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rt Short Stories

[밧울] 짧은 글 모음

Curtain Call by 펠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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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9~2024.02.09

짧은 글 모음


어느날 천국에서 전화가 왔다.

밧슈는 매일매일 신나서 전화를 받았고

많은 사람들이 전화를 주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의 전화가 왔다. 그리고 한마디.

"천국? 내가 우예 천국에 있겠노. 살인자가."

밧슈는 전화를 끊어버렸고, 즉시 후회했다.


스핀 리퀘글 1 개와 늑대의 시간

개를 만났다. 혹은, 늑대인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건 안다. 이 별에 늑대 같은 건 살지 않는다. 그럼에도 어째서인지 밧슈는 그 동물을 다르게 생각할 수 없었다. 까만 털의 거대한 그 녀석은 모래 언덕 위에 서서 저물어가는 햇빛을 뒤로 받으며 당당히 서있었다. 길게 진 그림자가 언덕 아래의 밧슈에게까지 닿았다.

밧슈는 넋을 빼앗기고 말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아마 누군가가 키우던 것이 아닐까. 길에서 떠도는 굶주린 개와는 전혀 달랐다. 까만 털이 반지르르한 게 멀리서도 보였다. 아마 주인이 따로 있을 것이다. 탈출했을까. 가출했을까. 돌려줘야 할까.

그럼에도 손을 뻗은 것은 불가항력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모래 언덕을 재빠르게 달려 내려와 개가 밧슈에게로 덤벼들었다. 속도와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밧슈는 뒤로 넘어졌다. 검은 개는 몹시 반가워하며, 말랑한 코로 얼굴 여기저기를 찍어보고, 크게 웃듯이 입을 벌리고 헥헥, 소리를 냈다.

밧슈는 두 손을 들어 개의 얼굴을 살짝 감싸고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 더 세게 쓰다듬어도 될 것 같았다.

지평선 너머로 가라앉아 가는 태양의 마지막 빛이 커다란 개의 상냥한 눈을 비추었다.

"아, 너."

웃으며 밧슈는 이번엔 조금 더 세게 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길이 기분 좋은 듯이 개가 더욱 활짝 입을 벌렸다.

"울프우드와 눈 색이 같네."

혹시 키우던 개를 잃은 사람이 있는지 주변 마을에 찾으러 가봐야겠다. 그랬는데도 혹시라도 네가 주인 없는 개라면 말야.

"너한테 울프우드라고 이름 붙이면 화내겠지? 그러니까 네 이름은 울프우드다!"

괜히 일부러 크게 소리 내어 웃어봤다. '울프우드'도 따라서 헥헥, 숨소리를 냈다.

밧슈는 마지막으로 개를 한 차례 더 쓰다듬어주고 나서 일어났다. 먼저 앞서 걸어가며, 잘 따라 오고 있는지 돌아보았다. 검은색의 동행은 착실히 뒤를 쫓아왔다.

그와 여행하던 시절이 생생히 떠올라서, 밧슈는 즐겁게 웃으며 마을을 향해 가리키며 뛰기 시작했다.

"가자, 울프우드!"

짧게 웡! 울고서 개도 따라서 뛰었다. 개와 함께 밤의 색깔로 짙게 물들고 있는 하늘 아래를 달리며, 밧슈는 남몰래 소원했다.

이 개에게 주인이 없기를.


스핀 리퀘글 2 크밧울

기묘한 것을 주웠다.

골목길 안쪽 쓰레기 옆 상자 속에 담겨 부들부들 떨고 있기에 누가 개나 고양이를 버린 줄만 알고 주워왔는데, 깃털덩어리였다. 그래서 병아리인가 했는데, 그런 것치고 눈코입도 부리도 없이 깃털공 같은 모양. 아이의 장난감인가 했지만 확실히 살아있다. 맥박 치는 심장의 고동이 느껴진다.

살아있는 것이라는 확신이 들자 도로 버릴 수는 없었다.

음식물은 섭취한다. 뭘 먹여야 하나 싶어 우유도 따라주고 고기 조각도 당근도 줘봤는데 다 잘 먹었다. 시간이 지나자 저것이 살아있는 음식물 처리기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점점 커져갔다.

조금 위험한가, 싶은 뒤늦은 깨달음이 든 것은 반 년이 지난 시점. 주변 사람들이 종종 지적하곤 하지만 나는 좀 둔한 데가 있다.

저 녀석, 좀 지나치게 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문득. 테니스 공만 하던 녀석은 이제 두 팔로 끌어안으면 품에 꽉 차도록 커졌다.

