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무테] 愛 이야기
이 이야기의 장르는 로맨스가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정의한다.
하늘이 어둑하다. 마치 폭풍우가 오기 직전의 하늘처럼. 짙은 먹구름이 하늘을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그 아래의 사람들은 하늘이 어떠한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얼굴에 다양한 색채를 머금고 즐겁게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
아- 그런 사람들을 관찰하는 '나' 역시 그들과 동일하게 하늘에서 얼음이 떨어지든 물이 떨어지든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밖으로 나온 것이지 아니냐고 질문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나는 부정의 답을 그대에게 내려주지.
그러니까- 왜 이런 날씨임에도 밖으로 나왔어야만 했는가- 아직 나에겐 장식해야 할 이야기들이 있음에도. 왜 나는 옥빛으로 빛나는 만년필을 손에서 내려놓고, 잡담이라도 적히길 바라는 백지의 종이를 내버려두고. 이 어둑한 하늘 아래에서 관심도 없는 사람들의 얼굴을 구경하고 있어야 하는가-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풀자면, 어쩌면 긴 서사시가 될 수도 있고 짧은 단편의 소설이 될 수도 있다. 그대가 어느쪽을 바라고 있는지, 독자의 의견을 물어보지 않고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나 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그래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나는 나의 안락한 공간에서 공동생활이라는 것을 하고 있는 【생물】과 조금의 다툼하고 밖으로 나와버렸다-그래. 이 어둑한 하늘에 감정적인 부분만 중시해 버리고 하늘에서 떨어질 물질(물론 아직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지진 않았다)을 막을만한 물건 하나를 들고 나오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래,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나와 그의 난투극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스릴러 소설이 될 수도 있다. 음- 길게 봐서 공포 이야기가 되어도 재미있겠군. 어느 이야기를 정의할 때, 한가지의 장르만을 내려다 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야기를 창조한 【작가】가 설정한 장르가 존재한다고 해도, 이야기를 읽는 이에 따라 이야기의 어느 부분을 중심으로 둘지는 다르게 생각하니까- 물론 독자가 다른 곳으로 세지 않게 길을 제대로 만들어두는 것이 작가의 일이지만- 사람의 생각을 함부로 조종하는 것은 참으로, 시시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는 독자가 이야기를 읽고 그 이야기를 어떻게 정의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었으면 한다.
... 그래도 한가지는 말해두지. 분명 나는 아무리 읽는 자에 따라 이야기의 장르가 다양하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결코 로맨스가 될 수 없다. 물론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로맨스로 만들고 싶어 하는 억지력 같은 게 존재한다고 나는 느끼고 있지만, 나는 결코 이 이야기를 로맨스로 만들 생각이 없다. 그래. 결코.
그래-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그와의 첫 만남? 혹은 공동생활이란 것을 하게 된 계기. 어느 쪽이든 이야기가 길어질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그 모든 것을 생략하고 오늘의 이야기만 진행하고자 한다.
그러니까- 오늘은 평소와 같은 날이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새하얀 종이 안에 작은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는 그 작업을 꽤나 좋아하던 편이었고, 오늘도 다양한 색채로 장식된 세계가 만들어지던 참이었다. 아니, 아니지. 만들 예정이었다. 그것이 나를 방해하지 않았다면 말이지.
내가 흰 종이에 세상을 만들고 있으면, 그는 종종 내 옆으로 와, 공놀이를 하고 싶어 하는 작은 짐승처럼- 혹은 인형 놀이를 하자고 떼를 쓰는 어린아이처럼- 옆에서 시끄럽게 나를 부르곤 한다. 물론 나는 그런 상태인 그의 말을, 귀를 기울이면서 듣는 편이 아니기에 그때마다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기억하고 있지 않다. 기억나는 거라곤, 「무테이-!!」 ... 나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 그것뿐이군.
이것은 언제나 같은 일이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지. 오늘은 조용히 내 옆에 앉아, 밤하늘과 같은 눈동자로 그저 조용히 나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은- 어쩌면 평소 그의 목소리보다 시끄럽다고 느껴졌다. 【음】을 이루지 않는 시선이 시끄럽게 느껴질 수 있는가- 그것에 의문을 품은 사람도 있을 수 있지. 하지만 이건 겪어보면 알게 된다. 고요하고 새까만, 밤하늘 같으면서도 저 하늘 없이 펼쳐진 【우주】라는 공간과 같은 그 눈동자가 전달하는 그 시선은, 무척이나 시끄러워서- 평소와 같이 무시하기 힘들어서, 손에 쥐고 있던 옥빛의 만년필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시끄러운 눈동자를 주시했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러고 있지?"
