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새가 도망치고 물고기가 가라앉았다.

자쿠사키

어째서인지 오늘은 자쿠로 씨와 함께 귀가하게 되었습니다. 뭐랄까, 꽤 드문 일이죠. 보통은 기이 씨나 콘고 씨가 역까지 바래다주지만 플로어는 바빠보였고 자리에 일어설 즈음부터 프론트까지 그날따라 아무도 따라나오지 않아 묘한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이제 여름이라 해도 길어졌고 힘의 평형도 되찾았다고 하니 오늘은 혼자 가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 스타레스를 나온 순간 자쿠로 씨와 눈이 딱 마주쳤어요.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벽에 기대 시간을 때우는 모습은 누가 봐도 땡땡이였지만 눈이 마주치자 빙긋 웃는 자쿠로 씨를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노을의 마법이었을까요. 평범하게 "자, 갈까." 라던가 평소의 "이야이야, 운명의 코토리 쨩. 와타쿠시와 함께 하는 것이?" 같은 우스꽝스러운 말도 없었는데 어쩐지 같이 가는 걸로 되어버렸습니다. 정확히는 자쿠로 씨가 먼저 걷고, 제가 그를 무심코 따라가 버린 것이었죠.

 이상한 거리감이었습니다. 콘고 씨처럼 옆에서 걷는 것도 아니었고, 파수견처럼 앞에서 걷는 기이 씨와도 다른 걸음걸이. 조금 빠른가 싶어도 못 따라갈 정도는 아니었고 일부러 걸음을 늦춰주듯 눈에 띄게 속도가 줄지도 않았습니다. 뒤를 힐끔 보는 법도 없이 자쿠로 씨는 앞서 걸어갔고 제가 그 뒤를 같은 걸음으로 쫓아가는 그림이었어요.

 다리를 움직일수록, 걸음을 걸을수록 풍경은 차근차근 바뀌었고 양옆으로는 사람들이 바쁘게 가로수처럼 지나갔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번화가 외진 골목에서 벗어나 강변에 도착했습니다. 여기는 집으로 가는 역 앞이 아니에요. 그런 건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케이 씨에겐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어디로 가는 지 물어볼 틈조차 없었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흐음흐음, 운명의 코토리 쨩. 이런 곳까지 와타쿠시를 따라오시다니."

 마치 여우에 홀린 기분입니다. 따라오라는 게 아니었어? 갑자기 멋대로 따라온 사람 취급해서 놀랐습니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면 하늘은 이미 청색으로 어둡게 물들어 있었고, 고층 건물의 불빛들이 하나둘 반짝이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은 이렇게나 따스하고 밝은데... 그렇다고 역까지 돌아가기엔 너무나도 먼 거리. 시간도 늦어 겁이 덜컥 났습니다. 안절부절못하고 있자 자쿠로 씨가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장난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 둘은 천천히 강변을 걷기 시작한 것입니다. 강변 걷기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처음이에요. 정말 오랜만입니다. 저무는 해에 비친 강물은 온통 주홍빛으로 힘차게 흘러가고 있었는데, 그건 주변에 자라있는 잔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옆으로 자전거가 종을 울리며 스쳐 지나가고 멀리서 까마귀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면 물가에서 사냥하고 있던 새가 놀라 입에서 물고기를 떨어트립니다. 미안한 마음에 조금 거리를 둬도 물고기는 이미 가라앉아 어딘가로 사라진 참이었습니다. 그러자 제 마음을 읽은 듯 자쿠로 씨가 내내 조용했던 자쿠로 씨가 입을 열었습니다.

"혹시 코토리 쨩은 방금 일을 신경 쓰시는지? 그렇다면 얼른 털어내는 것이. 이것이 약육강식."

"그렇군요. 하지만 사냥을 방해해 버려서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어요."

"후후후, 스타레스도 동일. 공주님이 마음 쓸 일은 아무것도. 모든 것은 꿈과 같으니..."