침대 위에서 굴러다니고 있는 녀석을 껴안아서 바닥으로 내려놓다가 무심코 말했다.

"이제 슬슬 감당이 안 되는데..."

말해놓고 아차, 싶어 녀석을 쓰다듬어 주었다.

"걱정 마, 걱정 마. 더 커지면...... 이사라도 가지 뭐."

그리고 다음 날, 집으로 돌아오자 낯선 남자가 침대에 있었다.

평소 같으면 바로 공격을 했을 텐데. 총을 쏘거나, 뭔가 던지거나. 나가라고 소리 치거나. 그런데 왜일까. 눈이 마주친 순간, 그냥 곧바로, '녀석'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람 모양을 의태했지만 저 녀석은 내가 주워온 '그게' 맞다.

그 녀석에게 다가갔다. 청명한 파란 눈이 올려다본다. 무엇을 본떴는지 모르겠지만 꽤나 미형이다. 머리는 보송보송한 금발이다. 이 녀석이 원래 달고 있는 깃털과 똑같은 금색. 그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 평소에 쓰다듬던 그 손길 그대로. 녀석이 눈을 가느스름하게 뜬다.

입고 있는 옷은 내 옷이다. 어떻게 꺼내다 입었는지 모르겠지만 셔츠의 단추가 어긋나있다. 손을 그쪽으로 내려서 단추를 풀고 다시 똑바로 채워주었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안 지어줬네... 뭐라고 불러야 되나 이제..."

녀석이 눈을 크게 한 번 깜빡이더니, 활짝 웃고서는,

유창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내 이름은 밧슈! 그동안 계속 말해주고 싶었어. 저기 네 이름은 울프우드, 맞지? 그 이름도 계속 불러보고 싶었어! 저기, 나 너무 심심한데 내일은 나도 같이 데리고 나가주면 안 될까? 이 모습이면 나도 나갈 수 있는 거지? 아 그리고, 계속 신경 쓰여 하는 거 같은데, 나는 개나 고양이가 아니야. 나는 □̵̔͆͛͜ ̴͔̆̾□̶̫͙̓͝□̶̠̠̙̀͝□̸͇̟̅□̵͇̉͝͠ ̴̧̢̼̍̅̕□̸̩͕̍̕̕ͅ□̷̦́ ̵̗̤̌□̴̺̀□̵̮̗̳̃̓ ̸̟͂□̷̧̡̩́□̵͎͌̈́□̷̯͙̣̿̚ ̷̡̞̎͠□̷̭͚̅̀͌□̸̡̺͙̊̚□̶̜̾̃́"

"......어?"

날카로운 뭔가가 뇌를 쑤시는 감각과 함께 거기서 기억이 한 번 끊겼다. 눈을 떠보니 침대 위에 누워있고 밖은 이미 캄캄했다. 집안도 어둡고 간신히 보이는 시계를 보니 시간은 자정을 넘은 새벽이었다. '밧슈'가 울어서 새빨개진 눈으로 옆에 앉아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엉엉,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아니, 어라... 잠깐, 울지 마."

심한 숙취를 겪는 것처럼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픈데,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 우는 애를 달래주려고 밧슈를 끌어당겨서 토닥거려 주었다.

"미안해... 울프우드......"

"뭔진 모르겠지만 괜찮다. 그만 울어라."

밧슈도 침대 위로 올라와 누워서는 옆으로 찰싹 달라붙어왔다. 귀여워서, 그 보송보송한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한참 누워있으니 하품이 크게 나오고 다시 졸음이 쏟아졌다.

"정말 미안해, 울프우드."

"그래..."

사과를 해오는 거에 적당히 장단을 맞춰주며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옆에서 밧슈가 뭐라고 중얼거리는 것이 멀게 들렸다. 제대로 잘 들리지 않았지만, 그래, 하고 다시 대답해주었다. 밧슈가 안심한 듯 푹 기대어왔다.

체온을 끌어안고, 밀려오는 수마에 저항하지 않고 항복했다. 가물거리는 의식으로 했던 마지막 생각은......

내가 원한 것은 나 이외의 온기였을 뿐이라고. 네 정체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고.

밧슈는 울프우드에게 기대어 있다가 고개를 빼꼼히 들어올렸다. 완전히 잠들어버린 그를 한참 빤히 바라보다가, 손가락으로 그의 콧날을 슬쩍 쓰다듬어 보았다.

그리고는 한숨처럼 중얼거리며, 다시 울프우드에게로 기대었다.