나의 시선이 자신에게 꽂혔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은 그는, 그의 눈매가 휘어진다. 그 모습은 마치 베아트리체를 만난 단테와 같은- 그래 그것은 분명 사랑에 빠진-
... 아 지금의 묘사는 잊어주게. 방금의 표현은- 그래. 나도 모르게. 글을 적을 때의 버릇으로 나온 표현일 뿐, 현실은 그렇지 않았어. 그래.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친구가 자신을 바라봤다는 것에 행복함을 느끼는, 그런 눈이었지. 묘사의 이야기는 그만하고, 이야기를 이어나가지.
그래, 내가 그렇게 말을 거니 그는 평소답지 않게 조금 고민하는 듯했어.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그래 마치 무언가 사소한 실수를 저지른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변명하기 위해 뜸을 들이듯이 말이야. 적어도 내 눈엔 그렇게 보였기에 나는 바로 그에게 추궁했지. 이번엔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이지? 라고 말이야. 그러자 그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웃음을 머금었지.
"무슨 일이라니- 이번엔 그런 일이 아니라네! 굳이 따지면 지금부터 저지를 생각이지."
그래, 그것은 확실히 처음 보는 루틴이었어. 여태 사건을 저지르기 전에 사고 칠게요. 라고, 말하는 경우는 없었으니까, 뭐 당연한가. 먼저 사고 친다고 말하는 행위는 확실한 고의성이니까, 만약 그런 적이 있었으면 나는 진작에 그와 연을 끊어버렸을지도 몰라. 매정하다고? 자네도 알지 않은가, 그가 저지르는 사건·사고들은 가끔은 책임지기도 힘들고 뒷수습하기도 귀찮아. 그 행위들이 고의가 아니라는 사실은 언제나 나를 놀라게 하지.
... 지금은 이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군. 하여튼 그가 사고를 예고 했으니 나는 그 사고가 무엇일지 물어보는 게 알맞은 순서라 생각해 그에게 무슨 일을 저지를 것인지 물어봤지.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같은 대답이 아니라 눈동자였어. 그는 내 눈을 똑바로 주시했어, 그 끝 없이 깊은 【우주】와도 같은 눈동자가. 나는 그 눈동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감각을 느끼고, 나에게 익숙하고 편하게 만드는 백지의 원고지로 눈을 돌려버렸지. 나는 아마... 그 눈이 부담스럽다 느낀 걸 꺼야.
하지만, 내가 무얼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 신경도 안 쓰는, 그 섬세함이 하나도 없는 그는 책상 위에 올라와져 있는 내 손등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어. 갑작스러운 접촉에 나는 조금 놀랐을 거야 나도 모르게 손을 움츠렸으니까. 그도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웃는 소리가 들렸어. 나는 여전히 시선을 원고지로 돌렸기 때문에 그때 그의 표정이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장난에 성공한 어린아이 같은 신이 난, 순수한 표정이었을 거라고- 원고지 안에 그의 모습을 묘사하는 상상을 하고 있을 무렵 목소리가 들렸어.
"무테이- 난 역시 자네를 좋아하나 보네-"
그 목소리는 평소 같은, 시끄럽고 정신 사납고 커다란 음이 아닌. 고요한 호수와도 같은 목소리였어. 분명 내가 싫어하는 그런 불협화음 같은 그런 목소리가 아니었어. 그럼에도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다양한 감정이 휘몰아치기 시작했지. 갑작스러운 말에 놀라움도 있었고, 왜인지 모르게 짜증이 올라오기도 했어. 그렇게 다양한 감정이 동시에 발생하는 경험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지. 그때의 감각을 표현하자면- 그래 뒤엉킨 실을 보는 것과 같았어.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날카로운 목소리가 나와버렸을지도 모르겠군.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우츠기."
그래, 평소에 부르지 않은 그의 성으로 그를 불러버렸지. 정말 다시 생각해도, 나답지 않은 대답이었어.
