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AY
#백호열 전력110분, 주제_인형
#백호열 전력110분, 주제_인형
호열이 새로 구한 주말 아르바이트는 골목 구석진 곳에 있는 작은 개인 서점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도 줄고, 그나마 책이 필요해도 시내에 있는 커다란 대형 서점에 가지 굳이 굳이 골목 작은 개인 서점까지 오는 사람들은 무척 적어서, 이 곳의 주인 여사장은 오크 색 흔들의자에 앉아 색색의 털실과 천 조각들을 이어 인형들을 만들곤 했다.
그리고 다 만들어진 인형은 작은 소쿠리에 담아 천 원이라는 아주 저렴한 가격에 내놓기도 했는데 이게 의외로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어서 금세 소쿠리는 동나곤 한다. 서점에서 파는 인형. 서점에서 책을 사야지 인형을 사는 여고생들이라니, 잘 모르겠다. 호열은 이번에 들어온 신간들을 가장 손님들이 잘 보이는 곳에 정리하며 고개를 저었다. 여 사장은 책은 겨우 하루에 한두권 팔까 이면서 그 소쿠리에 담긴 인형들은 금세 다 팔리는 것을 보고 서점을 접고 인형 가게를 해볼까 진지하게 고민하셔서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것도 나쁘진 않죠."
"동물 시리즈가 잘 나가더라."
"아, 지난번에 오리 귀여웠어요."
"호열이 너는 관심 없니?"
저요?
호열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뜨개질로 온갖 작고 귀여운 동물들을 만들고, 천과 레이스로 고풍스러운 인형들을 순식간에 만들어내는 사장님에 비하면 자신은 그쪽으론 손재주가 없어 보인다. 호열을 바라보던 사장은 웃으면서 이거 남은 천인데 가져갈래? 하며 봉투에 담긴 천조각들과 실들을 보여주었고.
호열은, 그 봉투 속에서 빨간 천 조각을 발견했다.
음.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에 도착한 호열은 씻고 나와 책상에 가득 쌓인 천 조각과 솜, 실타래들을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으로 받아온 거야. 빨간색이면 아주 그냥 환장하지. 호열이 홀린 듯 봉투를 받아서 들자 사장은 기뻐하며 아주 간단한 인형 도안을 비닐 속에 넣어 주었다. 머리, 몸통, 팔과 다리만 있으면 완성이야, 간단하지?
마치 예술가가 붓질 한 번에 산과 바다를 그리고 참 쉽죠? 하는 것과 같다. 호열은 그저 난감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었지. 호열은 잠시 끙, 앓는 소리를 내다 가위를 들었다. 그래, 까짓거 한번 만들어보지 뭐. 나도 가위질은 꽤 많이 했다고.
빨간 색 천을 자른다. 부드럽고 적당히 까슬한. 꼭 백호의 머리카락 같아서 호열은 밤송이같이 뾰족뾰족한 그의 머리를 상상하며 가위를 움직였다. 얼굴 쪽 천을 자를 때는 둥그렇게. 농구를 하며 지방이 많이 빠져서 인상이 사나워졌지만 인형이니까 조금 귀엽게 만들어도 되겠지? 실제로도 백호는 아직도 귀여워 보일 때가 있다. 머리에 잔뜩 부푼 솜을 넣으며 백호가 이렇게 가득 채우는 솜처럼 내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팔의 형상을 만들고 솜을 집어넣으며 이 두 팔이 멋진 슛을 넣을 수 있기를.
이 다리가 튼튼히 받쳐주어 누구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기를.
몸 통을 만들며 이제 더 이상 부상이 없기를.
저도 모르게 기도 하며 솜을 채워 넣었다.
단추로 눈을 만들고 동그란 비즈로 코를 박아 넣는다.
입 부분은 실로 한 땀 한 땀 그리며, 언제나 그가 웃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사장님 말씀이 맞았다. 손재주가 없는 호열도 금세 작은 인형은 뚝딱 만들었다. 비록 솜이 고르게 들어가지 않아 표면이 울룩불룩하고 그 터질듯한 천을 꿰어낸 실은 삐뚤빼뚤하지만 제법 백호의 모습이 보이는 인형이었다.
"하하. 귀여워."