"인간이 이렇게 약할 줄 몰랐어. 다음부턴 조심할게."


스핀 리퀘글 3 기억있는 수호천사 울프우드랑 기억 없는 밧슈로 환생물

Magic!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을 부정확하게 묘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놀라지 말고 들어줘!

나에겐 말이지, 수호천사가 있다!!

나의 수호천사는 하얀 옷을 입은 금발의 아이는 아니다. 까만 머리에 까만 옷을 입고 까만 선글라스를 낀(진짜로!) 아저씨다. 아저씨라고 불렀다가 질색하길래 그냥 형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뭐라 그랬더라, 그래......

"니한테만은 아저씨 소리 듣고 싶지 않다!"

라고 했었다.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지만 나도 내가 수호천사라면 아저씨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을지도.

천사 형과의 만남은 응급실에서였다. 위 세척을 모두 마치고 기진맥진한 채로 잠깐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니, 비워진 보호자 자리에 처음 보는 남자가 앉아있었다. 만화에서나 보던, 아니 명화에서나 보던 천사의 후광이 그의 머리 뒤에 드리워져 빛을 내고 있었다. 그때엔 선글라스를 끼고 있지 않아서 그의 맨눈이 보였다. 금빛으로 빛나는 눈이었고, 그것만으로도 그가 천사임에 증거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 남자는 눈을 살짝 찌푸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음성은 귀로 들리는 것이 아닌...... 뇌에 직접 울리는 것 같은 기묘한 파장이었다.

[나는 너의 수호천사다. 쭉 지켜보고 있었는데...... 길을 잃었지, 너?]

찡그려진 얼굴에 담긴 감정이 '걱정'임을 문득 알아챘다.

[너를 안내하기 위해 이렇게 왔으니까, 이제 네가 헤맬 일은 없다. 안심하고, 지금은 일단 자둬라.]

그의 손이 스치듯이 이마에 살짝 닿았고, 그러자 거짓말처럼 편안한 잠이 순식간에 쏟아졌다. 잠깐만, 나 아직 궁금한 것 많은데......

다행히 깨어났을 때에도, 집으로 돌아갔을 때에도 그는 사라지지 않고 곁에 있었다.

내 방 침대에 앉아 의자에 앉은 그에게 온갖 질문으로 세례를 했는데 그는 귀찮은 듯 건성이긴 해도 착실하게 전부 답해주었다.

[모든 인간에게 수호천사가 있는 건 아니다. 넌 특별한 경우야.]

[어떤 원리...? 과학적인 질문은 하지 마라.]

[이 담배? 이것도 실체는 아니라니까.]

[그래, 남들 눈에는 내가 안 보인다. 니 눈에만 보이는 거니까, 다른 사람이 있을 때 말을 걸지는 마라.]

[뭐? 그야 네가 곤란해질 테니까 그러지.]

날 엄청 걱정해준다. 천사니까 좋은 건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내 수호천사가 무척 좋은 천사인 것 같아서 무지무지 행복해졌다.

나에게 수호천사가 있다니!

학교의 불량한 핀 패거리도, 캐시를 집요하게 괴롭히는 채드도, 모두 무찌를 수 있는 무적이 된 기분이었다!

채드에게 덤볐다가 엄청 맞고 뻗었다. 나도 꽤나 때려주긴 했는데...... 난장판인 싸움 내내 [그만둬! 그만두라니까!] 외치는 천사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채드 녀석의 코에 한 방 더 먹여주는 데 집중했다.

보건실에서 치료를 받고 교장실에 채드와 나란히 불려가서 벌점과 징계를 받았다. 하교길에 손등에 붙은 밴드 위를 긁다가 떼어내며 내 뒤를 따라오는 천사에게 투덜댔다.

"수호천사라면서요."

[근데 뭐? 니 싸움질에 축복을 해달라고? 바랄 걸 바래야지.]

"그냥 보고만 있다니..."

조금 삐져서 중얼거린 것뿐인데, 천사 형이 더 이상 쫓아오지 않는 것을 깨닫고 뒤돌았다. 조금 멀리서 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거리와 상관없이 몹시 잘 들린다.

[그 채드 녀석, 때려줄 만하니까 때렸겠지. 캐시란 애가 와서 너에게 고맙다고 인사했고.]

"뭐어......"

내 행동에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아주는 이를 만난 건 처음이라 좀 쑥스러웠다. 멋쩍게 뒷통수를 긁었다.

[나는 네 행동에 간섭할 수 없어.]

"저를 안내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말하는 것만 가능한 거지.]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그의 눈이 보이지 않아 조금 답답했다.

