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힐)그는 내 아이고, 나는 그의 침대 밑 괴물이다

대충 나이는... 날조해서 윤 11살 아미 3살 정도로.

어릴적 고아원에 있을때, 윤은 소패니까 어릴때부터 어른들이 기분나쁜 눈깔 이러면서 꺼려해서 제대로 된 돌봄은 못받고 있었는데...

그러다 어느날 고아원 선생 하나가 그런 윤을 자기 분풀이 대상으로 쓰기 시작한거야.

때리고 굶기고 소리지르고 좁은데 가둬두고.

아미는 오빠가 맨날 다치고 피나니까 맨날 울면서 밤마다 윤 침대로 기어들어와 꽉 부여잡고 잠들었는데...

그걸 또 아니꼽게 본 선생이 밤에 아미가 자기 자리에 없으면 꼭 윤을 불러다가 체벌을 했어.

그걸 알게 된 아미가 미안해... 나 이제 안올게... 하면서 엉엉 우는데 윤은 됐어, 신경쓰지 말고 오고싶으면 와 이러고 만약 아미가 제 침대에서 혼자 훌쩍이고 있으면 본인이 직접 아미의 침대로 와서 달래줬지.

그렇게 윤의 몸에서 폭력의 흔적이 사라지지 않는 나날이 이어지고...

침대 아래, 옷장의 어둠, 문 뒤의 그림자, 가구 아래의 좁은 틈에 사는 존재들의 대장인 힐데는 고민에 빠졌어.

이게 대체 벌써 몇번째야...

허엉 대장ㅠㅜㅜ 저 너무 끔찍해서 못가겠어요ㅠㅠㅠ

발치에 무릎꿇고 엉엉 울음을 터트리는 부하들을 보며 힐데가 이마를 짚었어.

대체 왜. 그냥 3살짜리 여자아이 하나 놀래키는 거잖아. 뭐가 그렇게 끔찍한데

힐데가 눈썹을 까딱이며 물었어.

아니 자꾸 한 아이한테 배정된 부하들이 담당 아이를 바꿔달라고 요청하는데, 그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거야.

아니ㅠㅠ 얼마전부터 그 여자애 오빠가 걔 침대에서 같이 자는데... 여자애 옷자락을 잡아서 놀래 킬라 치면 눈을 부릅뜨고 쳐다본다고요ㅠㅠ 눈이 너무 무서워요ㅜㅜ 날 잡아 죽일 것 같음ㅠㅠㅜ

야, 어린애가 널 어떻게 죽여.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대장이 못보셔서 그런다니까요?! 걘 떡잎이 달라요!

진짜요! 걘 사실 우리쪽에 태어나야하는데 잘못 태어난게 아닐까 싶을 정도라고요!!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ㅠㅠㅠ 저 거기 안갈래요ㅠㅠㅠ 차라리 뮐른 꼬맹이네 집에 갈게요ㅠㅠㅠ 아니면 자코모네 집도 좋아요ㅠㅠ 제발요 대장ㅠㅠㅜ

그 정도라고?

부하의 눈물어린 호소에 힐데는 제 손에 들린 서류를 들여다봤어.

최윤. 11살.

특유의 메마른 감성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들의 목표 대상에서 제외된 아이.

전에 이고르가 한번 갔다가 '싸가지 없는 새끼'라는 말을 하곤 리스트에서 지워버렸더랬지.

근데 그냥 좀 잘생긴 꼬맹이 아닌가.

11살인데 벌써 이목구비가 자기 주장을 하네. 크면 제법 여럿 울리겠...

아니, 이게 아니라.

아무튼 여동생은 여전히 자신들의 목표 대상이라 이 걸 해결해야 하긴 하는데...

하필 왜 제 구역에서 이런 일이.

힐데는 골치가 아파와 한숨을 푹 내쉬었어.

일단 여긴 내가 갈테니까 니들은 요우한테 가서 다른 데 배정해달라해라

감사합니다 대장!!

생명의 은인!

역시 우리 대장! 가장 어두운 곳의 빛이시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호들갑을 떠는 부하들을 내보내며 힐데는 오랜만에 몸을 일으켰어.