"하하! 나는 내 진심을 자네에게 표현한 거네- 아 근데 내가 실언했군. 나는 그대를 좋아하는 게 아니야. 아- 그래 이 감정은 분명 사랑 아- 그런 거야, 나는 자네를 사랑하는 거였어-"
하하- 지금 다시 생각해도 폭풍 같은 발언이군. 그의 단어, 문장, 표현. 그 모든 것이 난잡했고 어지러웠어. 그럼에도 그의 말은 끝나지 않으니, 그보다 최악이 아닐 수가 없었지.
"아아- 무테이 나의 사랑를 받아주지 않겠나?"
뭐라는 거야...
아, 너무 어지러운 나머지 머리 속으로 해야 할 말이 입 밖으로 나와버렸군.
"지금 한 말 그대로- 무테이 받아주지 않겠어?"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래. 근본적으로 내가 그의 사랑을 받을 이유가 없을뿐더러 의무도 없다. 그러니 내가 그의 제안을 거부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우면서 당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내가 자네를 사랑하니까-"
말이 안 통하는군.
사실 알고 있다. 언제나 이래왔다는 것을. 나와 그는 다르다. 그것도 많은 부분이.
나는 큰 소리를 싫어한다. 오히려 조용한- 사람이 한적한 장소에 혼자 세계를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만든 세계의 잡담을 들으며, 그들을 구경하고 세계를 장식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는 그런 조용한 것보단 사람이 많고 화려한 파티 같은 장소를 좋아하지. 분명 그럴 터인데 이상할 정도로 그는 나에게 집착하는 구석이 있다. 그러니까-
"아- 걱정하지 말게나! 자네가 받고 싶지 않는다 해도 나는 여전히 자네를 사랑할 테니까!"
지금처럼. 정말... 나와 그는 "불협화음이야.".
그 뒤로 내가 무얼 했고, 그가 무엇을 말했는지에 대해선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가 나에게 사랑을 말할수록 나는 눈앞이 핑핑 도는 감각을 느꼈다. 점점 그의 목소리가 커지지만 그의 언어가 귀로 들어오지 않았다. 애초에 내 안에 확립되지도 않은, 확립시킬 수 없는 그것을. 내 안으로 포함시키고 싶지 않는다. 나는 지금을 【완벽】하다고 생각했기에, 그것을 굳이 내 안으로 밀어 넣어 이 【완벽】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인가-
"자네하곤 대화가 안 통하는군!"
의자 끄는 소리가 들렸다. 감정적인- 큰 소리를 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쿵 하는 책상을 손으로 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모든 것들은 내가 싫어하는 소리들이며, 내가 낸 소리들이었다. 이렇게 불쾌할 수가 있는가.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 하늘을 보며 비가 올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머리가 잘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우츠기 란기리와 떨어지고 싶다. 그 하나의 문장이 머릿속을 지배할 뿐. 그래서 먹구름이 낀 하늘을 알면서도 언제 내릴지 모를 비를 생각하지 않고 맨손으로 밖으로 나와버렸지. 그리고 너를 만났을까- 그러니까,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오늘의 장거리를 고르고 있는 너를 말이야. 루메르트.
그래서, 오늘의 이야기를 향한 너의 감상은 어떻지?
"그래서 넌 우츠기를 어떻게 하고 싶은거지?"
먹구름으로 가려진 하늘은 어느새 붉은 노을이 그을리기 시작한다. 슬슬 자신의 안락한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밴치에 앉아있는 장신의 남자 둘. 머리를 깔끔하게 넘긴, 귀에는 기다란 귀고리를 한 금발의 남성과 에어체룽그 내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녹색의 하오리를 걸친, 연한 갈색 단발머리의 한 동양인 남성. 루메르트 오토마이어와 하라다 무테이는 오직 앞만을 주시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어떻게 하고 싶냐니, 무로 되돌리고 싶어."
차라리 그와의 관계가 무였다면 자신은 감정적으로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을 테고, 오늘 같은 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밖으로 나와 시간을 허투로 낭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언제나처럼 따듯한 보금자리에서 자신만의 작은 세계를 만들고, 그리고-
"하라다. 넌 도망치고 싶은 거로군"
도망. 하라다 무테이는 그 단어를 조용히 곱씹는다. 자신은 무엇으로부터 도망을 치고 싶은 것인가. 도저히 짐작되지 않는다. 아니, 하라다 무테이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하는 척만 하고 무테이는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면서 루메르트가 뱉은 말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있었다. 그런 무테이의 심중을 알고 있는 것인지 루메르트는 말을 이어갔다.