[내 말에 따르고 안 따르고는 결국 네 선택인 거니까.]

그 말대로 그는 나에게 직접 간섭하지는 않았다. 특히 학교나 바깥에서는 스리슬쩍 모습을 감춰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집에서는 항상 그가 보였고, 얘기도 많이 했고, 그것만으로도 내겐 충분했다!

요리를 할 때면 좀더 영양을 챙기라던가 잔소리를 엄청 하고, 밥을 먹을 때면 꼭 맞은편에 앉아서 식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며 말 상대를 해주고, 숙제를 하다가 모르는 부분은 같이 고민해주었다.

"천사인데 이거 정답 모르는 거예요?"

[수학 공부를 시켜주진 않았거든.]

"천국엔 의무 교육이 없어요?!"

[음... 난 원래 인간이었다.]

"인간인데 수호천사가 됐다고요!? 그게 가능해요?"

[가능하지.]

나는 입을 딱 벌리고 천사 형을 바라보다가 질문했다.

"나도 천사가 될 수 있어요?"

지금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지 않아서 그의 눈이 잘 보였다. 감정을 볼 수 있으니까 역시 이 편이 나는 좋다. 굉장히 난처해하고 있었다.

[글쎄.]

"음, 하긴 형보다 더 높은 사람에게 물어봐야 할 것도 같네요."

[나보다 더 높은?]

"신이요!"

그는 팔짱을 끼면서 끄응, 앓는 소리를 내었다. 혹시라도 천국의 금기라도 건들여서 그가 사라지기라도 할까봐 나는 덜컥 두려워져서, 얘기를 거기서 끝냈다.

밤에는 침대 옆 의자에 앉은 천사 형과 잠들 때까지 잡담을 도란도란 나누었다. 내가 하루 중에 제일 좋아하는 시간.

얼굴 상처에 앉은 피딱지를 긁다가 그의 제지에 그만두었다. 간지러웠지만 꾹 참았다.

그가 인간이었을 때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무척 궁금했고 알고 싶었지만 그것도 혹시라도 금기를 깨는 일일까봐 무서워서 물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내 얘기만 떠들었다. 듣는 형은 재미 없었겠지만, 그 편이 안전할 것 같았다.

나... 왜 살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서.

삶의 의미라던가... 아무리 찾아도, 무엇을 해도, 무엇을 하지 않아도, 누구와 있어도, 누구와 있지 않아도, 전부 의미 없게 느껴져서.

있잖아요, 해리 포터라는 소설 알아요? 마법 세계에 대한 소설인데. 거기에 패트로누스 마법이라는 게 나오거든요.

어떤 거냐면,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주문을 외면 수호 동물이 나오는 마법인데...

그걸 보고 내가 마법을 걸면 어떤 동물이 나올까 궁금해서, 행복한 기억을 떠올려보려고 했는데,

아무리, 아무리 떠올려도... 생각나는 게 없어서.

......

그랬는데 형이 왔잖아요?

아, 형이 동물이란 게 아니고... 수호천사니까, 훨씬 더 굉장한 거죠!

나에게도 마법이 있었나봐.

형은 마법 같아.

그의 반응이 궁금했는데 두 눈이 벌써 감겨들고 있었다. 응급실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의 손이 이마에 닿는 따스하고 살짝 오싹한 감촉이 닿았다가 멀어졌다. 그러자 졸음이 더욱 급격히 쏟아졌다.

크게 입을 벌려 하품을 길게 하고, 오른쪽으로 돌아 누웠다. 가물거리는 눈을 깜빡이며 창밖으로부터 비쳐드는 가로등 불빛을 받아 어두운 방 안에서 은은하게 반짝이는 나의 천사님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나의 수호천사님.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웅얼웅얼 말을 건넸다.

형의 얘기가 궁금한데......

혹시 나중에, 말해줘도 괜찮은 때가 오면 말해줘요.

꼭이에요, 알았죠?

* * *

[다들 널 기다리고 있어, 바보야......]

완전히 잠든 금발의 사내애를 내려다보며 들리지 않게 조용히 타박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돈하려고 손을 뻗다가, 혹시 깨울까봐 멈췄다.

[서두르지 마, 아무리 외로워도, 아무리 괴로워도 서두르지 마라...]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막지 않고 넘쳐 흐르도록 내버려두었다. 천사의 눈물, 신성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실체도 없고 닿지도 않을 감정의 발산일 뿐이다.

[백 번 절망해도 백 한 번째 희망은 이 세상에 분명 있으니까...]

