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와구치

선배님은 메이드사마!

사와구치 로망은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엄한 사람이다.

“어이, 청소는 다 하고 쉬는거냐? 마무리가 제일 중요하다고. 가뜩이나 너는 알바니 뭐니 한다고 잘 오지도 않잖아?”

그건 후배들에게 종종 나쁜 인식으로 굳혀지기도 했다. 잔소리만 많고 툭하면 남을 혼내는데다 쓸데없는 참견까지. 항상 찌푸린 미간과 왁왁 소리치는 목소리는 괜히 잘못도 없는 상대를 움츠러들게 만든다. 사와구치는 늘 남들이 자신을 판단하는 첫인상 그대로 행동했다.

‘비호감’

“청소 다 했는데요.”

“하아~? 다 했다, 이 말이지?”

한쪽 눈썹 끝을 꿈틀거리며 사와구치는 산노미야의 말을 직접 확인하러 나섰다. 창틀에서부터 바닥 문 틈새까지... 구석구석 살펴보는 꼴은 확인이라기 보단 더러운 곳을 샅샅이 뒤져 찾는 것처럼 보였다.

“뭐, 깨끗하긴 하네.”

“이제 가도 되나요?”

“잠깐!”

일단 산노미야를 막아 봤다만 사와구치에게 더 이상 핑계거리는 없었다. 팔짱을 낀 채로 맘에 안든다는듯 산노미야를 몇초간 노려보고 나서야 푹 한숨을 쉬고 의자에 털썩 앉아버렸다.

“그래. 깨끗하네. 가라, 가.”

“…”

지긋이 자신을 바라보는 후배의 검은 눈동자에 사와구치가 뚱한 얼굴을 했다. 아니, 내가 좀 괜한 트집을 잡은 건 맞지만? 이만 보내주겠다는데 왜 저런 반응이야?

“뭐야? 불만있어?”

앙칼진 목소리에도 산노미야의 얼굴빛은 평온했다. 그래. 저 시선. 사와구치는 자신을 저렇게 보는 산노미야의 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불만은 선배가 저에게 있지 않나요?”

그 말에 뜨끔해선 사와구치가 홱 고개를 돌린다.

“아, 아닌데? ”

“흐응…~”

따지고 보면 사와구치가 산노미야에게 불만이라고 할 것은 없었다. 부활동은 늘 잘해주고 있었고, 은근히 장난스러운 태도나 계산적이면서 미묘하게 배려를 하는 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 그건 정말 트집이나 잡는 선배에 불과했으니까.

무심하게만 보이는 산노미야의 시선이 사와구치에게서 거둬진다. “말하기 싫으면 됐어요.” 가방을 들곤 인사도 없이 미닫이 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사와구치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렇다고 뭐가 얹힌 것마냥 가슴이 답답한 기분이 해소되진 않았지만. 힐끗 산노미야가 나간 쪽을 바라봐도 달라질 건 없었다.

사와구치 로망은 산노미야 카네키가 불편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기 마련이다. 이름으로 불리기 싫은 이유,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는 걸 숨기고 싶은 이유… 좋아했던 것들을 싫어하게 된 사례. 누구에게는 심심풀이에 불과할, 아직 옛날 일이 되지 못한 이야기. 억지로 깊은 곳에 파묻어놨던 과거를 자꾸만 파헤치려 드는 사람이 있다면 불편한게 당연하지 않은가.

‘딱히 걔가 내 과거를 안다고 해서… 태도가 달라질 것 같진 않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확신은 있었다. 그래서 사와구치는 산노미야를 더 알 수가 없었다. 단순한 호기심? 그렇게 남에게 관심이 많아 보이지도 않았는데. 산노미야가 흥미를 보이는 건 오로지 돈 정도이지 않나? 물론 그런 부분도 사와구치에겐 아니꼽게 보이기는 했다. 지금 돈을 번다고 이런 알바를 하는 처지에 할 생각은 아니긴 하지만…

“다녀오셨어요~ 주인…님?”