"하라다. 너는 우츠기의 마음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하고 있어. 너 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잖아. "
그 녀석이 널 좋아한다는 부분 정도는.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면, 확실히 하라다 무테이는 알고 있었다. 우츠기 란기리가 자신을 특별하게 여긴다는 것 정도는. 그 특별함이 【사랑】이라는 것도. 하지만-
"내가 그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한들 그것을 받아줄 의무는 없지 않나."
"확실히 그렇지만- 받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아? 솔직히- 우츠기라면 너에게 사랑을 받는 건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을 텐데, 너는 우츠기한테 굳이 사랑을 줄 필요는 없어. 그냥 받기만 할 뿐이야. 그 정도는 괜찮지 않아? "
괜찮지 않다. 하라다 무테이는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누군가에게서 오는 대가 없는 거대한 감정을 한낱 인간일 뿐인 하라다 무테이가 전부 다 받아주라? 물론 무테이로서는 그 파도 같은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버틸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받기만 하는 것은 역시 찝찝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언제 타인의 감정 같은 걸 신경 썼다고.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지. 너는 란기리를 싫어하나?”
“그건...”
어쩐지 자신의 안에 답이 나와 있는 질문이었다. 하라다 무테아는 우츠기 란기리를 싫어하지 않는다. 놀라울 정도로. 그것은 왜일까. 한번 쯤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무테이에게 있어서 란기리는 불순물과 같은 존재라고, 그렇게 생각하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
하라다 무테이의 곁에 우츠기 란기리라는 존재가 사라진다고 해서 인생에 큰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란기리의 존재로 하라다 무테이의 생활에 변화가 생겼다. 그 변화는 처음엔 불쾌하기만 했다. 지금은 어떤가 라고 누군가 물어보면, 나쁘지 않다. 분명 자신과 맞지 않는 정반대의 사람인데도 그가 곁에 있으면 오히려 편해진다. 그렇게 느끼던 것은 언제부터였지?
“돌아가서 우츠기랑 대화해보는 게 어때- 연애의 선배로서 해줄 조언은 다 해준 것 같은데”
분명 두 사람은 오랜 시간 동안 대화했을 터인데, 오늘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루메르트의 얼굴을 확인했다. 낄낄 웃어대는 얼굴. 어디가 연애의 선배란 거야. 그쪽도 고백 받아놓고 며칠을 끙끙 앓았으면서. 애초에 이 이야기는 연애 이야기와는 거리가 있지 않나. 불만이 가득한 무테이는 짜증난다는 얼굴로 꿍얼거린다. 그래도 루메르트가 제시한 의견을 받아드린 것인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하지만 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드렸다는 걸 인정하기는 싫어졌다.
“그래. 내가 너를 너무 잡아두었군. 자네도 이제 사랑하는 애인과 달콤한 시간을 보내야 하니 이만 돌아가게나.”
밤은 기니까 말이야. 장난스럽게 살짝 웃으면 루메르트는 당했다는 얼굴로 자리에서 음식 재료가 한가득 남겨진 봉투를 품에 안고선 일어난다. 그럼 좋은 결과가 있길 바라지. 그렇게 말을 하곤- 루메르트는 자신의 사랑스러운 사람이 있는 자신의 보금자리로 향한다.
무테이는 하늘을 바라본다. 어느새 하늘에는 짙은 남색으로 물들었다. 먹구름이 끼었던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노랗게 빛나는 별빛들이 보일 정도로 하늘은 깨끗하다. 그렇게 계속 밤하늘만을 바라고 있으면 이 밤하늘과도 닮은 이가 떠오른다.
자신이 나간 후 그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니. 애초에 무엇을 하고 있을까. 자신을 찾기 위해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갑자기 집을 나온 나에게 충격을 받아 방에 틀어박혔을까. 문득 그에 대해 궁금해진다. 아마 집을 지키는 강아지마냥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겠지.