네가 이곳에서 혼자 고통받는 모습을 내가 그냥 보고 있을 리가 없잖아.

[널 절대로 혼자 두지 않을 테니까......]

잔인한 신의 장난으로 네가 받는 이 형벌을 대신할 수는 없더라도,

이런 방식으로라도 함께 짊어지고 싶었다.

[너를 안내할 테니까,]

굴레를 끊어내고 자유가 될 그 날까지.

[끝까지 살아......]

손바닥에 입술을 맞춘 후에, 그것을 허공에 내밀어 후 불어 보내며, 속삭였다.

[밧슈.]

이 마법이 깨지는 날, 반드시 만나자.


할로윈에 만나요

AU 뱀파이어 밧슈x늑대인간 울프우드

오늘은 할로윈!

1년 365일의 날들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인간들의 기념일이다!

이 날만큼은 나의 '진짜' 모습으로 다녀도 모두가 분장이라고 여긴다는 점이 너무 재밌어, 방금 보여준 송곳니는 가짜가 아니랍니다! 이걸로 물면 진짜 큰일이 나거든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저는 평화를 사랑하는 신사적인 뱀파이어. 다정한 이웃이랍니다.

매년 즐기던 대로 뱀파이어 코스프레인 척하고 인파 속에서 행렬을 구경하고 길거리 음식을 사먹기도 하면서 어슬렁거리던 중에, 조금 특이한 것을 발견했다.

늑대인간은 인간 사회를 기피하는 폐쇄적인 집단이지 않나? 왜 늑대 하나가 이런 곳을 헤매고 있는 걸까? 그것도 아직 귀와 꼬리를 감추지도 못하는 어린 개체가.

게다가 어째선지 한 무리의 인간에게 붙잡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쩔쩔매고 있다. 요령 없이 맥을 못추는 모습이 보기에 재밌어서 건너편에서 지켜봤지만, 슬슬 불쌍해지는걸.

그래서 신사적인 뱀파이어, 다정한 이웃인 나 밧슈 더 스탬피드가 나서기로 했다.

"여깄었구나, 찾았잖아."

부드럽게, 놀라지 않게 어깨를 감싸 안으며 어린 늑대를 무리에게서 살짝 떨어뜨려놓았다. 놀랐는지 손 아래에서 굳는 기색이 느껴졌지만 아랑곳않고 뒤로 당겼다. 그리고 슬쩍 몸으로 가려주었다. 얼굴은 웃는 그대로 술에 취한 인간 무리를 향했다.

"안녕, 우리 애가 신세 졌네. 일행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만 가봐도 될까?"

뭐라 몇 마디 더 주고받은 후에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인간들에게서 멀어져 어린 늑대의 어깨를 감싼 그대로 태연하게 길 아랫쪽으로 향했다. 조용히 이끄는 대로 따라오며 맞춰주고 있던 늑대는 모퉁이를 돌아 비교적 한산한 곳으로 들어서자마자 곧장 손 아래에서 빠져나갔다.

마주 선 늑대인간의 잿빛 눈은 사람과 같지만 분명 보름달의 날에는 마주치는 것만으로 전신이 얼어붙는 맹수의 것으로 변할 것이다.

이 어린 짐승의 눈은 달빛 아래에서 어떻게 빛날까, 문득 궁금해졌다.

"일단...... 고맙다."

머뭇거리길래 뭘 말하려나 했는데 감사 인사부터라. 예의 바르기도 하지.

"왜 이런 데 혼자 있어? 보호자는?"

늑대 귀가 위로 곤두섰다. 아직 신체 제어도 잘 할 줄 모르고. 더욱 걱정이 되었다.

귀를 바싹 세우고 늑대가 의심스런 눈초리로 올려다본다.

"저기, 당신... 흡혈귀지? 냄새가..."

잠시 말을 흐리더니 또렷하게 질문을 했다.

"그러는 당신은 왜 이런 데 있어?"

"할로윈이잖아, 즐기려고 나왔지."

나는 뽐내면서 둘러 입은 검은 망토를 잡고서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았다. 망토의 안감은 붉은 벨벳이고 여밈 장식도 고급품을 써서, 무척 마음에 드는 의상이었다.

제자리에 다시 서서 늑대를 바라봤다. 약간 입을 벌리고 바보 같은 표정이었다. 그러고 보면 튀어나와 있는 귀와 꼬리를 제외하면 입고 있는 건 평범한 검은 옷이다. 이 친구는 축제를 즐기러 나온 건 아닌가.

"길을 잃었어? 도와줄까?"