“사와구치 선배?”

들려선 안되는 호칭이 들린 기분이었다. 팔랑거리는 레이스와 리본이 달린 메이드복을 입은 모습을 같은 학교 후배에게 들킨다던가, 게다가 그 상대가 산노미야 카네키라는 현실은 사와구치의 머릿속에서는 도저히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니까.

“너, 너…너가 왜? 왜왜왜… 이런 곳에?”

사와구치는 당황한 나머지 말을 잘못 꺼낸 것을 한박자 늦게 깨달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냥 모른 척을 했어야 했는데!

“알바공고 보고 면접 보러 왔는데요.”

그의 손에 들린 종이는 틀림없는 주방알바 모집 공고이다. 아니! 그렇다고 해도 왜? 하필이면? 일부러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골랐는데!

사와구치가 패닉하고 있자 뒤에서 점장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다시 완벽한 메이드의 웃음을 지으며 다음 손님을 맞이한다. 어쩐지 뒤에서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으나 사와구치는 애써 무시했다. 뒷목에서 진땀이 비질비질 나오는 느낌이 영 좋지 않았다. 열심히 연습한 미소의 입꼬리가 자꾸만 굳어지는 느낌이다. 아니! 주인님이라고 해버렸다고! 하필이면 그 산노미야에게!

“너, 그 알바 당장 그만둬.”

사와구치가 지나가던 산노미야를 붙잡고 하는 소리는 그런거였다. 복도에서 발견하자마자 구석으로 질질 끌고 갔으니 누가 봤다면 정말 선배가 후배를 갈구는 것으로밖엔 보이지 않았을테다. 그르릉 이를 세우며 말하는 사와구치의 꼴도 그 의혹에 신빙성을 더해 주고 있었고.

“그 알바라면 선배가 하는 ‘메이드 카페’요?

“너, 너… 일부러 그, 그 단어에 힘주어 말하지 마!”

“어라? 그렇게 들렸나요? 이상하네~ 난 그냥 말했는데. 사와구치 로망 선배가 메이드 카..”

산노미야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가자 결국 사와구치가 한손으로 텁! 그의 입을 막았다. 이 자식의 눈은 늘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수 없었지만 지금은 얼굴이 시뻘개진 자신을 보고 재밌어 한다는 것쯤은 알겠다. 앙심을 담아 꾹꾹 입을 눌러대니 산노미야가 사와구치의 손목을 잡아 내렸다. 그녀가 흠칫 놀라는 틈을 놓치지 않고 훅 산노미야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온다.

“왜요? 제가 선배가 일하는 곳을 소문이라도 낼 거 같아서 그래요?”

저를 생각이라도 해주는 건지,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사와구치의 얼굴이 빠르게 달아올랐다. 이마를 손바닥으로 밀어내 좀 거리를 두고 나서야 사와구치는 주변을 휙휙 살펴볼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다행히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마자 반갑지 않은 목소리가 들린다.

“선배는 왜 그런 곳에서 알바하는데요?”

“네가 알 것 없잖아! 아무튼, 넌 다른 곳에서 일해도 되니까 그…”

“메이드 카페 말이죠?”

“내가 입밖으로 내지 말랬지!”

결국 머리에 사와구치의 꿀밤을 맞은 산노미야. 입술을 삐죽이 내밀고는 슥슥 맞은 곳을 손으로 문지르자 팔짱을 끼고 자신을 잔뜩 경계하는 사와구치가 눈에 들어왔다.

“안 알려주실거라면 됐어요. 어차피 나도 그만둘 생각 없었고.”

“뭐? 너, 너 진짜…!” ”시급도 높은데 제가 왜요? 선배 명령을 들을 이유도 없는데?”

사와구치를 지나쳐 가버리려던 산노미야가 두고 온 물건이라도 생각난 눈빛으로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면, 선배의 비밀이라도 얘기해 주실래요?”

“… 비밀이라니. 그런 거 없어.”

