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그리운 낯

* 블랙배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블배 첫 연성이라 세계관이나 개연성에 안 맞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 only 망상 날조 뿐.

사실 단 한 번도 그려보지 않았다면 거짓이었다. 가끔은 레이의 꿈을 꾸었고, 가끔은 카일의 꿈도 꾸었으며, 또 가끔은 키시스의 꿈을 꾸기도 했다. 자신은 그 꿈에서조차 매번 그를 붙들지 못하고 홀로 떨어졌다. 키시스! 늘 비명처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깨어났다. 되짚어보면, 그건 꿈이라기보단 단순히 기억을 몇 번이고 되감는 것에 가까운 것 같았다. 힐데에겐 결코 달갑지 않을 일이였겠지만. 식은땀과 눈물로 흠뻑 젖어든 얼굴을 가리고 빌빌대다가, 결국 더 잠들지도 못한 채로 이불 속으로 몸을 웅크렸다. 그런 나날들이었다. 그런 나날들 속에서, 당신이, 돌아와주면, 좋겠다, …… 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그가 돌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또한 있었다. 입술을 우물대다 속으로 말을 뱉었다. 키시스, 제가 다 망쳤어요. 잘할 거라고 믿어주셨는데, 전 잘해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원망이 두려워요. 그 자안에 얼음보다 차가운 온도를 품은 채로 네가 다 망쳤다는 말이라도 나오는 날엔, 자신은 완벽하게, 철저하고 처절하게, 무너질 게 뻔했으므로. 그러니, 만난다면, 이 모든 일을 마무리 지은 이후이길 바랬다. 나는 아직 무너지면 안 돼. 아직은, …… 아직은, 그럴 수 없어. 그렇게 중얼거리며 이불을 머리 끝까지 확 뒤집어 썼다.

중요한 임무가 코 앞인지라 컨디션 조절을 해야한다는 원대한 계획은 전날의 꿈으로 인해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물론, 이제와서 그 어떤 악몽을 꾼다고 한들 몇 살배기 아이처럼 이불 속에 몸을 웅크린 채 두려움에 떨 나이는 아니였다. …… 차라리 악몽이였다면 더 나았을지도 몰랐다. 매번 놓치고 말았던 그의 손이, 그의 이름을 부르며 처절하게 뻗어오는 자신의 손과 덥석 겹쳤다. 그게, 기이하리만큼, 너무나 생생해서, 잠에서 깨고 나서도 제 손을 내려보며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초인종 소리와 함께 힐데! 일어났어?! 하고 외치는 목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자신이 몇 시간이나 멍하게 앉아 손만 내려다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할 정도였으니까.

작전 회의를 진행하는 중에도 중간중간 정신을 놨다. 멀쩡히 쥐고 있던 보드 마커를 몇 번이나 떨어트렸고, 말을 몇 번이나 멈췄으며, 손에 쥐고 있던 종이를 거꾸로 읽고 있기까지 했다. 명백한 이상신호를 알리는 일련의 행동에 잠시 회의가 중단되기까지 했다. 가늘어지는 시선들 속에 뒷목을 매만지며 멋쩍게 웃었다. 죄송합니다, 10분만 쉬었다가 할까요. 제 말에 반대하는 이들은 없었다. 느리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자 아미가 제일 먼저 옆으로 다가왔다.

“힐데, 어디 아파?”

“아뇨, 아뇨. 아닙니다.”

“정말 아니야~?”

제 대답에도 두 선임은 영 미심쩍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억울하네. 진짠데……. 리카르도는 핸드폰을 몇 번 훑더니 최근에 위험할만한 임무는 없었던 것 같은데……. 하고 중얼거렸다. 그럼에도 의심이 가시지 않는 얼굴이였지만. 여기서 '사실 이상한 꿈을 꿔서 신경쓰입니다.' 같은 말을 꺼낼 생각은 없었으므로 그저 희미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려던 그 순간이었다.

위잉, 위잉, 위잉.

[소집명령. 대기조 및 가용 전력 포탈존으로 출동 요망.]

이런, 긴급 호출이다. 회의는 당연하게도 파했고, 후에 일정을 다시 잡아야할 것 같다는 추상적인 약속을 한 후에야 급히 포탈존으로 향했다. 모인 인원은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가벼운 상황 설명이 이어졌다. 코어 밖, 멀지 않은 구역에 뒤틀린, 그러니까 새로운 포탈이 열렸는데, 그곳에서 인간형 크리쳐로 추정되는 것이 단일 개체로 튀어나왔다던가. 이야기를 들으며 그 크리쳐가 나왔다던 구역으로 감각을 집중했다. 카일의 짓인가? 그렇다기엔 너무…….

“아.”