걱정스레 묻자 황급히 입을 다물며 늑대가 얼굴을 붉혔다.

"아, 아니다. 혼자 돌아갈 수 있다. 그냥 잠깐... 바람 쐬러 나온 거다.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 알았으면 안 나왔을 거다."

"그래? 아쉽다. 구경이라도 같이 하면 좋을 텐데."

눈을 접어 웃으며, 과장된 동작으로 팔 한쪽을 내밀고 다른 팔을 쭉 펴며 허리를 살짝 굽혔다.

"그럼, 갈까요? 늑대 님. 마을 입구까지 같이 걷지요."

"......"

여전히 얼굴을 붉힌 채로 잠시 망설이더니, 늑대가 조심스레 팔 위에 왼손을 얹었다. 어설프게 얹힌 그 손을 잡아 팔 안쪽으로 위치를 옮겨주고 앞장 서서 번화한 큰길로 걷기 시작했다.

"......진짜 흡혈귀 맞나? 듣던 거랑 다른데... 사실 인간 아이가?"

"하하, 진짜 진짜 뱀파이어가 맞답니다. 코도 좋으신 분이 겉모습에 속으면 안 되지."

"......"

시끌벅적한 길을 벗어나는 어귀까지 가는 짧은 거리를 경쾌하게 걸었다. 여기 저기 온통 박쥐, 호박, 거미, 유령 장식, 모두가 기상천외한 코스튬 차림.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를 발견하고 흥분해서 가리켜보이니 드디어 늑대가 웃는 얼굴을 보여줬다.

귀여워라. 검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 물리겠지? 어라, 늑대인간에게 물리면 나는 어떻게 되려나. 뱀파늑대? 늑대뱀파? 흠, 호기심은 고양이도 선량한 뱀파이어도 죽이는 법. 궁금해하지 말자.

초입에 도달했을 때 팔에 끼고 있던 손을 풀어주고 다시 한 번 과장되게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했다.

"자아, 즐거운 외출 되셨길 바랍니다. 부디 다음 할로윈에 뵙지요."

연극적인 퇴장을 위해서 망토를 붙잡고 빙글 한 바퀴 돌면서, 펑 소리를 내어 연기를 뿜고 그림자 속으로 녹아들었다.

특수효과로 착각한 주변에서 감탄의 소리가 울리는 것을 뿌듯하게 듣고, 환호성 속에 섞여 늑대 소년이 던지는 "잠깐---!!" 짧은 외침도 들었다.

순식간에 지붕 위로 타고 올라와 다시 사람 형태로 돌아와서 밑에 놓고 온 늑대를 멀찍이 지켜봤다.

바로 가버릴 줄 알았건만, 소년은 꼼짝도 않고 거기 서있었다. 내려가봐야 하나 싶을 정도로 오랫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뒤를 돌아 마을 밖으로 향하는 골목을 따라 걸어가 곧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뾰족한 지붕 위에 걸터앉아 무릎 위에 팔을 걸쳐 턱을 받치고 마을 밖으로 우거진 숲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린 늑대 님, 별일 없이 집으로 돌아가겠지.

만월로 차오르려면 한참 먼 홀쭉한 달을 흘깃 올려다봤다.

"이름 정도는 물어볼 걸 그랬나..."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그림자 속으로 녹아들었다. 이번 해의 할로윈 외출은 이것으로 충분하리라.

그 어린 늑대의 이름을 알게 되는 것은

1년 후 10월의 마지막 날, 다시 돌아온 할로윈의 일.

그 후 매해 특별한 하루를 울프우드와 만나서 보내게 되는 미래는

아직은 오지 않은 할로윈의 이야기.


진단메이커 / 밧울에게 보내는 키워드 : 진부, 머리카락, TV

그러니까 이것은, 진부한 사랑 이야기.

예컨대, 너와 내가 평범한 인생을 살다가 만나서 평범한 일상을 공유하는 이야기.