여전히 말을 피하는 사와구치의 모습에 산노미야가 다시 고개를 돌려버렸다. 매일 숨기면서 저런 얼굴을 할 거라면 그냥 아무한테나 털어놓고 편해지면 될 것을.

고집이 세서 고생하는건 도대체 어느 쪽인지.

“다녀오셨어요! 주인님~”

사와구치 로망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경악했을 광경이었다. 얼굴에 만연한 미소를 품고 간드러진 목소리를 내며 “주인님~ 주문하신 두근두근 오므라이스 입니다! 문구는 무엇으로 해드릴까요?”라고 말하는 사와구치라니… 맨날 화난 얼굴이라 웃는 것에는 재능이 없는 줄 알았더니만, 돈이 걸리면 달라지는 걸까? 아니지. 사와구치라면 아마 다른 것이 이유일 것이다.

“사랑가득 러블리 파르페 나왔습니다~” ”그냥 딸기 파르페라고 해! 굳이 우리끼리 풀네임을 부를 필요는 없잖아.”

“메이드가 그렇게 태도가 나빠도 되는 거예요?

말없이 산노미야를 쏘아보다가도 홀에 나가면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메이드는 웃는 얼굴이 기본이라며 점장이 혹독하게 훈련시킨 결과가 이렇게 나올 줄이야. 생딸기와 하트 초콜릿이 예쁘게 장식된 파르페를 식탁에 내려놓으면 손님들의 탄성이 절로 나왔다. 쟤는 이런 것도 잘 하는구나. 어쩐지 의외라는 생각은 안 들었다. 돈만 받는다면 뭐든지 할것 같은 첫인상 때문이었나. 빈 그릇을 가지고 돌아오는 사와구치에게 산노미야가 계속 툭툭 말을 걸었다.

“그 팔랑거리는 메이드복 때문이에요?” ”하아?”

“선배 약간 그런거 좋아하지 않아요?” ”아, 아니거든!” 좋아하는구나. 확 티가 나는 태도에서 산노미야는 쉽게 짐작했다. 그렇지만 옷이 이유는 아니네.

“그럼 돈이 필요해서에요?”

“알바하는 이유가 그거 말고도 또 있어?”

“굳이 이런 곳에서 할 이유는 없지 않나?”

“시급이 높아서 그런다 왜!”

“… 흐응~”

두팔을 겹쳐 턱을 괸 산노미야가 사와구치를 빤히 바라보았다. 딱히 신경 쓸 것도 아닌데 자꾸만 따끔거리는 느낌에 사와구치의 눈썹 끝이 자꾸만 꿈틀거렸다.

“너는 네 일이나 제대로 해!”

“점장님~ 여기 태도가 나쁜 메이드가 하나 있는데요~”

꿍! 결국 산노미야의 머리에 사와구치의 주먹이 떨어졌다.

사와구치 로망은 언제나 엄격했다. 남에게도, 자신에게도. 그건 학업과 부활동과 알바를 병행한다고 해서 달라지진 않았다. 융통성 없이 고지식한 성격은 꼭 한번씩 부실에 걸음을 들리게 했다. 남들을 못믿는 건지, 아니면 걱정이 많은 건지 사와구치는 꼭 한번씩 부실에 들려서 평소처럼 왁왁 잔소리를 내뱉고 가곤 했다. 매섭게 날이 서 있던 모습이 카페에만 들어오면 해사하게 웃는 모습으로 변하는 것도 나름의 에너지를 소모하긴 할 텐데.

“… 아, 죄송합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반응이 좀 늦었을지언정 다행이 미소가 어그러지진 않았다. 피곤이 좀 쌓이는 느낌은 들었지만… 어떻게든 손님에게는 들키지 않은 것 같았다.

“하아…” ”좀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언제부터 보고 있었지? 산노미야의 목소리에 한숨을 돌리던 사와구치가 흠칫 놀라선 허리를 쫙 폈다. 눈이 마주치면 자신의 속까지 다 꿰뚫어 볼거 같은 시선에 괜히 바짝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흥, 남이사. 괜한 것에 신경쓰지 말고 네 일이나 해.”