머릿속에서 그의 머리에 강아지 귀를 붙이고, 움직이는 꼬리를 달아주니 정말 개처럼 느껴져서 조금 웃어버렸다. 아- 돌아가서 그와의 관계를 결판내자. 그러면 다시 우리의 평온한 시간이 흐를 테니까. 그러니까 하라다 무테이는 그와의 따듯한 보금자리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야기가 길어졌으니 하라다 무테이는 다시 한번 더 강조하고자 한다. 이 이야기는 결코 독자들이 원하는 흔한 로맨스물이 될 수 없다. 우츠기 란기리가 하라다 무테이를 사랑할지언정. 하라다 무테이는 우츠기 란기리를 사랑하지 않으니, 이것은 로맨스라고 분류하기 어렵다. 적어도 하라다 무테이는 그렇게 정의를 내린다.
얼마나 걸었을까, 짙은 남색의 하늘은 더 어두운 검정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보니, 짙은 남색의 하늘은 그의 머리카락을 떠오르게 했지만, 검정으로 물든 밤하늘은 그의 눈동자와도 비슷하다. 그렇게 느낄 때쯤 무테이는 자신의 따듯한 보금자리에 도착했다.
현관문 앞에 섰는데,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 모르겠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열었을 문인데, 아까 너무 감정적으로 굴었던 게 지금 생각 해보면 창피하다고 생각이 들어서 일까 손을 문고리에 올렸으면서도 문고리를 돌리는 힘은 주지 않는다. 그와 결판을 낸다. 그렇게 결심했으면서도 아직 도망치고 싶은 건가.
아니, 도망치고 싶은 게 아니야. 조금만 마음에 정리를 하고, 그러고 마주하고 싶다. 분명 그렇게 생각하던 참이었을 텐데.
철컥- 하고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문을 열었나? 하고 무테이. 자신의 손을 보면 그는 아직 손에 힘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문틈 사이에 보이는 한 명의 그림자가 보인다. 그래, 집을 나간 무테이를 줄곧 기다려왔을 남자. 우츠기 란기리가 보인다.
“돌아와준건가? 무테이-”
부드럽게 웃고 있는 그의 표정을 보면 스무 살 베아트리체와 재회한 단테의 표정이 이것과 같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밤바람이 차가우니 어서 들어오게! 아니! 무테이! 자네 손이 차갑지 않은가! 여태 어느 건물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 있었단 말인가?! 따듯한 음료! 아니 따듯한 담요! 자네는 소파에 앉아있게! 내가 다 준비해 올 테니!
란기리는 자연스럽게 무테이의 손을 잡아 소파로 이끌었다. 이 일련의 흐름은 무테이는 따라가지 못했다. 그야 그는 여전히 시끄럽고 정신 사납고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난발해대니까. 그러니까 역시 우츠기 란기리는 무테이가 싫어하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남자다.
“난 너를 사랑하지 않아. 란기리.”
무테이의 한마디로 분주하게 움직이던 란기리의 움직임이 멈췄다. 평소에는 무테이의 어떤 말이든 되돌려주는 큰 목소리도. 무테이에게 다가가기 위해 시끄럽게 움직이던 그의 발소리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이 공간을 채우는 소리는 무테이와 란기리. 두 사람의 숨소리뿐.
“너는 내가 싫어하는 모든 걸 가지고 있어.”
귀가 아플 정도로 시끄러운 목소리. 눈이 아플 정도로 화려한 장식. 크게 움직이는 제스쳐. 그 모든 것은 무테이가 싫어한다고 분류한 것이다.
“그래- 잘 알고 있네.”
란기리 역시 그것을 알고 있는지 조용히 긍정해 왔다. 아마 내가 그의 사랑을 알고 있었듯. 그 역시 내가 그의 행동들을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었겠지. 그렇기에 그는 풀이 죽은 듯한 목소리를 하고 있으니까.
란기리는 자신의 얼굴을 무테이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지 무테이의 뒤에서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그래서 무테이는, 지금의 란기리의 표정을 머릿속으로 생각해야만 했는데, 아- 풀이 죽은 우츠기 란기리를 상상하자니 기분이 안 좋았다. 그러니 하고 싶은 말을 이어나가, 그의 기분이 조금이라도 풀어지기를 바랬다.