예를 들면, 그날 너는 유난히 힘든 하루를 보내고 귀가하고, 그런 너를 맞이할 준비를 나는 일찍 하면서, 네가 좋아하는 것들로 반찬을 만들 생각을 하며 장을 보고, 정성껏 반찬을 만들고, 밥을 짓고, 돌아온 너를 양팔 가득 끌어안으며 어서 와, 고생했어, 그런 말들로 위로하다가 "밥부터, 목욕부터 아님 나부터♡?" 같은 농담도 하고, 목욕을 하러 간 네가 돌아올 때에 맞춰 따뜻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게 알맞게 밥과 반찬을 데워놓고, 굶주린 사람처럼 늦은 저녁을 먹는 너를 지켜보며, "천천히 먹어, 꼭꼭 씹어 먹고," 그런 잔소리도 좀 하고, 그러면 너는 "애 취급 하지 마," 라고 하며 툴툴대고, 밥을 다 먹은 후에 항상 설거지를 하는 너를 이번만큼은 소파에 앉아 쉬면서 TV나 보라고 떠밀고, 빠르게 설거지를 마친 후에 네가 있는 소파에 합류해서, 언제나의 내 자리에 앉아서, 바닥에 앉아 소파에 기댄 너를 쳐다보다가, 덜 말린 머리카락의 물기를 손끝으로 훔치며, 감기 걸린다, 그런 잔소리를 또 하면서, TV에서 나오는 진부한 연속극에 정신이 팔린 채 대충 대꾸하는 너의 머리카락을, 헤어 드라이기를 들고 와서 따뜻한 바람으로 말려주는 것이다.

뻣뻣한 듯이 보이지만 만져보면 의외로 부드러운 너의 까만 머리카락을,

혹시라도 너무 뜨거울까봐, 살살, 조심조심, 드라이어의 바람을 뜨겁게 그리고 차갑게 조절해가며, 말려주는 것이다.

물기 하나 없이 바짝, 따뜻하고 뽀송해질 때까지 말려주는 것이다.

그즈음에는 꾸벅꾸벅 졸고 있는 너의 어깨를 잡고 슬쩍 흔들며 깨우고서, 잘 거면 들어가서 편하게 자, 그런 상냥한 속삭임을 너에게 하고 싶은 것이다. 침대에 누워서 이불을 대충 덮은 너를 내려다보며 살짝 웃고, 이불을 당겨서 제대로 잘 덮어주고 싶은 것이다.

잠든 너의 옆에 나도 잠들고 싶은 것이다.

내일이나, 미래에 나의 매일매일에 네가 있음을 당연히 여기며,

아침에 깨어난 너의 옆에서 나도 깨어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아주 진부한 사랑 이야기.

대단치도 않게, 그저 너와 함께 살아가고 싶은 한 사내의 소망.


진단메이커 / VW에게 보내는 키워드 : 하늘, 구름, 장대비

하늘의 구름이 심상치 않았다. 지상에서 보기에도 무거워 보일 정도로 쌓이더니, 새카맣게 색이 변했고, 벼락과 함께 번개가 내려치고서는 소나기가 쏟아졌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축제였다.

짧고 강하게 장대비가 내리는 동안 모든 사람이 뛰쳐나갔다. 빗자루가 와하핫, 웃더니 총과 짐을 내던지고 함께 뛰쳐나갔다.

나의 손을 잡고.

"비야, 울프우드! 얼마만이지 이게?!"

각자 집에서 커다란 통을 꺼내서 빗물을 저장하려고 애를 쓰고, 아이들은 그저 신나서 비를 맞으며 뛰기에 바빴다. 빗자루가 나를 아이들 틈으로 이끌었다. 앞니가 빠져 있는 아이 하나가 크게 입을 벌리며 옷을 벗어던지고 두 팔을 하늘로 향한 채 꺄르륵 웃음을 터뜨렸다.

햇빛에 난반사되는 빗물의 빛과 웃음소리와 사람들의 춤.

나도 정장 상의를 벗어 던지고, 셔츠마저 벗으려 들었는데, 갑자기 빗자루가 멱살을 잡아왔다.

놀랐다.

희한하게 얼굴이 빨개진 채로, 풀어놓은 앞 단추를 하나하나 다시 잠가주었다.

"그으, 이거 전연령가라서 말이야."

"뭐? 뭔 소리야."

"그런 서비스 씬은 다음에 부탁드립니다."

"뭔 소리냐고."

단추를 끝까지 잠가버리고서 (답답했지만 참아줬다) 밧슈는 다시 활짝 웃으며 손을 잡아 끌었다.

장대비 아래에서 엉망진창으로 춤을 췄다.

아이들의 웃음 소리에 맞춰.

구름은 이내 짧은 비를 털어버리고 흩어져버렸다.

다시 잔인하게 내리 쬐는 두 개의 태양빛을 받으며, 젖은 몸을 말렸다.

국지성 호우가, 이 마을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났다.


스핀 리퀘글 4 남친코트

"입어."

밧슈가 내민 붉은 코트를 울프우드는 시큰둥하게 내려다봤다.

"네 옷을 내가 왜."