일순 숨이 멎었다. 제 얕은 소리를 잘도 캐치해낸 이들이 자신을 바라보았다. 표정 관리가 되질 않았다. 모든 소리들이 먹먹하게 울리고, 제 팔을 잡아오는 손길조차 멀게 느껴졌다. 그럴리가. …… 그럴리가 없는, 데? 멍한 얼굴로 얼마나 서있었는지 모르겠다. 리카르도가 얼굴을 찌푸리며 너 그냥 쳐박혀있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같은 말을 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자신의 몸이 더 빨랐다. 카운트 다운이 0을 가리키는 찰나, 거의 튀어나갔다고 해도 무방할 속도로 포탈로 뛰어들었으니까. 뒤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렸으나 대답할 정신 따위가 남아있지 않았다. 울렁이는 포탈의 감각을 느끼다가, 턱, 발을 바닥에 디뎠다. 다시 감각을 더듬었다. 잘못 읽은 게 아니였다. 이 선명한 존재감. 결코 잘못 읽을래야 잘못 읽을 수 없는, ……. 숨이 가빴다. 비틀비틀, 그 감각에만 의존하듯 걸음을 옮겼다. 뒤늦게 따라들어온 이들이 제 팔을 억세게 쥐고 앞을 막아서는 것이 느껴졌다.

“괜찮아요, 저 괜찮습니다. 잠시만요.”

“힐데! 진정 좀 해봐. 너 지금, 얼굴 너무 안 좋아보여!”

“제발, 제발요. 저, 저, 잠깐이면 돼요.”

“잠깐이고 나발이고, 너 지금 네 얼굴이 어떤지 알기나 해? 그냥 쳐박혀 있으라니까, 이 새끼가.”

아, …… 가깝다. 상대 역시 제 존재감을 잡아챈 듯이, 간격이 차츰차츰 좁아지고 있었다. 그래서, 더 발을 딛지도 못하고 멈춰선 채로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이젠 인간들도 보일만한 거리. 거기에 서있는 이의 모습이 보였다. 흩날리는 백금발, 흐트러지는 머리카락 사이에서도 존재감을 발하는, 선명한 자안. 그의 접근에 선임들이 바짝 긴장하는 공기가 느껴졌다. 숨을 헐떡이며 저를 붙든 손길을 밀어냈다. 당황한 기색이 느껴졌으나 그걸 살필 겨를이 없었다. 목구멍이 틀어막힌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공격, 공격하지 마세요! 잠시만, 잠, 으, 잠시만…….”

자신은 이제 울고 있었다. 선임들은 비틀거리며 뛰어나가는 자신을 붙잡지 않았다. 고맙게도. 몇 번이고 앞으로 고꾸라질뻔한 위기를 넘겼으나, 그의 가까워진 얼굴이 눈 안에 선명히 새겨지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바닥으로 쳐박히기 전, 자신을 재빠르게 붙든 팔에 추한 꼴은 면할 수 있었다. 따듯한 온기, 희미한 탄내, 가만히 내뱉는 숨소리.

⌜힐데베르트, 아직도 햇병아리에서 벗어나질 못한 것 같은데……. 이런 어설픈 실수를 하고.⌟

익숙한 제국어와, 웃음기가 서린 익숙한, …… 목소리. 덜덜 떨리는 고개를 간신히 들었다. 자안이 부드럽게 휘었다. 그때와 같은 웃음. 망막 안쪽에 화상 흉터처럼 들러붙어 결코 잊혀지지 않았던, 그, 웃음이다. 멍하게 그것을 마주하다가, 그의 이름대신 울음이 먼저 터트렸다. 제 뒤를 따라온 이들이 하나 둘 걸음을 멈추는 것이 느껴졌으나 멈출 수가 없었다. 처절한 울음 속에 섞여 내뱉어지는 것은 원망이던가, 그리움이던가, 괴로움이던가, 죄책감이였던가, …… 그 전부였던가. 그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로, 아주 오래 울었다.

한바탕의 눈물 바람 이후에 남는 게 무엇일까. 지독한 쪽팔림이다. 게다가 너무 우는 바람에 가물가물 정신을 놔버리기까지 했다면? …… 솔직히 이대로 혀라도 깨물고 도로 기절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제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이는 이미 자신이 깨어난 것을 알고 있을 터였다. 어설픈 연기를 하는 대신 느리게 눈꺼풀을 말아올렸다. 퉁퉁 부은 건지 눈이 다 떠지지도 않았다. 팔짱을 낀 채 자신을 내려다보던 눈동자와 마주쳤다. 그것을 오래보지 못하고 눈을 굴리니, 작은 병실 같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선임은 보이지 않았다. 보고하러 간걸까.