날개와도 같은 머리카락이 기지개를 펴듯 퍼지고, 무심하던 금빛 눈동자가 빛을 담아냈지.

오랜만에 힘 좀 써 보실까.

꿈뻑. 꿈뻑.

야, 좁잖아. 저리 좀 가

힐데는 제 앞에서 저보다 한참 작은 여동생을 침대 밑으로 밀어넣는 잘생긴 소년을 보며 눈을 꿈뻑였어.

밤의 장막이 내려앉고 자신들의 활동 시간이 되자 힐데는 아미라는 여자아이의 침대 밑에서 스윽 몸을 일으키려고 했어. 근데 온 몸을 다 꺼내기도 전에 침대 밑으로 뭐가 쑤욱 들어오는거야.

깜짝 놀라 고개를 들자 자신들이 사는 무저갱의 어둠을 닮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어.

한밤중에 침대밑에서 샛노랗게 빛나는 눈이랑 마주치면 기겁할법도 한데, 소년은 방해된다는 듯 제 머리카락과 날개를 치워내고 그 빈 자리에 제 옷으로 꽁꽁 감싼 제 여동생을 밀어넣었어.

아, 얘가 아미구나.

힐데는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아이의 눈가가 빨갛게 부어있는 것을 보았어. 안쓰러움에 한참을 눈을 떼지 못했지.

그리고 그걸 지켜보던 검은 눈의 소년은 다시 제 머리카락을 가져다 여동생의 몸을 가려냈어.

서슴없이 제 몸을 만지는 행태에 어이가 없어서 입을 벌리고 쳐다보자 소년이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리듯이 말했어.

니들은 어른들한테 안보이는 것 같으니까, 괜찮으면 걔 좀 숨겨줘

힐데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묻기도 전에 쾅! 하고 큰소리가 났어.

방문이 열리는 소리였지.

힐데는 잠든 아미를 날개로 끌어당기며 바깥의 상황을 살폈어.

퍽!

둔탁한 소리가 들리고 무언가가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졌지.

바닥으로 엎어진 소년이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고 다시 몸을 세웠어. 허나 가슴팍을 걷어차는 발길질에 다시 몸을 수그려야 했지.

큭...

이번엔 참아내지 못한 억눌린 신음이 새어나왔어.

아미를 깨우지 않으려면 이 자식이 날 밖으로 데려가게 해야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를 두들겨 패는 인간의 급소 중 어디를 노릴까 고민하며 날아오는 주먹을 바라보는데...

부드럽고 새하얀 무언가가 제 앞을 가로막았어.

무, 뭐야!!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어.

그리고 윤은 들을 수 있었어.

내 아이를 또 한번이라도 겁주거나, 손대거나, 다치게 한다면 너도 똑같은 짓을 겪게 될거야. 영겁의 시간동안

반드시 그렇게 만들어주겠다는 듯 한자 한자 단호하게 내뱉는 차가운 목소리를.

선생은 겁에 질려 새된 소리를 내며 방안을 빠져났어. 잠시후 쿠당탕 하는 소리가 들린 걸 보면 본인이 보수하는 걸 미루고 미룬 고장난 계단에서 자빠진 모양이었지.

쌤통이다.

윤은 그렇게 생각하며 여전히 제 시야를 가린 날개를 잡아내렸어.

너 진짜...

인간의 남성을 닮은, 그러나 머리카락은 끝으로 갈수록 날개를 닮았고, 팔 대신 등뒤에서 돋아난 여섯장의 날개 끝에 손이 달린 자는 윤이 잡은 날개를 보며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었어.

잎사귀를 닮은 금빛 동공이 가늘게 좁혀졌지.

하지만 그는 이내 표정을 누그러트리며 몸을 숙였어.

웬만한 성인 남성보다도 큰 그 몸이 어떻게 침대 아래 들어있을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었지만, 뭐 인간이 아니니까 어떻게든 했겠지 하며 가만히 금빛 눈을 마주보고 있으니 그가 말했어.