해맑게 웃고 있는 인형이 귀여워서 저도 모르게 쪽 입맞춤을 한 호열은 잠시 그 인형을 쓰다듬다가 시계를 보고 침대로 꾸물꾸물 기어간다. 제 머리맡에 인형을 두고. 처음 만든 것 치곤 마음에 들어. 정말 마음에 들어.
호열은 잠 속으로 빠져들면서도 흐뭇함에 미소를 지었다.
비록 나의 몸은
천 속에 솜을 가득 넣어 실로 꿰어졌지만
나는 기원으로 태어난 존재!
신의 숨결이 나에게 깃드니
나는 그 분의 뜻대로 움직이리라!
무언가 굉장히 판타지 영화에서 나올법한 웅장한 울림과 함께 알람 소리에 깨어난 호열은 무언가 이마에 닿아있는 느낌이 나, 부은 눈을 조심히 떴다. 당장 보이는 것은 붉은 색. 인형이 굴러떨어졌나? 싶을 때 뽀독 소리를 내며 인형이 고개를 든다. 그래. 인형이.
"나의 창조주여! 나의 신이시여!"
인형이 말을 한다.
"내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시고 나의 눈을 뜨게 해주셨으며 내 입을 터지게 한 기적을 베푼 나의 신이시여! 당신의 미천한 종이 인사드립니다!"
인형은 아주 고풍스럽게 큰 팔을 휘적거리며 허리를 숙인다. 거의 네모난 몸통이 숙여지자 뽀드득 소리를 내며 옆구리 실밥 사이로 솜이 터져 나올 것 같다. 호열은 눈을 한번 비비고 게슴츠레 그 인형을 바라보았다. 호열의 시선에 인형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부끄러운지 몸을 비비 꼬는데 몸을 움직일 때마다 뽀득뽀득 소리가 난다.
호열의 손에서 인형이 탄생했고, 그 인형은 그에게 생명을 받았다.
그래, 성경에서 이런 구절이 있지 않았나?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
호열은 인형을 창조했다.
"뭐야 이게?"
그리고그 창조주가 창조물에 건넨 첫 마디였다.
"말하는 인형?"
호열의 물음에 구식과 대남은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얘 뭐라는 거야? 그 갑판 대에서 파는 춤추는 인형 말하는 거야? 구식의 물음에 호열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인형이 말을 한다니까?
"너 아프냐? 막, 그러니까 환청이 들려?"
"하."
호열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백호와 용팔이 매점에서 물건을 사러 간 이 시점이 적기다 생각하여 제 주머니 속의 인형을 꺼냈다. 인형은 얌전히 호열의 손바닥 위에 올려져 있었고 대남은 검지 손가락으로 그 인형의 배를 꾹 눌렀다.
"뭐야 이 못생긴 인형은?"
"쿠엑! 그 더러운 손 치우라!"
인형이 인상을 쓰며 폭신한 팔을 휘둘러 대남의 검지 손가락을 쳐낸다. 눌린 자신의 가슴을 판판하게 두드리며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대남을 바라보던 인형은 호열에게 소리쳤다.
"신이시여! 당신의 창조물을 모욕한 저 미천한 자를 벌할 기회를 주십시오! 내가 저 자의 목을 베어 당신께 받치리! 당신의 영광을 길이길이 칭송할 것입니다!"
"어어. 호야. 네가 참자. 한 번만 넘어가 주자."
"아아. 자애로우셔라."
호열의 말에 거짓말처럼 얌전히 그의 엄지손가락을 껴안는 인형의 이름은 호다. 백호의 호. 귀엽지 않니? 호열의 말에 대남과 구식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말하는 인형. 그리고 그것이 익숙해 보이는 제 친구. 그리고 저 인형 왠지 누군가를 닮았다. 빨갛고 동그란 저 머리통. 그래. 백호를 닮았다. 양호열이 드디어 미쳤다. 미쳐서 강백호 인형을 만들었는데 그 인형이 살아 움직인다.
"이거 티브이에 제보할까?"
"안돼! 티브이에 알려졌다가 호가 해부당하면 어떡해?"
"이거 어디 건전지로 움직이는 건가? 어떻게 움직이고 말하는 거야?"