⌜이곳엔 제국과 다른 언어를 쓰는 것 같아서 조금 애먹었지만, 별 다른 충돌은 없었어.⌟

네가 냅다 기절하는 바람에. …… 뒷말은 굳이 해주지 않아도 됐을텐데. 듣기론 자신이 금방 정신을 놓을 듯이 울어대며 발작한 탓에 그들 사이에 팽팽히 흐르던 긴장감이 흐지부지 된 모양이었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자신의 반응으로 제 눈앞의 인물이 예사 인물이 아닌 걸 눈치챘을수도 있었다. 그들은 그런 이들이였으니까. 팔짱을 낀 채 손가락으로 팔을 톡톡 두드리던 키시스가 마저 말을 이었다.

⌜몸이 가벼워졌던데. 못 먹고 다녀?⌟

다소 뜬금없는 물음이였던지라 곧장 대답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어물거리다 그의 자안을 마주친 후에야 급히 대답이 튀어나왔다.

⌜아뇨, 그렇지는, …… 저 가벼워졌습니까?⌟

…… 요새도 잘 먹었는데. 왜지. 몇 번 눈을 깜빡이다가 문득, 더욱 근본적인 의문이 솟았다. 입을 달싹이다 그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근데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고 계시는 겁니까.⌟

제 물음에 그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이런 와중에 그런 의문을 가진 것이 퍽 우습기라도 했던 모양이지. 좀 궁금해할 수도 있지, 하고 생각했으나 이어진 대답에 그 의문을 뱉은 것을 후회했다.

⌜전에 매실주 먹고 취해서 정신 못차리던 걸 누가 옮겼을 거라고 생각해?⌟

⌜아니, 그, 예……. 면목 없습니다.⌟

아니 대체 언제적 이야기지? 게다가 이 인간이 왜 그걸 기억하고 있어? 하지만 구태여 묻지 않는 쪽을 택했다. 물어봤다가 기억도 못하는 흑역사가 그의 입에서 술술 터져나올 것 같았으므로. 그런 판단 아래 입술을 꾹 다물다가 병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시선이 절로 돌아갔다. 동그란 눈동자와 마주치자마자 금세 가까워졌다.

“힐데!”

“정신이 좀 들어~?”

“하여간, 너도 너다.”

차례로 이어진 말들에 머쓱하게 웃음을 흘렸다. 죄송합니다……. 작게 사과를 뱉어내자 어느새 키시스의 시선이 선임들에게 옮겨간 것이 보였다. 선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무리 사이에서 시선을 이리저리 옮겼다. 먼저 입을 뗀 건 키시스였다.

⌜듣고 싶은 얘기가 꽤 많아, 힐데.⌟

⌜…… 전부 보고 드리겠습니다.⌟

잠깐의 정적을 틈타 윤이 먼저 입을 떼었다.

“보고 차 연락은 넣어뒀다. 일단은 함께 복귀하라던데.”

“옙.”

그게 끝이였다. 당장에 선임들은 뭔가 더 캐물을 생각은 없어보였다. 아니, 정확히는 캐묻고 싶은데 참는 것 같았다. 평소라면 이것저것 물었을텐데. 왜지. …… 내가 그렇게 대차게 울어서 그런건가. 다시금 몰려오는 쪽팔림에 손바닥으로 얼굴을 북북 쓸어내렸다.

돌아가면, 하고 싶은 이야기도, …… 그에 따른 원망을 들을 준비도, 단단히 해둬야겠다고 생각했다.

키시스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그를 코어 안으로 들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였다. 키시스는 코어 안으로 발을 들이며 자안을 조금 동그랗게 떠냈다. 그 모습이, 지구에 처음 발을 디딘 후, 이곳을 본격적으로 탐험하기 시작했던 그때의 제 모습과 똑 닮아있어 웃음이 났다. 그의 자안이 금세 자신에게 와닿았다.

⌜왜?⌟

⌜그냥요. 신기한 게 많지 않습니까? 저도 여기 처음 오고나서 감탄했습니다.⌟

그는 속 모를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다 픽, 웃었다. 알만하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자기도 신기해 했으면서. 여기저기 더 구경시켜주고 싶은 마음은 있었으나 지금은 본부 쪽이 먼저였다. 선임들과 함께 본부로 향하며 그곳에 대한 설명을 열심히 덧붙였다. 크리처에 대한 이야기는 필연적이였으니 그에 대한 이야기도 꺼낼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물음대신 그저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질문을 해가며 흐름을 끊는 대신, 자신이 다 설명을 하기로 하였으니, 그때 한 번에 물으려는 생각인 듯 싶었다. 새삼 그것을 자각하자 입안이 썼다.