이제 저 자는 너와 네 여동생을 건드리지 못할거야

괴물 주제에 순진하군. 윤이 조소를 흘렸어.

그걸 어떻게 확신하지?

뭐?

윤의 삐뚜름한 표정에 힐데가 순간 벙찐 표정을 지었어. 아까는 좀 위압감있어 보이더니 지금은 맹탕이네.

윤은 그렇게 생각하며 심드렁히 말했어.

지금이야 네가 두려워 도망치겠지. 하지만 네가 사라라지면? 저새끼는 자기가 꿈을 꿨든 환각을 봤든 헛것을 본거라고 생각할거야. 그리고 다시 찾아와 같은 짓을 반복하겠지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니. 단 한번의 경험으로는 그 썩어빠진 인성이 고쳐질리 없었다. 되려 윤이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한거라며 분통을 터트릴지도 모르지.

어... 그럼 나보고 뭘 어떡하라고?

그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네개의 날개를 교차해 팔짱을 꼈어. 남은 팔 중 하나로는 목덜미를 쓸어내렸지.

그런 그를 보며 윤은 당당히 요구했어.

내가 최아미를 데리고 여길 나갈때까지 책임지고 매일 찾아와

뭐?

보아하니 너희들 중에서도 좀 높은 위치같은데 설마 일을 저지르고 책임도 안질 셈이야?

아니...

아니 뭐 이런 애가 다있지?

힐데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어. 아니 구해준 사람, 아니 사람은 아니지만 아무튼 내가 구해줬는데 이제 요구까지 한다고?

나 이거 알아. 한국 속담으로 물에 빠진 사람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는 게 지금 이런 상황에 쓰는 말인거지?

힐데는 인상을 쓰며 이마에 있는 세번째 눈까지 부릅뜨며 소년을 쳐다봤어.

너 내가 인간이 아니란건 알지? 그런데 네가 나한테 뭘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해? 내가 너의 그 억지를 들어 줄거라는 헛된 기대를 하는 건 아니지?

힐데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오만하게 말했어.

하지만 그걸 본 윤은 표정변화 없이 그저 힐데의 팔에 대롱대롱 들린 동생을 받아들었어.

안오면 난 죽고 최아미는 천애고아가 되는거지

그리곤 별거 아니라는 듯 담담히 말했지.

그 모습에 되려 힐데가 당황스러워졌어.

아니... 진짜 11살 맞아? 애가 왜 이렇게 냉소적이야?

진짜 우리 쪽에서 태어났어야 할 영혼이 인간으로 잘못 태어난거 아냐...?

힐데는 소년이 아미를 다시 침대 위에 눕히고 이불을 꼼꼼히 덮어주는 걸 보며 결국 항복하듯 손을 들어올렸어.

알았다 알았어... 맨날 찾아오면 되잖아

어차피 할일도 많이 없겠다.

머릿속 한구석에서 요우가 개소리 말라며 왁왁 소리를 질러댔지만 힐데는 그걸 애써 무시하곤 소년에게 약속했어.

매일매일 어둠이 내리면 너를 찾아오겠다고.

소년은 그래라 하고 담담히 대답하며 아미 옆에 몸을 뉘였어.

그날, 힐데는 이불도 없이 여동생을 끌어안고 잠이 든 소년의 몸을 제 머리카락으로 덮어주었어. 그리고 자장가를 불러주었지.

많은 일을 겪은 소년이 좋은 꿈을 꾸길 바라면서.

소년, 윤은 침대 밑 괴물이면서 노래는 찬송가 같네 하며 끝까지 밉살맞은 소리를 했지만 힐데는 나는 어른이다... 하고 스스로를 타이르며 동이 트고 저를 허락한 어둠이 사라질때까지 그렇게 윤의 곁을 지켰어.

그리고 그 뒤로 꼬박꼬박 찾아왔지.

그러다 아미랑 안면을 트기도 했어.

와! 엄청 이쁘다! 천사같앙!!

아미는 밉살맞은 꼬맹이인 윤과 달리 아주 착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였지.

그리고 윤과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기도 했어.