“선배가 실수해서 제 일까지 다 망치면 민폐니까 그러죠.”

밉살스러운 어투는 꼭 자신이 산노미야에게 하던 그대로였다. 그래서 어렴풋이 자신을 걱정하는 말이라는 걸 알아도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대꾸도 없이 쏘아보며 홀에 나가버린다. 어깨가 배로 무거워진 느낌이지만 접대는 분명 빈틈없이 해냈을 것이다.

‘한심하네… 후배에게 걱정이나 받고.’

엎친데 덮친격이라고 했던가. 그날따라 손님은 많았고 쉴 틈은 없었다. 겨우 영업시간이 끝나 옷을 갈아입고 직원실에서 한숨 돌리나 싶으면 좀 걸끄러운 얼굴과 다시 마주친다.

“… 퇴근 안해?”

“지금 할 건데요.”

괜히 말 걸었다. 오늘 수고했다, 방금 전에는 나도 피곤해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런 말을 하려고 하면 언제나 이렇게 퉁명스레 대꾸해 온다. 이러니까 이쁨 받기 힘들다는거야. … 그야, 얘도 별로 나한테 이쁨 받는 후배가 되고 싶지야 않겠다만.

“아, 그래.”

그래. 우리가 언제부터 서로 걱정을 해줬다고… 고개를 홱 돌리면 지끈거리던 머리가 핑- 돌아 앞이 순간 흐려지는 감각이 들었다. 반사적으로 손을 앞에 있던 탁자에 짚으려 하면 몸이 휘청거리며 기우뚱 넘어가는게 느껴졌다.

아, 이런.

사와구치의 걱정은 자신이 넘어진다는 것에 있지 않았다. 손끝에 걸린 느낌은 위치상 커피포트였다. 지금 시간이라면 다 식어 있긴 할테지만… 만약 누가 한번 데워 놨다면? 넘어지는 제 몸 위로 쏟아지는 것은…

선배가 실수해서 제 일까지 다 망치면 민폐니까 그러죠.

정말 그 말대로 되어버리겠네. 곧 덮쳐올 아픔인지 수치인지 모를 이유로 사와구치는 두 눈을 질끈 감았으나

느껴지는건 교복을 적시는 차가움 뿐이었다.

“아…”

산노미야가 잡고 있던 사와구치의 팔을 잡아 끌어선 마저 일으켜 세웠다. 커피포트가 넘어지는 것까진 어쩔 수 없었는지 탁자 위와 바닥에 커피향이 흥건했다. 자신의 윗옷도 엉망이다. 교복이야 원래부터 까만색이었으니 사와구치는 별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그, 고마-”

“요령이 없는 거예요, 아님 그냥 멍청한 거예요?”

“뭐?”

제법 날이 선 말에 사와구치의 얼굴도 팍 구겨진다. 자신을 잡아줬을 때의 산노미야의 얼굴을 보았음에도 울컥하는 기분은 어쩔수 없었다. 어차피 자신의 본질은 비호감, 그것 뿐이었으니까.

“그렇게 무리하다가 다치면 아예 푹 쉴 수 있고 편하겠네요.”

“너 그게 지금 선배인 나한테 할 소리야?”

“네, 네. 그렇게 대단하신 사와구치 씨는 자기관리도 제대로 못하고 참 잘나셨네요. 어떻게 돌아가려구요? 덕분에 교복도 다 망가졌는데.”

“네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 않아?”

가뜩이나 피곤한데. 뒷말을 내뱉고 나면 그제야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걸 깨닫는다. 지금이라도 사과하면… 그러나 자존심은 제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신경질적으로 북북 티슈를 뽑아 탁자를 닦는 사와구치의 머리 위로 무언가가 날라와 시야를 가려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면 산노미야는 사라지고 없었다. 사와구치는 손에 들린 후드티를 가만히 바라본다.