"입으랄 때 입으라고."

"괜찮아."

무시하고 담배나 피우려고 품을 뒤적이려던 울프우드는 담배갑이 든 정장 상의가 통째로 타버린 것을 새삼 상기하고 혀를 찼다. 그런 그의 가슴에 막무가내로 밧슈가 코트를 밀어붙였다.

"입으라고!"

"야, 니가 더 추워 보인다고! 그냥 너 입고 있어!"

"난 판초가 있으니까 괜찮아. 이제 밤이야. 셔츠 한 장으로 그러고 있다간 동사한다."

"......"

울프우드는 인상을 찡그렸지만 딱히 반박할 말도 없어서, 결국 한숨 한 번과 함께 내밀어진 코트를 받아들였다.

팔부터 집어넣어 입고, 복잡한 단추를 꿰었다. 생각보다...... 따뜻하고, 견고했다.

그새 배낭에서 판초를 꺼내어 입은 밧슈가, 자신의 코트를 입은 울프우드를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았다. 그리고선, 풉, 하고 웃음을 터뜨리다가 기침으로 무마하려고 애썼다.

울프우드는 진심으로 담배가 피우고 싶어졌다.

"비웃을 거면 그냥 웃어라."

"아니, 그게 아니라...... 너, 빨강이 안 어울리는구나."

"그러는 너는 운동 좀 더 해야겠다. 가슴이 낀다."

"뭐,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상체 근육 좀 더 키우라고."

"이 경우엔 내가 문제가 아니라 네가......"

"내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밧슈를 노려다보는 울프우드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쩔쩔매던 밧슈가 얼버무리고서 배낭을 어깨에 걸쳐멨다.

"밤은 짧으니까, 걷자 울프우드!"

"내가 뭐 임마! 말을 하다 마냐!"

붉은 코트를 입은 검은 머리의 사내와 판초를 두른 금발의 사내는 밤새 내내 티격태격대며 사막을 횡단했다.


스핀 리퀘글 5 울프우드 神父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계속해,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온 세상이... 헉."

"이런, 네 아버지가 아무래도 너를 보고 있지 않은가 보다. 어쩌지, 신부님? 이상해, 그치? 정말로 신이 있다면 내가 이곳까지 들어오지도 못할 거고, 이렇게 너를......... 만지는 것도 불가능해야 하지 않을까? ...... 대답해봐, 신부님."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이미 시험에 든 것 같은데."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안 듣고 있다니까, 애쓰지 말라고----"

머리 위에, 마치 축성을 하듯 올려진 손을 밧슈는 믿을 수 없어 하며 올려다보았다.

"......이 어린 양을 인도하소서."

울프우드를 올려다보던 밧슈가, 울 듯한 목소리로 쥐어짜내어 말했다.

".......곧 죽어도 성직자다, 이거지."


스핀 리퀘글 6 에릭스를 찾기 전 혼자 피브스 문을 바라보며 밧슈를 생각하는 울프우드

오늘도 허탕이었고, 밤에는 어김없이 달이 떴다.

다섯 개의 달이 항상 밤에 뜨는 건 아니다. 두 개의 달은 낮에 뜨고, 세 개의 달은 밤에 뜬다. 세 형제 중 막내에게는 이제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겼다. 운석 충돌도 아닌 한 남자에 의해 생긴 초자연적 생채기다. 그것을 볼 때마다 헛웃음이 나온다. 저런 괴물을 찾아서 뭘 하겠다는 것인가, 나는.

하지만 괴물을 상대하려면 이쪽에게도 괴물이 필요하다.

밧슈 더 스탬피드에 대한 소문은 무성하다. 닥치는 대로 소문을 쫓아다니며 찾아다니고 있는 처지이니만큼 잘 알고 있다.

악명을 뒤집어쓰고 날뛰고 있던 얼간이들이 다섯, 정말로 정신착란을 일으키고 있었던 놈이 하나, 밧슈 더 스탬피드 행세를 해서 그를 찾으려는 꾐을 부리고 있던 원한귀가 하나.

모두 처리했다.

마지막 하나 남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하얀 숨과 함께 밤하늘로 흩어지는 연기.

밧슈 더 스탬피드에 대해 아는 것은 적다. 그러나, 인류가 희망을 건다면 아마 그 사내뿐이겠지, 오로지 그 생각으로 움직이고 있다.

영원한 상처가 새겨진 피프스 문.

그 남자와 재회하게 되면 자신의 운명에도 돌이킬 수 없이 흔적이 남을 것이리라는,

근거 없는 예감이 드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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