수뇌부와 키시스의 만남은 그리 길진 않았다. 자신은 얼결에 통역사로서 동행했다. 그는 그걸 놀려먹을 생각이였는지, '내 햇병아리가 신세를 졌다'는 둥의 말을 통역할 땐 꽤나 고역이였지만. 그걸 더듬거리며 고스란히 변역했을 때 예현은 애써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했으나 표정이 미묘해지는 건 막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 대부로서의 체면이 말이 아니군. 아무튼. 그가 당장은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며, 대외적으로 활동하여 알려지던 타이탄은 아니였기 때문에 그 이후의 계획이 세워질 때까지, 그에 대한 관리는 자신에게 넘어왔다.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그에게 해야할 말도 무척이나 많았으므로. 그게 예현 나름의 배려였던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나가기 전 눈짓으로 짤막한 감사를 표했다. 그의 검은 눈동자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이런 곳에서 지내나?⌟

제 스윗 홈으로 들어서자마자 그가 내뱉은 반응이었다. 정말 순수한 궁금증인 건지 가늠하다가, 조금은 퉁명스레 뱉었다.

⌜이런 곳이 어떤 곳입니까?⌟

그는 대답 대신 어깨만 으쓱였다. 조금은 좁긴 하지만, 혼자 살기엔 더할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물론, 동족들을 만난 이래로 자주 좁다고 느끼긴 했지만……. 그는 수뇌부의 배려로 입고 있던 것 대신 적당히 입기 좋은 사복으로 갈아입은 채였다. 집안을 두리번 거리던 그는 빈백으로 가 풀썩 앉았다. 처음보는 것임에도 거기가 앉을 자리라는 걸 잘 캐치해냈다. 자신은 자연스레 그의 앞으로 가 무릎을 꿇은 채 앉았다. 잠깐의 정적이 이어졌다. 이제 정말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시간이 닥쳐왔음을 알았다.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하는 거지? 새삼 아득하다.

⌜…… 어디서부터 말씀을 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너희가 이곳에 발을 디뎠을 때부터.⌟

힐데베르트는 꽤 먼 기억을 애써 더듬었다. 가벼운 충돌, 그리고 자신이 건넨 거래. 그 첫 기억부터.

⌜…… 그래서, 예, …… 결국, 이 지경까지, 왔습니다.⌟

애써 숨을 가다듬었다. 아담의 이야기부턴 그의 눈을 마주지 못했고, 첫 전쟁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부터 호흡이 차츰 흐트러지기 시작했으며, 레이의 이야기를 꺼냈을 즈음엔 날카로운 이명까지 들릴 지경이었다. 흐트러진 호흡이 괴로워 달달 떨면서도 말을 겨우 끝맺었다. 그의 진한 자안이 자신을 꿰뚫듯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뺨을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그가 무어라 말하지도 않았는데, 도저히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숙여져 있던 고개가 더더욱 아래로 떨궈졌다. 거의 엎드린 모양새였다.

⌜죄송, 합, 죄송합니다, 키시스. 전, 결코 좋은, 우두머리가, 아니, 였어요. 당신의, 부탁을, 저는, …….⌟

제 위로 그림자가 졌다. 언제 다가온 것인지 그가 제 어깨를 붙들고 몸을 세우도록 만들었다. 몸을 세웠는데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진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의 차가운 눈동자를 마주하면 정말 무너질 것 같았다.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식은땀을 닦아낼 생각도, 흐트러진 호흡을 진정시키기 위해 입을 틀어막지도 못한 채 중얼중얼 댔다. 그런 제 입을 그의 거친 손바닥이 꾹 틀어막았다.

⌜힐데베르트, 눈 들고 나 봐.⌟

⌜…….⌟

지독한 두려움보단 그의 명령이 먼저였다. 떨리는 눈동자가 그를 마주했다. 코로 색색 숨을 내쉬며, 그의 눈동자에 담겨있을 차가움을 찾기 위해 훑어내렸다. 없다. 없었다. 자신을 향한 실망도, 차가움도, 그 무엇하나 찾을수가 없었다. 그는 오히려 희미한 죄책감을 담고 있었다. …… 왜? 당신이 왜 그런 눈을 하는 거지? 그는 그저 가만히 자신을 자라보다가, 제 호흡이 안정을 찾기 시작할 즈음 입을 열었다.

⌜고생했다. 잘 해줬어.⌟

속삭이듯 뱉어진 말에 시야가 흐릿해졌다. 일렁이는 시야에 눈을 깜빡이니 방울진 것이 툭툭 떨어졌다. 그가 손을 떼자 왈칵 울음이 쏟아졌다. 그는 묵묵히 제 앞에 앉은 채 자리를 지켰다. 토닥여주지도 않았지만, 그만 울라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자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재회 이후, 두 번째로 터트리는 울음 역시 아주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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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 real 병아리처럼 키시스 졸졸 따라다니고 의지하는 힐데 보면서 미묘하게 질투하는 기분을 느끼는 선임들과 예현 보고 싶다. 누군가 써주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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