 본인이 더 난리냔 말이다. 결혼 소식만 들려봐라. 두 배로 지랄해줘야지. 힐데베르트는 정장 카탈로그를 들고 옆에 붙어 뭐라 잔소리하는 웬수 새끼의 얼굴을 진저리치며 죽 밀어냈다.

당연히 결혼 상대의 얼굴도 보지 않았다. 얼굴 뿐인가, 이름을 비롯한 신상 정보를 무엇 하나 듣지 않았다. 그쪽에서 켕기는 게 있는지 먼저 연락해오질 않길래 이쪽도 굳이 안 물어봤다. 레이가 “하자가 심한 인간인가보네.” 했을 때도 그냥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넘겼다. 뭐, 내놓은 자식이라도 되나. 그 정도 감상이었다.

그래서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식장에 들어가 익숙한 면면들의 형식적인 축하를 받고, 에이택의 회장과 함께 입장하는 제 신랑을 처음으로 보았을 때,

힐데베르트는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어린 애 아냐?

물론 따지자면 대부분의 인간들은 제 기준에서는 어리긴 했다. 근데 저건 좀 심하게 어리지 않나.

검은 머리와 검은 눈의 새신랑이 군더더기 없는 걸음걸이로 다가와 자신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손을 내밀어오는 그 순간까지도, 힐데베르트는 멍하니 상대만 바라보았다.

보들보들해보이는 뺨이나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피부 같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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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멋부리는 바닷가재

    아제발 여기서 끝나는 거 아니죠??? ㅠ ㅠ 너무 재밌어요 작가님 글들 다 너무 취향이라 큰일남 ㅠ ㅠ 오래오래 글 써주세요 🥺 금안조도 너무 좋아요 거의 아빠처럼(?) 난 이 결혼 반대다! 불쑥불쑥 찾아오는 카일과 툭툭 딴지거는 레이 너무 좋아서 회사에서 함박웃음을 주체하지 못했어요 ㅋㅋ 아 넘 재밌다ㅜㅜ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 열렬한 물개

    2편이 있어야 해요 선생님..

  • 운동하는 산양

    이거 뒷내용 기원합니다 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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