“… 뭐야 진짜.”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애. 남 얘기만 자꾸 캐는 애. 돈만 밝히는 애.

끝없이 그렇게 계속 중얼거려 봤자, 사와구치는 지금 제 얼굴이 새빨개진 이유를 명확히 밝힐 수 없을 것이다.

사와구치라고 제 과거의 일을 털어놓고 싶은 적이 왜 없었을까. 왜 그들은 나를 배신했나, 실제로 따져 본다면 제 피해망상에 불과할지라도 누군가가 자신의 편을 들어줬음 했다. 그 사람들이 이상했네. 너는 아무 잘못 없었네. 네 마음은 전혀 헛된 것이 아니었네… 뭐, 그런 흔해 빠진 위로들.

그러나 사와구치는 이젠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사람의 호의가 무서웠다는 것에 가까웠으리라. 우리가 친해져서, 다시 마음을 나누고 그런 뒤에 또 다시 이런 마음이 배신을 당한다면? 사와구치 로망은 보기보다 훨씬 겁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라고 하기엔 역시 좀 변명 같겠지만…’

현재 사와구치는 자신의 알바처의 뒷문에서 대기 중이었다. 오늘 자신은 근무일이 아니었다. 손에는 깨끗이 세탁된 산노미야의 후드티가 든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사와구치는 겁은 많았지만 어느정도 염치는 있는 사람이었다. 이대로 있다가 부활동에서도 서로 겸연쩍게 지내는 건 이쪽이 불편했으니까. 먼저 사과를 건네는 것도 선배가 가져야할 덕목 중 하나이다. 여지껏 자신한테 말 한마디 없는 산노미야는 올바른 후배로서의 자세부터가 글러먹었지만!

“수고하셨습니다~ …”

“아, 그…”

하지만 막상 퇴근하는 산노미야를 본 사와구치는 그대로 잠시 굳어있었다. 그날 이후로 얼굴을 마주한 건 처음이었다. 어떡하지? 이제 뭐라고 하지? 고민이 이어지는 순간에도 눈앞은 쉼없이 팽팽 돌았다. 산노미야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채 자신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얼굴로.

“그… 오늘 바쁘던?”

“아니요. 행사 다 끝나서 한가했네요.”

“그러냐…”

또 침묵. 공백이 길어지자 산노미야가 아예 벽에 등을 기댄 채로 팔짱을 꼈다. 자신이 뭘 말하러 왔는지 이미 다 안다는 저 태도가 사와구치는 매우 맘에 들지 않았다. 분명 속으로 웃음이나 참고 있을거야. 그야 우습게도 보이겠지! 자기관리도 못해서 민폐나 끼친 선배가 사과하러 오면! 스멀스멀 다시 속에서 올라오는 말들이 자존심이 높아서인지 낮아서인지 사와구치는 잘 구분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자, 자! 이거!”

일단 꽉 쥐고 있던 쇼핑백을 대충 품에 던져주는 것까진 성공했다.

“그때 썼던 네 옷! 깨끗이 빨았으니까 뭐라고 하지마라! 그, 그땐 나도 뭐… 여러가지로 피곤하고 그래서 괜히 너한테 좀! 화, 화풀이를 한 거 같은데… …”

이 다음은 눈을 마주칠 배짱이 없어 눈동자를 열심히 굴리면서 횡설수설 하는 게 고작이었다. 막상 중요한 지점에서 말문이 턱, 하니 막혀져 버렸지만.

“… 같은데?”

역시 다 알고 저러는 거지 저 녀석! 재촉하는 건지 이 상황을 즐기는 건지 얼굴을 볼 재간은 없으나 산노미야의 목소리만큼은 평소와 다름없이 평온했다. 뭐야 진짜! 속이 울렁거리고 심장이 쿵쾅거리는 기분이 영 좋지 못했다. 아주 그냥 얘한테 우스운 꼴이란 꼴은 다 보여주는구나. 어쩌면 그래서 더 너라면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까. 사와구치는 마음이 혼란스러운 와중 새어나온 진심마져 애써 다시 삼켜내고는,

“내가… 그땐, 미안했어.”