그러고보니 몇년전에 원장실을 털... 아니 청소하다가

너 지금 원장실을 털었다고 했어?

아무튼 문 뒤에서 곰같은 남자를 본 적 있는데 그것도 네 동족이야?

응 맞아. 내 부하야. 이고르라고 해

식칼을 들이밀고 도둑이면 꺼지라고 했더니 혀를 차면서 사라지던데

너...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거야? 식칼?

나중에 사정을 알게된 요우가 왜 당신이 그딴 꼬맹이 말에 휘둘려 쓸데없는 짓을 하고 다니냐며 고래고래 잔소리를 늘어놓았지만...

어쨌든 힐데는 윤과 보내는 시간이 그리 나쁘지 않았어.

오히려 즐겁기까지 했지.

윤이랑 힐데는 은근 죽이 잘 맞았거든.

그렇게 하루하루 즐거운 시간이 흘러가고...

윤이 법적 성인이 되어 아미를 데리고 고아원을 나오는 날이 되었어.

어젯밤 윤은

이사할거니까 집 주소 헷갈리지 말고 잘 찾아와

하며 여전한 싹수를 보여주었지.

하여튼 걔도 한결같다니까.

......

이제 찾아오는 것도 마지막이네. 이제 못본다고 생각하니 좀 아쉽다.

밉살맞긴 했지만 좋은 애였는데.

그치만 나같은 괴물이랑 오래 엮이는 것도 안좋지. 어쨌든 윤은 인간이니까.

마지막에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서 힐데는 제 모습이 말끔한지 다시 한번 살핀 후에 윤의 기척을 따라 새로운 집의 침대 아래에서 몸을 꺼냈...

나와

응?

고개를 들이밀자 곧장 몸이 잡혀 힐데는 침대 밑 어둠속에서 끌려나오고 말았어.

그리고 푹신.

어라?

등 뒤에 푹신한 무언가가 닿았어.

윤? 이게 무슨...

힐데는 날개를 내리누르며 제 위에 올라탄 윤을 의아하게 올려다봤어. 윤은 그런 힐데를 보며 눈을 가늘게 휘며 웃었어.

오늘로 끝일 줄 알았나보지?

아니, 그런 약속이었으니까... 아니 근데 잠깐만! 손!! 야! 어딜 만져! 으악! 윤!! 손 안떼??!?!!!

근데 어쩌지. 난 끝낼 생각이 없는데

잠, 깐...! 으앗! 윤!!!!!

침대 밑에서 끌려나와... 침대 위로 근무처가 변경된 힐데...

윤과 이별을 하러 갔다가 제 순결과 이별을 하게 된 힐데는 그날 이후 충격을 받아 무저갱에 틀어박혔어.

윤은 물론 아미도 만나러 가지 않았지.

그렇게 1년, 2년...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

무저갱에서 부하들의 보고만 듣던 힐데는 가끔 윤이 생각났어.

잘 지내고는 있는지, 누굴 다치게 하지는 않았는지, 아미랑은 잘 지내는지... 누구랑 결혼은 했는지.

남의 순결을 가져가 놓고 결혼해서 애 낳고 잘 살고 있으면...

이 개자식이?

억울함이 불쑥 솟았지만 결국 자신은 괴물이고 윤은 인간임을 상기해냈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사실 윤이 성인이 될때까지 날 볼 수 있었던 것도 기적같은 거였으니까.

아무튼 만약 윤이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면...

윤의 아이...를 놀래킬때 겸사겸사 윤도 골려줄거라고 그렇게 소심하게 복수를 다짐하며 다시 구석에 쳐박혀 지내던 어느날.

책임지십시오!

무, 뭘?

당신이 9년간 돌보던 그 꼬맹이 말입니다!

요우가 서류를 내던지며 제 머리를 쥐어 뜯었어.

머리카락과 함께 나풀거리며 떨어지는 서류를 슬쩍 본 힐데의 두 눈이 크게 뜨였지.

아니 요즘 우리 실적 왜이래?

그게 다 당신이 애지중지하는 꼬맹이 때문이라고요!!!!