구식은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호의 얼굴을 꾹 누르다가 무언가 따끔함에 손가락을 떼니 호야가 어느새 제 몸에서 빼낸 시침 핀을 휘두른다. 만지지 마라!
"와 새끼. 성깔 있네? 이거 빼도 박도 못하는 강백호다."
"강백호?"
"어어. 저기 오네."
"어디 말이냐! 으악!?"
호열은 구식의 말에 서둘러 호를 자신의 교복 재킷 주머니에 쏙 집어 넣었다. 호는 얌전히 호열의 주머니 속에 몸을 웅크렸다. 뽀드득 솜의 소리와 함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 매점에 마지막 소시지 빵 놓쳐버렸어! 자! 여기 우유."
"너희 소보로 빵이랑 단팥빵 먹어라."
"아, 소보로랑 단팥은 질렸는데."
호는 조용히 재킷 너머로 보이는 자신의 창조주를 올려다본다. 발갛게 물든 뺨. 창조주께서 저 강백호라는 자를 바라보며 웃고 있다. 조심히 고개를 내밀어 보니 솜으로 가득 찬 제 빨간 머리와 똑 닮은 머리카락을 지닌 거대한 자가 빵을 씹고 있었다.
호는 깨달았다.
창조주께서 나의 형상을 저 사람에 빗대어 만드신 거구나!
"신이시여, 저 자가 나의 본이로군요! 조그마한 나와는 다르게 저 자는 엄청나게 거대합니다!"
"어어. 호야. 가만히 있어."
"그렇지! 신이시여! 나를 저 자에게 대려다 주십시오! 제가 저 자에게 축복을 내려 드리겠습니다!"
"뭐!?"
호열의 화들짝 놀람에 백호가 그를 바라본다. 왜 그래 호열아?
호열은 난감히 웃으며 괜스레 주머니 속의 호를 만지작만지작 거리였는데, 간지러운지 하하하! 더 해주십시오! 기분 좋습니다! 하는 외침만 들려서 결국 입 부분을 살짝 꾹 눌렀다. 조용. 조용.
"야, 강백호 너 이거 먹을래?"
"눗! 먹을래!"
대남과 구식이 다른 간식으로 백호의 시선을 끌자 호열은 작게 한숨을 쉬며 호의 입을 꼭 눌렀던 손가락을 뗐다.
"축복? 어떻게 하게?"
"음! 으으음. 그러니까. 아! 나를 먹으라고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나는 창조주의 기원이 이뤄낸 존재! 분명 축복의 효과가 아주 뛰어날 것입니다!"
"절대 안 돼."
호열의 단호한 목소리에 호는 앗. 작게 탄식을 뱉으며 조용해진다. 의기소침해 진 것인가?
그 후로도 교실에서도, 하교할 때도 제 교복 재킷 주머니에 넣어져 있는 호는 입을 도통 열 생각을 안 한다. 노을이 지는 골목길을 걷다가 호열은 앓는 소리를 내며 호를 꺼내어 제 어깨에 올렸다.
"삐졌어?"
"당치도 않습니다."
대답하는 말이 뭔가 부루퉁하다.
호열은 웃으면서 그의 머리통을 작게 쓰다듬었다. 호는 호열의 어깨 위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신이시여! 아까는 하늘이 파랬는데 이제는 하늘이 주홍색으로, 또 저기 남색으로 물들고 있습니다! 아름다워요! 노을은 정말 아름답군요! 제가 천과 솜, 실타래로 이루어져 있을 때 느껴졌던 감각들을 이제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니 너무 기쁩니다! 저 것이 달이군요! 달과 태양이 함께 떠 있는 시간이라니 너무 멋집니다! 세상은 이토록 아름다워요!
그의 순수한 감탄에 호열은 너무 주머니 속에 넣어 다녔나, 골목길에서 올려다보는 하늘도 이리 좋아하는데 다음에 바다를 보여주면 소리 지르다가 솜이 터질 것 같았다. 꺄아아악! 소리를 내다가 옆구리 솜이 빵! 터진 호의 모습을 상상했던 호열은 푸핫! 웃음을 터트렸다. 호열의 웃음을 본 호는 그의 뺨에 제 판판한 얼굴을 기댄다.
"하지만 그 어떠한 아름다움도 당신에 비하면 한낱 길바닥의 돌 같습니다!"