"하지만, 이상하게 너를 싫어하지 않아.“
그래. 이건 중요한 말이다. 우츠기 란기리가 하라다 무테이가 싫어하는 모든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한들 하라다 무테이는 우츠기 란기리를 싫어하지 않는다. 아니, 그를 싫어한다고 상상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너는 끈질겨.”
가끔은 짜증 날 정도로. 하지만 하라다 무테이는 우츠기 란기리의 끈질김을 좋아한다. 그에게 포기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아서, 만약. 정말 만약에 하라다 무테이가 지옥으로 간다고 해도 우츠기 란기리는 무테이의 발자취를 따라 지옥으로 따라와 줄 것이다. 혹은, 하라다 무테이가 이번 생은 글렀다고 판단하여 다음 생으로 넘어갔다면 우츠기 란기리 역시 다음생으로 넘어가 하라다 무테이를 찾아줄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범주를 넘었다곤 생각하지만, 그런 끈질김이 싫지만은 않는다.
“그리고 잘 웃지.”
무테이의 기억 속 란기리는 언제나 웃고 있었다. 그라면 세상이 끔찍한 종말을 맞이한다고 해도 분명 웃어줄 것이다. 그 웃음은 아마 이질적이고, 다른 누군가가 보면 두려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테이는 그의 웃음을 좋아한다. 자신과 다르게 좋은 걸 좋다고 표현해주는 좋은 얼굴이라고. 하라다 무테이는 그렇게 생각한다.
“게다가 내가 부르지 않아도 곁에 와주지.”
하라다 무테이는 우츠기 란기리가 곁에 있는 것을 허락한 적이 없다. 그저, 눈치채면 옆에 있었다. 언제부터 그래왔는지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언제나 옆에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오히려, 지금은 옆에 란기리가 없는 것이 조금 어색할 때도 있다. 혼자 있는 것을 제일 편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하라다 무테이가. 타인과 함께 있어도 아무렇지 않고 오히려 이것을 자연스럽다고 느끼고 있다. 이것은 확실히 이상하다.
“넌 나를 변화시켰군.”
그것도 엄청 많이 말이야. 사람은 성장해 나간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하며, 싫어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라 표현하는 것은 이루어지기 어려운 변화이다. 하지만 우츠기 란기리는 하라다 무테이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렇게 변화시켰다.
“그러니까 나는 너를 싫어하지 않아.“
그렇다면 하라다 무테이가 우츠기 란기리에게 품고 있는 감정은 무엇일까. 란기리와의 관계를 무엇이라 정의를 내리는가. 친구라고 하기엔 그는 가깝다. 그렇다고 이걸 사랑 부를 수 없다. 하라다 무테이가 이론적으로 알고 있는 사랑은 이런 감정이 아닐 테니까. 그러니까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생각한다. 이다음에 내뱉을 한마디로 그와의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 결정되니까. 그러니까 한 번 더 되새겨본다.
하라다 무테이는 우츠기 란기리를 싫어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 그렇다면 이것은.
“나는 너를 좋아할지도 모르겠어.”
그렇게 말하면- 등 뒤에서 정신 없이 움직이는 발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누군가. 우츠기 란기리가 하라다 무테이를 끌어안는다.
“그 말의 의미는. 나의 사랑을 받아주겠다는 건가?!”
이 대화의 흐름의 어디에서 내가 너의 사랑을 받겠단 결론이 난거지?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지만, 하라다 무테이는 이해되지 않은 우츠기 란기리의 사고회로가 싫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자신과는 다른 감각으로 살아가는 우츠기 란기리의 존재가.
“다시 말하지만 나는 너에게 사랑을 줄 수 없어.”
“아- 그런 건 상관없어! 자네는 그냥 나의 사랑을 받아주기만 하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하니까!”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다. 멋대로 사랑을 주려고 하는 우츠기 란기리. 그 사랑을 받으면서도 절대 자신의 사랑을 주지 않은 하라다 무테이. 하지만 이기적인 두 사람이기에 분명 두 사람은 이 관계를 끊어내지 않을 것이다. 그야, 둘이 함께 있는 편이 서로가 즐거우니까. 고작 그런 이유로.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난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말하지만 이 이야기는 로맨스 따위가 아니다. 그러니까 이건, 이기적인 두 남자의... 그래. 이기적인 두 남자의 사랑 이야기. 고작 그런 시답지도 않은 사소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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