“… …”

“네 말이 맞아. 앞으로는 너무 무리하지 않도록 할게.”

입 밖으로 내놓고 나니 온 몸의 힘이 다 빠지는 느낌이었다. 그 다음 찾아오는 건 미세한 떨림. 사와구치는 이 감각을 안다. 두려움이다. 상대가 자신과 관계를 지속해줄지 어떨지에 대한 무서움. 짧은 한숨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사와구치는 겨우 고개를 들어 상대를 바라본다.

“뭐… 그래요. 저도 그땐 말이 좀 막나갔네요.”

뒷머리를 긁적거리는 얼굴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아니, 아닌가…. 안심한건가? 사와구치는 여전히 산노미야의 감정을 잘 읽어 낼 수 없었다. “선배도 역으로 가죠?” 같이 가자는 말도 없이 산노미야가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거리는 벌써 짙은 남색으로 어둠이 깔리는 중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젠 얘랑 돌아가는 길도 익숙하구나. 가는 길이 같았기에 함께 걸었던 것 뿐이지만, 어쩐지 사와구치는 이 순간이 무척 간지럽게 느껴졌다. 쌀쌀한 바람을 누군가가 체온으로 감싸줬을 때 느끼는, 그런 간지러움.

“어?”

쇼핑백 안을 뒤적이던 산노미야가 작은 선물상자를 하나 발견했다. 눈빛으로 뭔지 묻는 그에게 사와구치가 뚱한 목소리로 답한다.

“초콜릿이다 왜? 얼마전까지 그거 때문에 바빴으면서 모르냐?”

“알고는 있었는데 사와구치 선배한테 받을 줄은 몰랐죠.”

“미리 말해두는데 그거 그냥 의리다?”

“이거 수제인데요?”

“그냥 취미야! 그거 만드느라 좀 피곤했어. 너는 오늘 부활동 없었기도 했고… 자, 잠깐 너 뭘 또 뒤지는 거야?”

그냥 살펴보는 거 뿐이었는데. 사와구치가 당황하자 산노미야는 손을 뻗어 쇼핑백 안을 이리저리 헤집어 보았다. 푹신한 천 사이에 닿는 딱딱한 이물감을 꺼내 확인해보면 아까 전과는 다른 크기의 상자이다. 조금 작은데…

“혹시 이쪽이 진심?”

“아니거든! 야, 야! 집 가서 열던가 진짜…”

그런 반응을 하는데 당연히 지금 열어봐야지. 씩씩거리며 얼굴을 붉히는 사와구치를 힐끔거리던 산노미야의 시야에 반짝거리는 것이 들어왔다. 작은 별 모양의 브로치. 들어서 가로등의 불빛에 이리저리 비춰보면 겉표면의 광택이 흐릿하게 반짝거렸다.

“… 그, 그냥 돈이 좀 남아서! 딱히 쓸 곳도 없고! 마침 근처에서 팔길래! 정말! 그것 뿐이니까… 아니, 너 왜 웃는거야? 너, 너… 내가 웃겨?”

산노미야가 이런 식으로 웃기도 하는구나.

“하여튼 건방진게…”

“건방진 후배에게 이런 선물도 해주시네요?”

“너, 너 진짜 좀 조용히 안 해?”

또 쿡쿡 새어져 나오는 웃음소리. 밤길이 어두운게 얼마나 다행인지. 안그랬으면 후배에게 이런 걸로 놀림당해서 씩씩거리는 제 모습이 그대로 다 보였을거다. 역시 산노미야 카네키는 불편하다고, 같이 있으면 이렇게나 당황만 한다고. 사와구치는 속으로 자꾸 변명만 늘어놓았다. 들어줄 사람은 초저녁에 너무 일찍 뜬 별들 뿐이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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