"엑, 뭐야. 갑자기 칭찬? 부끄럽네."
"신이시여! 제가 당신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요. 마치 얼음이 녹으면 꽃이 피어나 듯, 초여름의 잎사귀가 돋아나고, 열매가 맺히듯 말이오!"
"으음. 하지만 나는 너에게 경외 받고 싶지 않은 걸."
호열의 말에 인형의 단추 눈이 조금 흔들리는 착각이 들었다.
"앗, 엇. 그럼, 그럼 저에게 바라는 것은 없습니까? 저는 당신의 기원으로 이루어진 존재. 바라는 것이 없다면 저는 눈이 녹듯 사라집니다. 저는 존재적 의의를 증명하고 싶습니다."
"난 너의 존재만으로도 너무 기뻐, 호야."
호열의 눈꼬리가 매끄럽게 휘어지며 조용히 호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호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솜으로 가득 찬 가슴 쪽에 양 팔을 꼭 누르며 말했다.
"아아, 너무 기뻐서 솜이 튀어나올 것 같아."
"......안돼! 솜 튀어나오면 안돼!"
호열은 하하! 웃으며 호를 헤어왁스로 깔끔히 넘겨 굳어진 바삭한 머리 위에 올렸다. 단단하게 굳은 머리카락을 잡고 호는 불어오는 저녁 바람을 온 몸으로 맞았다. 하늘을 나는 기분이로다!
호는 기분이 좋은지 끊임없이 호열의 옆에서 조잘조잘 이야기를 했다. 그가 침대에 들어가 잠들었을 때 호는 아주 조심히 그의 입술을 뭉툭한 제 솜 팔로 꾹 누르다가 판판한 얼굴을 가져다 댄다.
피조물은 창조주를 사랑했다.
그리고 결심한다.
자신이 창조주를 꼭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
강백호는 당황스러웠다.
제 더플백 속 타올을 찾다가 잡힌 그것은 타올도, 농구공도, 땀에 젖은 운동복도 아니고 푹신한 솜인형이었다. 왜인지 저를 닮은 빨간색 머리의 솜인형. 그것은 강백호의 우악스러운 손길에 놓지 못할까! 외치며 그의 손바닥 위에 당당히 서서 그에게 삿대질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강백호는 당황해서 인형을 떨어트리지 않기 위해 양손으로 인형을 받쳐야만 했다.
"이 덩치 산만하고 힘만 무식하게 센 작자여! 내 친히 너를 축복하기 위해 왔노라!"
"누, 누우웃?! 인형이 말한다?"
"흥!"
인형은 제 옆구리의 매듭져있던 실을 풀었다. 솜으로 가득 찼던 천은 꿰어둔 실이 풀리자 하얀 솜들이 쏟아져 나온다. 밝은 하늘색 빛과 함께.
호의 몸이 점점 얇아질수록 하늘색 반짝이들이 더욱 쏟아져 강백호의 가슴께로 흡수된다.
'백호가.'
"응?"
강백호는 저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부드럽고 낮은. 어쩐지 아주 익숙한 목소리.
'백호가 내 생각을 조금쯤은 해 주길.'
'두 팔이 멋진 슛을 넣을 수 있기를.'
'다리가 튼튼히 받쳐주어 누구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기를.'
'그리고 제발.'
'이제 더 이상 다치지 말길.'
따듯하고 울리는 말이 백호의 머릿속에서 울리고, 호는 당황하는 그의 얼굴을 째려보다가 흥! 하면서 시침 핀으로 제 가슴을 찢어 빨갛게, 그 무엇보다 반짝이는 빛 조각을 떠올렸다. 그 조각은 팔랑팔랑 꽃잎처럼 올라가 백호의 입술에 톡 닿아 스며든다.
'좋아해.'
'백호야, 너를 좋아해.'
'정말정말 좋아해.'
강백호의 얼굴은 그 누구보다 붉게 타올랐고 그 모습을 본 호는 씨익 웃으며 털썩 쓰러졌다. 서서히 의식이 소멸해가는 와중에 호는 진심으로 기도한다.
신이시여.
나는 당신의 기원으로 태어난 존재.
바라옵건데 부디 행복하소서.
영원한 나의 신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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