윤? 윤이 뭘 했길래? 뭐, 아이들을 다 죽이기라도 했어? 그럴 애는 아닌데...

내 앞에서 그놈 편 들지 마십시오!

아니 편든게 아니라...! 진짜 그렇게 나쁜애는 아니란 말이야...

힐데는 조심스레 서류 한장을 들어올렸어.

그리고 저도 모르게 이마의 세번째 눈까지 번쩍 뜨고 말았지.

소아정신의학과 의사 최윤...?

힐데의 입이 떡 벌어졌어.

소아과의사? 윤이? 그 윤이?

왜????????

그 놈이 우리 담당 어린애들을 환자로 끌어모아 일을 훼방놓고 있단 말입니다!

아니... 걔가 뭘 어떻게 훼방을 놓는데...

침대 아래에 cctv를 설치해 아무것도 없는 화면을 보여주며, 누군가 네 팔을 잡았다고 느끼는 건 어딘가에서 새어들어오는 바람에 의해 옷자락이 휘감겼기 때문이다... 이런식으로 설명해서 애들의 동심을 파괴하고 다닌다고요!!!

힐데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어.

아니 그치... 실제로 우리가 애들의 몸을 잡아도 우리는 영상에는 안찍히니까...

그렇게 되니 저 애들 집에 부하들은 들어가지도 못하고... 더이상 놀래키지 못하니 애들은 무섭단 소리도 안하고!! 그러니까 부모들한테 용한 의사라고 소문이나서 이젠 전국 각지에서 저놈한테 애들이 몰려가서 지금 우리가 아주 엿되고 있다고요!!!

애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믿지 않으면 그 영역에는 아무리 어둠이 있다한들 접근할 수 없다는 규칙이 있었으니. 요우가 아무리 용을 써도 별다른 수가 없었으리라.

이러다간 당신이 상상 속 친구 부서 대장과 키가 크는 꿈 부서 부장한테 두고두고 놀림감이 될겁니다!

아니 뭘 또 그렇게까지... 카일이랑 레이는 내 친구라 그런 걸로 놀리지는...

...아니야. 놀리겠다. 백퍼 놀릴듯.

아무튼 당장 저놈한테 가서 이 상황을 해결하고 오십쇼

아니 내가 가서 뭘 어쩌라고

가서 하지 말라고 혼을 내든! 죽이든! 끝장을 보고 오란 말입니다!

그렇게 힐데는 요우의 닥달을 못이겨 윤을 만나러 가기로 했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미적거리며 7년만에 윤의 침대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냈...

덥석.

아니 또 이거냐!

힐데는 데자뷰처럼 몸이 잡힌 채 쑥 끌려가고 말았어.

등뒤로 닿는 푹신함.

힐데는 차마 앞에 선 윤을 마주볼 자신이 없어 눈을 필사적으로 옆으로 굴리며 말했어.

어, 그, 오랜만ㅇ...

오랜만?

제 말을 따라 읊조리는 목소리가 전과 달리 아주 낮고 음산했어.

이래서 부하들이 무서워했구나, 이해할 수 있을정도로 섬뜩했지.

힐데는 눈을 질끈 감았어.

아니 왤케 무섭냐... 아니 내가 괴물이고 윤이 인간인데... 왜 괴물인 내가 겁에 질리는 거냐고...

그렇게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으니 윤이 억세게 날개를 누르던 손 하나를 떼어내 턱을 쥐어왔어.

눈 떠

무서워서 못뜨겠다고...!!

힐데는 속으로 그렇게 외치며 턱이 잡힌채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어.

아, 내 얼굴은 이제 보기도 싫으시다?

쉭쉭거리는 소리로 내뱉는 윤의 말에 힐데는 그건 아니라고 부정하려기 위해 슬쩍 눈을 가늘게 떴어.

읍....!?!!?

그 순간 제 입술을 덮어오는...

이런 미친!

힐데가 눈을 부릅 떴어.

아, 읍! 유, 윤!! 자, 잠...!

