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창녀

가난.냄새.우편물.

집에 찾아오는 색색의 우편물들. 여러 은행. 여러 신용정보회사. 듣도보도 못한 온갖 잡스러운 캐피탈들. 그것들로부터 도망쳐서 출근을 한다.

내가 일하는 창녀구룡성채. 어둡고 냄새나고 차갑고 축축한 낡은 건물은 1층에 있던 환전소가 도박장으로 바뀌었다. 도박장 사람들은 같은 건물의 창녀들을 싫어한다.

건물 입구를 열고 들어가면 집집마다 더 다양한 색의 고지서들이 쇠로 된 우편함 주둥이가 찢어지도록 꽂혀있다. 온갖 어르고 달래는 말들. 협박하는 말들. 제발 좀 돈을 내달라고 사정사정하는 말들이 가득 들어있는 종이쪼가리들이 넘쳐서 바닥에도 떨어져있고 우편함 위에도 낙엽처럼 쌓여있다.

집집마다 부적처럼 붙어있는 우체국 등기 스티커들. 우편함 주둥이가 찢어질때까지 어르고 달래고 협박해도 돈을 내지 못해서 집까지 찾아와 문을 두들기다 간 흔적이 있다. 단 한집도 빠짐없이. 은행. 신용정보회사. 법원. 형사과. 질서계(우리는 풍속과라고 부른다). 전기회사. 가스회사. 모아둔 스티커처럼. 문 앞에도 문 안쪽에도 붙어있다. 왜 버리지 않는걸까. 사모은 스티커도 아닌데.

어떤 집은 문과 벽에 사람들이 매직으로 제발 퇴거해달라 돈을 내달라는 말을 적어놓고 가기도 했다.

가난이 귀신처럼 쫓아온다. 하지만 귀신같다기엔 가난이라는건 너무 형태가 있는 현실인데. 동시에 또 너무 막연하고 잡히질 않아서 치우거나 없앨수가 없다. 공기같고 연기같고 냄새같고. 지독하게 따라붙고 지긋지긋하다못해 이젠 무섭고 역겹다. 그래서 귀신같다.

온갖 종류의 벌레가 나오고. 발 밑에는 미처 도망가지 못해서 밟혀죽은 벌레시체들이 가득하고. 곰팡이냄새. 낡은 콘크리트와 모래냄새. 아무리 세탁해도 사라지지 않는 젖은 걸레같은 냄새. 뭔가 썩는냄새. 쓰레기냄새. 알수없는 식재료 냄새. 외국인. 장애인. 빚에 쫓기는 사람. 경찰에게 쫓기는사람. 여러종류의 창녀. 창녀들의 손님… 가끔 오는 경찰과 구급차와 소방차 과학수사대차. 특수청소 업체…를 생각하다 등 뒤가 서늘해져서 뒤를 한번 돌아본다.

열심히 일하고있는것 같은데. 손에 들어오거나 남는게 별로 없다. 이상하다… 밀린 공과금들. 내지 못한 대출금들. 통신비… 그런걸 일수찍듯이 매일매일 조금씩 나눠내고있다. 그러고나면 남아있는게 없다. 매일 물이 턱밑까지 차오른것같지만 하루라도 일을 쉬게되면 그대로 물에 빠져 죽는다. 하지만 빠져죽는게 별로 무섭지 않다. 매일아침부터 하루종일 돈갚으라고 전화해주는 사람도 있고 집에 찾아와주는 사람도 있으니 외롭지 않다.

머릿속으로 오늘 돈이 얼마나 들어오는지 계속 세어본다. 큰돈이 들어와도 결국 남는건 없고. 어떤날은 돈이 들어오지 않기도 하고. 그런주제에 매일매일 이렇게 벌수 있으니 괜찮을거라는 환상에 빠지기까지 한다.

가난하지 않고싶어서 여기에 왔는데. 나는 여전히 가난하다. 가난하지 않을 방법을 모르겠다. 가난하지 않는 방법은 부자가 되는걸까?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가난의 반대가 부유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자라는건 계층이잖아. 층위잖아. 상대적인거고 다른사람과 재산에 높낮이의 차이가 있어서 생기는 개념이잖아. 그럼 내가 부자가 된다는건 누군가 가난해진다는거 아냐? 그렇다고 모두 다 부자가 되면 더이상 부자라는건 의미없어지겠지. 뭔가 잘못된거아닐까. 왜 가난하지 않아야하지? 가난해도 괜찮을수는 없나. “가난하지 않고싶다“가 아니라 ”가난해도 괜찮게 살고싶다“일수는 없나.

그런 생각을 하며 몸을 박박 씻고. 걸레냄새가 나는 수건으로 몸을 닦고. 다음 손님을 받을 준비를 한다.

침대에 누워서 몸이 흔들리며 가난의 냄새에 대해 생각한다. 가난의 냄새 라는 표현이 별로라고. 누가 장문의 글을 쓴걸 본적이 있었는데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별로 와닿지 않았나보지.

가난의 냄새라는건 나 혼자, 혹은 우리끼리 있을때는 괜찮지만. 가난 밖의 사람과 마주하는순간 알게된다. 내 냄새가 가난의 냄새였구나.

사람들의 표정과 눈빛, 몸짓, 말투.. 그런것들로 내가 가난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걸 알게된다. 서로 아무리 애써도 숨길수가 없다. 어떤게 남들 눈에 “가난“인지 ”가난“안에 계속 있던 내가 구분할수 있을리 없기때문에. 이제는 포기했다. 더이상 그런 쓸데없는데에 에너지를 쓸 수 없다.

쓰레기냄새. 쓰레기를 태우는 냄새. 술에 취한 사람의 냄새. 재떨이 냄새. 업소의 얼룩진 소파와 싸구려 방향제 냄새. 아무리 세탁해도 사라지지않는 젖은 걸레같은 냄새가 나는 옷, 수건, 이불. 찌든 오줌같은 냄새. 벗겨진 장판과 벽지 사이로 올라오는 습기찬 콘크리트의 모래냄새, 흙같은 냄새. 벌레가 나오는 집의 냄새. 젖은 동물 냄새. 알수없는 무언가가 썩는 냄새. 파스냄새. 숨쉴때마다 몸속에서 올라오는 피비린내 냄새. 가래냄새. 몇달씩 세탁하지 않은 옷. 뭉쳐있는 빨래. 대체 옷에 있는 그 얼룩들은 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 내 신발을 내려다보고 내 얼굴을 본 뒤 찡그리거나 비웃는 사람들. 필사적으로 못본척 하는 사람들. 나를 감시하듯 나와서 시선으로 계속 쫓는 사람들.

다 너무 좋다. 매일매일이 축제야. 너무 즐거워. 전부 사랑한다.

나는 지치지 않는다. 죽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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