 벤치에 앉아 반짝이는 강물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만 있었습니다. 주변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리고, 먹이를 놓친 백로가 다시 부리를 위로 쳐들어 목을 꿀꺽일 만큼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스타레스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더군요.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자쿠로 씨와는 접점은 스타레스밖에 없으니까요. 그의 본명은 무엇인지, 어디서 자라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유일하게 아는 것이라곤 그가 설탕 장식을 얹은 크림 베이스 컵케이크를 좋아한다는 것.

"스타레스와 방금 일은 조금 달라요. 그건..."

"이런... 설마하니 히메. 스스로만 게임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건지?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게임을 하고 있는데."

 그리고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허겁지겁 시간을 확인하면 오후 5시 47분, 스타레스에 가기엔 애매한 시각으로 다시 침대에 드러누워 휴대폰을 뒤적이니 케이 씨로부터 라인이 와있었습니다. 저녁을 먹으면서 답장할까... 하고 생각하다 결국 잠든 것 같아요. 깨어나니 곧 출근할 시간이라 그날 꿈은 모두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리고 퇴근해서, 다시 스타레스에 들러 자리를 안내받고 조금 스테이지를 바라보다 일어났습니다. 팀 K의 공연은 언제봐도 좋은 것 같아요.

 잠깐 플로어를 둘러보면 기이 씨는 스테이지 위에, 콘고 씨는 보이지 않으니 아마 주방에, 그리고 다들 조금 바빠 보여 프런트로 나오면 린도 씨가 있었습니다. 그와 눈이 마주칠 즈음 플로어의 신쥬 씨가 '린도!'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저는 무사히 린도 씨의 시야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프런트를 지나 스타레스의 유리문을 밀고 나간 순간 자쿠로 씨와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벽에 기대 시간을 때우는 모습은 누가 봐도 땡땡이였지만 눈이 마주치자 빙긋 웃는 자쿠로 씨를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백로의 마법이었을까요. 평범하게 "자, 갈까." 라던가 평소의 "이야이야, 운명의 코토리 쨩. 와타쿠시와 함께 하는 것이?" 같은 말도 없었는데 어쩐지 같이 가는 걸로 되어버렸습니다. 정확히는 자쿠로 씨가 먼저 걷고, 제가 그를 무심코 따라가 버린 것이었죠.

 이상한 거리감이었습니다. 콘고 씨처럼 옆에서 걷는 것도 아니었고, 파수견처럼 앞에서 걷는 기이 씨와도 다른 걸음걸이. 조금 빠른가 싶어도 못 따라갈 정도는 아니었고 일부러 걸음을 늦춰주듯 눈에 띄게 속도가 줄지도 않았습니다. 뒤를 힐끔 보는 법도 없이 자쿠로 씨는 앞서 걸어갔고 제가 그 뒤를 같은 걸음으로 쫓아가는 그림이었어요.

 그럼에도 풍경은 차근차근 바뀌었고 양옆으로는 사람들이 빠른 물결처럼 지나갔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번화가 외진 골목에서 벗어나 강변에 도착해있었죠. 여기는 집으로 가는 역 앞이 아니에요. 그런 건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케이 씨에겐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공연 중에 갑자기 일어서서 나가버리고, 그런 주제에 자쿠로 씨와 있었다니. 어떻게 변명해도 이상하게 보일 것 같습니다. 린도 씨의 시선을 걱정할 게 아니었네요.

"흐음흐음, 운명의 코토리 쨩. 이런 곳까지 와타쿠시를 따라오시다니."

"큼, ...운명의 코토리 쨩. 이런 곳까지 저를 따라오시다니."

 자쿠로 씨가 할 말을 따라 하니 그가 조금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그게 조금 재밌어서 살짝 웃으면 자쿠로 씨는 곧 귀여운 표정을 지었고, 우리 둘은 다시 강변을 걸었습니다. 이번에는 계단으로 내려가지 않을 거예요. 기억났거든요. 이 길로 쭉 걸어가면 제가 사는 아파트가 나온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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