입술을 가르고 파고든 혀가 한참동안이나 입안을 휘젖고 다녔어. 입안이 뜨거운 타액으로 가득 차 힐데가 목을 꿀꺽 울릴때 쯤에야 윤은 입술을 떼어냈어.

힐데는 곧장 손으로 입을 가렸지.

이게, 이게 무슨, 이게?????

당황한 금빛 눈을 마주보며 윤이 길게 웃었어.

힐데베르트 탈레브

???!?!?!!?!?

어?

힐데의 세 눈이 크게 뜨였어.

너희는 진명을 부르는 자가 있으면 무조건 소원을 들어줘야 한다며?

그걸... 어떻게...?

그래, 힐데를 비롯한 모든 무저갱의 존재들은 진명을 부르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소원을 이루어주는 계약을 해야 했어. 진명은 그들의 약점이었거든.

진명이 적힌 종이를 태우면 진명의 주인도 상처를 입입고, 진명을 부르며 명령하면 반드시 따를 수밖에 없었지.

그래서 자신의 진명을 부르는 자가 있으면 대가로 상대의 소원 한가지를 들어주며 제 진명에 대한 기억을 받아오는 거였어.

무저갱의 왕이 왜 이런 규칙을 정한 건 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래서 힐데는 그 긴 시간을 함께하면서도 윤과 아미에게 제 진명을 말해준 적이 없었어.

그런데... 어떻게?

내가 널 찾겠다고 어딜 얼마나 뒤졌는지 넌 모를거야

윤은 놀라 파르르 떨리는 눈가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속삭였어. 눈빛과 목소리 간의 괴리감에 힐데는 몸에 소름이 돋는것 같았어. 실제로 돋을리는 없다만.

힐데베르트 탈레브

윤이 다시 한번 제 이름을 부르자 힐데가 몸을 덜덜 떨었어.

제 앞에서 바들거리는 가련한 괴물을 보며, 윤이 소원을 빌었어.

넌 평생 내거야. 내 영혼과 네 영혼이 바스러져 사라질때까지. 영원히

아름다운 금빛 눈이 눈꺼풀 너머로 사라지고, 곧 깊은 한숨이 새어나왔어.

그리고 윤은 제 몸속 어딘가에서부터 눈앞의 아름다운 괴물이 제것이 되었음을 느끼며 만족스럽게 웃었어.

아니 너 진짜... 어쩌려고 그래! 나같은 괴물이랑 평생이라니... 그것도 영혼을 걸어서...!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이게 내가 네 것이 된 것 같지만 사실상 니가 내거가 된거거든? 일단 내가 영혼의 격이 높아서 니 영혼이 나한테 종속된거라고! 진명을 건 계약이라 나도 못돌이킨단 말이야...

아주 좋은데?

윤!!!!!

그리고...

윤을 처리하고 오랬더니 제 인생을 처리하고 온 힐데를 보며 요우가 없는 혈압이 올라 졸도하고, 실적 떨어진 거 비웃으러 왔던 카일과 레이가 분노를 터트리는 일이 있긴 했지만 윤과 힐데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어.

윤의 말대로 서로의 영혼이 사그라들어 심연 저편에 묻히게 되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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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코딩하는 앵무새

    이 글 너무 좋아서 생각날 때마다 계속 읽고 있어요🥹

  • 움직이는 나무늘보

    세상에 너무 달달하고 좋습니다 7년 존버는 성공했다^^9ㅋㅋㅋㅋ

  • 퇴근하는 쿼카

    아ㅠㅠㅠ 만나자마자 당연하게 요구(?)하는 꼬마최윤 너무 귀여워요 성인되자마자 힐데를 침대로 던져버려ㅋㅋㅋ 힐데 사라지니까 소아과의사 돼서 괴물들 훼방 놓는다니 진짜 맛있다 '키가 크는 꿈' 부서부장 레이...ㅠㅠㅠㅠ 윤을 처리하고 오랬더니 제 인생을 처리하고 온 <<아 너무 웃갸요 요우가 고생이 많다 ㅋㅋㅋ 인외힐데 너무 좋아요 재밌게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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